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약자인데 왜 갈등인가?

 

갈등이란 용어에 뜻밖의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상대가 힘을 이용해 주장과 계획을 밀어붙였고 자신은 그에 저항했을 뿐인데 그것이 왜 갈등이냐는 것이다. 갈등이 아니라 상대가 일방적으로 힘을 행사하고 자신을 억압한 거라고 보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힘의 차이가 있으면 갈등이 전혀 생기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다.

 

두 사람, 또는 두 집단이(때로 여러 개인과 집단이 갈등 당사자가 되기도 하지만) 완벽하게 똑같은 힘을 가지고 있고 완전한 힘의 균형이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갈등은 힘이 엇비슷해서 한쪽이 다른 쪽의 제재 없이 자기 맘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긴다. 힘의 불균형이 너무 심해서 한쪽이 다른 쪽의 문제 제기나 저항을 고려할 필요도 없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때는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힘이 적다고 해도 상대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제재할 수 있다면 당연히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힘이 적은 쪽은 상대가 힘을 악용하고 자신을 억압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힘의 원천은 다양해서 힘의 관계는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두 사람, 또는 두 집단 사이의 이견과 대립으로 갈등이 생긴 이후에도 상대적으로 약한 쪽이 새로운 힘을 발굴하거나 주변의 지지를 얻으면 힘의 관계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어느 정도 힘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갈등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틀렸는데 왜 갈등인가?

 

갈등이란 용어가 대립 상황의 원인이 된 정의의 문제를 희석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분명히 상대가 틀렸고 상대의 잘못 때문에 문제가 생겼는데 그것을 갈등으로 정의하면 양쪽 모두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사람마다 다른 도덕적, 사회적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옳고 그름의 판단은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 그런 이유로 갈등이 생긴다. 물론 폭언, 폭행, 범죄 행위 같은 일에는 자의적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나는 대가족 안에서 남.녀가 똑같이 가사를 분담하는 게 당연하고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상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대립이 생겼다면 상대가 옳지 않기 때문에 갈등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나는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회식 참여를 강요하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서 문제를 제기했는데 상사와 동료들 일부가 그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긴장과 대립 관계가 형성됐다면 상대가 틀렸기 때문에 갈등이 아니라 정의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나한테는 그게 정의의 문제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구성원의 역할문제가 된다. 나의 도덕적, 사회적 기준을 다른 사람이 모두 인정하기를 기대할 수 없고, 강요할 수는 더욱 없다. 그것을 모두 법적인 판단에 맡길 수도 없다.

 

갈등에 직면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옳고 상대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 관계에서는 다양한 생각과 주장, 그리고 그에 따른 다른 행동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각 당사자가 자신이 옳고 정의롭다는 것만 주장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그렇다면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는 갈등해결은 정의를 외면하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해결 과정에서는 대화를 통해 각자의 정의를 공유하고 공동의 정의를 위해 합의를 추구하게 된다. 법이나 사회적 규범이 다룰 수 없는 다양한 정의의 기준이 있고 설사 도덕적, 사회적 규범에 따른 정의라 할지라도 상대가 거부하면 결국 설득이나 동의를 얻고, 또는 합의를 하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평화갈등연구소 정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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