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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꼭 해야 돼?

갈등에 직면하는 사람들은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혼란을 겪곤 한다. 특별히 대화와 관련해서 그렇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상대와 대화해야 한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이해가 가는데 감정적으로는 전혀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갈등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고, 분노가 쌓이고, 그로 인해 상대에 적개심이 생긴 상황에서는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 것을 상상하기도 싫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보다 안 좋은 것은 이성적으로 대화가 필요치 않다고 결정해버린 경우다. 그 결과 대화의 시도는 정당성을 상실해버리고 적대적 관계의 유지와 비난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로 인해 갈등은 더욱 악화된다. 그렇다면 갈등이 악화되는 것을 감수하면서 왜 사람들은 대화를 꺼리고 나아가 대화가 필요 없다고 결정해버리는 것일까?   

 

사람들이 대화를 꺼리거나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진실이 자신의 편이기 때문에 결국 자신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지극히 일방적인 판단이다. 바꿔 말하면 이것은 상대의 주장과 말이 모두 거짓이라는 얘기가 되는데 상대가 들으면 기함할 일이다. 왜냐면 상대도 똑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갈등에 직면한 당사자들은 모두 자신의 판단에 따라 갈등 상황을 설명한다. 듣다보면 모두가 옳고 모두가 진실이다. 이런 일은 갈등의 당사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갈등의 발생과 전개를 설명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얘기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생긴다. 그러니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거기에 상대가 본 진실과 분석이 포함돼 있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진짜 진실을 알려면 상대의 얘기를 듣고 같이 앉아 하나하나 정리해가는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대화가 필요하다. 대화가 없이는 갈등 상황이 정리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대화를 꺼리는 그 다음 이유는 상대의 생각과 의도를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나면 상대가 무슨 얘기를 할지, 무슨 주장을 할지, 심지어 어떤 거짓말을 할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보기 싫은 사람과 마주앉아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자신이 이해하는 세상의 이치, 가치, 도덕, 전통, 관습 등에 따라 상대의 생각과 의도를 재단하고 해석한 것이다. 그러니 진짜 상대를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관의 한도 내에서 상대를 이해한 것일 뿐이다. 진짜 상대의 생각과 의도를 알려면 상대를 만나 직접 듣는 수밖에 없다. 싸움과 논쟁이 아니라 상대의 얘기를 듣고 세부사항을 확인하는 대화를 통해서만 상대의 생각과 의도를 알 수 있고 그래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많은 경우 대화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상대보다 힘이 더 있고, 그래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또한 착각이다. 세상에 상대적 약자는 있지만 절대적 약자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힘의 원천이 다양한데서 기인한다. 진실이 힘이 되기도 하지만 지지자, 정보, 인맥, 지식, 재원 등 다양한 것이 힘이 되기도 한다. 또한 상황에 따라 진실의 힘이 다른 종류의 힘보다 약하게 작용할 수도 있고, 정보와 인맥이 진실의 힘을 이기지 못할 수도 있다. 상대가 자신의 힘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 있을 때는 힘의 종류가 무엇이든 그 영향력이 생각보다 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자신이 가진 힘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화를 하지 않고 그 힘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은 타당하지도 않고 때로 위험하다. 그런 생각이 결국 갈등을 유지시키고 장기화시키며, 최악의 경우 돌이킬 수 없는 관계를 만들어 갈등의 해결을 영원히 힘들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대와 마주앉아 힘의 이용이 아니라 공동의 대화로 초점을 돌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그렇다면 대화를 꺼려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 경우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주변을 설득하고 지지를 이끌어 내 상대의 항복을 받는 것이다. 사회 갈등이나 집단 사이 갈등의 경우에는 여론이나 언론의 지지를 끌어내 상대를 패배시키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물론 힘 있는 상대를 대화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주변, 여론, 언론 등의 영향력이 필요할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대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갈등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켜 갈등 해결을 방해한다. 물론 상대가 힘에 밀려 항복하면 문제는 일단락될 수 있다. 그러나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힘에 밀린 상대와 관계가 악화돼 새로운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높고 결국 상대와 영원히 갈등 속에서 살아야 한다. 물론 이런 점을 감수하고라도 문제를 해결하기 원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선택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관계가 중요하고, 향후 계속 같이 살거나 일해야 한다면 옳지 않은 선택이다. 결국 만나지 않고, 대화를 하지 않고 갈등을 해결할 수는 없다. 그것은 혼자만의 생각과 착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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