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달라야 하나?

다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 사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별 차이가 없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새로운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것을 모색하려는 인간의 마음일 것이다. 그럼에도 2020년은 뭔가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괜히 멋져 보이는 '2020'이라는 숫자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10년을 내다보며 2019년까지 고민했던 것들을 숙제로만 남겨두지 말고 하나씩 풀어나가야 할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10년 후 2030년이 됐을 때 우린 어떤 세상에서 살기 원하는가? 적어도 10년 후를 내다보는 답을 2020년이 시작된 지금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남북관계 & 한반도 평화

2020년은 남북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기로가 될 수밖에 없다. 2018년 남북은 새로운 관계의 물고를 텄고 환상적인 1년을 보냈다. 2019년에 남북관계는 다시 얼어붙었고 후반기에는 북한의 강도 높은 비난이 쏟아졌다. 공식적으로 북한은 남한에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언급했다. 2018년의 온탕과 2019년의 냉탕을 경험한 이후의 2020년은 뭔가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되는 해가 됐다. 2018년 수준은 아니더라도 불신을 덜어내는 상태로 만들지 않으면 한반도 평화는 다시 먼 미래의 얘기가 될 수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때는 오히려 뭔가 할 수 있는 희망이 있지만 뭔가 했다가 어긋나고 신뢰가 깨졌을 때는 복구하기가 더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평범한 시민인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실 많은 사람이 무기력감을 호소한다. 정부만 바라보고 있자니 답답하고 그렇다고 정책에 영향을 미칠 힘도 없다. 그렇지만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속적으로 우리가 북한과 평화롭게 살기 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평화적 관계를 지지한다고 얘기해야 한다. 정부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시민의 입을 통해서 말이다. 우리에게는 미래 세대를 위해, 그리고 대한민국에 발을 들여놓거나 잠시 거주하는 모든 세계인들을 위해서도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 의무와 책임이 있다. 물론 평화로운 한반도에서 살 우리의 권리도 반드시 보장받아야 한다.   

 

공존의 사회

우리는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 이웃 나라 일본이나 북한과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개인과 집단 사이 충돌이 심화되고 있다. 거기에는 하나는 마술적인 단어가 등장한다. 바로 '권리'다. 그리고 또 하나의 비상 경고를 하는 단어도 등장한다. '혐오'다.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에 초점을 맞춘다. 공격을 받거나 그런 충돌과 비난을 보는 제3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혐오'라는 말을 떠올린다. 권리는 마땅히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한다. 다만 그 권리가 다른 사람의 권리와 충돌한다면 사회 규범이나 법으로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권리와 함께 다른 사람의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공존'의 개념이다. 더불어 살기 위해, 다시 말해 '함께'의 의미를 제대로 실현하며 살기 위한 '공존'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사실은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태도와 행동을 벗어나야 한다. 나아가 귀를 닫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지금 자기 성찰과 '경청'의 훈련이 필요하다. 공존의 사회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하고, 모두가 안전하게 말하고 존중받는 수준의 공존의 사회를 얼마나 빨리 만드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     

 

대화의 필요

우리 사회는 긴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투쟁은 독립을, 민주주의를, 그리고 인권을 얻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많은 사회 현안이 우리를 투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회 현안이 투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투쟁 자체가 의미가 되는 시대도 아니다. 우리의 투쟁은 항상 문제의 해결을 위한 것이다. 그러니 투쟁은 대화를 통해 결말을 지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대화에 서툴다. 적어도 대화의 중요성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거의 사라졌지만 정말 대화를 해야 할 때 대화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장애물이 생겼을 때 대화를 유지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대화의 태도나 기술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익숙하지 않아도 서툴러도 스스로 훈련하고 연습할 때 대화의 역량이 만들어진다. 이제는 기선을 제압하거나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의 주장을 경청하고 지난한 과정을 감수하면서 대화를 유지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태도와 기술을 연마해야 하는 시대다. 앞으로 10년, 아니 20년을 내다본다면 2020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일상의 평화

많은 사람이 사회 현안에 몰두한다. 사회 변화의 욕구가 크기 때문이고 사회 변화가 개인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회 현안에 대한 그런 지대한 관심 덕분에 우리 사회가 지금의 수준에 도달했다. 그런데 사회 현안에 몰두하느라 개인 삶의 문제를 하찮게 여기거나 일상에서 생기는 평범한 일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평화롭고 공존하는 삶은 서로 연결돼 있다. 두 가지 면에서 그렇다. 하나는 문제의 연결이고, 다른 하나는 태도의 연결이다. 사회 현안이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듯 개인의 문제도 사회 현안에 영향을 미친다. 일상의 작은 일들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으면 결국 크고 복잡한 사회 현안이 된다.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개인과 집단의 충돌이 결국 일상의 문제에서 시작된 것이다. 태도의 연결은 더 중요하다. 일상에서 평화로운 공존이나 대화를 통한 협의와 공동의 문제 해결 태도를 습득하지 못한다면 사회 현안에 대한 태도도 대화와 합의가 아닌 반목과 비난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와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일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이다. 개인의 욕구와 불안이 하찮고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많은 기관이나 단체는 외부의 일에 비판적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내부의 개혁에는 관심이 없다. 그것이 구성원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임에도 말이다. 사회 현안에 관심이 많다면 당연히 일상의 일과 평화에도 그만큼의 관심과 민감성을 가져야 한다. 적어도 위선자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결국 각자, 그리고 같이 얼만큼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얼만큼 전진할 것이냐에 따라 2020년은 2019년과 달라질 수 있다. 나아가 10년 20년 후에 우리가 마주할 변화도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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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평화갈등연구소 정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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