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호의존성과 갈등전환의 필요

 

남북, 70년의 갈등 관계

갈등은 관계가 있는 사이에서 발생한다. 관계가 있으면 공동의 문제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관계의 질이 좋지 않으면 공동의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수시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 좋지 않은 관계로 인해 서로를 자극하고 부정적 태도와 행동을 보이는 일이 자주 생긴다. 남북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이런 조건들에 부합한다. 특이한 점은 직접적 접촉이 거의 없지만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공동의 문제가 수시로 발생하고, 적대적 관계 때문에 갈등이 물리적, 언어적 충돌로 표출되고 대립으로 치닫곤 한다는 점이다. 이런 충돌과 대립은 남북대화로 적대적 관계가 완화되는 동안에는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시기는 지난 70여년 동안 1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불과했다.  

 

남북의 갈등은 1948년에 시작됐고 지금까지 70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남북 갈등은 국가 사이 갈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 헌법은 한반도 전체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명시하고 있지만 그건 북한을 인정하지 않는 반공, 반북 정서가 반영된 것일뿐 사실상 북한은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그리고 유엔에도 가입된 한반도 내 다른 국가다. 단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은 우리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국가 사이 갈등은 우리가 흔히 대면하는 사회갈등이나 개인갈등과 다르고 특유의 복잡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갈등 이론과 시각을 통해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사실상 초기 갈등해결 연구는 국가 사이 갈등 및 무력 충돌의 예방과 평화적 해결 방식의 모색에 맞춰졌고 지금도 국가 사이, 또는 국가와 비국가 집단 사이 대립과 충돌이 중요한 연구와 실행 사례가 되고 있다.

 

남북의 갈등은 'protracted & intractable conflict', 그러니까 '오래 지속된 다루기 힘든 갈등'으로 정의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언어는 갈등의 발생과 전개에 포함된 모든 것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특히 남북 관계의 특수성과 복잡성에서 비롯된 장기간의 대립을 '갈등'이라는 매우 정돈된 언어로 설명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갈등'은 장기간의 대립과 충돌 관계를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데 유용하고, 장기간의 문제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새로운 대응 방식을 고민하는 시도를 할 수 있게 한다.

 

우리 사회의 일부 구성원들은 남북의 대립을 갈등으로 보는 것에 불편함이나 저항감을 느낄 것이다. 북한은 우리의 적이고 적과의 대립은 당연하며, 적은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이지 함께 문제를 해결할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적과 대화하는 것은 더더욱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갈등'은 적대적 국가, 적대적 사회, 적대적 집단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정의할 때도 똑같이 쓰는 용어다. 무력이 동원되는 경우에는 armed conflict로 구분되지만 말이다. 그리고 적과도 문제의 해결은 필요하다. 갈등의 근본원인을 해결하는 시도 또한 필요하다. 이것은 상호 파괴는 피하고 상호 안전은 담보하기 위한 선택이다. 남북도 마찬가지다.

 

상호의존성과 갈등전환의 필요

남북은 오래 갈등을 겪고 있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상호의존적인 관계다. 상호의존성은 갈등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이것은 한 쪽의 문제가 곧 다른 쪽의 문제가 되며,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갈등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특징이다. 상호의존성은 남북이 갈등 관계이자 대립적, 적대적 관계인 데서 비롯된다. 이로 인해 한 쪽의 행동과 태도가 다른 쪽의 갈등에 영향을 미치며, 특히 다른 쪽의 안전을 좌우하게 된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이 상대에게 힘을 과시하고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시도는 계속됐다. 남북 모두 군사적 힘을 포기하지 않고 군비 경쟁과 전쟁 준비를 계속했다. 이런 상황은 역설적이게도 상호의존성을 강화시켰다. 동시에 계속 새로운 갈등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2018년의 남북 대화와 적대 관계의 완화는 상호의존성의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각자의 태도와 행동의 변화가 다른 쪽의 안전을 보장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남북의 오랜 갈등과 대립 또한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남북 갈등은 남북이 2018년의 관계로 복귀하고 관계가 더욱 진전되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평화협정이 맺어져도 마찬가지다. 남한과 북한이 정치체제가 다른 사회로 존재하는 한 말이다. 그렇다고 통일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않을 것이다. 정치적 통일이 사회, 집단, 개인 사이 통일과 화합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북 갈등은 우리가 계속 마주해야 할 문제다. 다만 그 갈등을 어떻게 파괴적인 문제로 만들지 않을지, 갈등이 가져오는 부정적 영향을 줄이고 최종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어떻게 점진적으로 갈등을 완화시키고 마침내 완전히 다른 상황을 만들지가 우리가 고민해야 할 과제다. 무엇보다 외면할 수 없는 갈등을 변화를 위한 계기로 만들 필요가 있고 그것은 가장 힘든 과제다.

 

갈등해결 연구에서 가장 진보하고 포괄적인 갈등전환(conflict transformation) 이론은 남북 갈등의 근본원인을 파악하고, 점진적 해결을 위한 변화의 필요와 방식을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시도를 하는 데 유용하다. 전환의 핵심은 현재의 바람직하지 않은 관계와 상황을 끝내고 공동의 바람직한 미래를 고민하는 것이다. 현재의 문제 상황을 끝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통해 현재와 미래, 나아가 과거까지 동시에 다루는 것이 전환적 접근이다. 그것은 긴 성찰과 실행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갈등의 진원지를 파악하고, 발생과 전개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요인을 규명하고, 변화를 위한 역량을 찾아야 한다. 전환을 위해서는 남북의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합적으로 성찰하고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구체적 지점을 확인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동시에 어떤 방식으로 그런 시도를 할 것인지도 논의와 고민의 핵심 주제가 되어야 한다. 이 모두가 갈등 전환의 시각을 통해 접근하고 성찰하고 시도할 과제다.   

 

 

2. 남북갈등과 우리의 정체성

 

남북갈등과 집단 정체성

70년을 넘은 남북갈등은 오래 진행된 다루기 힘든 갈등(protracted and intractable conflict)이다. 이미 오래 전에 고착화됐고 한반도를 정의하는 것 중 하나가 된지도 오래다. 동시에 남북갈등은 우리의 집단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우리의 집단 정체성과 존재 의미는 북한의 존재와 북한과의 관계, 즉 갈등관계를 통해 꾸준히 규정돼 왔다. 남북갈등이 무력 충돌로 폭발한 한국전쟁은 공산주의로부터 자본주의를 지키는 집단 정체성 강화로 나타났고, 그후 계속된 남북의 정치적, 군사적 대립과 간헐적 충돌은 북한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우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사명으로 삼은 집단 정체성을 만들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의 대화와 그후의 단절, 2018년 남북대화와 역시 그후의 단절은 조심스럽게 통일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다른 한편 북한체제로의 통일을 막기 위한 체제 우월성을 한층 더 강조하고 동시에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진보성과 우월성을 강조하는 집단 정체성을 만들었다. 이런 집단 정체성 규정과 강화는 남북갈등에서 담론과 주장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노력이다. 대화와 합의를 통한 남북갈등의 공동 해결이 아니라 우리의 이익에 맞춘 변화와 통일에 방점이 찍혀 있다. 

 

갈등은 보통 정체성을 자각하는 계기를 만든다. 아무 일이 없을 때는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없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고 대립하는 상대가 등장하면 자기 주장의 합리화를 꾀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기 정체성의 확인과 규정이 이뤄진다.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규정은 곧 상대 정체성의 확인과 규정, 그리고 차별성을 통한 자기 정당화로 연결된다. 갈등이 진전되고 악화되면 차별성 강조는 상대 정체성의 부정으로 변한다. 남북갈등에서 우리의 집단 정체성도 비슷한 경로를 거쳤다. 정체성은 불변의 것이 아니고 그에 대한 자각은 갈등의 진행 경로와 상대에 대한 이해에 따라 유연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집단 정체성, 특히 북한이라는 갈등 상대를 염두에 둔 정체성은 남북갈등의 근본적, 점진적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고착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후 남북갈등의 완화와 일시적 중단, 그리고 정치적 변화를 계기로 북한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나타났다. 하지만 1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은 큰 변화를 만들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2000년에서 2007년까지의 남북관계 개선, 그리고 2018년의 남북대화 경험은 남북관계가 언제 다시 대립과 위기로 회귀할지 모른다는 불신, 그리고 남북갈등은 영원히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만들었다. 그 결과 남북갈등 안에서의 집단 정체성도 변하지 않았다. 

 

정체성 재확인, 재정의의 필요

파괴적인 남북갈등을 완화하고 건설적인 갈등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현재와 미래의 공존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직면하는 이견을 대화를 통해 대응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집단 정체성에 대한 재확인과 재정의가 필요하다. 70년의 남북갈등 속에서 북한에 대한 불신과 감정에 뿌리내린 우리의 집단 정체성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한편 두 가지의 변화가 오래 전부터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다양한 하위집단 정체성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남북갈등과는 상관없이, 그리고 북한에 대한 우월성과 차별성이 아닌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자기 집단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안전, 자유, 행복, 그리고 평화로운 삶의 보장을 저해하는 장애물 중 하나로 남북갈등을 이해한다. 또 자기 삶을 위해 필요하다면 다뤄야 하는 문제 중 하나로 남북갈등과 북한을 이해한다. 이들의 선택은 파괴적, 적대적 갈등 대응이 아닌 자기 안전과 이익을 위한 대응이고 남북의 상호 안전과 이익을 거부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의 변화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다. 자기 중심적이고 개인 자유와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청소년부터 30대까지를 포함하는 이 세대는 남북갈등과 관련지어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고 남북갈등에 관심도 없다. 이들에게 남북갈등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아니다. 다만 자기 문제에 끼치는 영향을 따져서 그 중요성과 해결 필요성을 판단한다. 이것은 우리 사회와 한반도 평화를 좌우하는 문제에 대한 무관심 내지 몰이해로 비쳐질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남북갈등에 토대를 둔 집단 정체성에서 자유로운, 그리고 유연한 대응의 잠재성을 가진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새로운 하위집단 정체성이 형성돼 있다는 것은 남북갈등의 해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부정적인 면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 내부 갈등을 만들고 사회적 대응이 부족할 경우 심각한 사회 갈등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갈등이 오래되면 보통 내부의 갈등이 생기고 그것이 외부의 갈등에 대응하는 것보다 복잡하고 힘든 일이 되곤 한다. 우리 사회도 이미 그런 경험을 하고 있고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부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새롭게 나타나는 하위집단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대응이 필요하다. 나아가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남북갈등의 근본적 해결책을 찾고 남북관계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갈등전환 이론의 대가인 존 폴 레더락은 "정체성은 역동적이고 특별히 갈등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정의되고 재정의되며, (다른 정체성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과의) 관계를 통해 이해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전환적 과정에서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집단과의 관계에서 긍정적 의식을 가지고 정체성의 문제를 언급하고 분명히하도록 독려할 공간과 과정을 만들지"가 도전이라고 말한다. 이건 우리에게도 도전이다. 기본적으로 북한을 경계하고 적대시하는(해야 하는) 집단 정체성이(북한을 경계하고 적대시하는 건 남북대화를 지지하는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정당성과 힘을 독점하고 있다. 반면 북한에 관심이 없거나 자신의 이익과 안전에 초점을 맞춰 북한을 보는 하위집단들의 정체성은 공식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주목할 필요 없는 것으로 취급된다. 다양한 정체성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공식화하고 인정할지, 그리고 서로 다른 정체성을 얘기하고 토론하는 공간과 과정을 어떻게 만들지가 우리가 직면한 도전이다. 남북갈등의 대응과 해결을 위해서는 세대와 가치관에 따라 다양해진 하위집단들의 정체성까지 포함해 우리의 집단 정체성을 재정의해야 하고, 동시에 새로운 집단 정체성을 형성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고는 70년을 넘은 남북갈등은 상투적인 대응과 대립을 거듭하며 앞으로 20년, 50년 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3. 관계의 재설정

 

관계의 재인식과 재설정

남북은 70년 이상 대립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남북의 관계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단절할 수도 단절할 이유도 없다. 지리적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남과 북 모두 민족적 동질성을 강조하며 통일을 궁극적 목표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은 남북이 공유하고 동의하는 담론이자 목표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남북은 그동안 통일을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통일을 염두에 둔 신뢰관계를 만들기 위해 크게 노력하지 않았다. 남북은 대립과 대결을 지속하면서 장기간 최악의 갈등을 겪는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살고 있다.

 

갈등 관계인 남과 북은 계속 싸우며 상대를 비난하고, 대화 테이블에 앉기 전에 힘겨루기를 하고, 주변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갈등 관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고 그런 점에서 남북의 적대적 감정과 대결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영원히 갈등 관계를 지속하는 건 불행하다. 해결이 필요한데도 노력하지 않는 건 더 불행하다. 우리가 70년 이상 남북의 갈등을 제대로 다루지도, 해결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지도 않았던 건 우리의 행복을 스스로 포기한 꼴이다. 

 

갈등의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관계와 상대에 대한 재인식이다. 갈등의 상대는 곧 대화의 상대다. 갈등은 대화와 합의를 통해 해결 가능하고 대화를 거부하는 건 갈등을 해결하지 않겠다는 거다. 물론 도중에 싸움이 생기고 대화가 중단되는 상황이 생긴다. 그럼에도 대화는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 싸움으로 상대를 멸망시켜 지구상에서 영원히 제거하겠다는 불가능하고 적대감만 강화시키는 생각은 되도록 빨리 버려야 한다. 관계의 재인식과 더불어 관계의 재설정도 필요하다. 갈등 당사자들 사이에는 보통 힘의 관계가 형성된다. 누구든 자기 힘을 키워 상대를 제압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갈등이 계속된다는 건 어느 쪽도 힘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힘의 관계에 집착하거나 힘으로 제압하려는 시도는 버리고 상호 이해와 논의의 관계로 재설정하는 것이 갈등의 해결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접근이다. 이 모두는 남북 관계에 그대로 적용된다.

 

상호의존적 관계와 공통 기반 설정

우리가 이미 오래 전에 남북 갈등의 해결을 위해 북한을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를 어떤 대화 상대로 인정하는냐는 문제가 남아 있다. 우리사회에서 남북 대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우리가 북한을 위해 '대화를 해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을 위해 우리가 힘들어도 참고 북한의 도발조차 참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계 인식은 우리가 상대적으로 힘이 있고 그 힘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또한 남북 갈등의 해결이 우리보다 북한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필요한데도 우리가 북한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왜곡된 인식에서 나온다. 남북 갈등을 인정하고 대화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대화와 협상이 우리의 필요에 따른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관계의 재설정이 가능해진다.

 

갈등전환이 다른 갈등해결 접근과 다른 점은 갈등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모든 단계에서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거다. 관계는, 특히 단절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관계는 해결의 필요성을 정당화하고 해결을 가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열쇠다. 관계에 초점을 맞출 때 피할 수 없는 문제는 상호의존성이다. 남북 사이에도 당연히 상호의존성이 존재한다. 북한의 태도와 행동은 우리의 안보, 정치,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태도와 행동은 역시 북한에 동등하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더 발전된 나라기 때문에 북한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만 우리는 북한이 필요치 않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고 일방적인 억지 주장일 뿐이다. 특히 남북의 관계를 갈등 관계로 보면 그런 논리가 설득력이 없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관계의 재설정과 상호의존성이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 공통의 기반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 사이의 갈등, 분단된 집단이나 사회 사이의 갈등, 적대적 국가 사이에서의 갈등 등 모든 갈등의 해결을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공통의 기반을 설정하는 것이다. 갈등의 해결과 관계의 회복, 불안의 종식과 안전한 삶의 확보, 삶의 질 개선과 발전 등 고통스런 현재 상황의 종식과 미래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갈등의 해결을 정당화하고 서로 설득하는 공통 기반이 된다. 현재 남북 사이에서 공통 기반은 통일과 전쟁 없는 한반도 정도다. 경제에 대한 공통 기반 설정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로선 현실성이 부족해 보이는 통일에 대해서는 적어도 목표로서 공통 기반이 설정돼 있다. 하지만 현재에 필요한 전쟁 없는 한반도, 다시 말해 전쟁 준비로도 서로를 위협하지도 않아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문서적 합의와 무관하게 적대적 관계의 지속으로 인해 공통 기반이 설정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언어를 뒷받침할 실질적인 상호 노력과 결과가 없으면 공통 기반의 설정 자체가 힘든 상황이다.

 

상호의존성의 인정과 현재와 미래의 공동 변화를 위한 공통 기반의 설정은 이론상 원칙적인 것이므로 당연하고 상대적으로 쉬운 첫걸음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남북은 그조차 상호 논의와 이해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다. 남북 갈등의 근본적 전환과 공동의 미래를 생각하면 우리가 얼마나 기초의 기초 시점에 서 있는지를 알 수 있다.

 


4. '적' 프레임의 전환

 

북한, 경계의 대상? 협력의 상대?

정부는 통일교육을 평화.통일교육으로 바꾸어 실행하고 있다. 그 지침서 역할을 하는 건 통일교육원이 낸 <평화.통일교육 : 방향과 관점>이다. 이 문서 서두에 있는 '평화.통일교육의 목표'에서 서술하고 있는 내용 중 하나는 '균형 있는 북한관 확립'이다. 이것은 "북한 실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면서 북한에 대해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경계의 대상이지만 통일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협력의 상대로 인식하는 관점을 말한다"라고 적고 있다. 그 아래에선 "분단 현실에서 북한은 같은 동포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경계의 대상인 이중적 존재라는 사실을 균형 있게 인식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적'이며 다만 우리의 목표인 통일을 위해 불가피하게 협력해야 하는 상대라는 얘기다.

 

이런 인식의 강조는 평화.통일교육 현장에서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교육을 받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북한을 적으로 알고 항상 의심하고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이 우선인 건지, 동포고 나중엔 통일을 해야 하니 협력을 모색하는게 우선인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북한과의 통일이 우선인지, 아니면 적대적 관계 유지가 우선인지도 모호하다. 모순적으로 보이는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게 가능한 건지조차 알 수 없다. 경계하면서 협력하는 건 거짓이나 위선이 될 수 있는데 결국 뒤에 총을 감추고 진심이 아닌 마음으로 협력하자고 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다.  

 

'균형 잡힌 관점'을 빌미로 이런 모순적 주장이 이뤄지는 이유는 결국 '안보'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국가안보 프레임과 그것의 강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우리 정부에, 그리고 사회에 견고하게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건 국가안보가 강조되면서 자연스럽게 북한의 '적' 이미지 또한 강조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는 비록 선언에 가깝지만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한반도 평화의 정착을 표명하고 있고, 어쨌든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국가안보 프레임을 상수로 놓고 그에 따라 북한에 대한 '적' 이미지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일은 끝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평화'가 들어간 어떤 것도 가능하지 않다.

 

북한, 갈등 해결의 파트너

갈등전환은 이런 모순을 극복할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 안목과 접근을 제공한다. 우리가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것은 북한에 대한 '적' 이미지다. 국가안보 프레임과 그와 관련해 무력 대결 및 경쟁이 강조되고 유지되면 '적' 이미지도 유지될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사회의 일부 구성원들은 '적' 이미지의 강화와 유지를 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한반도 평화를 원한다면 북한에 '적' 이미지를 씌우는 건 포기해야 한다. 대신 우리와 풀어야 할 문제를 놓고 대립적 입장을 가진 갈등의 상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국가안보 프레임 대신 '갈등' 프레임이 필요하다. 남북이 갈등을 공유하고 갈등 때문에 수십 년 동안 남북 모두 어려움을 겪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 갈등은 함께 해결해야만 하는 도전이고 현재 직면한 도전의 극복을 통해 각자의, 그리고 공동의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다. 남북의 문제를 갈등으로 보면 북한을 '적'이나 '악'이 아니라 대화의 상대이자 그야말로 협력의 상대로 볼 수 있다.

 

남북 문제를 갈등으로 보면 북한을 자기 입장을 가지고 이익을 추구하는 갈등 상대로 볼 수 있게 된다. 모든 갈등 당사자들은 자기 입장과 이익 추구를 정당화할 근거와 주장을 가지고 있으며 북한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그것이 상대에게는 불합리하고 부당한 것으로 보일 뿐이다. 그래서 갈등을 해결하려는 당사자들에게는 생각과 주장의 간극을 좁히고 합의점을 찾기 위한 대화, 상호 이해, 공동 이익의 발굴과 모색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상대를 대화의 파트너로 삼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만 갈등의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또는 그것을 핑계로 대화의 상대로 삼았다가 적으로 삼았다가 한다면 절대 갈등을 해결할 수 없고 상황만 악화된다. 국가 사이 갈등에서 상황의 악화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만들 가능성을 의미할 수 있다. 

 

특히 갈등전환에서 강조하는 관계의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갈등의 악화, 그리고 해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당사자들 사이의 상호 인식과 소통이다. 상호 인식이 낮고 소통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갈등은 악화되고 해결에서 멀어진다. 갈등을 완화하고 해결을 향해 나아가려면 상호 인식을 최대화하고 소통을 최대로 작동시켜야 한다. 상대에 대한 두려움과 의심이 그것을 방해한다면 그 두려움과 의심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규명하고 극복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상대를 경계의 대상과 동시에 협력의 상대로 삼는다는 이중적 태도와 행동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것은 갈등 프레임에서는 적절하고 합리적인 태도와 행동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남북 갈등의 완화와 해결에 기여하는 남북 관계를 만들어야 결국 평화적 공존이 가능해지고 평화적 통일로 가는 길이 열릴 수 있다. 평화통일의 구호만 웅얼거리는 건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이 글은 '평화갈등이야기'에 게시된 시리즈를 통합해 정리한 것입니다.

Posted by 정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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