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끝낼 수 있었던 전쟁

727. 정전협정일이다. 정전협정 서명으로 한국전쟁은 중단됐다. 그러나 종식되지는 않았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한국전쟁은 종전선언이 아니라 정전협정으로 중단됐다. 그후 우리 사회는 내내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다. 전쟁은 없지만 남북한이 끊임없이 서로를 공격하고 위협하고 증오하는, 그래서 결국 전쟁의 위험을 계속 안고 살고 있다. 1953년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한 과오가 낳은 불안하고 위험한 현실을 우리는 매일 경험하고 있다.

 

전쟁의 최소한의 목표는 전쟁 전 상태의 회복이다. 바람직한 목표는 전쟁 전보다 나은 평화의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전쟁만이 국제사회에서 정당한 전쟁(just war)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때문에 모든 전쟁은 단기간에 목표를 달성하고 종전선언을 하는 데 집중한다. 전쟁이 하루라도 길어진다는 건 더 많은 인명 손실과 사회 파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이런 전쟁의 원칙적 기준을 벗어난 것이었다.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은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었음에도 끝내지 않았고, 많은 인명 손실과 사회 파괴를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전쟁을 계속했다. 그 결과 이론상 정당한 전쟁으로 시작했지만 정당하지 못한 전쟁으로 끝났다.

 

휴전을 위한 협상은 1951710일 시작됐다. 하지만 정전협정에 서명하기까지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사실 휴전 협상을 시작한 때가 전쟁 시작 후 1년이나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빨랐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북진 통일을 주장하며 휴전을 반대했다. 전쟁 시작 후 1년 동안 곳곳에서 인민군, 국군,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벌어졌음에도 정치적 목적 달성에 집중했다. 물론 향후 북한이 다시 공격할 것을 우려해 북한을 붕괴시키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참전과 북한의 반격으로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쟁을 고집한 건 전략의 실패이자 지나친 정치적 욕망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특히 무력통일을 위해 침략한 북한을 응징하기 위해 정당한 전쟁을 시작했음에도 북한과 똑같이 무력통일을 위해 전쟁을 연장했다는 건 설득력이 없다.

 

전쟁의 연장, 미국의 욕망

미국이 처음 한국전쟁에 개입하게 된 이유는 남한을 침략한 북한을 응징하고 인민군을 38선 이북으로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남한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정당한 전쟁 이론에 비춰봐도 합당한 이유였다. 그러나 전쟁의 연장은 정당한 전쟁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고 학문적으로도 논란이 됐다. 미국이 남한을 침략한 북한의 행위를 범죄로 정의했음에도 군사적으로 유리해지자 북한과 똑같은 방식으로 북한을 점령 및 붕괴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고 미래에 남한을 재공격할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서였다는 주장은 원칙적으로 볼 때 설득력이 없다.

 

저명한 정당한 전쟁론 학자인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는 그의 유명한 책 <정당한, 그리고 정당하지 않은 전쟁들/Just and Unjust Wars>에서 무력통일 목표를 가지고 남한을 침략한 북한을 응징하기 위해 군사적 개입을 감행한 미국이 북한을 붕괴시켜 무력통일을 하고 새로운 정부를 세우는 목표를 가지게 됐다고 말한다. 덧붙여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전쟁에서든 그런 목표는 결국 전쟁을 연장시키고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게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왈저는 그런 미국의 결정은 침략자를 응징하는 것과 그로 인해 치를 비용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정당한 전쟁 이론에 어긋나는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미국이 향후 북한의 남한 공격을 막기 위해 북한을 없애려는 목표를 세우고 전쟁을 연장해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정당한 수단으로 만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왈저는 전쟁은 지옥이고 범죄며 전쟁에 책임을 져야 하는 정부와 군이 (현실적으로)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해도 전쟁을 통해 이익을 얻게 만들지는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덧붙여 침략에 (무력으로) 저항한다면 성공적으로 저항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다시 말해 인명 피해와 사회 파괴를 최소화하고 단기간에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미국은 그런 정당한 방식이 아니라 피해를 확대하는 전쟁 연장을 택했다. 한국전쟁이 전쟁의 계속을 결정하고 진행한 미국 정부 및 군의 문제가 아니라 남한이든 북한이든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의 문제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국의 그런 결정은 냉정하고 비판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물론 미국의 전쟁 연장 및 북한 점령 욕망을 부추기고 적극 지지 및 협력한 건 한국 정부였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전쟁도 평화도 없는 한반도

휴전으로 중단된 한국전쟁은 여전히 공식적으로 현재진행형이다. 한반도의 휴전 상황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가장 중요하게는 한반도는 전쟁이 없지만 언제든 전쟁이 있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 그리고 전쟁은 없지만 그렇다고 평화적 공존과 평화 정착으로 중단없이 전진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정전협정으로 전쟁이 중단됐다 하더라도 서로 공격하지 않고 공존을 위해 노력한다면 종전선언이나 종전협정과 똑같은 효력을 낼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 상황은 그러지 못했다. 정전협정은 남한과 북한이 무력 대결과 무기 경쟁을 계속할 근거가 됐다. 상호 증오와 공격, 관계의 단절을 정당화할 명분 및 핑계가 됐다. 보수성향 정권은 적극적으로, 그리고 진보성향 정권은 전략적 필요에 따라 휴전 상황을 이용해왔다. 휴전 상황은 정권에 따라 평화적 공존과 적대적 공존 둘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여지와 정당성을 제공했다. 국민 또한 정치적, 개인적 성향에 따라 증오와 단절, 교류와 협력 중 무엇을 지지할지 선택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전쟁의 연장이 없었다면, 그리고 한국전쟁이 북한의 무력통일 욕망을 도덕적으로 단호하게 응징하는 원칙을 지켰다면 전쟁 후 남북한 관계는 덜 적대적, 공격적이고 남북한 사이 증오는 지금처럼 깊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 당시 전쟁이 꼭 연장됐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는지 다시 한번 비판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이제는 두루뭉술하게 언급되고 미군과 연합군의 개입을 미화만하는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전쟁에서 교훈을 얻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쟁의 모습을 얘기해야 하고 잘못된 부분까지 사회적으로 곱씹어야 한다. 그래야 전쟁으로 다친 사회와 구성원들의 상처를 회복하고 원칙적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한국전쟁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가장 큰 교훈은 전쟁은 지옥이고 어떤 전쟁도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고, 어떤 전쟁 담론이나 준비도 위험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한반도에 전쟁은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팽배한 전쟁 담론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많은 사회 구성원이 남북한 사이 적대적 관계 때문에 전쟁을 할 수도 있다는 암묵적 전제 및 승인을 하고 있다. 그런 묵인과 승인이 전쟁 담론의 확산과 전쟁 준비에 대한 무관심으로, 그리고 결국 남북한 무력 대결의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남북한 사이 전면전이 없다 해도 우리 사회의 전쟁 담론과 쉼 없는 전쟁 준비는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 특별히 그것이 우리와 가장 가까운 북한을 겨냥한 것이라면 당연히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 비록 자유롭게 가지 못하지만 북한은 육로로 연결된 우리의 유일한 이웃 국가고 이웃 국가와의 전쟁은 공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설사 전쟁이 아니더라도 이웃과의 적대관계 및 무력 대결 지속은 우리 삶을 불안하고 위험하게 만들 뿐이다. 정전협정으로 중단된 한국전쟁은 여전히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이고 현실이다. 한반도가 가진 한계기도 한다. 그러므로 종전선언이든 평화협정이든 그 한계를 돌파할 방법을 시급하게 찾고 실현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Posted by 정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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