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무, 그리고 파트너쉽

최근 두 단체, 그러니까 '정의기억연대'와 '나눔의집'과 관련해 이런저런 논란이 많다. 그 논란의 핵심 중 하나는 비영리사업의 '책무'와 관련된 것이다. 책무, 영어로 accountability는 회계 책임의 의미도 가지고 있는데 사실 회계와 관련한 책임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흔히 보다 넓은 의미로 이해된다. 책무의 범위는 재정, 사업수행, 행정, 사업 방식과 방향 등 활동 및 사업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이런 책무의 이행은 사업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핵심적인 질문은 '누구에게 어떤 책무를 가져야 하는가?'다. 그것은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듯 일차적으로 사업을 지원하는 쪽이 될 수밖에 없다. 지원이든 기부든 사업비를 대는 쪽은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하는 것이니 그 목적과 부합해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하지만 책무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기관이나 단체는 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는 쪽,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수혜자'에 대해서도 책무를 가지게 된다. 과하거나 비현실적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아주 상식적인 일이다. 어떻게 재정이 마련되고 쓰이는지, 그리고 어떤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사업이 이뤄지는지 지원을 받는 쪽에서도 알아야 그런 사업의 수혜자가 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이 모금과 사업을 위한 단순한 대상이나 도구로 취급되는 것은 아닌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작은 사업이거나 현장의 사람들과 접촉면이 넓은 사업일수록 이 문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세계 곳곳에서 구호개발이나 피스빌딩(평화세우기) 사업을 하는 단체들과 활동가들은 오래 전부터 이 문제를 아주 민감하게 다뤄왔다. 그리고 사업의 성공을 위해 참여적 접근을 강조해왔고 사업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과 재정 및 사업에 대한 정보의 공유를 '바람직한' 사업 수행 방식으로 권고해왔다. 정치적 불안, 군사적 충돌, 집단 사이 대립 등으로 환경이 열악하고 민감해 주민 소통과 참여가 쉽지 않은 곳에서도 말이다. 이런 접근의 기초가 되는 것은 '파트너쉽'이다. 돈을 가진 조직이나 사람, 그리고 그 돈을 이용한 사업의 혜택을 받는 현장의 조직이나 사람이 사업자-수혜자 관계가 아닌 사업을 공동으로 실행하고 책임지는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업의 성공적 수행을 위한 현실적 접근이자 투명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원칙, 다시 말해 책무를 이행하는 접근으로 여겨지고 있다. 비록 현실에서는 간극이 있더라도 말이다. 사실 이런 접근은 전 세계에서 비영리사업을 하는 모든 기관과 단체에 기본적 원칙으로 적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관이나 단체도 이제는 책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성실히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책무의 이행, 선택이 아닌 필수

정의기억연대와 나눔의집은 이 책무와 관련해 복잡한 상황이다. 전국민이 기부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설사 직접 기부를 하지 않았더라도 많은 사람이 지지를 보냈고 그로 인해 많은 기부를 받을 수 있었다. 거기에 국민의 세금으로 형성된 국고까지 들어갔다. 그러니 결국 전 국민에게 투명하게 활동 및 사업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보고하고 공유할 책무를 가지게 된 것이다. 재정 사용에 대한 투명성과 세밀한 보고 및 설명은 그중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조직 모두 마땅히 이행해야 할 기본적 책무를 다하지 못했고 '단순 실수'로 주장할 수 없는 내용들까지 드러났다. 재정 이외에 사업수행, 사업 방식과 방향 등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방식을 통해 투명하게 내용을 공개하고 정보를 공유해야 했지만 그러지 않은 부분들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이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위안부 운동이나 사업의 핵심 인물로 인식돼 왔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보니 운동과 사업을 위해 어느 정도 대상화됐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들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지만 단순히 지원을 받거나 돌봄을 받는 객체가 될 때, 또는 기부금을 모집하거나 사람들의 참여를 위해 동원될 때 운동과 사업의 정당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고 이 점은 가장 민감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늙고 병들어 운동과 사업의 실무에 참여할 수 없다해도 그들은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책무를 이행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흥미롭게도 정의기억연대는 비전과 미션에서 '평화로운 세상'을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고, 나눔의집은 국제평화인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노력을 천명한다면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책무의 이행이고 그것은 '함께'가 기본이 돼야 한다. 비슷한 일을 하는 세계의 기관이나 단체들은 사업의 계획 단계부터 전체 내용과 상세한 사업 수행 방식을 수혜를 받을 사람까지 포함해 관련된 주체들과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을 권고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실제로 그것을 실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평화를 얘기할 때 가장 중요시되는 상향식(bottom-up) 접근이자 사업의 성공은 물론 윤리의 문제까지 포괄하는 파트너쉽을 만드는 접근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비영리사업을 하는 많은 단체나 기관은 이런저런 후원을 받아 사업을 한다. 국고가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에 따른 책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후원자에게 투명성의 기본인 재정보고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우리 사회가 신뢰의 수준이 높지도 않은데 이런 경우엔 그냥 '서로 믿는' 분위기다. 이번 논란은 모든 비영리사업을 하는 단체들이, 그리고 사업에 참여하거나 후원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책무'의 문제에 대해 엄중하고 진지하게 접근하고 고민해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Posted by 평화갈등연구소 정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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