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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정치와는 무관?

정치 생존 게임, 국민은 안중에도 없어

하긴 거의 항상 그랬다.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점잖게 마주 앉아 대화하고, 협상하고, 타협을 이뤄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가뭄에 콩나듯 아주 드문 일이다. 그나마 국회법 개정안을 여야가 대타협을 이뤄 통과시켜 제대로 돌아가는 정치를 보여주나 했다. 그런데 결국 동티가 났다. '파란집'의 역공이 시작된 것이다. 그후 더 가관인 것은 '파란집' 대장의 한 마디에 혼미해져 어찌할바 모르고 정신이 가출한 지경을 보이는 여당 의원들이다. 급기야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얼마전 자신들이 찬성표를 던져 통과시킨 법안을 부결시키기 위해 표결에 불참하는 희한한 광경을 연출했다. 대한민국 국회가 아니면 찾아보기 힘든 광경일 것 같다. 그나저나 그런 사람들을 뽑아 놓은 사람들은 반성이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을 보며 제일 황당한 것은 사실 국민들이다. 꼭 필요한 법이라고 표결에 붙여 놓고 이제는 필요 없다니 그걸 보고 있는, 그렇지만 국회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국민들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뿐이다. 그렇지만 여야 의원들은 그저 자기들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 여당 의원들은 당의 사활과 자신의 생존 전략을 짜면서 막장 드라마를 찍고 있고. 야당 의원들은 역공의 기회를 잡아보겠다고 무기력한 말만 내뱉고 있다. 이번 상황으로 국민들이 느꼈을 배신감과 좌절감을 인정하며 진심으로 사과하는 태도를 보이는 의원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막장 드라마를 찍든, 명분을 쌓기 위해 소심한 뒷발질을 하고 있든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은 결국 국민들을 위한 일이고,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니 알아서 이해하라는 오만함만 있을 뿐이다.

 

체계화된 대화의 부재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권력과 생존을 쫓아 스스로 합의하고 결정한 것조차 손바닥 뒤집듯 배반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대화의 부재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대화 체계의 부재다. 가끔 정치적 이해가 맞아 떨어질 때만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협상하고 해결하는 체계가 만들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화'에는 다른 의견을 공유하고 토론해 문제의 해결을 모색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마음과 생각이 맞는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달라 문제가 생긴 사람하고 하는 것이 바로 '대화'란 얘기다. 물론 여야 원내 대표들이 중요한 사안이 생겼을 때 만나 의견을 조율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진정한 '대화'가 아니라 장식품 같은 역할만 한다. 그저 주요 관심은 각자 자기 당과 열성 지지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입장을 정한 후 밀고 나가는데만 맞춰져 있다. 그래서 입장 차이가 클 때는 아예 대화조차 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대화를 체계화해야 하는 이유는 물론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문제가 생겼을 때는 반드시 대화를 하고, 대화를 통해 논의하고 합의한 것은 꼭 지켜야 한다는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의회 정치라는 것이 본래 신념과 철학이 다른 사람들이 같이 모여 하는 것이므로 이견이 생기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런 일이다. 문제는 그것이 어떻게 다뤄지고 해결되느냐이다. 대화가 체계화되면 적어도 문제가 생겼을 때는 그 체계 안에서 논의, 타협, 협상을 하고, 일정 절차를 통해 합의된 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국회 및 사회와 공유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정치인들의 책임감과 국민의 압력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처럼 국회법 개정안을 최고 권력자가 반대한다고 아무런 추가 논의나 협상도 없이 뻔뻔하게 뒤집는 일을 하려면 엄청난 부담을 느끼고 정치적 생존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얘기는 씨도 안먹힐 가능성이 크다. 정치인들은 물론이거니와 대부분의 국민들도 한국 정치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정치인들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도 정치는 대화, 협상, 타협보다 배신, 비난, 논쟁, 싸움과 어울리고 그런 것들이 정치의 자연스런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치는 본질적으로 대화, 협상, 타협 등을 요구한다. 다른 철학과 신념, 그리고 지지세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정치를 하니 당연히 수시로 생기는 이견과 공동으로 직면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다른 생각을 가진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때로 설득을 하기 위해서도 우선적으로 정치권에서의 대화가 필요하다. 그러니 대화하지 않는 정치가 오히려 더 이상하다. 그런데도 대화는 정치와 어울리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우리사회의 생각도 정말 이상하다. 결국 정치와 국민의 수준이 맞아 떨어지는 것인가? 분명한 것은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의 끝이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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