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관계 회복
사람들은 갈등이 종결되면 관계도 자연스럽게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갈등을 겪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쉽지 않고 때로는 전혀 가능하지 않음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갈등해결 과정, 다시 말해 당사자들이 대화와 합의로 갈등을 해결하는 구조화된 과정은 당사자들의 관계 회복에 관심이 있는가? 갈등해결 과정에서 관계 회복과 화해의 문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곤 한다. 과정이 흔히 갈등을 야기한 현안의 종결이나 상호 이익을 위한 ‘현실적’ 해결책 모색에 맞춰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당사자들 사이 관계 회복을 다루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사치스럽고 때로 이상적인 접근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구조화된 갈등해결 과정과는 다르게 현실에서는 두 가지 점에서 관계 회복을 다루는 것이 불가피하다. 하나는 갈등이 관계를 맺고 있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발생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이유로 적어도 관계가 회복돼야 갈등의 재발이나 새로운 갈등의 발생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갈등의 경우에는 갈등의 종결 후에도 계속 접촉하면서 살아야 하고, 사회갈등의 경우에도 관계만 보면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이 앞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할 조건이 만들어진 데서 갈등이 비롯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사자들에게 관계 회복의 문제는 비현실적이거나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갈등해결 연구는 갈등과 관계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며 그런 이유로 갈등해결 과정이 관계 회복, 또는 적어도 관계의 악화를 예방하는 데 기여해야 함을 강조한다. 대화와 합의로 문제를 해결하는 이유 자체가 상호 공격과 대립을 통해 관계가 파괴되는 것을 피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선택임을 생각하면 이 점은 쉽게 설명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갈등해결 과정이 이익의 충족에만 관심을 쏟고 관계를 무시한다면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 관계에 대한 무관심은 해결 과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관계를 악화시키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현실적인 접근은 관계 회복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룰 수 없는 상황에서라도 관계 회복에 대한 관심은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적어도 관계를 악화시키는 과정을 만들지 않을 수 있고 관계 회복의 여지를 남겨둘 수 있다.
갈등과 화해
갈등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화해다. 특별히 개인갈등의 경우에는 화해의 욕구가 강하다. 화해는 관계의 회복을 넘어 정상적인 작동과 새로운 관계의 형성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해는 결코 쉽지 않다. 화해를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갈등이 심각했음을, 그리고 화해를 위한 특별한 노력이 필요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화해가 언급되는 상황은 많은 경우 당사자들 사이에 옳음과 그름을 둘러싸고 대립과 공격은 물론 관계의 파괴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화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대립과 공격의 사건 각각에 대한 자아 성찰과 상대 시각에서의 재해석을 필요로 한다. 나아가 자신의 실수 또는 그름을 상대에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것이 상대에 의해 인정되고 수용되어져야 한다. 이런 과정이 갈등해결 과정에서 일부나마 진행됐다면 화해는 큰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해결 과정이 현안 종결을 위한 해결책 모색과 이익의 분배 또는 충족에만 맞춰졌다면 화해는 별도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쉽지 않은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화해는 과거 및 상대에 대한 상호 인정과 수용을 넘어 참회와 용서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 화해는 충분한 시간과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참회와 용서 중 무엇이 우선돼야 하느냐는 당사자들의 선택에 달려있지만 피해갈 수 없는 것은 누구도 그것을 대신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참회는 철저하게 피해를 입힌 사람의 몫이고 용서는 전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당사자가 우선적으로 상대의 참회를 원한다면 그것이 충족되지 않는 한 용서가 이뤄질 수 없고 그 결과 화해는 가능하지 않다.
화해는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선택이다. 물론 평화로운 관계를 바탕으로 한 공존이 아니라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공존, 다시 말해 한 공동체나 영역 안에서 긍정적인 상호 작용이나 교감이 없이 동시에 존재하기만 하는 공존도 가능하다. 그러나 누군가 화해를 언급한다는 것은 평화로운 공존을 원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그렇다면 참회와 용서를 피할 수는 없다.
화해는 각자의 선택이다. 그런데 화해를 원한다면 별도의 과정을 계획하고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먼저 당사자들이 화해를 원하는지를 확인하고, 참회와 용서의 필요가 있는지를 당사자를 통해 확인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 과거에 대한 공동의 확인과 공동의 스토리를 구성해야 한다. 의무감 때문에, 또는 주변의 압력 때문에 화해를 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동적인 화해는 표면적일 수밖에 없고 진정한 관계의 정상화와 새로운 관계의 설정을 기대할 수 없다.
공동체를 위한 관계 회복과 화해?
갈등과 공동체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지는 않지만 많은 갈등이 공동체와 관련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설명하는 가장 일반적인 이론은 갈등에 대한 구조적 접근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 또는 공동체의 구조가 개인의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들이 충돌하면서 갈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구조적 접근 이론에서는 구조의 영향, 다시 말해 사회나 공동체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만든 구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개인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므로 구조를 분석하는 것은 갈등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른 점에서 갈등은 공동체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갈등 당사자들이 속한 공동체는 갈등의 영향에 쉽게 노출되고 그로 인해 공동체의 손상 내지 파괴가 야기되곤 한다. 개인갈등에서는 대가족, 직장, 단체 등이, 그리고 사회갈등에서는 마을공동체나 지역공동체가 공동체의 손상 내지 파괴의 경험을 하곤 한다. 때문에 갈등에 대응할 때, 특별히 갈등을 해결할 때는 공동체가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나아가 개인의 관계는 물론 공동체의 회복에까지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해결 과정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인에게 공동체는 중요하다. 집단주의 문화의 성격이 강한 한국문화에서 공동체는 거기에 속한 개인 또는 집단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고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은 특별히 갈등으로 인해 공동체가 영향을 받는 것에 민감하다. 공동체 또한 개인 또는 집단에게 공동체의 안위 및 조화를 고려한 갈등 대응 및 해결 방식을 요구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개인과 공동체의 이런 끈끈한 관계와 상호 민감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갈등을 통해 공동체의 파괴 또는 손상을 자주 경험한다.
한국인들은 공동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서 갈등으로 인한 공동체의 손상 내지 파괴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갈등 현안에만 초점을 맞춰 갈등에 대응하는 선택을 하곤 한다. 갈등이 격해지는 상황에서는 전체로서의 공동체보다 그 안에서 자신을 지지하고 자신과 이익을 공유하는 주변인이나 소수 집단에만 집중하기도 한다. 어떤 선택을 하던 갈등에 직면한 당사자들은 강한 결집력을 가진 공동체일지라도 갈등으로 인해 손상 및 파괴될 수 있고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까지 이를 수 있음을 거의 상상하지 못한다. 그 결과 격한 대립과 갈등 후 공동체가 예전의 상태가 아님을 확인하고 당황하곤 한다.
갈등 당사자들의 관계 회복과 화해가 반드시 공동체를 위한 것일 필요는 없다. 또한 공동체가 갈등 당사자들에게 공동체를 위한 관계 회복과 화해를 요구한다면 그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고, 공동체의 안위와 조화가 개인이 겪는 갈등의 후유증에 미치는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가장 바람직한 갈등해결은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 회복과 화해에 더해 공동체의 회복, 그리고 당사자들과 공동체의 화해까지 포함하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개인의 관계 회복과 화해, 그리고 그것이 공동체의 회복에까지 기여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개인의 관계 회복과 화해가 공동체에 기여하는 수순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갈등이 공동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극복하고 나아가 그것을 공동체 발전의 계기로 만들기 위해 공동체의 적극적인 역할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공동체의 역할과 노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와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통해 개인갈등 당사자들의 관계 회복과 화해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는 것이다.
구조와 문화는 개인갈등의 근본원인이 되곤 한다. 개인이나 집단이 갈등에 직면하거나 갈등을 만드는 보편적인 이유 중 하나는 구조와 문화를 변화시켜야 하는 필요 때문이다. 또는 구조와 문화에 저항하거나 그것을 바꿀 수 없는 개인이나 집단이 접근하기 쉬운 상대를 공격의 목표로 삼아 대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동체 차원에서의 구조와 문화의 변화는 갈등의 해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두말할 필요 없이 가장 바람직한 해결은 공동체가 근본원인인 구조와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구조와 문화의 변화가 이뤄지면 비슷한 갈등이 생기지 않게 되므로 이것은 갈등의 예방에도 기여한다.
개인 또는 집단의 갈등해결을 위해 조직적이고 안전한 공간과 방식을 지원하는 것도 공동체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역할과 노력이다. 공동체 안의 개인이나 집단 사이의 갈등이 공동체에 영향을 미친다면 공동체는 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할 당위성이 성립된다. 그렇지만 그런 공동체의 역할과 노력은 여전히 보편적이지 않다. 공동체가 개인 또는 집단을 위해 갈등해결 과정과 공간을 구체적으로 지원한다면 개인화, 또는 개별화를 벗어나 구조와 문화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갈등해결이 가능해진다. 공동체를 염두에 둔 갈등의 해결까지 가능해지고 공동체에 대한 갈등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물론 갈등으로 공동체가 손상 및 파괴됐을 경우 공동체의 회복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공동체를 위한 관계 회복과 화해가 아니라 갈등에 직면한 개인이나 집단의 관계 회복과 화해를 위한 공동체에 초점을 맞출 때 결국 공동체를 위한 관계 회복과 화해가 가능해질 수 있다.
* 위 글은 2017년 12월 7일 인천시 부평구청 갈등관리힐링센터가 주최한 <부평 갈등과 치유 포럼>에서 발제한 글입니다. 무단 배포와 복사를 금하며 인용시 출처를 명시해야 합니다.
갈등과 관계 회복
사람들은 갈등이 종결되면 관계도 자연스럽게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갈등을 겪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쉽지 않고 때로는 전혀 가능하지 않음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갈등해결 과정, 다시 말해 당사자들이 대화와 합의로 갈등을 해결하는 구조화된 과정은 당사자들의 관계 회복에 관심이 있는가? 갈등해결 과정에서 관계 회복과 화해의 문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곤 한다. 과정이 흔히 갈등을 야기한 현안의 종결이나 상호 이익을 위한 ‘현실적’ 해결책 모색에 맞춰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당사자들 사이 관계 회복을 다루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사치스럽고 때로 이상적인 접근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구조화된 갈등해결 과정과는 다르게 현실에서는 두 가지 점에서 관계 회복을 다루는 것이 불가피하다. 하나는 갈등이 관계를 맺고 있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발생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이유로 적어도 관계가 회복돼야 갈등의 재발이나 새로운 갈등의 발생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갈등의 경우에는 갈등의 종결 후에도 계속 접촉하면서 살아야 하고, 사회갈등의 경우에도 관계만 보면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이 앞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할 조건이 만들어진 데서 갈등이 비롯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사자들에게 관계 회복의 문제는 비현실적이거나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갈등해결 연구는 갈등과 관계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며 그런 이유로 갈등해결 과정이 관계 회복, 또는 적어도 관계의 악화를 예방하는 데 기여해야 함을 강조한다. 대화와 합의로 문제를 해결하는 이유 자체가 상호 공격과 대립을 통해 관계가 파괴되는 것을 피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선택임을 생각하면 이 점은 쉽게 설명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갈등해결 과정이 이익의 충족에만 관심을 쏟고 관계를 무시한다면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 관계에 대한 무관심은 해결 과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관계를 악화시키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현실적인 접근은 관계 회복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룰 수 없는 상황에서라도 관계 회복에 대한 관심은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적어도 관계를 악화시키는 과정을 만들지 않을 수 있고 관계 회복의 여지를 남겨둘 수 있다.
갈등과 화해
갈등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화해다. 특별히 개인갈등의 경우에는 화해의 욕구가 강하다. 화해는 관계의 회복을 넘어 정상적인 작동과 새로운 관계의 형성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해는 결코 쉽지 않다. 화해를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갈등이 심각했음을, 그리고 화해를 위한 특별한 노력이 필요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화해가 언급되는 상황은 많은 경우 당사자들 사이에 옳음과 그름을 둘러싸고 대립과 공격은 물론 관계의 파괴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화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대립과 공격의 사건 각각에 대한 자아 성찰과 상대 시각에서의 재해석을 필요로 한다. 나아가 자신의 실수 또는 그름을 상대에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것이 상대에 의해 인정되고 수용되어져야 한다. 이런 과정이 갈등해결 과정에서 일부나마 진행됐다면 화해는 큰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해결 과정이 현안 종결을 위한 해결책 모색과 이익의 분배 또는 충족에만 맞춰졌다면 화해는 별도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쉽지 않은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화해는 과거 및 상대에 대한 상호 인정과 수용을 넘어 참회와 용서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 화해는 충분한 시간과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참회와 용서 중 무엇이 우선돼야 하느냐는 당사자들의 선택에 달려있지만 피해갈 수 없는 것은 누구도 그것을 대신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참회는 철저하게 피해를 입힌 사람의 몫이고 용서는 전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당사자가 우선적으로 상대의 참회를 원한다면 그것이 충족되지 않는 한 용서가 이뤄질 수 없고 그 결과 화해는 가능하지 않다.
화해는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선택이다. 물론 평화로운 관계를 바탕으로 한 공존이 아니라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공존, 다시 말해 한 공동체나 영역 안에서 긍정적인 상호 작용이나 교감이 없이 동시에 존재하기만 하는 공존도 가능하다. 그러나 누군가 화해를 언급한다는 것은 평화로운 공존을 원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그렇다면 참회와 용서를 피할 수는 없다.
화해는 각자의 선택이다. 그런데 화해를 원한다면 별도의 과정을 계획하고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먼저 당사자들이 화해를 원하는지를 확인하고, 참회와 용서의 필요가 있는지를 당사자를 통해 확인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 과거에 대한 공동의 확인과 공동의 스토리를 구성해야 한다. 의무감 때문에, 또는 주변의 압력 때문에 화해를 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동적인 화해는 표면적일 수밖에 없고 진정한 관계의 정상화와 새로운 관계의 설정을 기대할 수 없다.
공동체를 위한 관계 회복과 화해?
갈등과 공동체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지는 않지만 많은 갈등이 공동체와 관련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설명하는 가장 일반적인 이론은 갈등에 대한 구조적 접근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 또는 공동체의 구조가 개인의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들이 충돌하면서 갈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구조적 접근 이론에서는 구조의 영향, 다시 말해 사회나 공동체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만든 구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개인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므로 구조를 분석하는 것은 갈등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른 점에서 갈등은 공동체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갈등 당사자들이 속한 공동체는 갈등의 영향에 쉽게 노출되고 그로 인해 공동체의 손상 내지 파괴가 야기되곤 한다. 개인갈등에서는 대가족, 직장, 단체 등이, 그리고 사회갈등에서는 마을공동체나 지역공동체가 공동체의 손상 내지 파괴의 경험을 하곤 한다. 때문에 갈등에 대응할 때, 특별히 갈등을 해결할 때는 공동체가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나아가 개인의 관계는 물론 공동체의 회복에까지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해결 과정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인에게 공동체는 중요하다. 집단주의 문화의 성격이 강한 한국문화에서 공동체는 거기에 속한 개인 또는 집단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고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은 특별히 갈등으로 인해 공동체가 영향을 받는 것에 민감하다. 공동체 또한 개인 또는 집단에게 공동체의 안위 및 조화를 고려한 갈등 대응 및 해결 방식을 요구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개인과 공동체의 이런 끈끈한 관계와 상호 민감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갈등을 통해 공동체의 파괴 또는 손상을 자주 경험한다.
한국인들은 공동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서 갈등으로 인한 공동체의 손상 내지 파괴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갈등 현안에만 초점을 맞춰 갈등에 대응하는 선택을 하곤 한다. 갈등이 격해지는 상황에서는 전체로서의 공동체보다 그 안에서 자신을 지지하고 자신과 이익을 공유하는 주변인이나 소수 집단에만 집중하기도 한다. 어떤 선택을 하던 갈등에 직면한 당사자들은 강한 결집력을 가진 공동체일지라도 갈등으로 인해 손상 및 파괴될 수 있고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까지 이를 수 있음을 거의 상상하지 못한다. 그 결과 격한 대립과 갈등 후 공동체가 예전의 상태가 아님을 확인하고 당황하곤 한다.
갈등 당사자들의 관계 회복과 화해가 반드시 공동체를 위한 것일 필요는 없다. 또한 공동체가 갈등 당사자들에게 공동체를 위한 관계 회복과 화해를 요구한다면 그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고, 공동체의 안위와 조화가 개인이 겪는 갈등의 후유증에 미치는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가장 바람직한 갈등해결은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 회복과 화해에 더해 공동체의 회복, 그리고 당사자들과 공동체의 화해까지 포함하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개인의 관계 회복과 화해, 그리고 그것이 공동체의 회복에까지 기여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개인의 관계 회복과 화해가 공동체에 기여하는 수순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갈등이 공동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극복하고 나아가 그것을 공동체 발전의 계기로 만들기 위해 공동체의 적극적인 역할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공동체의 역할과 노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와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통해 개인갈등 당사자들의 관계 회복과 화해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는 것이다.
구조와 문화는 개인갈등의 근본원인이 되곤 한다. 개인이나 집단이 갈등에 직면하거나 갈등을 만드는 보편적인 이유 중 하나는 구조와 문화를 변화시켜야 하는 필요 때문이다. 또는 구조와 문화에 저항하거나 그것을 바꿀 수 없는 개인이나 집단이 접근하기 쉬운 상대를 공격의 목표로 삼아 대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동체 차원에서의 구조와 문화의 변화는 갈등의 해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두말할 필요 없이 가장 바람직한 해결은 공동체가 근본원인인 구조와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구조와 문화의 변화가 이뤄지면 비슷한 갈등이 생기지 않게 되므로 이것은 갈등의 예방에도 기여한다.
개인 또는 집단의 갈등해결을 위해 조직적이고 안전한 공간과 방식을 지원하는 것도 공동체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역할과 노력이다. 공동체 안의 개인이나 집단 사이의 갈등이 공동체에 영향을 미친다면 공동체는 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할 당위성이 성립된다. 그렇지만 그런 공동체의 역할과 노력은 여전히 보편적이지 않다. 공동체가 개인 또는 집단을 위해 갈등해결 과정과 공간을 구체적으로 지원한다면 개인화, 또는 개별화를 벗어나 구조와 문화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갈등해결이 가능해진다. 공동체를 염두에 둔 갈등의 해결까지 가능해지고 공동체에 대한 갈등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물론 갈등으로 공동체가 손상 및 파괴됐을 경우 공동체의 회복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공동체를 위한 관계 회복과 화해가 아니라 갈등에 직면한 개인이나 집단의 관계 회복과 화해를 위한 공동체에 초점을 맞출 때 결국 공동체를 위한 관계 회복과 화해가 가능해질 수 있다.
* 위 글은 2017년 12월 7일 인천시 부평구청 갈등관리힐링센터가 주최한 <부평 갈등과 치유 포럼>에서 발제한 글입니다. 무단 배포와 복사를 금하며 인용시 출처를 명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