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발생에 최적인 공간 

기업은 구직자 면접에서 여러가지를 묻는다. 건강상태, 가족관계, 거주지역, 연애 여부, 종교, 취미생활, 주량, 흡연 여부 등 사생활 관련 질문까지 거침없이 해댄다.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많지만 기업은 새로운 직원이 직장에 잘 적응하고 다른 사람들과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알아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신중하게 사람을 뽑는 기업들이 정작 직원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대응하거나 해결을 지원하지 않고 개인의 문제로 방치한다는 것이다. 마치 생존 훈련을 시키듯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식이다. 그런데 규모를 막론하고 기업이 알아야 할 점은 아무리 신중을 기해 조직에 잘 적응하고 다른 조직원들과 함께 일을 잘 할 것 같은 사람을 뽑아도 직장 내에서 갈등이 생기지 않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이윤을 추구하지 않은 다양한 단체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어떤 형태든 우리가 직장이라고 부르는 조직은 본질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공간과 환경을 갖추고 있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특정 목표의 달성을 위해 일하는 곳이고, 각자 하는 일을 통해 평가를 받는 곳이며, 누구든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장시간 같은 공간에 함께 머물러야 한다. 깨어있는 시간만 계산하면 대부분이 가족보다 직장 동료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런 환경에서는 갈등이 생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접촉면이 넓은 사람들 사이에, 그리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대립하면서 생기는 것이 갈등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직장이라고 불리는 공간은 갈등이 생기기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란 얘기다.    

 

갈등대응 시스템의 필요

하지만 핵심은 '갈등의 발생'이 아니다. 갈등은 모든 인간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고, 인간이 모여 사는 모든 곳에 갈등이 생긴다. 가족 사이에서도, 연인 사이에서도, 심지어 종교 지도자와 신도 사이에서도 생기는 게 갈등이다. 직장 내등도 그런 갈등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갈등 발생은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바로 '갈등 대응'이다.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 내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그것이 개인 사이의 문제처럼 보여도 조직 안에서 생기는 문제임을 인식하고 조직 차원에서 다뤄야 할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인식 위에서 대응 방식이 마련돼야 한다. 사실 개인의 문제처럼 보여도 진원지를 파악해 보면 결국 조직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대응은 제일 먼저 갈등에 직면한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얘기할 수 있는 곳을 마련하는 것이 돼야 한다. 하소연할 곳이 없어서 혼자 지옥을 경험하게 만들지 않아야 한다. 나이, 직급을 막론하고 갈등에 직면했다면 조직 안에서 정당한 방법이나 절차를 통해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해결을 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말로 해결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하는 부서나 사람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두를 다른 말로 하면 갈등해결 또는 갈등대응 시스템이다. 모든 조직은, 다른 말로 직장은 이런 시스템이 필요하다. 조직 내 누구라도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얘기할 사람과 부서, 그리고 거쳐야 하는 절차을 알고 있어야 하고, 그것이 보여주기 식이 되지 않고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그리고 대응 시스템을 담당하는 부서나 사람은 모두의 얘기를 가감없이 듣고 해결 과정을 제안 내지 제공하고, 필요에 따라 대화 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일정 수준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물론 이 모두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공간 안에서 공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Posted by 평화갈등연구소 정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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