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학이란


정주진


평화학(Peace Studies)은 평화갈등학(Peace & Conflict Studies)이라고도 불린다.


평화학은 폭력을 규명하고 폭력을 감소시키거나 제거하는 방법과 사회적 조건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평화 연구는 끊임없이 폭력을 찾아내 분석하며 폭력의 희생자를 줄일 방법을 모색한다. 평화학 수업이나 워크숍에서 평화보다는 다양한 폭력과 희생자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갈등은 평화를 성취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된다. 갈등은 개인 또는 집단 사이의 파괴적 대립을 일컫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전과 그에 준하는 무장 갈등을 말하기도 한다. 평화학이 특별히 주목하는 갈등은 사회의 구조적 억압, 다시 말해 폭력적 사회 상황에 의해 발생하는 개인 또는 집단 사이의 대립이다. 폭력에서 평화로 가는 길에 갈등이라는 도전이 있으므로 갈등을 해결하지 않으면 결국 평화의 성취는 불가능하다.



평화 연구는 20세기 중반 전쟁에 대한 문제 제기로부터 시작됐다.


1차, 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피해를 겪으면서 평화에 관심을 가지는 연구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평화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많은 나라들을 폐허로 만든 전쟁을 피해야 인류가 생존할 수 있다는 현실적 인식과 필요에서 출발했다. 다양한 학문 분야에 토대를 둔 개별 연구자들은 전쟁을 피할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1940년대에는 개별적이지만 심화된 형태의 평화 연구가 이뤄졌다. 그러나 조직적인 연구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0년대에 시작됐다. 이 시기에 개별적으로 평화를 연구하고 고민하던 연구자들이 전문 기관과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모이고 조직적으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1952년 미국에서는 전쟁 예방을 연구하기 위한 학자들의 모임이 시작됐고 1957년에는 학술지도 출판되기 시작했다. 1959년에는 노르웨이의 오슬로에 최초의 전문 평화 연구 기관인 Peace Research Institute Oslo(PRIO)가 세워졌다. 이후 평화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은 계속 늘어났고 1970년대 초부터는 대학에서 평화학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현재 전 세계 400여 개 대학에 다양한 형태의 평화학 프로그램이 설치돼 있다.



평화학은 학제간(inter-disciplinary) 학문이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여러 학문 분야에 토대를 둔 연구자들이 평화 연구를 하고 있다는 의미고 다른 하나는 평화 연구가 다양한 학문 분야를 참고하거나 다른 분야 연구자들과 공동 작업을 한다는 얘기다. 먼저 여러 분야에 토대를 둔 연구자들이 평화 연구를 하게 된 것은 20세기 중반 평화 연구가 심리학, 국제관계학,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등의 분야에서 토대를 쌓은 연구자들에 의해 시작된데서 기인한다. 당시 평화 연구는 새로운 분야였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었고 학문적 배경에 상관없이 다양한 연구자들이 평화의 가치에 현실적 필요를 접목시킬 방법을 고민했기 때문이었다. 그후 평화학이 대학에 설치되면서 평화학을 전공한 연구자들이 배출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평화학 프로그램이 석사와 박사 과정을 중심으로 설치돼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양한 학문적 토대를 가진 사람들이 평화 연구에 합류하고 있다. 또한 평화 연구가 내전과 사회 갈등 등 폭력의 현장을 분석하고 변화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국제관계학,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개발학, 법학 등 여러 분야의 지식이 필요하므로 다양한 학문 분야를 참고하고 다양한 배경의 연구자들과 공동 작업을 하는 것이 자연스런 일로 되고 있다.



평화 연구의 목적은 사회 변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대학에 평화학이 개설되기 시작했을 때 교수들과 학생들 사이에서는 평화라는 가치지향적인 주제를 어떻게 객관화시키고 학문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지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또한 평화학이 자칫 전쟁 관련 연구에 집중할 수 있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정리된 폭력 개념 덕분에 평화학이 가르치고 지향해야 할 목표가 분명해졌다. 평화학은 전쟁을 폭력의 한 형태로 봤고 그런 폭력을 야기하는 구조적 폭력에 특별히 주목했다. 그런 구조적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사회 변화가 절실했다. 평화학은 연구의 목적을 사회 변화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았고 사회 변화를 통해 폭력의 희생자가 사라지고 평화가 성취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연구를 통해 사회 변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은 평화 연구자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공유돼 왔다. 이런 인식 때문에 평화 연구에서 연구는 그 자체로가 아니라 폭력의 존재와 평화의 필요를 밝히고 폭력적 상황을 평화적 상태로 바꾸기 위한 실천에 기여할 수 있을 때 의미를 가진다. 대부분의 평화 연구자들이 현장 실천을 병행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인식과 철학 때문이다.



평화 연구의 궁극적 목표는 평화적 공존의 실현이다.


연구자들이 사회 변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폭력이 사라지고 다양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를 평화 연구의 궁극적 목표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 연구가 초점을 맞추는 폭력의 감소 및 제거는 가해자를 추방하거나 배제하는 단순한 방법을 의미하지 않는다. 평화적 공존을 위한 과정은 가해자까지 포함해야 하며 그래야만 진정한 평화가 성취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평화 연구는 폭력을 제거하고 평화를 성취하는 과정을 중요시한다. 평화 성취를 위한 과정은 폭력을 동반하지 않아야 하고 모든 사람들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의 참여는 한편으로 사회적으로 약한 개인이나 집단이 평화를 위한 논의와 노력에서 배제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하고, 다른 한편으로 가해자의 참여까지 보장돼야 함을 의미한다. 가해자도 평화가 성취된 새로운 사회에 함께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에 책임을 지며, 용서와 화해 또는 다른 방식으로 피해자와 관계를 복원해야 참여가 가능해진다. 평화 연구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폭력의 제거지 폭력 가해자의 제거가 아니다. 평화 연구는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추방시킨 후 이뤄진 평화는 불안하고, 폭력 재발의 위험을 안게 되며, 평화적 공존의 실현을 방해한다는 교훈을 현장 연구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Posted by 평화갈등연구소 정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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