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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와 건물 잔해 쌓인 가자지구, 이스라엘이 만든 환경 재앙

사진 출처: 유엔개발계획(UNDP)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합의로 10월 10일 가자지구에 휴전이 발효됐다. 휴전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많은 주민이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휴전에서 합의한 1단계 철수선까지만 물러난 까닭에 이스라엘은 여전히 가자지구 전체의 약 58%를 점령하고 있고 여기에는 동부 지역 전체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주민이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주민들이 복귀한 곳에서는 일상 회복의 기대가 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일상 회복은 여러 면에서 장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곳곳에 쌓인 쓰레기와 건물 잔해다.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도시인 북부 가자 시티의 경우 곳곳에 몇 미터 높이가 되는 작은 쓰레기산이 방치되어 있고 쓰레기 더미들은 주민들이 거주하고 통행하는 곳곳을 가로막을 정도로 널려 있다. 쓰레기 더미에서 자연 발화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시내 전체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해 주민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쓰레기로 인해 바퀴벌레, 모기 등은 물론 쥐들도 많아졌다. 곳곳에 쌓인 쓰레기는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가자 시티 병원 의사들은 피부병이 확산하고 거리에서의 쓰레기 소각으로 인한 호흡기 질병 또한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자지구의 쓰레기는 2023년 10월 7일 전쟁이 시작된 지 몇 달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쌓이기 시작했고 현재는 상상을 초월하는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 가자지구 전체가 쓰레기에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휴전이 됐지만 쓰레기를 수거해 치우는 건 당장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가자 시티에서만 수십 대의 쓰레기 수거 트럭이 부서졌고 부품과 여전한 연료 부족 때문에 남아 있는 트럭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스라엘이 동부 지역 전체를 점령하고 있어서 쓰레기를 매립지로 운반할 수도 없다. 가자지구에는 세 개의 쓰레기 매립지가 있는데 모두 동부 지역에 있다. 쓰레기는 어디서나 쌓인 직후 치우는 게 일반적이고 상식이지만 가자지구에서는 2년 이상 쌓인 쓰레기가 곳곳에 방치되어 있다.

 

가자지구의 쓰레기 문제가 심각해진 이유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기반시설을 무차별로 파괴하고 각종 공공서비스를 불능화시키면서 쓰레기 수거 체계도 무너졌기 때문이다. 전쟁 동안 쓰레기 수거가 아예 이뤄지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장비 부족과 이스라엘의 매립지 진입 불허로 수거 및 처리된 쓰레기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UNDP는 2025년 2월 보고서를 통해 피란민들이 집중된 가자지구 남부에서 매일 약 2,000톤의 쓰레기가 나왔는데 수거된 건 매일 600-700톤 뿐이었다고 밝혔다. 나머지 쓰레기는 주민들 거주지나 피란민 텐트 주변 등을 가리지 않고 곳곳에 쌓였다. 주민들은 악취 때문에 잠을 자기 힘들 정도라고 호소했다. 거의 2년 동안 수거되지도 처리되지도 않은 쓰레기는 곳곳에 쌓여 이제 가자지구 전역이 쓰레기에 둘러싸여 악취와 자연 발화로 인한 독성 가스를 내뿜고 있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는 곳곳에 쌓인 쓰레기가 환경과 공중 보건에 위협이 되면서 주민들의 건강과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쓰레기에서 나오는 악취와 독성 가스, 벌레와 쥐 개체 증가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침출수다. 침출수가 토양과 대수층에 침투해 주민들이 생수로 쓰는 지하수 오염으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수인성 전염병 발생 위험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활 쓰레기뿐만 아니라 의료 쓰레기 문제도 심각하다. 화학물질과 오염물질이 포함된 의료 쓰레기와 주사 바늘 등이 병원과 보건소 등의 주변 곳곳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오수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것 또한 문제다. 중동의 아라바 환경학연구소(Arava Institute for Environmental Studies)는 지난 9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오수가 지하수와 대수층을 오염시키고 그 결과 지하수와 우물물에 의존하는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주민 중 절반 가량이 폭우 때 거주하는 곳의 10미터 이내에서 오염수가 넘치는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또한 유니세프의 보고서를 인용해 약 22%의 주민이 임시로 지은 화장실이 넘치는 경험을 했다고도 밝혔다. 오수 처리 부재로 발생한 생활 화학물질 배출, 그리고 전쟁의 잔여물로 지하수는 물론 해수까지 오염되고 그로 인해 수인성 감염병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도 지적했다.

 

생활 쓰레기뿐만 아니라 건물 파괴로 생긴 잔해도 주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가자지구에 쌓인 잔해가 약 5,500-6,000만 톤에 달한다면서 이는 3.4제곱킬로미터 넓이인 뉴욕 센트럴파크를 둘러싸는 12미터 높이 벽을 쌓을만한 규모라고 밝혔다. UNDP는 모든 잔해를 치우는 데 15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가장 큰 문제는 잔해에서 배출되는 독성 물질이다. 아라바 환경학연구소 보고서는 잔해에서 나오는 독성 물질의 위험성을 경고했는데 그중 난민 캠프의 깨진 석면 지붕 슬레이트에서 배출된 발암 물질이 공기는 물론 토양과 식수까지 오염시켰다고 밝혔다. 또한 연료 부족으로 주민들이 플라스틱과 다른 쓰레기를 태워 요리와 난방을 하는 상황으로 인해 대기가 독성 물질로 오염되고 이것이 장기적으로 암 유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환경계획(UNEP)도 석면, 공업용 화학물질, 중금속 등으로 가자지구 공기가 오염되어 있어서 빠른 정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쓰레기, 건물 잔해, 오수 등으로 인한 가자지구 상황은 한마디로 환경 재앙이다. UNEP는 9월 말 발표한 보고서에서 2년 동안의 전쟁으로 가자지구의 토양, 담수 체계, 해안 등이 전례 없는 수준의 환경 피해를 입었다면서 복구하려면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UNDP 또한 2024년 10월 발행한 보고서에서 전쟁이 가자지구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처리가 안된 생활 쓰레기, 독성 화학물질, 석면, 배설물 등이 토양, 공기, 지하수 등을 오염시키고 이것이 농업, 생태계 다양성, 해양 환경에 영향을 미쳐 장기적인 환경 훼손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을 포함한 국제단체들은 환경 재앙이 가자지구 주민들의 현재와 미래의 삶을 훼손하려는 이스라엘의 의도적인 파괴 행위라고 비판해왔다. 팔레스타인 인권센터(Palestine Center for Human Rights)는 이스라엘이 조직적으로 가자지구의 모든 체계를 무너뜨리고 환경 오염을 무기로 사용하고 주민들을 쓰레기 더미 위에서 살게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가자지구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 팔레스타인 주민을 의도적으로 제거하려는 건 집단학살 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쓰레기, 건물 잔해, 오수, 전쟁 잔여물 등으로 인한 공기 오염과 환경 재앙 문제는 전쟁 동안에도 꾸준히 지적되었다. 다만 이스라엘의 공격이 계속되고 매일 수십, 수백 명의 사망자가 나오는 가운데 제대로 관심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가자지구 주민들 또한 생존하기 위해 쓰레기와 건물 잔해 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이제 휴전이 발효됐으니 점진적인 일상 회복을 위해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고 환경 복구를 고민해야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거의 90%의 사회기반 시설이 파괴된 가자지구가 다시 ‘살만한’ 곳이 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는 주민들이 쓰레기, 건물 잔해, 오염된 공기 속에서 살면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매일 건강 위험에 노출되고 이로 인해 향후 질병 피해가 늘어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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