한반도 평화 & 평화 통일평화갈등 연구한반도 평화 & 평화 통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국 사회의 적극적 평화

한반도는 남북한 사이의 전쟁 또는 무력 충돌의 위험이 상존하는 곳이다. 이는 직접적 폭력의 부재를 통해 성취되는 소극적 평화가 부재한 상황을 의미한다. 소극적 평화는 인간의 신체적 안전이 보장되는 상태로 인간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낮은 수준의 평화다. 국가 차원에서 소극적 평화의 성취는 국가 또는 집단 사이 무력 충돌 내지 전쟁 가능성이 모두 제거될 때 가능하다. 무력 충돌 또는 전쟁은 인간의 생명과 신체에 해를 입히는 가장 심각한 직접적 폭력이고 모든 인간은 무력 충돌이나 전쟁이 부재한 소극적 평화를 누릴 권리가 있다. 이는 소극적 평화의 성취를 통해 국민의 신체적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의무임을 말해준다. 이런 소극적 평화는 무력 강화를 통해, 그리고 오판 가능성의 축소를 통해 무력 충돌 및 전쟁을 예방하는 접근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무력 충돌과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적, 문화적 폭력을 제거하는, 다시 말해 적극적 평화를 추구하는 접근을 통해 가능하다.

 

적극적 평화는 신체적 안전을 보장하는 소극적 평화를 넘어 모든 사람이 어떤 권리도 박탈당하지 않고 사회 모든 분야에서 성취된 발전의 혜택을 공평하게 누리는 상태를 말한다. 소극적 평화가 인간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평화라면 적극적 평화는 인간으로 누려야 할 삶의 질을 보장하는 수준의 평화라 할 수 있다. 적극적 평화의 성취를 위해서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가 만들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모든 종류의 차별을 제거하고, 모든 사회 구성원의 사회적·법적 권리를 보장하며, 공평과 공존을 방해하는 모든 폭력적 사회 구조와 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 법, 제도, 규제, 정책, 공공기관 등을 통해 가해지는 구조적 폭력, 그리고 사상, 철학, 이념, 이론, 사회 담론, 문화 콘텐츠, 언어, 종교적 가르침 등을 매개로 가해지는 문화적 폭력이 제거되어야 한다. 모든 폭력이 부재한 적극적 평화를 추구하고 성취하는 사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 폭력의 제거가 불가피하다. 국가는 국가를 운영하는 다양한 구조, 그것을 정당화하는 정치 철학, 이념, 사회 담론, 홍보콘텐츠 등의 문화적 장치, 그리고 독점권을 가지는 군과 경찰 같은 무력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에게 광범위하고 강력한 폭력을 가할 수 있다. 때문에 국가 폭력을 제거하지 않고는 적극적 평화의 성취가 불가능하다.

 

적극적 평화를 추구하고, 나아가 어느 정도 성취한 사회의 모습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모든 차별이 사라지고 권리가 보장되며 다양한 개인과 집단의 공존이 이뤄지고 모든 사회 구성원의 최소한의 삶의 질이 보장되는 사회다. 구체적으로는 폭력적 구조의 제거를 통해 사회적 자원이 공평하게 분배되고 그에 따라 소득 불균형이 완화 및 해소되는 사회다. 소수자 집단을 포함한 모든 집단이 구조적, 문화적 폭력의 피해를 입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공존의 사회다. 국가가 모든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공공 자원과 구조를 운용하고 모든 국민의 이익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사회다. 대외적으로는 모든 국민의 안전과 번영이 최우선 목표로 설정되고 그에 따라 무력 충돌 및 전쟁의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제거되는 것은 물론 외교적 갈등이 완화 및 해결되는 사회다. 이런 적극적 평화의 추구 및 성취는 유토피아적 발상이 아니라 모든 민주주의 국가가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는 용어로서 ‘적극적 평화’를 사용하지 않을지라도 내용상으로, 그리고 원칙적으로 적극적 평화를 추구한다.

 

남북한 사이 대결과 갈등, 무력 충돌 및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는 한국 사회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평화를 추구할 당위성을 가진다. 그러기 위해 우선적으로 남북한 사이 무력 충돌 및 전쟁의 위험을 완전히 제거해 소극적 평화를 성취해야 한다. 나아가 남북관계, 대북정책, 이념 대결 등과 관련된 구조적, 문화적 폭력을 점진적으로 줄이고 마침내 제거하는 적극적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 모든 국민의 안전과 행복이 보장된다. 이런 노력은 자연스럽게 남북한 사이 정치적, 군사적 대결을 완화하고 평화적 공존의 가능성을 높여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다. 그러므로 적극적 평화를 추구하는 접근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 중 하나인 남북한의 공존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도 당위성을 가진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적극적 평화를 추구하는가. 여기에 대한 답은 대체로 ‘아니오’다. 정권에 따라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오랜 역사를 보면 대체로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적극적 평화를 추구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변화를 추구한 정부의 노력은 유감스럽게도 한시적, 지엽적인 시도에 그쳤고 때로 그것이 역풍을 낳기도 했다. 이로 인해 적대적인 남북한 관계는 오랜 시간 큰 변화가 없이 유지됐고 거기에서 기인한 폭력이 한국 사회에 만연하는 결과를 야기했다.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경험한 폭력은 다양했고 특히 남북한 사이 대결과 그 영향을 받은 한국 사회 내 이념 대결을 악용한 폭력의 강도와 피해는 주목할만한 수준이었다. 국가는 남북한 사이 정치적, 군사적 대결과 긴장을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국민을 무력 충돌 및 전쟁이라는 직접적 폭력의 위험에 노출시켰다. 이는 국민으로부터 전쟁의 위험에 처하지 않고 살 권리인 평화적 생존권을 빼앗는 것이었다. 독재 정권 시절에는 정부의 반공 이념에 저항하는 국민을 구금하고 고문하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는 폭력을 저질렀다. 이런 직접적 폭력은 모두 ‘합법적’ 권한을 가진 공공기관을 통해 이뤄진 구조적 폭력이기도 했다. 또한 국가는 반공과 국가 안보를 정치 철학, 사상, 사회적 담론 같은 문화적 장치를 통해 정당화하고 국민에게 강요했다. 인권, 노동자 권리, 평화통일 등에 초점을 맞춘 시민운동 또한 사상과 이념이라는 문화적 장치와 법과 공공기관이라는 폭력적 구조를 통해 억압했다. 남북한 사이 적대적 관계는 다양한 국가 폭력, 즉 국가의 직접적, 구조적, 문화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간이었다. 사회 변화, 권리 향상, 차별 금지, 경제 민주화, 소득 불균형 해소 등 다양한 사회적 주제와 관련된 법과 구조, 그리고 정부 접근의 변화를 촉구하는 요구는 자주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종북’ 또는 ‘좌파’ 이념으로 규정되고 억압의 구실이 됐다. 이런 상황은 한국 사회의 적극적 평화가 결국 한반도 평화와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한 사이 적대적 관계의 개선이 없이는 모두의 안전, 번영, 행복을 위한 사회 변화는 어려울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한국 사회의 적극적 평화 추구가 없이는 남북한 사이 적대적 관계에 대한 새로운 성찰과 이해 등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없고 결국 한반도 평화가 달성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한국 사회의 적극적 평화와 한반도 평화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잘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사례는 12.3 비상계엄이다. 정부는 무력을 동원해 국민의 신체적 자유를 박탈하고 포고령을 위반하는 경우 체포, 구금, 처단 등의 직접적 폭력을 가하려고 시도했다. 또한 언론, 출판 등을 통제하고 집회를 금하는 등 표현의 자유 박탈도 시도했다. 이런 비상계엄은 대통령에 의해 선포됐고 실행을 위해 대규모의 군과 경찰이 동원됐다. 대통령, 군, 경찰은 모두 합법적인 기관으로 대통령과 동조자들은 ‘합법적’인 구조를 이용해 비상계엄을 실행했다. 비상계엄 선포를 합리화한 핵심적인 논리는 종북·반국가단체를 척결하고 부정선거를 바로잡는다는 것이었다. 또한 비상계엄은 국가를 구하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지키려”는 대통령의 ’통치행위‘라는 것이었다. 극우 이념과 왜곡된 사회 담론 등 문화적 장치에 기대 비상계엄의 합리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는 비상계엄이 적극적 평화의 부재를 야기하는 모든 폭력에 연루되었음을 의미한다. 비상계엄 계획자들은 남북한 사이 적대적 관계와 한반도 비평화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북한에 드론을 침투시키고 남한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응한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에 대한 원점 타격을 시도했다. 북한의 도발을 유도해 무력 충돌 내지 국지전을 일으키고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으로 의심할 수 있다. 이 모든 사례는 적극적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 다시 말해 적극적 평화를 방해하는 구조와 문화가 만연한 한국 사회가 한반도 평화 역시 방해하고 있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 한국 사회 적극적 평화의 부재와 한반도 평화의 부재가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적극적 평화 추구와 성취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적극적 평화 추구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폭력적 구조, 즉 ’합법성‘을 이용해 구조적 폭력을 자행하는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동시에 구조를 통한 폭력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데 이용되는 편향되고 극단적인 이념, 철학, 담론, 미디어콘텐츠 등의 문화적 장치를 사회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두 가지 접근 모두에 매우 취약하다. 구조는 여전히 정부, 정당, 정치인, 고위 관료 등에 의해 독점되고 그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기제로 존재한다. 다양한 문화적 장치 역시 정부와 정치인을 포함한 기득권 세력에 의해 악용된다. 이에 대한 시민의 감시와 거부는 강력하지 않다. 이로 인해 여전히 다양한 국가 폭력이 다른 선진국 사회보다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12.3 비상계엄 사례가 보여준 것처럼 합법적으로 유지되는 구조를 국민을 억압하고 심지어 전쟁을 유발하는 데 악용한다. 정부는 또한 ’순수한‘ 국민과 ’불순한‘ 국민을 구분하고 탄압하는 데 이념을 악용한다. 이런 상황은 남북한 사이 적대적 관계를 악화하고 한반도 평화를 요원하게 만든다.

 

한반도 평화, 다른 말로 남북한 사이 적대적 관계의 완화와 중단, 나아가 평화적 공존은 한국 사회의 변화 없이는 기대할 수 없다. 한국 사회가 적극적 평화를 추구하고 그에 따라 폭력적 구조와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한반도 평화도 이뤄질 수 없다. 적극적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 국가와 사회는 남북한 사이 적대적 관계를 개선하지 않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오히려 이를 폭력을 정당화할 핑계로 악용할 것이다. 또한 현 정부처럼 남북한 사이 적대적 관계를 강화하고 무력 대결에 초점을 맞춘 구조의 운용에 주력할 것이다. 이는 전쟁의 위험성이 존재하지 않는 소극적 평화조차 구조를 바꾸는 적극적 평화의 노력 없이는 가능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한반도 평화는 한국 사회가 폭력적 구조와 문화를 바꾸고 적극적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합법적’인 구조를 동원한 폭력을 제거하고 편향적으로 왜곡된 이념, 사회 담론, 미디어콘텐츠 등 문화적 장치에 기대 국민을 호도하는 것을 멈추느냐에 달려 있다.

  

* 참고 자료

Jeong, H.-W.(2000) Peace and Conflict Studies: An Introduction. Ashgate: Aldershot.

정주진 지음. 『평화학: 평화적 공존을 위한 이론과 실행』. 철수와영희. 2022.

강의·워크숍 안내
평화갈등연구소의 강의·워크숍을 소개합니다.

자세히 보기

평화갈등연구소 Center for Peace & Conflict Resolution
연락처 070 - 8279 - 6431 ( 오전9:00 ~ 오후6:00 / 공휴일 휴무 )
© 평화갈등연구소, All Rights Reserved.
※ 평화갈등연구소 홈페이지의 모든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Made ♡ Postree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