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을 겨냥한 폭력

제주에서 시작된 난민 문제가 한국사회의 뜨거운 현안으로 등장한 지 5개월 이상이 됐다. 적대적인 여론에 맞서 발 벗고 나선 사람들 덕분에 제주 상황은 안정돼가고 있다. 포용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그렇지만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큰 틀에서 보면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하긴 논란의 주원인이 사람들의 차별의식과 적개심, 그리고 정부의 미숙하고 부정적인 대응 같은 것이니 단기간에 상황이 나아지긴 힘들 것이다.

난민 문제는 우리 사회,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전쟁, 집단 사이 무력 충돌, 다수 집단의 억압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학대나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 정부와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빈곤과 실업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움을 표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과 공감은 물리적으로 충분한 거리가 확보될 때만 유효하다. 그들이 내 주변과 삶의 공간으로 들어오면 철저하게 외면하고 심지어 적대감을 드러내며 공격한다. 외국인 노동자, 난민, 탈북민 등을 대하는 태도와 행동이 그런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탈북민에 대한 태도는 특별히 인상적이다. 멀리 있을 땐 같은 민족이라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친밀감을 보였는데 그들이 옆으로 오니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사회로 온 그들을 차별하고 공격하고 증오한다. 그래서 탈북민들은 매일 힘들게 살고 있다.

이런 차별, 적대감, 공격 등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폭력이다. 폭력의 여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은 피해자의 존재인데 차별, 적대감, 공격 등은 구체적인 대상에게 가해지고 그 대상은 직접적, 간접적으로, 그리고 단기적, 또는 장기적으로 피해를 입는다. 사실 그런 종류의 폭력은 막연하고 우연적인 상황에서 생기지 않고 구체적인 의도를 가지고 가해지기 때문에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 폭력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데 외국인 노동자, 난민, 탈북자 사례 등이 모두 그렇다.

사전적 의미로 혐오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개인이나 집단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을 말한다. 이 설명은 혐오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말해준다. 서로 이익을 위해 충돌하고 그런 이유로 사이가 나빠져서가 아니라 단지 자기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는 배경에는 가치관, 인종, 민족, 종교 등 여러 가지 차이가 있다. 그런데 진짜 원인은 그런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 개인과 집단을 자신과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멸시하는 태도다. 그런 오만하고 폭력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혐오는 자신이 상대보다 더 힘이 있고, 자기 이익을 위해 그 힘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행동으로 이어진다. 혐오를 단순히 내적인 감정으로 한정시키지 않고 목적을 가지고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혐오의 목표는 배제와 제거

혐오를 표출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혐오의 대상인 개인이나 집단을 자신의 집단이나 사회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무모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혐오의 대상보다 더 힘을 가지고 주류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자신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혐오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배제는 사회 구조, 제도, 여론, 정서 등을 이용해 대상이 되는 개인과 집단의 자유를 제한하고, 물리적 공간을 통제하고, 가장 바람직하게는 제거하는 아주 구체적인 것이다. 난민 유입을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에 동참한 7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들이 내세운 많은 이유와 염려는 사실 너무나 혐오하고 보기 싫은 난민을 자기 삶의 공간에서 제거하고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내세운 핑계에 가깝다.

혐오와 배제의 폭력은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 집단학살(genocide)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치의 유대인 추방과 학살, 미국과 캐나다의 원주민 학살과 보호구역 강제이주, 미얀마의 로힝야 학살과 추방 등이 모두 혐오와 배제의 폭력이 궁극적 목적을 달성한 사례들이다. 우리 사회의 혐오는 그런 것과는 다르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설사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혐오하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앞의 사례와 같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실제 혐오의 대상이 되는 개인과 집단은 구체적인 피해를 입고 일상이 망가지는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평화는 보편적 가치이자 권리다. 조건부로, 상황에 따라, 사회에 따라, 또는 사람에 따라 선별적으로 적용되거나 허락될 수 없다. 평화를 입에 담는다면 전쟁을 포함한 모든 폭력에 반대해야 하고, 나와 떨어져 있든 한 공간에 있든 모든 사람의 평화로운 삶을 인정하고 지지해야 하며, 폭력에 희생되는 사람들의 편에 서야 한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이런 평화의 가치를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의 평화로운 삶을 주장한다면 다른 사람의 평화로운 삶도 똑같이 인정해야 한다. 나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다른 사람의 평화로운 삶과 평화롭게 살 권리를 해친다면, 나아가 다른 사람의 삶을 희생시켜 자신의 평화로운 삶을 이루려 한다면 그것은 폭력일 뿐이다.

* 위 글은 서울 YWCA의 월간지 <서울YWCA>의 '우리가 꿈꾸는 평화세상' 연재를 위해 기고한 글이며 잡지가 출판된 이후 여기에 싣습니다.

Posted by 평화갈등연구소 정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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