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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갈등, 해결 가능한가

어떤 이념을 지지하세요?

요 몇 주 한국사회 상황을 보면 이념을 둘러싼 갈등의 블랙홀로 하루하루 더 깊게 빠져드는 모습이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둘러싼 찬성과 반대 갈등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정 이념을 고집하고 부과하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대립이다. 물론 새로운 일은 아니다. 지난 수 십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겪었고 지금도 선거 때만 되면, 혹은 큰 사회적 문제가 생길 때마다 겪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 것은 좀 세다. 

 

이번의 이념갈등은 두 가지 점에서 이전의 것과 조금 다르다. 한 가지는 관련된 소수의 개인이나 집단만 대립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국민이 찬성 혹은 반대를 결정함과 동시에 이념갈등의 블랙홀로 빠져들게 된다는 점이다. 다른 한 가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이념도 선택하지 않았지만 문제를 제기하는 소수에 의해 이념을 선택하도록 강요받고 있다는 것이다. 현안을 선점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등을 전개시킬 유리한 상황을 만든 소수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에게 거의 노골적으로 '어떤 이념을 갖고 계세요?' 또는 '어떤 이념을 지지하세요?'라고 묻는다. 곧 이 상황에서 반드시 한 편을 선택해야 하며 되도록 자신에게 안전한 편을 선택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번 문제가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논쟁이고 이념갈등은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문제는 처음부터 정치 현안으로 제기됐고 특정 정당의 이념에 뿌리를 둔 시각으로 교과서 내용을 해석한 결과에 의한 것이었다. 애초 문제를 제기한 쪽, 그러니까 필요에 의해 갈등을 만든 쪽에서 문제를 삼은 것이 이념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대응은 결국 이념에 대한 문제 제기가 되버린 것이다.    

 

해결 가능한가, 또는 해결해야 하나?

이념은 가치나 세계관과도 통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특정 가치나 세계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데 특정 이념이 가치나 세계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른 가치, 세계관, 이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가치나 세계관, 그리고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이념 때문에 사회 문제를 다르게 해석하고 서로 대립하게 되는 것 또한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니 이념갈등은 생각보다 무서운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번 이념이 개입되면 다른 모든 문제들이 이념의 블랙홀로 빨려들어가 버리고 다른 모든 판단 기준과 상식이 매장돼 버린다. 이런 이념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것이 우리가 시시때때로 직면하는 질문이다.  

 

이념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머리를 싸매곤 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념은 바뀌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갈등을 해결하려는 시도 자체가 부질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많은 갈등이 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념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과연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느냐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갈등해결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사람들도 사실 비슷한 고민을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념이 개입된 갈등은 아예 해결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념을 서로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래야 갈등이 해결된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두 가지 다 설득력 있는 얘기다.

 

이념갈등에 직면했을 때는 '해결 가능한가?'와 '해결해야 하나?'라는 두 가지 질문을 생각해봐야 한다. 이념과 관련된 갈등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고 그에 따라 질문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첫번째 질문은 특정 문제를 두고 대립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이념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해야 한다. 이 경우에는 이념 자체가 갈등이 아니기 때문에 '해결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더 어울린다. 서로 상대의 이념을 인정하고 그후 갈등 현안에 초점을 맞추면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두번째 질문은 이념 자체가 갈등이 원인이 된 경우에 해야 한다. 이념은 개인 또는 집단 정체성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변하기 힘든 것이고 상대의 이념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경우엔 '해결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더 어울린다. 이런 경우 개인이나 집단은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한 사회에서 이념갈등을 최소화시키면서 살 수 있다. 

 

이번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위에서 얘기한 것의 후자에 속한다. 표면적인 문제는 다르지만 실제로는 이념갈등이다. 그러니 굳이 해결할 필요가 없고 해결이 가능하지도 않다. 그냥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적으로 강한 쪽이 자신의 이념을 모두에게 부과하려 하고 그 수단으로 교과서 국정화 갈등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긴 이념갈등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적극 활용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쿨하게' 다름을 인정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되버린 것이다. 상대적으로 약한 쪽에게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사실 '항복'이나 '포기'가 되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가능하고 가장 효과적인 대응은 이념갈등에서 벗어나 교과서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갈등을 만드는 것이다. 동시에 정치 현안이 아니라 정말로 교과서, 그리고 그것을 배워야 하는 청소년들의 문제를 중심에 놓고 갈등을 만들고 전개시키는 것이다. 이미 그런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지만 다른 쪽은 계속 이념갈등을 전개하려 할 것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것에는 대응하지 말아야 한다. 수 없이 경험했던 것처럼 그렇게 되면 결국 모든 것이 이념의 블랙홀로 빨려들어 가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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