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 후 1년이 지났다. 보통 사고 후 1주기는 복잡했던 마음이 대충 정리되고 당시 상황을 어느 정도 담담하면서도 의미있게 되새길 수 있는 때다. 그런데 세월호 사고는 다르다. 1주기가 됐지만 당시의 긴장, 절망, 분노의 감정은 그대로 살아 있고 사고의 분석, 재해석, 사회적 의미를 따져 보는 논리적 접근 또한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았다. 그동안 세월호 사고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지금까지 지내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점들이다. 이 와중에 내 머릿 속은 더 복잡해졌다. 그동안 놓쳤던 것들, 사실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생각했지만 적극적으로 입 밖으로 말하지도 공유하지도 못했던 생각들을 정리하느라 그렇다. 생각이 복잡해진 근본적인 이유는 평화학자이자 갈등해결 전문가라는 내 정체성 때문이지만, 또 다른 이유는 괜찮은 시민으로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나은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개인적 자각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놓쳤던 것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로 놓친 것은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까지 찾아내는 치밀함이다. 보이는 것은 사고로 인한 수많은 죽음과 그로 인해 아픔을 겪은 가족들이었다. 보이지 않았지만 찾아봐야 했던 대표적인 점들은 생존한 사람들, 그리고 팽목항 및 진도 사람들과 그들의 삶이었다.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사고 후 한 동안 좁은 시각으로 문제를 보는 터널 비전을 가지고 한 가지에만 집중했다. 워낙 희생자가 많은 큰 사고였고 그에 따른 사회적 파장이 컸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는 있다. 그렇지만 항상 사건의 직접, 간접적 영향을 받는 모든 당사자를 찾아보고 360도로 고개를 돌려 전체 그림을 파악하는 이론적, 전문적 훈련을 받은 내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결국 보이지 않은 것까지 찾아봐야 하는 나 같은 사람들의 게으름으로 다수의 생존자들과 간접적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삶은 1주기가 된 이제야 조금이나마 언론과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됐다. 그들은 생계 수단을 잃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자신보다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애써 목소리를 숨겨왔다. 사람들은 보통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것에는 집중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집중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더군다나 그것이 한 사건과 관련된 것이면 더욱 그렇다.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집중하면서 동시에 큰 그림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집중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단순명료한 점을 간과한 것이다.
둘째로 내가 놓쳤던 것은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었다. 한 마디로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갈등해결을 전공한 내가 특별히 반성해야 할 점이다. 사고와 관련된 희생자가 많을 경우 당연히 희생자와 피해자, 그리고 가족들 사이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고 그 결과 다른 집단적 대응을 선택할 수 있다. 같은 사고의 피해자라 할지라도 각각 배경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선택과 과정이 어긋나면 집단들 사이에 마찰과 심지어 대립까지 생길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집단적 대응을 시작했지만 필연적으로 다른 배경과 생각 때문에 대응 방법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다른 쪽에게는 분열로 보여지고 악용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결국 가장 필요한 접근은 다른 집단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그들 사이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 사고 후 대응에 있어서는 사회 차원에서 그런 접근이 정교하게 이뤄지지 못했고 나 또한 그 점을 눈여겨보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쪽, 그러니까 제 앞가림에 눈이 멀어 방어 모드로 바뀐 정부와 정치권은 이 점을 악용해 잡음을 만들어냈다. 결국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놓쳐 지금보다 나은 상황을 만드는데 기여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셋째로 내가 놓친 것은 직접,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모든 당사자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할 필요성의 확인이다. 이것은 정부와 사회에 결집력을 보여 주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세월호 사고의 진상조사도 세월호 인양 결정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주 당연한 일이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행을 결정할 정부에 충분히 압력이 들어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힘이 부족한데도 사고의 직접,간접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결집되지도 그것이 영향력으로 전환되지도 않았다. 사실 진상조사와 세월호 인양은 희생자 가족들은 물론 세월호 사고로 생계 위협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생존자들, 세월호에서 유출된 기름으로 어업에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 관광객 감소로 피해를 입고 있는 진도 주민들 등 모두와 관련된 것이다. 때문에 그들 모두의 목소리를 모아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부에 합의된 의견을 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목소리는 모아지지 않고 있고, 때문에 정부는 각각의 집단을 분리시켜 접근하면서 압력을 분산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모든 당사자들을 포함시키고 단기적, 장기적 접근을 결합한 포괄적 접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매일 얘기하면서 이것의 실제 적용 필요성과 가능성을 정교하게 따져보지 않은 나의 부족함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런 글을 끄적이는 것이 자기 위안만 될 가능성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놓친 것들을 오래 전에 입 밖으로 내어 말했어도 개인적 차원에서 별로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사회에 영향을 끼치거나 다른 접근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놓친 것을 더 빨리 찾아내지 못하고 찾아낸 후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어쨌든 반성할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직접 피해를 입은 희생자 및 가족과 그외 사람들에게 똑 같이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할 경우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조심스럽게나 몇 줄 글이라도 쓰고, 생각을 공유했다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찾고 다른 접근의 실행 가능성을 고민해볼 기회를 만들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것은 이미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산적한 문제를 안고 세월호 1주기를 맞은 상황에서 나의 이런 반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내일 당장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앞으로 다른 문제들에 현명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도 이 반성은 유효하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1주기를 맞아 여러 모양으로 반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과 이 글을 공유한다.
세월호 사고 후 1년이 지났다. 보통 사고 후 1주기는 복잡했던 마음이 대충 정리되고 당시 상황을 어느 정도 담담하면서도 의미있게 되새길 수 있는 때다. 그런데 세월호 사고는 다르다. 1주기가 됐지만 당시의 긴장, 절망, 분노의 감정은 그대로 살아 있고 사고의 분석, 재해석, 사회적 의미를 따져 보는 논리적 접근 또한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았다. 그동안 세월호 사고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지금까지 지내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점들이다. 이 와중에 내 머릿 속은 더 복잡해졌다. 그동안 놓쳤던 것들, 사실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생각했지만 적극적으로 입 밖으로 말하지도 공유하지도 못했던 생각들을 정리하느라 그렇다. 생각이 복잡해진 근본적인 이유는 평화학자이자 갈등해결 전문가라는 내 정체성 때문이지만, 또 다른 이유는 괜찮은 시민으로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나은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개인적 자각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놓쳤던 것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로 놓친 것은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까지 찾아내는 치밀함이다. 보이는 것은 사고로 인한 수많은 죽음과 그로 인해 아픔을 겪은 가족들이었다. 보이지 않았지만 찾아봐야 했던 대표적인 점들은 생존한 사람들, 그리고 팽목항 및 진도 사람들과 그들의 삶이었다.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사고 후 한 동안 좁은 시각으로 문제를 보는 터널 비전을 가지고 한 가지에만 집중했다. 워낙 희생자가 많은 큰 사고였고 그에 따른 사회적 파장이 컸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는 있다. 그렇지만 항상 사건의 직접, 간접적 영향을 받는 모든 당사자를 찾아보고 360도로 고개를 돌려 전체 그림을 파악하는 이론적, 전문적 훈련을 받은 내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결국 보이지 않은 것까지 찾아봐야 하는 나 같은 사람들의 게으름으로 다수의 생존자들과 간접적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삶은 1주기가 된 이제야 조금이나마 언론과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됐다. 그들은 생계 수단을 잃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자신보다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애써 목소리를 숨겨왔다. 사람들은 보통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것에는 집중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집중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더군다나 그것이 한 사건과 관련된 것이면 더욱 그렇다.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집중하면서 동시에 큰 그림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집중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단순명료한 점을 간과한 것이다.
둘째로 내가 놓쳤던 것은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었다. 한 마디로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갈등해결을 전공한 내가 특별히 반성해야 할 점이다. 사고와 관련된 희생자가 많을 경우 당연히 희생자와 피해자, 그리고 가족들 사이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고 그 결과 다른 집단적 대응을 선택할 수 있다. 같은 사고의 피해자라 할지라도 각각 배경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선택과 과정이 어긋나면 집단들 사이에 마찰과 심지어 대립까지 생길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집단적 대응을 시작했지만 필연적으로 다른 배경과 생각 때문에 대응 방법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다른 쪽에게는 분열로 보여지고 악용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결국 가장 필요한 접근은 다른 집단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그들 사이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 사고 후 대응에 있어서는 사회 차원에서 그런 접근이 정교하게 이뤄지지 못했고 나 또한 그 점을 눈여겨보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쪽, 그러니까 제 앞가림에 눈이 멀어 방어 모드로 바뀐 정부와 정치권은 이 점을 악용해 잡음을 만들어냈다. 결국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놓쳐 지금보다 나은 상황을 만드는데 기여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셋째로 내가 놓친 것은 직접,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모든 당사자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할 필요성의 확인이다. 이것은 정부와 사회에 결집력을 보여 주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세월호 사고의 진상조사도 세월호 인양 결정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주 당연한 일이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행을 결정할 정부에 충분히 압력이 들어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힘이 부족한데도 사고의 직접,간접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결집되지도 그것이 영향력으로 전환되지도 않았다. 사실 진상조사와 세월호 인양은 희생자 가족들은 물론 세월호 사고로 생계 위협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생존자들, 세월호에서 유출된 기름으로 어업에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 관광객 감소로 피해를 입고 있는 진도 주민들 등 모두와 관련된 것이다. 때문에 그들 모두의 목소리를 모아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부에 합의된 의견을 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목소리는 모아지지 않고 있고, 때문에 정부는 각각의 집단을 분리시켜 접근하면서 압력을 분산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모든 당사자들을 포함시키고 단기적, 장기적 접근을 결합한 포괄적 접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매일 얘기하면서 이것의 실제 적용 필요성과 가능성을 정교하게 따져보지 않은 나의 부족함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런 글을 끄적이는 것이 자기 위안만 될 가능성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놓친 것들을 오래 전에 입 밖으로 내어 말했어도 개인적 차원에서 별로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사회에 영향을 끼치거나 다른 접근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놓친 것을 더 빨리 찾아내지 못하고 찾아낸 후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어쨌든 반성할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직접 피해를 입은 희생자 및 가족과 그외 사람들에게 똑 같이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할 경우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조심스럽게나 몇 줄 글이라도 쓰고, 생각을 공유했다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찾고 다른 접근의 실행 가능성을 고민해볼 기회를 만들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것은 이미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산적한 문제를 안고 세월호 1주기를 맞은 상황에서 나의 이런 반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내일 당장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앞으로 다른 문제들에 현명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도 이 반성은 유효하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1주기를 맞아 여러 모양으로 반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과 이 글을 공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