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비 확충이 대세?
한국과 미국 정부는 11월 14일(한국시간) 관세, 안보 협상 등의 내용을 담은 공동 팩트시트(설명자료)를 발표했다. 한국산 물품의 관세율과 한국의 대미 투자액 등에 대한 합의가 담긴 이 팩트시트에는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지 않은 한국의 국방비 지출과 미국산 군사 장비 구매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한국은 “가능한 한 조속히”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3.5%로 증액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2030년까지 한국이 미국산 군사 장비 구매에 250억 달러(약 36조 7,500억원/1원 1470원 기준)를 지출한다는 것과 한국이 요청한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미국이 승인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국의 2025년 국방비는 61조 2,469억원으로 GDP의 2,32%였다. 이는 액수로 보면 10년 전인 2015년의 37조 5,550억원에서 23조 6,919억원이나 늘어난 것으로 증가률은 63.1%다. GDP 대비 비율은 2.16%에서 2.32%로 0.16포인트나 증가했다. 국방비는 2020년에 50조 2,000억원으로 50조원을 넘어섰고 5년만인 2025년에는 60조원을 돌파해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2025년 GDP의 3.5%를 계산해도 91조 원이 넘으니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한국의 국방비는 몇 년 안에 100조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6년 국방비는 2025년 예산에서 8.2% 증가한 66조 3,000억원으로 편성됐다.
한국의 국방비 증액은 미국의 압력으로 많은 국가의 국방비가 증액되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6월 나토 회원국들은 물론 아시아 동맹국들도 국방비를 GDP의 5%까지 늘려야 한다고 압력을 가했다. 당시 우리 국방부는 한국은 이미 다른 동맹국들에 비해 국방비 지출액이 높은 편이라며 난색을 표했고 전문가들은 3% 정도로의 인상이 합리적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국방비 증액을 결정했고 이는 나토 유럽 회원국들의 실질적인 국방비 증액 수준과 같다.
트럼프 행정부의 압력에 굴복해 나토 회원국들은 이미 2025년 6월 25일 열린 나토정상회의에서 2035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5%로 증액하기로 합의했다. 5% 중 3.5%는 직접 국방비에, 그리고 1.5%는 안보 기반시설과 투자 등에 지출될 예정이다. 나토 유럽 회원국들은 2024년 기준으로 GDP 2% 안밖의 국방비를 지출했고 러시아에 인접한 폴란드,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같은 국가들만 3% 이상의 국방비를 지출했다. 나토정상회의 결정은 대다수 회원국이 현재 수준에서 두 배 이상, 일부 국가의 경우 약 세 배로 국방비를 증액해야 함을 의미한다. 냉전 시대 종식 이후 점진적으로 감소했던 국방비가 대다수 국가에서 냉전 시대 종식 이전 수준으로 회귀하는 큰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는 다만 미국은 2024년 현재 GDP의 3.4%인 국방비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잘라 말했다.
유럽 국가들의 국방비 증액은 꾸준히 국방비 증액이 이뤄지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로도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2024년 동아시아 국가들의 국방비는 전년에 비해 7.8% 증가해 2009년 이래 최고치를 보였다. 그중 가장 큰 증가율을 보인 건 일본으로 21%나 증가했고 대만이 1.8%, 한국이 1.4%의 증가율을 보였다.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는 미얀마가 66%로 가장 높은 증가율을, 그다음으로 필리핀이 19%의 증가율을 보였고 싱가폴의 국방비도 3% 증가했다. 지역의 군사적 긴장, 중국의 국방비 증액, 자국 군대의 현대화 등이 영향을 미쳤다. 세계의 군비 경쟁이 확산하는 가운데 아시아 국가들의 국방비 증액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GDP 3.5%로의 국방비 증액과 핵추진 잠수함 건조 결정 또한 아시아 국가들의 국방비 증액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인간안보 위협하는 군비 강화
유럽 국가들의 국방비 증액은 트럼프의 압력 때문만은 아니다. 유럽 국가들이 본격적인 군비 강화로 선회한 건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SIPRI)의 2025년 3월 팩트시트에 따르면 2015-2019년과 비교해 2020-2024년 유럽 국가들의 무기 수입은 155% 증가했다. 특히 러시아에 인접한 국가들의 무기 수입은 헝가리 1,454%, 벨기에 1,338%, 폴란드 508%, 덴마크 311%, 루마니아 233%로 가파른 상승 곡선을 나타냈고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의 수입은 9,627% 증가했다. 그러므로 유럽 국가들의 국방비 증액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안보 우려의 심화와 미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스스로 방위를 책임지라고 요구한 트럼프의 압력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시아 국가들의 무기 수입과 국방비 지출 증가로도 이어졌다. 대다수 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을 제외하고 전 세계 모든 지역에서 무기 수입이 증가했다.
국제 정치와 안보 영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유럽 국가들의 국방비 증액 결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이는 유럽 국가들이 외교와 군비 통제보다 군사적 억지력 확대, 그리고 무력을 통한 국가안보를 우선 과제로 설정하는 방향으로 선회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4주년을 몇 달 앞둔 시점에도 종전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강경 입장만 표출했고 미국의 종전 중재에 마지못해 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러시아에 대한 불신과 경계, 그리고 안보에 대한 우려 때문이지만 유럽 국가들이 무력 사용과 전쟁보다 협상, 중재 등의 외교적 접근이 우선되어야 하고 평화적으로 무력 충돌 및 전쟁을 해결해야 한다는 유엔 헌장의 정신조차 외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국제사회의 규범에 반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 무력 사용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 변화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낸다.
유럽 국가들의 국방비 증액은 다른 면에서도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 우선 국방비 증액은 세계 경제가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다. 이런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 영국, 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개발도상국 및 빈곤국에 대한 지원 예산을 줄이고 있다. 특히 영국 총리는 지난 2월 국방비 증액을 위해 해외 지원 예산을 줄여나갈 것이라고 공식 천명하기도 했다. 개발도상국 및 빈곤국에 대한 선진국들의 지원 예산 축소는 많은 세계인에, 그리고 결국 전 세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기후변화의 영향이 날로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원 축소는 재정 상황이 열악한 개발도상국과 빈곤국의 기후변화 관련 자연재해 대응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국방비 증액이 야기할 또 다른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생활비와 물가 인상, 그리고 사회 안전망 축소 등이다. 정부 예산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국방비 증액이 국민 생활 향상과 사회 안전망 유지 및 개선에 대한 압력으로도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토의 국방비 증액 결정 이후 유럽노동조합연합(European Trade Union Confederation/ETUC)은 사회 지원 자금이 이미 국방 영역으로 돌려지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며 사회적 지출은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방비 증액이 노동자 계층에 재정 부담 증가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2025년 3월 발표된 유럽연합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3%가 향후 5년 동안 자기 삶의 질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2024년 봄에 비해 1% 상승한 수치였다. 또 응답자 중 43%가 유럽연합 의회의 최우선 과제로 물가 및 생활비 인상 대응을 꼽았고 국방과 안보, 빈곤, 사회적 배제 문제 등을 그다음으로 선택했다. 이는 국방비 증액이 유럽 국가 국민의 우려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국방비 증액은 기후변화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무기와 군사 훈련 등은 온실가스 다량 배출원 중 하나다. 이런 맥락에서 환경과 기후변화 문제를 다루는 단체들은 국방비 증액 결정을 기후변화 대응에 역행하는 정책으로 비판하며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국의 국방비 증액도 지금까지 열거한 문제들과 같은 맥락에서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국방비 증액은 당연하게 정부 재정에 압박이 되고 그에 따라 한정적인 정부 예산 내에서 사회 안전망 확충과 사회 발전을 위한 지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절대적인 액수가 줄어들지는 않아도 증액된 국방비는 추가적이고 충분한 지출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세계적 맥락에서 본다면 선진국의 일원으로 한국이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을 늘릴 수 없고,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대응에도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국방비 증액이 각국, 그리고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력에 기댄 국가안보에 대한 지나친 투자로 인한 인간안보의 위협이다. 이는 선진국, 개발도상국, 빈곤국을 막론하고 개인의 안전한 일상과 생계에 대한 위협, 동시에 세계와 미래 인류의 안전에 대한 위협을 의미한다. 국가주의 및 민족주의의 심화 속에서 세계 공동의 평화에 대한 외면과 자국 또는 지역의 안전만 추구하는 왜곡된 평화의 심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결국 국가안보가 강조되고 인간안보가 소외되는 시대로의 귀환과 인류의 퇴보를 의미한다.
군비 강화와 평화구축
세계 많은 국가의 국방비 증액은 안보를 보장하고 평화를 지킨다는 논리하에 실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세계시민이 공유하고 지향하는 평화의 보편적 가치와 어긋난다. 대다수 세계시민이 원하는 평화는 모두의 안전한 일상과 다양한 배경의 집단과 개인의 공존이며 무력을 이용한 상호 견제와 위협이 아니다. 국가와 사회 보호를 위한 군사력 유지를 지지하더라도 군사적 긴장을 심화하고 무력 충돌의 가능성을 높이는 수준의 군비 강화를 지지하는 세계시민은 많지 않다. 군비 강화는 이런 보편적 평화의 관점에서 성찰되어야 하고 그런 점에서 평화 실현을 위한 이론 및 실행 접근인 평화구축(peacebuilding)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할만하다.
평화구축의 관점으로 접근할 때 세계 군비 강화와 관련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쟁 담론의 확산이다. 군비 강화는 적을 압도할 수준의 군사력 필요를 강조하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방어에 초점을 맞추는 논리로 보이지만 사실상 공격 가능성과 불가피한 전쟁을 주장하는 것이고 상대는 군비 강화를 방어가 아닌 공격력 향상으로 해석한다. 이런 이유로 군비 강화는 군비 경쟁, 군사적 긴장 심화, 관계의 악화를 야기한다. 무엇보다 군비 강화는 유엔 헌장이 명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규범이기도 한 외교와 중재 등을 통한 무력 충돌 및 전쟁 예방 접근을 무시하고 무력을 통한 문제해결을 정당화한다. 이는 자위권의 왜곡, 과도한 정당한 전쟁(just war) 인정, 전쟁의 정치화와 소비 등으로 이어진다. 현재 진행 중인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런 문제를 잘 보여준다. 무력 사용이 문제해결 수단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당사국들은 물론 세계에 더 많은 문제를 가져온다는 점도 보여주고 있다.
군비 강화와 연결된 전쟁 담론은 정당한 전쟁 논리에 기반해 세계시민의 평화롭게 살 권리와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징집의 정당화로 연결된다. 전쟁을 위한 징집은 국내법에 따라 정당화되지만 타인에 대한 공격과 심지어 살해를 강요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도덕성을 파괴하고 정신적 피해를 야기하는 반인권적, 반인륜적인 행위다. 군비 강화와 전쟁 담론은 비인간화를 야기하는 징집의 거부에 대한 법적 처벌과 사회적 비난의 정당화를 통해 개인의 선택 자유를 억압한다. 이는 개인의 평화적 일상과 미래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전쟁 담론의 확산이 야기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평화 담론의 저해다. 적대적 관계와 군사력에 기반한 국가안보를 강조하는 전쟁 담론은 국가 간 평화적 관계와 공존을 강조하는 평화 담론을 현실성이 결여된 순진한 발상으로 폄하한다. 나아가 전쟁 반대와 대화와 외교를 통한 문제해결 주장을 배신자 또는 매국노 담론으로 매도한다. 가장 위험한 건 국가가 이런 전쟁 담론의 강조와 확산에 깊이 관여하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전쟁 담론을 독려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평화 담론 확산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극심한 힘의 불균형하에서 표현을 억압당한다. 이는 평화적 공존에 대한 열망과 평화롭게 살 권리에 대한 억압으로 평화 실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평화구축의 핵심 개념은 평화적 공존이다. 국가와 개인 모두의 안전과 행복을 전제로 하는 평화적 공존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신체적, 물리적 피해를 야기하는 전쟁 및 전쟁 가능성의 부재다. 이런 평화적 공존은 군비 강화로 성취되지 않는다. 이는 비현실적이고 순진한 상상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이미 세계가 많은 전쟁의 경험을 통해 확인한 것이며, 이런 이유로 유엔 헌장에까지 담은 국제사회의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인식이자 인류의 생존을 위한 방향성이다. 지금까지 세계는 전쟁, 전쟁 후 복구, 군비 강화 및 경쟁, 또 다른 전쟁의 반복을 통해 이미 군비 강화가 안전과 생존의 답이 아님을 확인했다.
SIPRI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은 2,718조 달러(약 3995조원)로 전년보다 9.4% 증가했고 이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8년 이후 가장 높은 연간 증가율이다. 문제는 국방비 지출 증가가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는 점이다. 유엔은 2024년 세계 국방비가 아프리카 전체의 연간 GDP 총액과 같다고 언급하며 3,000억 달러만 있어도 세계의 극심한 빈곤을 퇴치할 수 있고, 2030년까지 연간 930억 달러를 투자하면 세계의 굶주림을 퇴치할 수 있는 현실과 비교된다고 지적했다.
평화구축 과제
평화구축의 궁극적 목표인 평화 실현을 위해서는 전쟁을 포함한 폭력의 중단 및 예방, 그리고 집단 및 개인 간 갈등의 완화 및 해결을 통한 관계의 회복과 공존이 필요하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론의 핵심은 당사자 참여와 상향식 접근의 강화다. 이는 평화구축의 핵심 원칙으로 결정권을 가진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권력자들과 일반 국민 사이 불균형한 힘의 관계를 해체하고 국가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다수 국민의 목소리를 권리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평화구축 이론, 실행 접근, 현장 적용은 이런 당사자 참여와 상향식 접근의 강화를 강조하며 이에 어긋나는 이론, 접근, 적용은 평화구축 방법론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1990년대 냉전의 종식 후 국가 내 집단 간 갈등과 무력 분쟁이 많아지면서 체계적으로 실행되기 시작한 평화구축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변화를 보였다. 평화구축 1.0이라 여겨지는 시기는 냉전 종식 이후 내전이 증가한 때로 평화구축 노력은 무력 분쟁 후 국가 및 사회 재건, 적대적인 민족 종교 집단 및 개인 간 관계 회복과 갈등의 평화적 해결에 맞춰졌다. 이 시기에 세계 곳곳에서 평화구축 활동이 체계화되기 시작했고 동시에 확산했다. 평화구축 2.0은 9.11 테러 이후의 시기로 이때는 국제사회의 관심이 테러에 집중되고 대테러 전쟁이라는 명분하에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이 계속됐다. 정부기관부터 민간단체까지 다양한 주체들이 평화구축에 참여했고 실행 영역에는 갈등해결과 사회변화는 물론 안보, 개발, 민주주의 수립 등도 포함됐다. 이 시기 가장 큰 논란은 평화구축을 통한 서구식 민주주의와 시장 자본주의에 맞춘 자유주의 평화(liberal peace) 이식의 시도였다. 현장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실행과 그로 인해 생긴 무력 분쟁 후, 또는 취약 사회에 대한 부정적이고 때로는 치명적인 영향 또한 논란이 됐다.
평화구축 3.0은 2010년대부터의 시기로 이때는 대테러 전쟁과 함께 실행된 공적 사적 영역의 평화구축에 대한 비판적 접근, 지원국의 영향에 취약한 수혜국의 정치적 여건 변화와 사회변화 필요, ‘자유주의 평화’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 심화, 여성과 난민 차별 같은 문제의 확인과 변화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널리 확산했다. 동시에 평화구축 실행에 인적, 물적 자원을 제공하는 사회에서의 평화구축 필요성이 논의되기도 했다.
2020년대부터,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부터 현재까지는 앞선 시기들과 여러 면에서 달라 평화구축 4.0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차이점은 평화구축 1.0에서 3.0까지의 시기가 냉전 종식 후의 국제사회 변화와 무력 분쟁이 나타난 시기였다면 현재 시기는 냉전 시대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과 러시아라는 두 강대국의 대결, 그리고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을 대신한 우크라이나의 대리전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이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으나 미국과 러시아 양국의 협상이 결국 전쟁 종식 여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냉전시대 두 강대국의 영향하에 있었던 국제사회의 상황과 비슷하다. 또 다른 차이점은 국제 정치를 주도하는 서방 선진국들이 냉전시대의 군비 강화로 선회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부정적인 상황은 이로 인해 군비 강화에 나선 국가들이 늘고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가 무력 충돌과 전쟁의 위험에 취약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이 평화연구의 핵심 주제였던 시대로의 귀환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전 세계적으로 국가주의 및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 또한 차이점이다. 냉전 종식 이후 민주주의가 취약하거나 정치적 불안이 존재하는 국가에서 민족주의에 기댄 권력 다툼과 무력 충돌이 발생했던 것과는 양상이 다르다. 현재는 국가 간 정치적,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자국 이익을 강조하는 군비 강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는 국가 간 무력 충돌 또는 전쟁, 그리고 동맹들 간 군사적 대결이 강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및 러시아에 협력하는 국가들과 서방국들 및 이들에 협력하는 국가들 간 정치적 균열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이 이를 잘 말해준다.
냉전 종식 이후 서방국들에서는 세계의 평화와 인류 공동의 안전과 번영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이 확대했다. 그 결과 개발 지원은 물론 무력 분쟁에 취약한 사회의 변화와 안정을 위한 평화구축 사업에 대한 투자가 증가했다. 그러나 이제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동시에 군비 강화가 이뤄지면서 공동의 평화에 대한 관심은 줄고 자국 이익에만 초점에 맞춰지고 있다. 그 결과 개발도상국 및 빈곤국에 대한 개발 지원은 물론 평화구축 사업 지원도 감축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국제 정치가 평화적 공존 대신 군비 강화와 적대적 관계를 선택한 시대에 평화구축이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을 평화구축 4.0의 시대라고 한다면 그 내용은 세계시민의 안전과 행복을 좌우하는 군비 강화와 냉전 시대로 회귀하기 직전의 세계질서에 대한 문제 제기, 그리고 세계 국가 및 집단의 평화적 공존의 실현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를 위해 큰 틀에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평화구축은 주로 서구 선진국이 지원하고 무력 분쟁을 겪었거나 무력 분쟁에 취약한 개발도상국 또는 빈곤국에서 실행되는 사업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다. 개발도상국 또는 빈곤국의 많은 평화구축 단체조차 사업의 주체가 아닌 지원의 대상 내지 협력자 정도로 인식되곤 했다. 이는 지원을 받는 사회는 평화 인식과 사회적 자원이 부족하고 지원하는 서구 선진국 사회는 민주적이고, 평화를 지향하며, 지원을 받는 사회의 무력 분쟁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거나 원인을 제공하지 않는 도덕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이는 서구 선진국 사회에서는 평화구축 사업이 특별히 필요하지 않다는 선입견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 선진국의 군비 강화가 세계 평화를 저해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 특히 이들의 무기 지원이 많은 내전 외에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을 지속시킨 사례들을 고려하면 이에 대한 심각한 문제 제기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이들 사회에서도 다양한 평화구축 사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접근은 한국처럼 무기 생산과 수출에서 새로운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고, 전쟁범죄와 인권 문제에 관여된 국가에 대한 금수 정책이 거의 부재하며, 군비 강화에 주력하고 있는 국가에도 필요하다.
세계시민의 역할과 연대를 위한 평화구축 사업
기존의 평화구축 접근에서 사업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선진국 사회에서 실행될 수 있는 평화구축 사업을 몇 가지 언급하자면 우선 평화적 공존의 이해와 세계시민 인식의 향상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무력 충돌 및 전쟁을 포함한 모든 폭력을 거부하고 평화 실현을 중요한 국가적, 사회적, 개인적 필요와 가치로 삼는 것을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자국이 세계 평화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세계시민의 역할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두 번째는 군비 강화가 다수 국민의 삶의 질을 저하하고 안전을 위협하는 구조적 폭력에 대한 성찰과 분석, 그리고 자국이 세계 차원에서 무력 대결과 군비 경쟁 강화를 야기하고 그 여파로 빈곤국과 빈자들의 삶의 질이 저하하는 상황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문제 제기에 초점을 맞춘 평화구축 프로그램의 구상과 실행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집단과 개인, 그리고 국내.외 단체들과의 네트워크 강화와 확산을 포함한 국내 및 세계 차원의 연대를 강화하는 평화구축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무기 수출 및 지원에 대한 한층 강화된 모니터링과 그 결과를 시민과 공유하고 시민을 교육하는 평화구축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강대국들이 전 세계에 무기를 지원하고 대리전을 치르게 하는 상황은 냉전 종식과 함께 사라진 게 아니다. 냉전 이후, 그리고 2000년대 이후에도 많은 내전과 국가 간 전쟁에 대한 무기 지원은 계속되고 있고 세계 곳곳의 무력 충돌과 전쟁의 지속은 결국 이런 무기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평화 노력 부재와 지속적인 무기 지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도 계속된 미국과 독일의 무기 지원은 가자지구 전쟁을,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아랍국들의 무기 지원은 예멘 내전을,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단 반군 무기 지원은 수단 내전과 학살을 지속시키고 있다. 시리아 전쟁, 아프간 전쟁 등도 결국 미국, 러시아, 이란 등의 직접 개입과 무기 지원으로 장기화했다. 문제는 이런 무기 지원이 집단학살과 식량 무기화 등 참혹한 전쟁범죄가 밝혀진 상황에서도 계속됐고 현재도 그렇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자국의 무기 수출 및 지원에 대한 모니터링을 포함해 전쟁범죄와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는 국가나 집단에 대한 금수 정책을 시민과 함께 고민하는 평화구축 사업과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전략적 평화구축이다. 전략적 평화구축은 평화 실현을 위한 다양한 목표와 주제를 단기적, 그리고 중.장기적 차원에서 다루기 위해 사회의 다양한 영역, 실행 주체, 인적 자원, 의사결정 층위 등을 연결하고 대화, 공동 숙의, 합의 등 평화적 방식을 통해 다루고 점진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이는 결국 변화를 위한 사회적 기반, 특히 인적 자원을 만들고 전 사회 영역과 자원을 아우르는 포괄적 네트워크를 강화해가는 것을 말한다. 군비 강화가 단순히 국방비 증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삶의 질 향상, 안전, 타국과의 관계, 세계인의 안전과 평화로운 삶, 국가의 도덕성 등 무수한 문제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런 전략적 평화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의 군비 강화와 경쟁을 선도하는 서구 선진국들에서는 물론 새로운 강대국 대열에 합류하려는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도 이런 전략적 평화구축이 필요하다.
서구 선진국들과 그들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고 이들 국가의 국민은 계속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 거기에 이들 국가와의 연대와 동맹을 강화함으로써 영향력을 높이려는 한국 같은 국가와 국민도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다수 국가와 힘의 불균형 관계를 심화시키고 있다. 세계 평화는 이런 부정의한 세계질서와 불평등한 관계를 바로잡아야 실현될 수 있다. 평화구축 4.0은 이론과 실행 프로그램을 통해 이를 자각한 세계시민의 구체적인 연대와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
군비 확충이 대세?
한국과 미국 정부는 11월 14일(한국시간) 관세, 안보 협상 등의 내용을 담은 공동 팩트시트(설명자료)를 발표했다. 한국산 물품의 관세율과 한국의 대미 투자액 등에 대한 합의가 담긴 이 팩트시트에는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지 않은 한국의 국방비 지출과 미국산 군사 장비 구매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한국은 “가능한 한 조속히”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3.5%로 증액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2030년까지 한국이 미국산 군사 장비 구매에 250억 달러(약 36조 7,500억원/1원 1470원 기준)를 지출한다는 것과 한국이 요청한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미국이 승인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국의 2025년 국방비는 61조 2,469억원으로 GDP의 2,32%였다. 이는 액수로 보면 10년 전인 2015년의 37조 5,550억원에서 23조 6,919억원이나 늘어난 것으로 증가률은 63.1%다. GDP 대비 비율은 2.16%에서 2.32%로 0.16포인트나 증가했다. 국방비는 2020년에 50조 2,000억원으로 50조원을 넘어섰고 5년만인 2025년에는 60조원을 돌파해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2025년 GDP의 3.5%를 계산해도 91조 원이 넘으니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한국의 국방비는 몇 년 안에 100조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6년 국방비는 2025년 예산에서 8.2% 증가한 66조 3,000억원으로 편성됐다.
한국의 국방비 증액은 미국의 압력으로 많은 국가의 국방비가 증액되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6월 나토 회원국들은 물론 아시아 동맹국들도 국방비를 GDP의 5%까지 늘려야 한다고 압력을 가했다. 당시 우리 국방부는 한국은 이미 다른 동맹국들에 비해 국방비 지출액이 높은 편이라며 난색을 표했고 전문가들은 3% 정도로의 인상이 합리적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국방비 증액을 결정했고 이는 나토 유럽 회원국들의 실질적인 국방비 증액 수준과 같다.
트럼프 행정부의 압력에 굴복해 나토 회원국들은 이미 2025년 6월 25일 열린 나토정상회의에서 2035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5%로 증액하기로 합의했다. 5% 중 3.5%는 직접 국방비에, 그리고 1.5%는 안보 기반시설과 투자 등에 지출될 예정이다. 나토 유럽 회원국들은 2024년 기준으로 GDP 2% 안밖의 국방비를 지출했고 러시아에 인접한 폴란드,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같은 국가들만 3% 이상의 국방비를 지출했다. 나토정상회의 결정은 대다수 회원국이 현재 수준에서 두 배 이상, 일부 국가의 경우 약 세 배로 국방비를 증액해야 함을 의미한다. 냉전 시대 종식 이후 점진적으로 감소했던 국방비가 대다수 국가에서 냉전 시대 종식 이전 수준으로 회귀하는 큰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는 다만 미국은 2024년 현재 GDP의 3.4%인 국방비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잘라 말했다.
유럽 국가들의 국방비 증액은 꾸준히 국방비 증액이 이뤄지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로도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2024년 동아시아 국가들의 국방비는 전년에 비해 7.8% 증가해 2009년 이래 최고치를 보였다. 그중 가장 큰 증가율을 보인 건 일본으로 21%나 증가했고 대만이 1.8%, 한국이 1.4%의 증가율을 보였다.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는 미얀마가 66%로 가장 높은 증가율을, 그다음으로 필리핀이 19%의 증가율을 보였고 싱가폴의 국방비도 3% 증가했다. 지역의 군사적 긴장, 중국의 국방비 증액, 자국 군대의 현대화 등이 영향을 미쳤다. 세계의 군비 경쟁이 확산하는 가운데 아시아 국가들의 국방비 증액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GDP 3.5%로의 국방비 증액과 핵추진 잠수함 건조 결정 또한 아시아 국가들의 국방비 증액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인간안보 위협하는 군비 강화
유럽 국가들의 국방비 증액은 트럼프의 압력 때문만은 아니다. 유럽 국가들이 본격적인 군비 강화로 선회한 건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SIPRI)의 2025년 3월 팩트시트에 따르면 2015-2019년과 비교해 2020-2024년 유럽 국가들의 무기 수입은 155% 증가했다. 특히 러시아에 인접한 국가들의 무기 수입은 헝가리 1,454%, 벨기에 1,338%, 폴란드 508%, 덴마크 311%, 루마니아 233%로 가파른 상승 곡선을 나타냈고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의 수입은 9,627% 증가했다. 그러므로 유럽 국가들의 국방비 증액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안보 우려의 심화와 미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스스로 방위를 책임지라고 요구한 트럼프의 압력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시아 국가들의 무기 수입과 국방비 지출 증가로도 이어졌다. 대다수 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을 제외하고 전 세계 모든 지역에서 무기 수입이 증가했다.
국제 정치와 안보 영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유럽 국가들의 국방비 증액 결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이는 유럽 국가들이 외교와 군비 통제보다 군사적 억지력 확대, 그리고 무력을 통한 국가안보를 우선 과제로 설정하는 방향으로 선회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4주년을 몇 달 앞둔 시점에도 종전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강경 입장만 표출했고 미국의 종전 중재에 마지못해 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러시아에 대한 불신과 경계, 그리고 안보에 대한 우려 때문이지만 유럽 국가들이 무력 사용과 전쟁보다 협상, 중재 등의 외교적 접근이 우선되어야 하고 평화적으로 무력 충돌 및 전쟁을 해결해야 한다는 유엔 헌장의 정신조차 외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국제사회의 규범에 반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 무력 사용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 변화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낸다.
유럽 국가들의 국방비 증액은 다른 면에서도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 우선 국방비 증액은 세계 경제가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다. 이런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 영국, 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개발도상국 및 빈곤국에 대한 지원 예산을 줄이고 있다. 특히 영국 총리는 지난 2월 국방비 증액을 위해 해외 지원 예산을 줄여나갈 것이라고 공식 천명하기도 했다. 개발도상국 및 빈곤국에 대한 선진국들의 지원 예산 축소는 많은 세계인에, 그리고 결국 전 세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기후변화의 영향이 날로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원 축소는 재정 상황이 열악한 개발도상국과 빈곤국의 기후변화 관련 자연재해 대응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국방비 증액이 야기할 또 다른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생활비와 물가 인상, 그리고 사회 안전망 축소 등이다. 정부 예산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국방비 증액이 국민 생활 향상과 사회 안전망 유지 및 개선에 대한 압력으로도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토의 국방비 증액 결정 이후 유럽노동조합연합(European Trade Union Confederation/ETUC)은 사회 지원 자금이 이미 국방 영역으로 돌려지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며 사회적 지출은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방비 증액이 노동자 계층에 재정 부담 증가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2025년 3월 발표된 유럽연합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3%가 향후 5년 동안 자기 삶의 질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2024년 봄에 비해 1% 상승한 수치였다. 또 응답자 중 43%가 유럽연합 의회의 최우선 과제로 물가 및 생활비 인상 대응을 꼽았고 국방과 안보, 빈곤, 사회적 배제 문제 등을 그다음으로 선택했다. 이는 국방비 증액이 유럽 국가 국민의 우려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국방비 증액은 기후변화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무기와 군사 훈련 등은 온실가스 다량 배출원 중 하나다. 이런 맥락에서 환경과 기후변화 문제를 다루는 단체들은 국방비 증액 결정을 기후변화 대응에 역행하는 정책으로 비판하며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국의 국방비 증액도 지금까지 열거한 문제들과 같은 맥락에서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국방비 증액은 당연하게 정부 재정에 압박이 되고 그에 따라 한정적인 정부 예산 내에서 사회 안전망 확충과 사회 발전을 위한 지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절대적인 액수가 줄어들지는 않아도 증액된 국방비는 추가적이고 충분한 지출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세계적 맥락에서 본다면 선진국의 일원으로 한국이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을 늘릴 수 없고,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대응에도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국방비 증액이 각국, 그리고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력에 기댄 국가안보에 대한 지나친 투자로 인한 인간안보의 위협이다. 이는 선진국, 개발도상국, 빈곤국을 막론하고 개인의 안전한 일상과 생계에 대한 위협, 동시에 세계와 미래 인류의 안전에 대한 위협을 의미한다. 국가주의 및 민족주의의 심화 속에서 세계 공동의 평화에 대한 외면과 자국 또는 지역의 안전만 추구하는 왜곡된 평화의 심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결국 국가안보가 강조되고 인간안보가 소외되는 시대로의 귀환과 인류의 퇴보를 의미한다.
군비 강화와 평화구축
세계 많은 국가의 국방비 증액은 안보를 보장하고 평화를 지킨다는 논리하에 실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세계시민이 공유하고 지향하는 평화의 보편적 가치와 어긋난다. 대다수 세계시민이 원하는 평화는 모두의 안전한 일상과 다양한 배경의 집단과 개인의 공존이며 무력을 이용한 상호 견제와 위협이 아니다. 국가와 사회 보호를 위한 군사력 유지를 지지하더라도 군사적 긴장을 심화하고 무력 충돌의 가능성을 높이는 수준의 군비 강화를 지지하는 세계시민은 많지 않다. 군비 강화는 이런 보편적 평화의 관점에서 성찰되어야 하고 그런 점에서 평화 실현을 위한 이론 및 실행 접근인 평화구축(peacebuilding)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할만하다.
평화구축의 관점으로 접근할 때 세계 군비 강화와 관련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쟁 담론의 확산이다. 군비 강화는 적을 압도할 수준의 군사력 필요를 강조하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방어에 초점을 맞추는 논리로 보이지만 사실상 공격 가능성과 불가피한 전쟁을 주장하는 것이고 상대는 군비 강화를 방어가 아닌 공격력 향상으로 해석한다. 이런 이유로 군비 강화는 군비 경쟁, 군사적 긴장 심화, 관계의 악화를 야기한다. 무엇보다 군비 강화는 유엔 헌장이 명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규범이기도 한 외교와 중재 등을 통한 무력 충돌 및 전쟁 예방 접근을 무시하고 무력을 통한 문제해결을 정당화한다. 이는 자위권의 왜곡, 과도한 정당한 전쟁(just war) 인정, 전쟁의 정치화와 소비 등으로 이어진다. 현재 진행 중인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런 문제를 잘 보여준다. 무력 사용이 문제해결 수단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당사국들은 물론 세계에 더 많은 문제를 가져온다는 점도 보여주고 있다.
군비 강화와 연결된 전쟁 담론은 정당한 전쟁 논리에 기반해 세계시민의 평화롭게 살 권리와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징집의 정당화로 연결된다. 전쟁을 위한 징집은 국내법에 따라 정당화되지만 타인에 대한 공격과 심지어 살해를 강요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도덕성을 파괴하고 정신적 피해를 야기하는 반인권적, 반인륜적인 행위다. 군비 강화와 전쟁 담론은 비인간화를 야기하는 징집의 거부에 대한 법적 처벌과 사회적 비난의 정당화를 통해 개인의 선택 자유를 억압한다. 이는 개인의 평화적 일상과 미래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전쟁 담론의 확산이 야기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평화 담론의 저해다. 적대적 관계와 군사력에 기반한 국가안보를 강조하는 전쟁 담론은 국가 간 평화적 관계와 공존을 강조하는 평화 담론을 현실성이 결여된 순진한 발상으로 폄하한다. 나아가 전쟁 반대와 대화와 외교를 통한 문제해결 주장을 배신자 또는 매국노 담론으로 매도한다. 가장 위험한 건 국가가 이런 전쟁 담론의 강조와 확산에 깊이 관여하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전쟁 담론을 독려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평화 담론 확산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극심한 힘의 불균형하에서 표현을 억압당한다. 이는 평화적 공존에 대한 열망과 평화롭게 살 권리에 대한 억압으로 평화 실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평화구축의 핵심 개념은 평화적 공존이다. 국가와 개인 모두의 안전과 행복을 전제로 하는 평화적 공존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신체적, 물리적 피해를 야기하는 전쟁 및 전쟁 가능성의 부재다. 이런 평화적 공존은 군비 강화로 성취되지 않는다. 이는 비현실적이고 순진한 상상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이미 세계가 많은 전쟁의 경험을 통해 확인한 것이며, 이런 이유로 유엔 헌장에까지 담은 국제사회의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인식이자 인류의 생존을 위한 방향성이다. 지금까지 세계는 전쟁, 전쟁 후 복구, 군비 강화 및 경쟁, 또 다른 전쟁의 반복을 통해 이미 군비 강화가 안전과 생존의 답이 아님을 확인했다.
SIPRI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은 2,718조 달러(약 3995조원)로 전년보다 9.4% 증가했고 이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8년 이후 가장 높은 연간 증가율이다. 문제는 국방비 지출 증가가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는 점이다. 유엔은 2024년 세계 국방비가 아프리카 전체의 연간 GDP 총액과 같다고 언급하며 3,000억 달러만 있어도 세계의 극심한 빈곤을 퇴치할 수 있고, 2030년까지 연간 930억 달러를 투자하면 세계의 굶주림을 퇴치할 수 있는 현실과 비교된다고 지적했다.
평화구축 과제
평화구축의 궁극적 목표인 평화 실현을 위해서는 전쟁을 포함한 폭력의 중단 및 예방, 그리고 집단 및 개인 간 갈등의 완화 및 해결을 통한 관계의 회복과 공존이 필요하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론의 핵심은 당사자 참여와 상향식 접근의 강화다. 이는 평화구축의 핵심 원칙으로 결정권을 가진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권력자들과 일반 국민 사이 불균형한 힘의 관계를 해체하고 국가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다수 국민의 목소리를 권리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평화구축 이론, 실행 접근, 현장 적용은 이런 당사자 참여와 상향식 접근의 강화를 강조하며 이에 어긋나는 이론, 접근, 적용은 평화구축 방법론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1990년대 냉전의 종식 후 국가 내 집단 간 갈등과 무력 분쟁이 많아지면서 체계적으로 실행되기 시작한 평화구축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변화를 보였다. 평화구축 1.0이라 여겨지는 시기는 냉전 종식 이후 내전이 증가한 때로 평화구축 노력은 무력 분쟁 후 국가 및 사회 재건, 적대적인 민족 종교 집단 및 개인 간 관계 회복과 갈등의 평화적 해결에 맞춰졌다. 이 시기에 세계 곳곳에서 평화구축 활동이 체계화되기 시작했고 동시에 확산했다. 평화구축 2.0은 9.11 테러 이후의 시기로 이때는 국제사회의 관심이 테러에 집중되고 대테러 전쟁이라는 명분하에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이 계속됐다. 정부기관부터 민간단체까지 다양한 주체들이 평화구축에 참여했고 실행 영역에는 갈등해결과 사회변화는 물론 안보, 개발, 민주주의 수립 등도 포함됐다. 이 시기 가장 큰 논란은 평화구축을 통한 서구식 민주주의와 시장 자본주의에 맞춘 자유주의 평화(liberal peace) 이식의 시도였다. 현장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실행과 그로 인해 생긴 무력 분쟁 후, 또는 취약 사회에 대한 부정적이고 때로는 치명적인 영향 또한 논란이 됐다.
평화구축 3.0은 2010년대부터의 시기로 이때는 대테러 전쟁과 함께 실행된 공적 사적 영역의 평화구축에 대한 비판적 접근, 지원국의 영향에 취약한 수혜국의 정치적 여건 변화와 사회변화 필요, ‘자유주의 평화’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 심화, 여성과 난민 차별 같은 문제의 확인과 변화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널리 확산했다. 동시에 평화구축 실행에 인적, 물적 자원을 제공하는 사회에서의 평화구축 필요성이 논의되기도 했다.
2020년대부터,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부터 현재까지는 앞선 시기들과 여러 면에서 달라 평화구축 4.0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차이점은 평화구축 1.0에서 3.0까지의 시기가 냉전 종식 후의 국제사회 변화와 무력 분쟁이 나타난 시기였다면 현재 시기는 냉전 시대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과 러시아라는 두 강대국의 대결, 그리고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을 대신한 우크라이나의 대리전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이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으나 미국과 러시아 양국의 협상이 결국 전쟁 종식 여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냉전시대 두 강대국의 영향하에 있었던 국제사회의 상황과 비슷하다. 또 다른 차이점은 국제 정치를 주도하는 서방 선진국들이 냉전시대의 군비 강화로 선회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부정적인 상황은 이로 인해 군비 강화에 나선 국가들이 늘고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가 무력 충돌과 전쟁의 위험에 취약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이 평화연구의 핵심 주제였던 시대로의 귀환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전 세계적으로 국가주의 및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 또한 차이점이다. 냉전 종식 이후 민주주의가 취약하거나 정치적 불안이 존재하는 국가에서 민족주의에 기댄 권력 다툼과 무력 충돌이 발생했던 것과는 양상이 다르다. 현재는 국가 간 정치적,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자국 이익을 강조하는 군비 강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는 국가 간 무력 충돌 또는 전쟁, 그리고 동맹들 간 군사적 대결이 강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및 러시아에 협력하는 국가들과 서방국들 및 이들에 협력하는 국가들 간 정치적 균열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이 이를 잘 말해준다.
냉전 종식 이후 서방국들에서는 세계의 평화와 인류 공동의 안전과 번영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이 확대했다. 그 결과 개발 지원은 물론 무력 분쟁에 취약한 사회의 변화와 안정을 위한 평화구축 사업에 대한 투자가 증가했다. 그러나 이제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동시에 군비 강화가 이뤄지면서 공동의 평화에 대한 관심은 줄고 자국 이익에만 초점에 맞춰지고 있다. 그 결과 개발도상국 및 빈곤국에 대한 개발 지원은 물론 평화구축 사업 지원도 감축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국제 정치가 평화적 공존 대신 군비 강화와 적대적 관계를 선택한 시대에 평화구축이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을 평화구축 4.0의 시대라고 한다면 그 내용은 세계시민의 안전과 행복을 좌우하는 군비 강화와 냉전 시대로 회귀하기 직전의 세계질서에 대한 문제 제기, 그리고 세계 국가 및 집단의 평화적 공존의 실현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를 위해 큰 틀에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평화구축은 주로 서구 선진국이 지원하고 무력 분쟁을 겪었거나 무력 분쟁에 취약한 개발도상국 또는 빈곤국에서 실행되는 사업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다. 개발도상국 또는 빈곤국의 많은 평화구축 단체조차 사업의 주체가 아닌 지원의 대상 내지 협력자 정도로 인식되곤 했다. 이는 지원을 받는 사회는 평화 인식과 사회적 자원이 부족하고 지원하는 서구 선진국 사회는 민주적이고, 평화를 지향하며, 지원을 받는 사회의 무력 분쟁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거나 원인을 제공하지 않는 도덕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이는 서구 선진국 사회에서는 평화구축 사업이 특별히 필요하지 않다는 선입견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 선진국의 군비 강화가 세계 평화를 저해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 특히 이들의 무기 지원이 많은 내전 외에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을 지속시킨 사례들을 고려하면 이에 대한 심각한 문제 제기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이들 사회에서도 다양한 평화구축 사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접근은 한국처럼 무기 생산과 수출에서 새로운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고, 전쟁범죄와 인권 문제에 관여된 국가에 대한 금수 정책이 거의 부재하며, 군비 강화에 주력하고 있는 국가에도 필요하다.
세계시민의 역할과 연대를 위한 평화구축 사업
기존의 평화구축 접근에서 사업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선진국 사회에서 실행될 수 있는 평화구축 사업을 몇 가지 언급하자면 우선 평화적 공존의 이해와 세계시민 인식의 향상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무력 충돌 및 전쟁을 포함한 모든 폭력을 거부하고 평화 실현을 중요한 국가적, 사회적, 개인적 필요와 가치로 삼는 것을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자국이 세계 평화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세계시민의 역할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두 번째는 군비 강화가 다수 국민의 삶의 질을 저하하고 안전을 위협하는 구조적 폭력에 대한 성찰과 분석, 그리고 자국이 세계 차원에서 무력 대결과 군비 경쟁 강화를 야기하고 그 여파로 빈곤국과 빈자들의 삶의 질이 저하하는 상황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문제 제기에 초점을 맞춘 평화구축 프로그램의 구상과 실행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집단과 개인, 그리고 국내.외 단체들과의 네트워크 강화와 확산을 포함한 국내 및 세계 차원의 연대를 강화하는 평화구축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무기 수출 및 지원에 대한 한층 강화된 모니터링과 그 결과를 시민과 공유하고 시민을 교육하는 평화구축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강대국들이 전 세계에 무기를 지원하고 대리전을 치르게 하는 상황은 냉전 종식과 함께 사라진 게 아니다. 냉전 이후, 그리고 2000년대 이후에도 많은 내전과 국가 간 전쟁에 대한 무기 지원은 계속되고 있고 세계 곳곳의 무력 충돌과 전쟁의 지속은 결국 이런 무기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평화 노력 부재와 지속적인 무기 지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도 계속된 미국과 독일의 무기 지원은 가자지구 전쟁을,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아랍국들의 무기 지원은 예멘 내전을,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단 반군 무기 지원은 수단 내전과 학살을 지속시키고 있다. 시리아 전쟁, 아프간 전쟁 등도 결국 미국, 러시아, 이란 등의 직접 개입과 무기 지원으로 장기화했다. 문제는 이런 무기 지원이 집단학살과 식량 무기화 등 참혹한 전쟁범죄가 밝혀진 상황에서도 계속됐고 현재도 그렇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자국의 무기 수출 및 지원에 대한 모니터링을 포함해 전쟁범죄와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는 국가나 집단에 대한 금수 정책을 시민과 함께 고민하는 평화구축 사업과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전략적 평화구축이다. 전략적 평화구축은 평화 실현을 위한 다양한 목표와 주제를 단기적, 그리고 중.장기적 차원에서 다루기 위해 사회의 다양한 영역, 실행 주체, 인적 자원, 의사결정 층위 등을 연결하고 대화, 공동 숙의, 합의 등 평화적 방식을 통해 다루고 점진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이는 결국 변화를 위한 사회적 기반, 특히 인적 자원을 만들고 전 사회 영역과 자원을 아우르는 포괄적 네트워크를 강화해가는 것을 말한다. 군비 강화가 단순히 국방비 증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삶의 질 향상, 안전, 타국과의 관계, 세계인의 안전과 평화로운 삶, 국가의 도덕성 등 무수한 문제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런 전략적 평화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의 군비 강화와 경쟁을 선도하는 서구 선진국들에서는 물론 새로운 강대국 대열에 합류하려는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도 이런 전략적 평화구축이 필요하다.
서구 선진국들과 그들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고 이들 국가의 국민은 계속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 거기에 이들 국가와의 연대와 동맹을 강화함으로써 영향력을 높이려는 한국 같은 국가와 국민도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다수 국가와 힘의 불균형 관계를 심화시키고 있다. 세계 평화는 이런 부정의한 세계질서와 불평등한 관계를 바로잡아야 실현될 수 있다. 평화구축 4.0은 이론과 실행 프로그램을 통해 이를 자각한 세계시민의 구체적인 연대와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