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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갈등, 개인의 문제?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곳이 일터다. 이런 이유로 일터는 사람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삶의 질과 인생의 방향까지 좌우한다. 일터가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큰만큼 일터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들은 사람들의 일상에 가장 큰 도전이 된다. 어떤 문제는 제법 심각한 갈등으로 진화해 삶 전체를 위협하기도 한다.  

 

사람들을 만나면 일터에서 벌어지는 당황스럽고도 복장 터지는 얘기들을 듣게 된다. 조금 높은 직위을 권력처럼 휘두르는 상사, 도무지 협력이라는 것을 모르는 동료, 이해되지 않고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들, 무엇보다 자존감과 자부심을 마구 짓밟는 조직의 구조와 문화 등등.... 심심찮게, 최악의 경우엔 매일 일어나는 이런 일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나 비영리 조직인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공통으로 겪는 일이다. 때문에 일터에서 제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내심은 기본이고 인간관계와 스트레스 관리 기술까지 연마해야 하고, 때로는 자신의 특성과 정체성까지 포기하는 결단도 내려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그냥 '모두가 겪는 일'이나 '어쩔 수 없는 일'로 취급한다. 그리곤 '더러워도 참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곤 한다. 그런데 정말 그 방법 밖에 없을까? 그게 최선일까?    

 

일터에서 생기는 대부분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되는 것 같다. 하나는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에 생기는 문제고, 다른 하나는 나이와 직위가 비슷한 동료들 사이에 생기는 문제다. 최근 19-59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96%의 직장인이 직장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10명 중 6명은 스트레스 강도가 높다고 답했단다. 특히 젊은 직장인들과 여성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가장 심각한 스트레스 요인이 상사라는 점이다. 56.6%가 상사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답했고, 가장 많이 스트레스를 주는 상사의 유형은 '팀원과 직원을 존중하지 않는 상사'였다. 불가능한 시간 안에 업무처리를 요구하거나 하루에도 몇번씩 생각이 바뀌는 상사, 이유없이 질책하는 상사, 야근이나 주말 일처리를 요구하는 상사가 주는 스트레스 등도 많았다. 이런 스트레스 요인을 잘 살펴보면 대충 답이 나온다. 젊은 사람들과 여성들은 일터에서 상대적 약자인데 그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이유가 공식적으로 주어진 힘, 다시 말해 직위를 악용해 개인의 권리와 사생활을 침해하는 상사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일터가 스트레스 유발지, 갈등의 요람, 나아가 삶을 파괴하는 암흑세계로 바뀌는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는 근본원인은 그런 왜곡된 힘의 관계와 힘의 악용을 '일을 위한 것'이라는 핑계로 정당화하는 일터의 구조다. 다시 말해 폭력적 관계와 문화를 승인해주는 구조다

 

동료들 사이에 생기는 문제도 사실은 힘의 관계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일터의 구조 및 문화와 관련돼 있다. 직위와 나이가 비슷한 동료들 사이에 생기는 문제와 갈등을 듣고 분석해보면 결국 근본원인은 힘에 의존해 관계를 만들고 힘을 휘두르는 상사, 그리고 그것을 묵인 또는 독려하는 일터의 구조 및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그 힘의 구조와 문화에 도전할 수 없는 약자들이 일의 분배, 절차, 결과 등을 놓고 자기들끼리 싸우고 대립하는 것이다. 꼭 일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 관계 때문에 문제와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고? '글쎄요....'다. 일터에서 생기는 개인 사이의 문제와 갈등을 단순히 개인의 일로 볼 수는 없다. 일터가 아니었다면 그들이 만나 관계를 맺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고, 그들 사이에 대립과 갈등이 일을 매개로 생겼다면 그것을 개인의 성품이나 자질의 문제, 그리고 개인이 해결할 문제로 취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는 공식적으로 다뤄져야 하고 일터는 그런 체계를 갖춰놓아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문제/갈등 예방과 해결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쉽지 않다. 부당한 일과 처우 때문에 복장터지고 한이 쌓일 일이 없는 윗분들은 대부분 이런 것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divide & rule'이라는 고전적 수법과 비슷한 방식을 씀으로써 아랫사람들의 싸움과 경쟁을 조장하고 그것을 통해 성과가 많아질 수 있다면 그것을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약자의 입장에서는 힘이 없다고 포기만 하는 것이 답은 아니다. 포기하면 할수록 약자들 사이의 싸움만 많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약자들이 지속적으로 폭력적인 구조와 문화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약자들 스스로 '소통'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대립적이 아닌 협력적인 소통 방식을 선택하고 그런 소통을 개인의 자질, 기술, 선택에 맡겨놓지 말고 공식화시키는 것이다. 즉 업무적 접촉이 빈번한 사람들이 소통의 방식과 절차를 합의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필요한 사람들 스스로 문제/갈등을 예방하고 원활하게 해결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막힘이 없이 잘 통한다'는 뜻이다. 이런 소통을 공식화시키는 것은 업무와 관련된 사람들이 논의하고 합의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모두가 둘러앉아 업무와 관련된 사항을 점검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업무 방식과 절차를 조율하고 최종적으로 합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합의사항을 나열해 모두가 서명하는 것이다. '뭐 그렇게까지....'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과정이 갖는 힘은 생각보다 클 수 있다. 자신이 동의하고 서명까지 한 절차와 일에는 책임감이 따르고, 더군다나 모두가 합의했기 때문에 그것을 깨는 것에 대한 부담은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복잡하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면 실행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항상 동료들 사이에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그래서 문제와 갈등이 생긴다면 복잡해도 시도해볼만한 일이다. 또한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제외하고 동의하는 사람들만 우선적으로 시도해볼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 효과가 나타나면 부정적이었던 사람들도 합류할지 모른다. 아주 소시민적이고 소극적인 발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것이 큰 구조와 문화를 바꾸는 단초가 될 수 있고 윗분들에게 전체 구조와 문화를 바꾸라는 무언의 압력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이 효과를 내면 회사나 단체 차원에서 문제/갈등 예방 및 해결 체계를 만들겠다고 나설지도 모른다. 관건은 복잡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않고 가장 손쉬운 방법만을 찾는 습관적 대응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심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의지와 행동이 없으면 변화도 없다.  

 

뭐 그냥 부당한, 그래서 일터를 각종 문제와 갈등의 온상으로 만드는 구조와 문화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취급하고 대충 인내하면서 사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나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일을 겪고 사는 현실을 보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힘들다면, 그래서 자신의 삶의 질이 떨어지고 '행복한 삶'이라는 말이 외계어처럼 들린다면 스스로, 그리고 주변의 동료들을 모아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 상상했던 결과가 생기지 않아도 노력한만큼 자신과 주변의 변화를 경험할 수도 있다. 적어도 그것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이다. 또한 '내가 윗 자리에 올라가면 그대로 갚아주리라'는 찌질한 태도보다는 훨씬 바람직하고 당당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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