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은 외교 사안?

16일 아침 신문에는 프랑스 상원이 15(현지시각) 본회의에서 정부에 한국전쟁 종전선언 채택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결의안에는 한국, 북한, 미국, 중국 등 한국전쟁 당사국이 종전선언을 채택해 전쟁 상태를 공식 종식하고 한반도에 평화 체제를 수립할 수 있도록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취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해 10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국회평화외교포럼 대표단이 프랑스 의회 외교.국방.군사 상임위원장을 만나 협조를 요청한 일이 영향을 미쳤다는 뒷얘기도 보도됐다. 반면 같은 날 밤에는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공화당 간사인 제임시 리시 상원의원이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제안은 한국을 더 안전하게 만들지 않으며 북한과 중국에는 선물이라고 주장하며 종전선언에 반대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지난 해 127일 한국계 영 김 하원의원의 주도로 35명의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들이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서한을 바이든 행정부에 보낸 지 한 달 만에 상원에서 같은 주장이 나왔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민주당의 브래드 셔먼 하원의원은 지난 해 5월에 종전선언은 물론 평화협정과 인도적 지원 등을 담은 한반도 평화 법안을 발의했다. 무엇보다 바이든 행정부는 종전선언을 지지하고 있다. 지난 해 1229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한국과 미국이 종전선언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고 문안에 관해서도 이미 사실상 합의가 돼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해 문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 추진 의사를 밝힌 뒤 종전선언 실현에 힘을 쏟고 있다. 종전선언이 남..미 또는 남...중 사이의 합의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리고 북한의 핵무기가 국제적 사안이 된 상황에서 북한의 참여가 필수인 종전선언을 위한 외교적 노력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할 건 종전선언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며 왜 필요한가다. 결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끝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전쟁을 완전히 끝내는 평화협정이 아니라 정전협정으로 중단됐고, 정전협정이 북.중과 미국 사이에 이뤄졌다는 점은 우리에게 도전적인 일이다. 그런 이유로 미국과 중국의 참여가 불가피하고 국제적 설득이 중요하더라도 종전선언은 한반도 문제이고 우리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 정부와 언론이 국민의 의사나 합의보다 국제사회와 국외 정치인들의 의견에 더 주목하는 건 몹시 불편한 일이다.

 

국민 과반만 종전선언 지지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목표로 했던 건 평화협정이었다. 전쟁은 보통 평화협정(peace agreement)으로 종식된다. 한국전쟁은 불행하게도 정전협정으로 중단됐고 휴전상태는 그후 남북한 사이 무력 대결과 정치적 대립, 그리고 군비 경쟁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됐다. 20184월의 판문점선언에서 남북정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했지만 북미회담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계획이 어긋났다. 이제 정부는 남북 대화의 교착상태를 해소하고 비핵화 문제를 다룰 돌파구로 삼기 위한 정치적 선언으로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대화 단절에 이은 군비 경쟁으로 관계가 악화돼 북한의 호응을 끌어낼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정부와는 사실상 합의를 했다고 하지만 국내.외의 지속적인 반대 목소리로 인해 정치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가장 유감인 부분은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강하게 어필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2일 서울신문은 18세 이상 남녀 1,008명을 조사한 종전선언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기사화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의 종전선언 추진에 대해 53.5%가 찬성했고 37.6%가 반대했다. 60세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과반이 찬성했고 60세 이상에서는 찬.반 의견이 43.2%42.5%로 박빙이었다. 지역별로는 대구.경북과 강원에서 각각 50.2%47.9%로 반대가 높았다. 나머지 지역에선 모두 찬성 의견이 높았다. 정치 성향으로 보면 보수 성향의 61%가 반대를, 진보 성향의 77%가 찬성을 표했다. 이 결과가 보여주는 건 이념과 정치 성향에 따라 종전선언에 대한 의견이 다르고, 종전선언의 필요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종전선언이 필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종전, 다시 말해 전쟁을 끝내는 것이 상식적이고 윤리적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최선을 다해 빨리 끝내는 게 상식적이다. 그런데도 지속적인 교전이 없이 68년 이상을 지내고 있는 남북한이 휴전상태로 있는 건 비상식적이다. 전쟁을 끝내는 건 윤리적인 일이기도 하다. 전쟁 반대는 인류가 공유하는 윤리적 입장이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이유를 내세워 종전선언에 반대한다는 국내.외의 의견은 인류사회의 윤리적 입장에 부합하지 않는다. 걸림돌이 보인다면 종전 반대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할 방법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제안하는 것이 상식적이고 윤리적이다.

 

종전선언의 사회적 의미

종전선언은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 사회적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먼저 종전선언을 통해 한반도에 수사적으로 따라붙어 부정적 이미지를 만드는 절차상 전쟁 상태(technically at war)’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남북관계 또는 북한 문제 관련 국제 뉴스에서 항상 휴전상태인 한반도가 전쟁 상태로 설명되는 상황은 우리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전쟁 후 70년이 다 되도록 종전선언을 합의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종전선언은 남북이 대결이 아닌 평화적 공존과 한반도 평화 정착으로 방향을 설정한다는 상징적 사건으로서 큰 사회적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휴전상태에서의 남북의 지속적인 전쟁 준비와 상호 공격 시나리오가 정당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남북이 교전국이 아닌 외교적 상대가 돼 다른 국가들처럼 평화적 공존의 원칙 하에 상시적 논의 체계를 만들 가능성이 열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상황이 무력 대결과 충돌로 후퇴하지 않을 거라는 사회적 확신을 주고, 그런 사회적 정서의 형성이 남북 사이 관계 개선, 교류, 협력 등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비핵화 문제를 여러 시나리오를 가진 외교적 문제로 다룰 수 있고, 평화협정 체결을 앞당길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진다. 무엇보다 이념 대결의 약화로 남북 대결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악용되는 사례를 줄일 수 있다. 지금처럼 선거 캠페인이 진행되는 시기에는 절실히 필요한 일이다.

 

종전선언이 당장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는 건 아니지만 복잡한 남북관계의 역사와 현재의 도전 속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임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전쟁을 끝내야 평화 체제로의 전환을 시작할 수 있다. 종전선언을 위해 정부는 무엇보다 국민을 설득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충분한 설명을 제공해야 한다. 종전이 한국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알려야 한다. 그래야 북한도 설득할 수 있다. 국민적 합의와 지지는 외교적 도전과 북한의 무관심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종전선언의 문안이 이미 미국과 사실상 합의가 돼 있는 상태라면서도 그 내용을 국민과 공유하지 않는 점은 몹시 유감스러운 일이다. 종전선언 추진을 정치적 선언이자 비핵화 논의를 위한 돌파구로만 여긴다면 정치적 효용성이 사라졌을 때, 다시 말해 정부가 바뀌고 정책이 변하면 폐기 처분될 위험성이 크다. 지금이라도 사회적 합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정부나 정권이 바뀌었을 때 종전선언 추진이 휴짓조각이 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Posted by 정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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