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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내 갈등, 신앙으로 해결?

이야기 하나 

목사님이 어느날 갑자기 주일예배 후 점심식사 당번을 여전도회에서 속회로 바꾸셨다. 여전도회 회원들은 그동안 알아서 잘해왔는데 왜 바꿨는지 모르겠다고 웅성웅성이다. 특별히 속회장들은 부담이 된다면서 거의 우는 소리다. 사실 진짜 서운하고 난감한 일은 목사님이 바꾼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여전도회 임원들도 바꾼 이유를 모른다. 물론 목사님의 의도가 나쁜 것은 아니겠으나 그 이유를 모르니 여전도회 임원들은 회원들에게 설명할 수가 없다. 더 큰 문제는 여전도회 임원들조차 감히 목사님에게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야기 둘 

한 교회의 장로인 A는 B를 교회로 전도했고 붙임성이 좋은 B는 금세 신도들은 물론 목사님과도 친분을 쌓았다. 그런데 B가 A의 돈을 가져가서 갚지 않았고 둘 사이는 어긋났다. A는 B와의 관계를 거의 끊다시피 했는데 목사님은 B와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됐다. 둘 사이의 문제를 알면서도 목사님은 여전히 B를 이런저런 대외활동에까지 대동하고 다닌다. 자신의 불편한 심정을 돌아보지 않는 목사님 때문에 A는 상처를 받고 잠시 쉬겠다며 시골에 내려갔다. 하지만 속으로는 교회를 옮길 생각까지 하고 있다. A의 부인 역시 A의 사정을 알면서도 여전히 B와 만나고 A의 얘기를 들어보거나 달래보려고도 하지 않는 목사님에게 상처를 받았다. 목사님은 A의 부인에게 B를 만나서 원만히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고, 만남의 결과를 묻기 위해 B에게 전화를 걸었다. A의 부인은 자신에게는 묻지 않고 B에게만 연락하는 목사님의 태도와 행동이 못마땅하고 배신감마저 느끼고 있다. 심지어 목사님이 자기 가정을 버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얼마전 교회 여신도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러 갔는데 두 명의 참여자가 쉬는 시간에, 그리고 강의가 끝난 후 각각 나한테 어떻게하면 좋겠는지 물으면서 위 이야기들을 털어 놓았다. 처음보는 내게 그런 얘기를 하며 상담하는 상황이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다른 한편으로는 답답했다. 물론 처음보는 내게 그런 민감한 얘기를 하는 것이 더 안전하고, 내가 특별한 답을 해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미 그런 얘기를 해야 할 상대를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바로 자신들의 교회 목사님이다. 결국 그들이 내게 원한 것은 목사님에게 어떻게 얘기를 해야할지, 과연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시원한 답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고, 얘기를 하면 쉽게 풀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얘기조차 꺼내지 못하고 고심하는 이유는 그 일이 교회 내에서 생겼기 때문이고, 나아가 목사님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목사님에게만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한쪽의 얘기만 들었고 반대편인 목사님의 얘기는 듣지 못했으니 더군다나 그런 판단은 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든 문제와 갈등에는 항상 근본원인이 있게 마련인데 교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갈등도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과는 다른 근본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비슷한 일들이 많은 교회에서 심심찮게 생기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교회가 비슷한 근본원인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회에서 생기는 문제와 갈등의 근본원인은 교회의 특별한 성격과 문제와 갈등에 취약한 구조다. 교회는 자발적인 공동체다. 이익 공동체도 아니다. 한 마디로 주인이 없다. 그러다보니 부작용이 생겼다. 교회마다 독특한 운영 원칙과 방식이 교회 지도부와 일부 목소리 큰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된다는 것이다. 특별히 신앙공동체라는 특별한 성격 때문에 권한은 목회자에게 집중되고, 어떤 사회 조직보다도 엄격한 수직적 조직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교회 내 가부장적 조직 문화도 권한이 신앙의 지도자인 목회자, 그리고 목회자를 보좌하는 장로를 포함한 일부 사람들에게 집중되면서 생긴 것이다. 문제는 이런 조직 문화가 갈등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그런 조직 운영과 문화가 그럭저럭 교회 운영에 도움이 됐는지 모르지만 이젠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오히려 문제만 만든다. 특별히 교회 문화와 사회 문화의 괴리가 심해지면서 교회는 더욱 갈등에 취약할 수밖에 없게 됐다. 교회 밖에서는 개인의 자유, 선택, 권리가 끊임없이 언급되고 독려되는데 반해 교회 내에서는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명령-복종의 관계와 문화가 지속되고, 직분에 따라 계급 집단이 만들어지며, 개인의 자유, 선택, 권리는 먼 나라 얘기처럼 취급되기 때문이다. 21세기 민주사회에 살고 있는 교회 구성원들은 갈수록 그런 교회 문화에 괴리감과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교회가 갈등에 취약하고 교회 내에서 이런저런 갈등이 끊임없이 생기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는 가장 큰 문제는 교회가 사람들이 만든 공동체이며 조직이란 점을 부인하는 교회 지도부와 구성원들의 정서일 것이다. 신앙공동체지만 엄연히 사람들이 교류하고 활동하는 사회 집단인데 그것을 외면하고 '신앙'만을 강조하며 문제가 생길 때도 '신앙'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고집'일 것이다. 수없이 봐온 크고작은 교회 내 갈등을 보면 신앙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갈등이 별로 심각하지 않을 때는 신앙이 강조되지만 심각해지면 오히려 세속적인 상식과 규범이 강조된다. 그것이 모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결국 주인도 없고, 강제적인 규정도 없는 교회 공동체에서 갈등을 예방하고 해결하려면 다른 많은 사회 조직처럼 교회도 사람들이 만든 공동체고 조직이란 점을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런 인식과 인정에 기초해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고, 문제해결를 위한 대화를 시도하고, 필요하다면 외부 전문가의 도움까지 받아야 한다. 이런 일은 사실 다른 나라 교회에서는 이미 실행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위 두 사람에게 내가 준 대답은 간단하다. 힘들어도 찾아가 대화를 하라는 것이다. 다만 공격이나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얘기를 듣고, 생각과 느낌을 묻고, 자신의 생각, 느낌, 어려움, 서운함 등을 진지하게 공유하라는 것이다. 찾아가 대화하라는 것은 원칙이고, 상대의 얘기를 듣고, 묻고, 자신의 얘기를 공유하라는 것은 방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가 싸우자고 달려들어도 참고 대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절대 화내거나 싸우지 말아야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유치하고 비열한 방법으로 상대를 공격하거나 망신주지 않아야 한다. 자신이, 또는 상대방이 흥분해서 대화가 힘들면 중단하고 다음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고 할 것이고,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생긴 일을 완전히 무시하고 잊을 수 없다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 사전에 마음과 생각을 잘 준비하고 가서 대화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고,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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