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해결의 등장
사람들은 왜, 또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갈등해결’을 얘기할까? ‘갈등해결’은 ‘갈등의 해결’과 다른 것인가? 특정 영역에 대한 이해는 보통 단어(용어)의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단어는 그 영역의 역사, 철학, 가치 등은 물론 그 영역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관 및 세계관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갈등해결을 얘기할까?’부터 시작해보자. 그것은 ‘갈등해결’이 특별한 의미와 실행방식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갈등해결(conflict resolution)'은 보통 세 가지를 의미한다. 첫 번째로는 평화갈등학(peace & conflict studies)에 속한 실천응용학문으로 갈등을 연구하고 해결을 위한 정치.사회.문화 조건의 형성과 실행을 연구하는 분야를 말한다. 여기서 갈등은 국가 사이의 전쟁이나 국가 내의 내전부터 개인 사이의 갈등까지를 포괄하는 용어로 쓰인다. 두 번째로는 상호 공격과 대결이 아니라 대화와 합의를 원칙으로 삼아 갈등을 해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 번째로는 제삼자의 판단이나 판결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직접 자신의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 당사자의 자발적 참여와 합의가 기본적 원칙으로 여겨지고 주로 제삼자의 도움을 받아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이 진행된다. 이런 이해에 근거해 ‘갈등해결’은 고유명사로 사용되며 ‘갈등의 해결’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갈등해결을 언급할 때는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중 하나를 염두에 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갈등해결 연구는 평화에 대한 탐구와 함께 시작됐다. 20세기 초반에는 심리학, 정치학, 국제관계학 등에서 단편적인 연구들이 있었고 1950년대에 공식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영역이 점진적으로 확대됐다. 처음 갈등해결 연구는 무장 갈등(armed conflict), 다시 말해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적으로 종식할 방법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1952년 미국에서는 전쟁을 막기 위한 체계적 평화연구의 필요에 공감하는 학자들이 “Research Exchange on the Prevention of War"라는 모임을 만들고 ”Bulletin of the Research Exchange on the Prevention of War“라는 학술 잡지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1957년에는 학제간(inter-disciplinary) 학술지인 ”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 A Quarterly for Research Related to War and Peace"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 잡지의 편집에 참여한 학자들은 다른 한편으로 전쟁과 평화 문제에 관심 있는 학자들을 모아 학제간 연구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 학문 공동체는 미시간 대학의 Center for Research on Conflict Resolution 설립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사용된 갈등해결(conflict resolution)의 의미는 국가 또는 민족 사이의 무장 갈등, 다시 말해 전쟁 예방하거나 평화적으로 종식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1959년 노르웨이의 오슬로에 Peace Research Institute Oslo(PRIO)가 설립됐다. PRIO는 처음으로 평화 연구(peace research)를 이름으로 내걸어 그 자체가 독립적인 연구 분야임을 천명했고 1964년에는 Journal of Peace Research의 발행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연구들은 사회갈등(social conflict)에 대한 연구로 확대됐다. 그것은 전쟁의 부재가 평화를 담보하지 않으며 사회의 폭력적 구조로부터 비롯된 문제와 갈등이 해결돼야 평화도 성취될 수 있다는 이론적 이해에 바탕을 뒀다. 평화연구의 시각에서는 갈등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보고, 특별히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구조의 개선 내지 개혁과 개인 및 사회의 평화로운 삶에 기여할 수 있는 불가피한 사건 내지 절차로 보았다.
평화연구 안에서 특별히 갈등해결 이론의 형성과 실천에 관심을 보이고 영역을 확대한 것은 미국사회였다. 1960년대 중반 이후 평화연구의 응용영역이자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실행 기제로서의 ‘갈등해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연구자들은 평화연구의 기반 위에서 사회갈등을 연구하고 갈등의 평화적 해결 방안을 연구했다. 이와 동시에 연구적 기반 없이 갈등을 해결하는 특정한 방식, 다시 말해 당사자가 중심이 되는 방식과 과정 자체에 관심을 두고 실행하는 사람들과 단체들도 생겼다. 미국사회의 변화에 따라 이 영역도 확대돼갔다. 이 영역이 확대되면서 이들과 평화연구자들 사이에 갈등 또는 갈등해결이라는 전문 영역에 대한 이해와 접근 방법에 간극이 생기고 긴장감이 형성되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그 긴장관계는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평화갈등학에 기반을 두고 갈등해결을 연구 및 실천하는 사람들과 갈등의 해결, 또는 문제해결 기제의 실행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사실 학문적 기반과 사용하는 언어가 조금 다르기도 하다. 기제와 실행 방법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때로 ‘갈등해결’이라는 용어보다 ‘다툼해결(dispute resolution)'이나 ‘문제해결(problem solving)', 또는 다수의 당사자가 관여된 경우 ‘합의 형성(consensus build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을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크게 차이나는 것이 있다면 평화갈등학 안에서 갈등해결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구조의 문제, 근본원인의 해결, 그리고 관계의 회복을 동등하게 중요한 현안으로 다루고, 반면 실행 기제로서의 갈등해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합의 도출과 갈등 현안의 종식에 상대적으로 더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일 것이다. 이 부분은 뒤에서 다시 다루기로 한다.
1970년대 초반에 공공정책과 관련된 갈등을 다루는 공공갈등해결(public conflict resolution or public dispute resolution)도 태동됐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이 작용했다. 그중 가장 큰 요인은 공공기관과 시민 사이 힘의 관계의 변화다. 이 둘의 관계가 이전에는 ‘완전히 불균형한(absolute asymmetric)’ 것이었지만 이 시기에는 '비교적 균형잡힌(relative symmetric)' 것으로 변화됐다. 그 결과 공공기관과 관료들이 독점하고 있던 정책결정권한(decision-making power)이 분산되고 시민들과 공유되기 시작했다. 공공기관과 시민이 마주앉아 협상할 수 있는 기본 환경이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사회운동이 확산됐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또 다른 사회적 요인이다. 1960년대에 국가, 지역, 마을 차원에서 다양한 시민단체들이 만들어졌고, 시민참여 의식이 향상됐으며, 그 결과 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개인과 집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또 다른 요인은 시민들과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일방적 결정을 하는 공공기관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도가 추락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과연 공공기관과 관료들이 시민을 위해 정책을 결정하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공공기관의 정책이나 실행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이 증가했다. 이것 또한 중요한 요인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 기제가 불가피했던 상황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 요인의 등장이 갈등해결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기제를 태동시키고 확산시키는데 충분한 조건이 되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당사자들과 그들을 돕는 제삼자에 의한 갈등의 해결이 사회적 기제로 등장해 확산된 배경에는 경험의 재구성이라는 또 다른 배경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중 하나는 20세기 초부터 있었던 조정에 대한 사회적 경험과 자원의 확보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증가하는 갈등을 해결하지 않을 수 없는 압력의 존재였다고 볼 수 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대규모 노사갈등을 겪은 미국사회는 노사교섭절차를 제도화했다. 특별히 철도와 항공 같은 국가 기간산업의 노사교섭에 개입하기 위해 1934년 전국조정위원회(National Mediation Board)를 설립했다. 1947년에는 사기업의 노사갈등을 다루기 위해 연방조정중재서비스(Federal Mediation and Conciliation Service)를 설립해 연방정부 차원에서 제삼자 개입과 지원에 대한 사명감을 보여줬다. 1960년대 이후 공공갈등이 증가하면서 제삼자의 도움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공공갈등해결 기제가 시도되고 체계화된 배경에는 노사갈등의 경험이 기여를 했다. 공공갈등은 노사갈등처럼 반드시 양자갈등도 아니고, 합의된 규칙이 없으며, 결과 예측이 힘들다는 차이가 있음에도 공공갈등해결은 노사갈등 교섭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체계를 형성해갈 수 있었다. 또 하나의 경험은 전통적인 종교적, 민족적 공동체에서 사법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던 ‘비공식주의’였다. 이것이 1960년대에 재등장했다. 1960년대의 미국사회에서는 흑백 대결로 공동체 차원에서 다툼이 많았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1964년 제정된 시민권리법(Civil Rights Act)에 따라 공동체관계서비스(Community Relations Service)를 설립해 인종, 피부색, 민족에 따른 차별과 관련된 다툼이나 충돌에 개입할 수 있게 했다. 많은 개인과 단체들이 공동체 차원에서 이런 갈등을 조정하는 일을 했다. 최초의 공공갈등해결 사례라 여겨지는 1974년의 스노콸미강(Snowqualmie River) 댐 건설 갈등의 공동조정자였던 제랄드 코믹(Gerald Cormic)과 제인 맥카시(Jane McCarthy)도 공동체 갈등을 조정하던 사람들이었다. 공공갈등은 증가하고 공식적인 입법, 사법, 행정 절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사회적 경험을 재구성해 대안적 기제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또 따른 사회적 경험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소송의 증가와 공공기관 및 사법기관 대응의 한계였다. 특별히 환경과 관련된 소송이 급격히 증가했다. 1970년대 여러 환경관련법이 통과됐고 특별히 1981년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친기업적인 규제완화 정책들이 시행됐다. 환경단체들은 잇달아 소송을 제기해 저항했다. 그중 가장 많은 소송에 얽힌 것은 환경보호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이었다. 1980년대 초 환경보호국의 규제 중 80% 이상이 소송에 직면해 있었다. 환경단체 뿐만 아니라 산업계로부터도 소송이 제기됐다. 공공기관이 각종 소송에 휘말리고 소송 증가로 법원 업무가 급증하면서 생긴 것이 바로 대안적다툼해결(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이었다. 1970년대 중반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ADR은 사법 절차보다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만족감이 높다는 주장에 근거했다. 특별히 ADR이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은 미국변호사협회가 ADR을 사법행정에 대한 불만족을 타계할 방법으로 여기고 적극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그후 미국사회 곳곳에 수백 개의 ADR 센터가 생겼다. ADR의 핵심은 사법적 절차에 대한 대안으로 법정과 연계해, 또는 공동체와 연계해 실행되고 법정을 통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ADR은 조정(mediation), 중재재판(arbitration), 진행(faciitation), 사실조사(fact-finding), 조정-중재재판(med-arb), 미니 재판(mini trial 등 개인 및 집단 사이 다툼(dispute)를 다루는 다양한 절차와 방식을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됐다. 때문에 ADR은 때로 공공갈등해결 실행방식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갈등해결 & 공공갈등해결(갈등관리)의 가치와 철학
갈등해결의 태동과 사회적 확산을 살펴본 이유는 갈등해결이 어떤 철학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고민해보기 위해서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갈등해결 연구는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 여기서 말하는 갈등에는 국가 사이, 또는 국가 안 집단 사이의 무장 갈등부터 개인사이의 갈등까지 모든 종류의 갈등이 포함된다. 그후 사회갈등까지 포괄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실천 방법 또한 연구됐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동시에 갈등해결 연구의 배경이 됐던 연구자들의 철학과 그들이 생각하는 갈등해결의 가치는 연구가 진행되고 다양한 실천 경험이 쌓이면서 진전돼 왔다. 이런 갈등해결 연구와는 별도로 기제로서의 갈등해결에 관심을 가지고 실행에 초점을 맞춘 연구와 실행 영역이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기제만을 연구하는 경우 갈등해결의 원칙과 방법, 당사자들을 돕는 제삼자의 실행 기술에 대한 논의는 많으나 철학과 가치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사회적 기제든 그 자체의 가치와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들의 철학이 언급되고 강조되지 않는다면 실행 기제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힘들다. 그러므로 갈등해결과 관련해 가치와 철학을 논하는 것은 의미 있고 다른 한편 불가피한 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갈등해결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당사자가 직접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바로 가족이나 마을의 어른도, 회사의 상관도, 법정의 판사도 아닌 당사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갈등에 직면한 개인이나 집단의 선택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나아가 독려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물론 거기에는 대부분 한 가지 조건이 추가되곤 한다. 바로 제삼자의 도움이다. 그런데 이것 또한 갈등해결의 중요한 가치다. 제삼자는 스스로 대화할 역량이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사람들을 위해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고, 상대적으로 강한 사람이 과정을 독점할 수 없게 만들며, 때로는 공정한 절차를 위해 강자를 설득하거나 압박을 가하는 일까지 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제삼자는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처럼 공정한 절차를 만들기 위해 싸우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두 번째로 중요한 가치는 대화와 합의에 의한 해결이라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갈등을 야기한 문제를 제거하는 데만 집중한다면 굳이 갈등해결 과정을 진행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힘과 압력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경우 무력의 사용과 폭력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갈등해결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반드시 당사자들이 서로를 물리적, 심리적으로 공격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이견을 조율하며 최종적으로 합의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화와 합의가 강조되는 이유는 그것이 갈등을 해결하는데 효율적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당사자들이 관계를 유지 또는 회복하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밀접한 접촉이 이뤄지는 사이에서, 또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접촉이 이뤄질 관계에서 갈등이 만들어진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하다.
세 번째 가치는 갈등을 만든 바람직하지 못하고 때로는 폭력적인 조건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근본원인의 탐색과 대응을 의미한다. 때문에 갈등해결은 겉으로 드러난 현안의 타결과 종식을 넘어 갈등을 만드는데 기여한 근본원인을 찾아내 그것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만일 갈등해결이 근본원인을 외면한다면 갈등은 변화를 위한 기회가 될 수 없고 갈등해결은 결국 갈등을 부정적 현상으로 왜곡하는 일에만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당사자들 사이 합의가 도출되지 않을 경우 갈등해결 과정은 무용지물로 취급되는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갈등해결에는 합의에 목적을 둔 해결과정 뿐만 아니라 자문이나 대화 진행, 사실조사 등 다양한 시도가 포함되고, 더 근본적으로는 대화의 시도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모든 일이 근본원인을 탐색하고 갈등을 만든 조건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노력이다. 때문에 합의에만 초점을 맞추고 근본원인을 외면하는 것은 갈등해결의 가치를 외면하는 것이고 결국 자기 존재를 부인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되면 갈등해결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도 없다.
네 번째 가치는 당사자들 사이 힘의 불균형을 완화시키고 그 결과 부당한 현실을 바로잡고 변화시킬 가능성을 끊임없이 타진하고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당사자들 사이에는 흔히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고 그것은 갈등해결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힘의 불균형이 심할 경우 대화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으므로 갈등해결은 과정 밖과 안에서 힘의 불균형을 완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이런 노력은 단기적으로는 대화를 원만하게 진행시키고 합의를 도출하는데 기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갈등 후 갈등을 야기했던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데 기여한다. 힘의 관계를 탐색하지 않고 외면한다면 갈등해결은 갈등을 통해 변화를 꾀하는데 기여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갈등의 재발 가능성을 높아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상황을 점진적으로 악화시키는데 기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간과할 수 없는 가치는 새로운 관계의 형성과 공존을 성취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갈등은 관계에서 비롯되고 갈등을 해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 또한 관계다. 갈등이 관계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갈등은 관계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고 갈등을 만든 현안이 종결돼도 관계가 자동적으로 회복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 결과 삶은 갈등 전으로 복귀되지 못하고 공존 또한 불가능해진다. 이런 관계는 갈등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지속적으로 크고 작은 갈등을 야기한다. 때문에 갈등해결은 해결과정에서는 물론 해결 후에도 관계 회복과 공존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관계 회복을 넘어 새로운 관계의 형성과 공존의 성취에 기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갈등해결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현실적으로 볼 때도 관계의 회복은 갈등의 재발을 예방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에 갈등해결은 관계를 외면할 수 없다.
지금까지 얘기한 가치에 더해 공공갈등해결의 경우에는 중요한 또 다른 가치가 있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하고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가장 현실적인 접근이라는 것이다. 공공갈등의 주당사자는 공공기관(공기업 포함)과 그에 대립하는 시민들이다. 공공갈등은 직접 공공정책의 영향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시민이 직접 정책을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물론 이것은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 시민은 선거를 통해 자신의 결정 권한을 입법기관과 행정기관에 위임하기 때문이다. 이런 대의민주주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대부분의 민주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가장 큰 한계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근본적으로 선거가 권한을 위임하는 완벽한 방식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민주주의가 성숙되지 못했거나 정치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사회에서는 권한의 위임을 정당화할 만큼 투표율이 높지 않다. 다른 하나는 시민을 위한 정책인데 시민이 결정과정에서 배제된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절차상 하자가 없다 할지라도 시민에겐 불만족스러운 일이고 자신이 직접 영향에 노출되는 경우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렇게 법적으로 정당하지만 사회적으로 충분히 정당하지 못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공공갈등해결이다.
실제 공공갈등해결은 특정 정책과 관련된 갈등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것은 물론 민주적 절차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해결과정이 직접 정책의 영향을 받는 시민 당사자의 참여를 독려하고 그들의 적극적 의견 개진과 공공기관에 의한 의견 수렴을 가능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대의민주주의에서 소외되기 쉬운 정치적, 사회적 약자들에게 정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과정과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점은 시민의 참여를 강조하는 민주주의 기본원칙에도 적극 부합하는 것이다. 또 다른 면은 계획 중이거나 결정된 정책이 시민 삶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는 다양한 과정에 시민을 참여시킴으로서 시민의 역량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한다는 점이다. 시민에게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에게도 중요한 점은 시민과 함께 정책을 논의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정책의 질이 향상되고 공공기관의 업무 역량 또한 높아진다는 것이다. 때로 공공기관은 자신의 결정권한을 보호하고 복잡한 과정을 회피하기 위해 공공갈등해결 과정을 외면하지만 시민과 함께 결정할 경우 시민의 필요를 반영시키고 보다 실현가능한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책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공공기관에게는 가볍게 볼 수 없는 덤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얘기한 가치 때문에 갈등해결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한 세트의 기제나 공식을 대입하면 정답이 나오는 기술적 접근이 될 수 없다. 때문에 간혹 ADR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갈등해결은 단순히 사법적 절차에 대한 대안이 아니다. 사실 갈등해결은 ADR이 얘기하는 것처럼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드는 것도 아니다. 흔히 다수의 당사자와 현안이 관련되는 공공갈등해결 과정은 더 복잡해서 긴 시간과 높은 비용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해결 과정을 시도하는 이유는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인간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치.경제,사회 환경을 개선하는데 더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불가피하게 직면한 갈등을 기회로 전환시켜 더 바람직한 관계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공존을 실현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갈등해결(갈등관리)이 지향해야 할 철학과 가치
어떤 영역에서든 용어가 가지는 이미지와 의미는 무시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갈등관리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가 ‘해결’ 대신 ‘관리’라는 용어를 채택함으로서 ‘갈등관리’가 공공갈등 관련 업무를 총칭하는 용어로 굳어졌다. 이것은 한국사회에 갈등해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전문가가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비롯된 일이다. 물론 ‘갈등관리’라는 용어를 사용해도 그 안에는 갈등해결의 내용과 원칙이 포함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관리를 업무로 채택하고 갈등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공공기관에게 ‘관리’라는 말은 갈등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보다는 시민의 문제제기와 저항을 억압하거나 확산을 저지하는 소극적인 대응을 주문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 실제 현장에서는 갈등관리 업무를 대화와 합의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주민 대응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관리’라는 말에 대한 시민 당사자의 부정적 대응과 문제제기는 또 다른 문제다. 용어 자체가 공공기관의 입장에서 갈등을 바라보는 시각을 반영하고 있고 시민을 관리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갈등관리 용어를 쓰더라도 실제로는 갈등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공공기관의 실행 의지와 한정적 적용을 볼 때 용어가 주는 이해의 한계가 여전히 공공기관에 대한 주효한 영향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갈등관리’라는 소극적 용어 때문은 아니지만 공공갈등해결 노력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전문가도 많아진 현재에도 여전히 한정적으로 적용되고 ‘가뭄에 콩 나듯’ 하는 결과를 내고 있다. 사실은 영역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점들이 공공갈등에 대한 갈등해결 접근을 저해하는 것일까?
먼저 공공갈등해결 실천 영역이 여전히 공공기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큰 한계이자 문제라 할 수 있다. 공공갈등은 불가피하게 공공기관이 관여할 수밖에 없으니 자연스런 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소위 ‘갈등관리’ 전문가들마저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토대 위에서 활동하는 환경이 지속되고 있고 그것을 거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은 공공갈등의 한 당사자일 뿐이고 다른 중요한 당사자인 다양한 시민 집단 또한 존재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결코 자연스럽지는 않다. 이런 한계는 공공갈등의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 시민 당사자는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 때문에 공공기관의 의뢰를 받은 제삼자 또한 신뢰하지 않고 공공기관과 전문적 제삼자가 만든 틀에 선뜻 발을 들어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전문가를 넘어 갈등해결 영역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고 결과적으로 해결과정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또 다른 가장 큰 문제이자 한계는 갈등해결 실행에서 시민 당사자가 소외되고 배제돼 있다는 것이다. 교육이나 서비스를 받을 기회가 없는 시민은 갈등해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그 결과 여전히 갈등이 생기고 해결이 필요할 때만 존재가 인정되는 대상으로 존재한다. 이런 현실 또한 갈등의 예방과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간혹 공공기관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더라도 시민 당사자는 여전히 저항하는 방식에 의존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다. 때로는 대화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한 채 힘을 키우고 보여주는 것에만 몰두하기도 한다. 시민들은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개인적, 사회적 경험과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갈등해결에 대한 이해나 정보도 없다. 공공기관은 지속적인 교육과 ‘갈등관리’ 하에서 적어도 갈등에 새롭게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고 그런 용어조차 생소한 시민들은 갈등에 새롭게 대응할 이유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지속적인 교육과 갈등관리에 대한 노출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의 대화와 합의 의지 또한 높지 않은 것이 유감이긴 하지만 소외되고 배제돼 있는 시민의 상황이 공공갈등의 예방과 해결을 어렵게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큰 그림이다.
그렇다면 갈등해결, 또는 갈등관리라는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공공기관이 제대로 대화와 합의로 갈등에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들을 교육시키고 대화와 합의의 갈등해결을 이해하고 실제 실행해 보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갈등해결이 좋은 것이라는 주장만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는 없다. 주장 안에 갈등해결의 가치를 포함시켜 공유하고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싸움보다 대화가 낫고,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더 좋은 내용의 합의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특별히 공공갈등에서는 상대적으로 강자인 공공기관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때 기술적 접근을 넘어 갈등해결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효율성만 따져 새롭지만 힘든 일을 시도할 사람은 드물고 시도 또한 한정적이 될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은 미국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굳이 갈등해결 과정을 실행할 압력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예전보다 자주 도전을 받지만 여전히 어떤 시민도 거부할 수 없는 결정권한을 가지고 있고 인적 물적 자원, 전문지식, 정보 등 모든 면에서 월등히 우월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사례처럼 소송이 많아서 ADR과 같은 돌파구를 찾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지금까지 갈등해결의 적용을 주저하고 있는, 또는 한정적으로 적용하면서 별 의미를 두지 않는 공공기관을 설득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갈등해결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공유하고 이해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갈등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거나 갈등에 대한 새로운 대응을 고민하고 있는 공공기관 실무자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사실 실무자들의 입장에서는 가치 있는 일이 아니라면 굳이 불확실하고 자신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일을 할 이유가 없다. 시민을 설득하기 위해서도 가치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에게는 먼저 정보의 공유와 교육이 이뤄져야 하겠지만 동시에 대화와 합의에 의한 해결이 결국 갈등을 야기한 근본원인을 다루는 길이고, 힘의 불균형을 극복하는 길이며, 나아가 새로운 관계와 공존을 위한 길이라는 정보를 시민들과 공유해야 한다. 동시에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유지하고 나아가 발전시키는 가치 있는 일임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전문가는 어떤 철학을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사실 갈등해결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는 제삼자 역할을 하는 전문가다. 그들이 어떤 철학과 원칙을 가지고 그것을 자신의 일에 적용하느냐에 따라 갈등해결의 실행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아무 철학이 없이 그냥 ‘소처럼’ 일만 한다면 그 또한 실행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본 발제의 목적은 갈등해결 또는 갈등관리의 가치와 철학을 고민해보는 것이다. 여기서 철학은 결국 갈등해결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전문가 집단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갈등해결 영역에서 일을 하려 한다면, 또는 이미 일을 하고 있다면 앞에서 언급한 갈등해결의 가치를 얼마나 이해하고 자신의 철학으로 수용하고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그것들을 갈등해결의 보편적인 가치로 받아들일 것이냐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반드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몇 가지로 정리할 수는 없고 다른 것들이 더 추가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을 부인하는 갈등해결 연구자나 전문가는 거의 없다고 감히 장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갈등해결 연구와 실행이 왜 등장했고 어떤 환경에서 확산됐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언급한 가치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 것이고 왜 그것이 갈등해결을 실행하는 사람의 철학이 되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갈등해결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을 자신의 철학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일정한 틀 안에서 과정을 진행하는 ‘기술자’로 전락할 수 있다. 나아가 현재 우리의 상황에서는 공공기관의 필요에 답하는 단순한 ‘서비스 제공자’가 될 수 있고 공공기관의 ‘관리’ 체계에 귀속될 수도 있다. 가치를 철학으로 수용하느냐의 여부는 전문가로서 중립성을 지킬 것인지 독립성을 지킬 것인지를 선택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갈등해결의 가치에 근거한다면 전문가는 민감한 상황에서 무책임한 중립성에 기대지 않고 과감하게 책임지는 독립성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철학은 갈등을 사람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공공갈등의 경우엔 주로 조직과 집단이 관여되지만 그 상황에서도 역시 갈등의 전개와 해결을 좌우하는 것은 사람이다. 또한 갈등이 심각한 대결과 위기로 치닫고 장기간 지속됨으로서 피해를 입는 것도 사람이다. 가장 큰 문제는 갈등이 해결되지 않거나 힘에 의해 일단락될 경우 사람들의 관계와 공동체가 깨져버린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미치는 이 모든 것에 대한 이해가 없고 사람을 위해 일한다는 원칙과 철학이 없다면 갈등해결의 의미는 사라지고 언제 사라질지 모를 단순한 사회기제로 전락할 것이다. 전문가 또한 그 기제를 작동시키기 위해 필요한 도구로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2017년 4월 28일 갈등학회 집담회 발제 글입니다. 무단 복사나 배포를 할 수 없으며 인용 시 반드시 출처를 명기해야 합니다.
출처: https://peaceconflict.or.kr/234?category=636784 [평화갈등연구소]
갈등해결의 등장
사람들은 왜, 또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갈등해결’을 얘기할까? ‘갈등해결’은 ‘갈등의 해결’과 다른 것인가? 특정 영역에 대한 이해는 보통 단어(용어)의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단어는 그 영역의 역사, 철학, 가치 등은 물론 그 영역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관 및 세계관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갈등해결을 얘기할까?’부터 시작해보자. 그것은 ‘갈등해결’이 특별한 의미와 실행방식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갈등해결(conflict resolution)'은 보통 세 가지를 의미한다. 첫 번째로는 평화갈등학(peace & conflict studies)에 속한 실천응용학문으로 갈등을 연구하고 해결을 위한 정치.사회.문화 조건의 형성과 실행을 연구하는 분야를 말한다. 여기서 갈등은 국가 사이의 전쟁이나 국가 내의 내전부터 개인 사이의 갈등까지를 포괄하는 용어로 쓰인다. 두 번째로는 상호 공격과 대결이 아니라 대화와 합의를 원칙으로 삼아 갈등을 해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 번째로는 제삼자의 판단이나 판결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직접 자신의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 당사자의 자발적 참여와 합의가 기본적 원칙으로 여겨지고 주로 제삼자의 도움을 받아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이 진행된다. 이런 이해에 근거해 ‘갈등해결’은 고유명사로 사용되며 ‘갈등의 해결’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갈등해결을 언급할 때는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중 하나를 염두에 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갈등해결 연구는 평화에 대한 탐구와 함께 시작됐다. 20세기 초반에는 심리학, 정치학, 국제관계학 등에서 단편적인 연구들이 있었고 1950년대에 공식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영역이 점진적으로 확대됐다. 처음 갈등해결 연구는 무장 갈등(armed conflict), 다시 말해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적으로 종식할 방법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1952년 미국에서는 전쟁을 막기 위한 체계적 평화연구의 필요에 공감하는 학자들이 “Research Exchange on the Prevention of War"라는 모임을 만들고 ”Bulletin of the Research Exchange on the Prevention of War“라는 학술 잡지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1957년에는 학제간(inter-disciplinary) 학술지인 ”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 A Quarterly for Research Related to War and Peace"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 잡지의 편집에 참여한 학자들은 다른 한편으로 전쟁과 평화 문제에 관심 있는 학자들을 모아 학제간 연구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 학문 공동체는 미시간 대학의 Center for Research on Conflict Resolution 설립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사용된 갈등해결(conflict resolution)의 의미는 국가 또는 민족 사이의 무장 갈등, 다시 말해 전쟁 예방하거나 평화적으로 종식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1959년 노르웨이의 오슬로에 Peace Research Institute Oslo(PRIO)가 설립됐다. PRIO는 처음으로 평화 연구(peace research)를 이름으로 내걸어 그 자체가 독립적인 연구 분야임을 천명했고 1964년에는 Journal of Peace Research의 발행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연구들은 사회갈등(social conflict)에 대한 연구로 확대됐다. 그것은 전쟁의 부재가 평화를 담보하지 않으며 사회의 폭력적 구조로부터 비롯된 문제와 갈등이 해결돼야 평화도 성취될 수 있다는 이론적 이해에 바탕을 뒀다. 평화연구의 시각에서는 갈등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보고, 특별히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구조의 개선 내지 개혁과 개인 및 사회의 평화로운 삶에 기여할 수 있는 불가피한 사건 내지 절차로 보았다.
평화연구 안에서 특별히 갈등해결 이론의 형성과 실천에 관심을 보이고 영역을 확대한 것은 미국사회였다. 1960년대 중반 이후 평화연구의 응용영역이자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실행 기제로서의 ‘갈등해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연구자들은 평화연구의 기반 위에서 사회갈등을 연구하고 갈등의 평화적 해결 방안을 연구했다. 이와 동시에 연구적 기반 없이 갈등을 해결하는 특정한 방식, 다시 말해 당사자가 중심이 되는 방식과 과정 자체에 관심을 두고 실행하는 사람들과 단체들도 생겼다. 미국사회의 변화에 따라 이 영역도 확대돼갔다. 이 영역이 확대되면서 이들과 평화연구자들 사이에 갈등 또는 갈등해결이라는 전문 영역에 대한 이해와 접근 방법에 간극이 생기고 긴장감이 형성되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그 긴장관계는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평화갈등학에 기반을 두고 갈등해결을 연구 및 실천하는 사람들과 갈등의 해결, 또는 문제해결 기제의 실행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사실 학문적 기반과 사용하는 언어가 조금 다르기도 하다. 기제와 실행 방법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때로 ‘갈등해결’이라는 용어보다 ‘다툼해결(dispute resolution)'이나 ‘문제해결(problem solving)', 또는 다수의 당사자가 관여된 경우 ‘합의 형성(consensus build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을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크게 차이나는 것이 있다면 평화갈등학 안에서 갈등해결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구조의 문제, 근본원인의 해결, 그리고 관계의 회복을 동등하게 중요한 현안으로 다루고, 반면 실행 기제로서의 갈등해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합의 도출과 갈등 현안의 종식에 상대적으로 더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일 것이다. 이 부분은 뒤에서 다시 다루기로 한다.
1970년대 초반에 공공정책과 관련된 갈등을 다루는 공공갈등해결(public conflict resolution or public dispute resolution)도 태동됐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이 작용했다. 그중 가장 큰 요인은 공공기관과 시민 사이 힘의 관계의 변화다. 이 둘의 관계가 이전에는 ‘완전히 불균형한(absolute asymmetric)’ 것이었지만 이 시기에는 '비교적 균형잡힌(relative symmetric)' 것으로 변화됐다. 그 결과 공공기관과 관료들이 독점하고 있던 정책결정권한(decision-making power)이 분산되고 시민들과 공유되기 시작했다. 공공기관과 시민이 마주앉아 협상할 수 있는 기본 환경이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사회운동이 확산됐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또 다른 사회적 요인이다. 1960년대에 국가, 지역, 마을 차원에서 다양한 시민단체들이 만들어졌고, 시민참여 의식이 향상됐으며, 그 결과 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개인과 집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또 다른 요인은 시민들과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일방적 결정을 하는 공공기관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도가 추락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과연 공공기관과 관료들이 시민을 위해 정책을 결정하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공공기관의 정책이나 실행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이 증가했다. 이것 또한 중요한 요인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 기제가 불가피했던 상황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 요인의 등장이 갈등해결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기제를 태동시키고 확산시키는데 충분한 조건이 되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당사자들과 그들을 돕는 제삼자에 의한 갈등의 해결이 사회적 기제로 등장해 확산된 배경에는 경험의 재구성이라는 또 다른 배경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중 하나는 20세기 초부터 있었던 조정에 대한 사회적 경험과 자원의 확보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증가하는 갈등을 해결하지 않을 수 없는 압력의 존재였다고 볼 수 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대규모 노사갈등을 겪은 미국사회는 노사교섭절차를 제도화했다. 특별히 철도와 항공 같은 국가 기간산업의 노사교섭에 개입하기 위해 1934년 전국조정위원회(National Mediation Board)를 설립했다. 1947년에는 사기업의 노사갈등을 다루기 위해 연방조정중재서비스(Federal Mediation and Conciliation Service)를 설립해 연방정부 차원에서 제삼자 개입과 지원에 대한 사명감을 보여줬다. 1960년대 이후 공공갈등이 증가하면서 제삼자의 도움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공공갈등해결 기제가 시도되고 체계화된 배경에는 노사갈등의 경험이 기여를 했다. 공공갈등은 노사갈등처럼 반드시 양자갈등도 아니고, 합의된 규칙이 없으며, 결과 예측이 힘들다는 차이가 있음에도 공공갈등해결은 노사갈등 교섭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체계를 형성해갈 수 있었다. 또 하나의 경험은 전통적인 종교적, 민족적 공동체에서 사법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던 ‘비공식주의’였다. 이것이 1960년대에 재등장했다. 1960년대의 미국사회에서는 흑백 대결로 공동체 차원에서 다툼이 많았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1964년 제정된 시민권리법(Civil Rights Act)에 따라 공동체관계서비스(Community Relations Service)를 설립해 인종, 피부색, 민족에 따른 차별과 관련된 다툼이나 충돌에 개입할 수 있게 했다. 많은 개인과 단체들이 공동체 차원에서 이런 갈등을 조정하는 일을 했다. 최초의 공공갈등해결 사례라 여겨지는 1974년의 스노콸미강(Snowqualmie River) 댐 건설 갈등의 공동조정자였던 제랄드 코믹(Gerald Cormic)과 제인 맥카시(Jane McCarthy)도 공동체 갈등을 조정하던 사람들이었다. 공공갈등은 증가하고 공식적인 입법, 사법, 행정 절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사회적 경험을 재구성해 대안적 기제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또 따른 사회적 경험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소송의 증가와 공공기관 및 사법기관 대응의 한계였다. 특별히 환경과 관련된 소송이 급격히 증가했다. 1970년대 여러 환경관련법이 통과됐고 특별히 1981년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친기업적인 규제완화 정책들이 시행됐다. 환경단체들은 잇달아 소송을 제기해 저항했다. 그중 가장 많은 소송에 얽힌 것은 환경보호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이었다. 1980년대 초 환경보호국의 규제 중 80% 이상이 소송에 직면해 있었다. 환경단체 뿐만 아니라 산업계로부터도 소송이 제기됐다. 공공기관이 각종 소송에 휘말리고 소송 증가로 법원 업무가 급증하면서 생긴 것이 바로 대안적다툼해결(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이었다. 1970년대 중반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ADR은 사법 절차보다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만족감이 높다는 주장에 근거했다. 특별히 ADR이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은 미국변호사협회가 ADR을 사법행정에 대한 불만족을 타계할 방법으로 여기고 적극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그후 미국사회 곳곳에 수백 개의 ADR 센터가 생겼다. ADR의 핵심은 사법적 절차에 대한 대안으로 법정과 연계해, 또는 공동체와 연계해 실행되고 법정을 통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ADR은 조정(mediation), 중재재판(arbitration), 진행(faciitation), 사실조사(fact-finding), 조정-중재재판(med-arb), 미니 재판(mini trial 등 개인 및 집단 사이 다툼(dispute)를 다루는 다양한 절차와 방식을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됐다. 때문에 ADR은 때로 공공갈등해결 실행방식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갈등해결 & 공공갈등해결(갈등관리)의 가치와 철학
갈등해결의 태동과 사회적 확산을 살펴본 이유는 갈등해결이 어떤 철학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고민해보기 위해서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갈등해결 연구는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 여기서 말하는 갈등에는 국가 사이, 또는 국가 안 집단 사이의 무장 갈등부터 개인사이의 갈등까지 모든 종류의 갈등이 포함된다. 그후 사회갈등까지 포괄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실천 방법 또한 연구됐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동시에 갈등해결 연구의 배경이 됐던 연구자들의 철학과 그들이 생각하는 갈등해결의 가치는 연구가 진행되고 다양한 실천 경험이 쌓이면서 진전돼 왔다. 이런 갈등해결 연구와는 별도로 기제로서의 갈등해결에 관심을 가지고 실행에 초점을 맞춘 연구와 실행 영역이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기제만을 연구하는 경우 갈등해결의 원칙과 방법, 당사자들을 돕는 제삼자의 실행 기술에 대한 논의는 많으나 철학과 가치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사회적 기제든 그 자체의 가치와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들의 철학이 언급되고 강조되지 않는다면 실행 기제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힘들다. 그러므로 갈등해결과 관련해 가치와 철학을 논하는 것은 의미 있고 다른 한편 불가피한 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갈등해결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당사자가 직접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바로 가족이나 마을의 어른도, 회사의 상관도, 법정의 판사도 아닌 당사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갈등에 직면한 개인이나 집단의 선택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나아가 독려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물론 거기에는 대부분 한 가지 조건이 추가되곤 한다. 바로 제삼자의 도움이다. 그런데 이것 또한 갈등해결의 중요한 가치다. 제삼자는 스스로 대화할 역량이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사람들을 위해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고, 상대적으로 강한 사람이 과정을 독점할 수 없게 만들며, 때로는 공정한 절차를 위해 강자를 설득하거나 압박을 가하는 일까지 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제삼자는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처럼 공정한 절차를 만들기 위해 싸우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두 번째로 중요한 가치는 대화와 합의에 의한 해결이라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갈등을 야기한 문제를 제거하는 데만 집중한다면 굳이 갈등해결 과정을 진행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힘과 압력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경우 무력의 사용과 폭력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갈등해결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반드시 당사자들이 서로를 물리적, 심리적으로 공격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이견을 조율하며 최종적으로 합의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화와 합의가 강조되는 이유는 그것이 갈등을 해결하는데 효율적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당사자들이 관계를 유지 또는 회복하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밀접한 접촉이 이뤄지는 사이에서, 또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접촉이 이뤄질 관계에서 갈등이 만들어진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하다.
세 번째 가치는 갈등을 만든 바람직하지 못하고 때로는 폭력적인 조건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근본원인의 탐색과 대응을 의미한다. 때문에 갈등해결은 겉으로 드러난 현안의 타결과 종식을 넘어 갈등을 만드는데 기여한 근본원인을 찾아내 그것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만일 갈등해결이 근본원인을 외면한다면 갈등은 변화를 위한 기회가 될 수 없고 갈등해결은 결국 갈등을 부정적 현상으로 왜곡하는 일에만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당사자들 사이 합의가 도출되지 않을 경우 갈등해결 과정은 무용지물로 취급되는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갈등해결에는 합의에 목적을 둔 해결과정 뿐만 아니라 자문이나 대화 진행, 사실조사 등 다양한 시도가 포함되고, 더 근본적으로는 대화의 시도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모든 일이 근본원인을 탐색하고 갈등을 만든 조건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노력이다. 때문에 합의에만 초점을 맞추고 근본원인을 외면하는 것은 갈등해결의 가치를 외면하는 것이고 결국 자기 존재를 부인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되면 갈등해결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도 없다.
네 번째 가치는 당사자들 사이 힘의 불균형을 완화시키고 그 결과 부당한 현실을 바로잡고 변화시킬 가능성을 끊임없이 타진하고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당사자들 사이에는 흔히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고 그것은 갈등해결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힘의 불균형이 심할 경우 대화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으므로 갈등해결은 과정 밖과 안에서 힘의 불균형을 완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이런 노력은 단기적으로는 대화를 원만하게 진행시키고 합의를 도출하는데 기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갈등 후 갈등을 야기했던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데 기여한다. 힘의 관계를 탐색하지 않고 외면한다면 갈등해결은 갈등을 통해 변화를 꾀하는데 기여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갈등의 재발 가능성을 높아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상황을 점진적으로 악화시키는데 기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간과할 수 없는 가치는 새로운 관계의 형성과 공존을 성취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갈등은 관계에서 비롯되고 갈등을 해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 또한 관계다. 갈등이 관계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갈등은 관계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고 갈등을 만든 현안이 종결돼도 관계가 자동적으로 회복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 결과 삶은 갈등 전으로 복귀되지 못하고 공존 또한 불가능해진다. 이런 관계는 갈등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지속적으로 크고 작은 갈등을 야기한다. 때문에 갈등해결은 해결과정에서는 물론 해결 후에도 관계 회복과 공존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관계 회복을 넘어 새로운 관계의 형성과 공존의 성취에 기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갈등해결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현실적으로 볼 때도 관계의 회복은 갈등의 재발을 예방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에 갈등해결은 관계를 외면할 수 없다.
지금까지 얘기한 가치에 더해 공공갈등해결의 경우에는 중요한 또 다른 가치가 있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하고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가장 현실적인 접근이라는 것이다. 공공갈등의 주당사자는 공공기관(공기업 포함)과 그에 대립하는 시민들이다. 공공갈등은 직접 공공정책의 영향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시민이 직접 정책을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물론 이것은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 시민은 선거를 통해 자신의 결정 권한을 입법기관과 행정기관에 위임하기 때문이다. 이런 대의민주주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대부분의 민주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가장 큰 한계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근본적으로 선거가 권한을 위임하는 완벽한 방식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민주주의가 성숙되지 못했거나 정치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사회에서는 권한의 위임을 정당화할 만큼 투표율이 높지 않다. 다른 하나는 시민을 위한 정책인데 시민이 결정과정에서 배제된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절차상 하자가 없다 할지라도 시민에겐 불만족스러운 일이고 자신이 직접 영향에 노출되는 경우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렇게 법적으로 정당하지만 사회적으로 충분히 정당하지 못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공공갈등해결이다.
실제 공공갈등해결은 특정 정책과 관련된 갈등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것은 물론 민주적 절차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해결과정이 직접 정책의 영향을 받는 시민 당사자의 참여를 독려하고 그들의 적극적 의견 개진과 공공기관에 의한 의견 수렴을 가능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대의민주주의에서 소외되기 쉬운 정치적, 사회적 약자들에게 정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과정과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점은 시민의 참여를 강조하는 민주주의 기본원칙에도 적극 부합하는 것이다. 또 다른 면은 계획 중이거나 결정된 정책이 시민 삶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는 다양한 과정에 시민을 참여시킴으로서 시민의 역량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한다는 점이다. 시민에게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에게도 중요한 점은 시민과 함께 정책을 논의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정책의 질이 향상되고 공공기관의 업무 역량 또한 높아진다는 것이다. 때로 공공기관은 자신의 결정권한을 보호하고 복잡한 과정을 회피하기 위해 공공갈등해결 과정을 외면하지만 시민과 함께 결정할 경우 시민의 필요를 반영시키고 보다 실현가능한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책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공공기관에게는 가볍게 볼 수 없는 덤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얘기한 가치 때문에 갈등해결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한 세트의 기제나 공식을 대입하면 정답이 나오는 기술적 접근이 될 수 없다. 때문에 간혹 ADR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갈등해결은 단순히 사법적 절차에 대한 대안이 아니다. 사실 갈등해결은 ADR이 얘기하는 것처럼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드는 것도 아니다. 흔히 다수의 당사자와 현안이 관련되는 공공갈등해결 과정은 더 복잡해서 긴 시간과 높은 비용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해결 과정을 시도하는 이유는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인간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치.경제,사회 환경을 개선하는데 더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불가피하게 직면한 갈등을 기회로 전환시켜 더 바람직한 관계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공존을 실현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갈등해결(갈등관리)이 지향해야 할 철학과 가치
어떤 영역에서든 용어가 가지는 이미지와 의미는 무시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갈등관리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가 ‘해결’ 대신 ‘관리’라는 용어를 채택함으로서 ‘갈등관리’가 공공갈등 관련 업무를 총칭하는 용어로 굳어졌다. 이것은 한국사회에 갈등해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전문가가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비롯된 일이다. 물론 ‘갈등관리’라는 용어를 사용해도 그 안에는 갈등해결의 내용과 원칙이 포함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관리를 업무로 채택하고 갈등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공공기관에게 ‘관리’라는 말은 갈등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보다는 시민의 문제제기와 저항을 억압하거나 확산을 저지하는 소극적인 대응을 주문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 실제 현장에서는 갈등관리 업무를 대화와 합의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주민 대응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관리’라는 말에 대한 시민 당사자의 부정적 대응과 문제제기는 또 다른 문제다. 용어 자체가 공공기관의 입장에서 갈등을 바라보는 시각을 반영하고 있고 시민을 관리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갈등관리 용어를 쓰더라도 실제로는 갈등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공공기관의 실행 의지와 한정적 적용을 볼 때 용어가 주는 이해의 한계가 여전히 공공기관에 대한 주효한 영향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갈등관리’라는 소극적 용어 때문은 아니지만 공공갈등해결 노력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전문가도 많아진 현재에도 여전히 한정적으로 적용되고 ‘가뭄에 콩 나듯’ 하는 결과를 내고 있다. 사실은 영역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점들이 공공갈등에 대한 갈등해결 접근을 저해하는 것일까?
먼저 공공갈등해결 실천 영역이 여전히 공공기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큰 한계이자 문제라 할 수 있다. 공공갈등은 불가피하게 공공기관이 관여할 수밖에 없으니 자연스런 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소위 ‘갈등관리’ 전문가들마저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토대 위에서 활동하는 환경이 지속되고 있고 그것을 거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은 공공갈등의 한 당사자일 뿐이고 다른 중요한 당사자인 다양한 시민 집단 또한 존재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결코 자연스럽지는 않다. 이런 한계는 공공갈등의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 시민 당사자는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 때문에 공공기관의 의뢰를 받은 제삼자 또한 신뢰하지 않고 공공기관과 전문적 제삼자가 만든 틀에 선뜻 발을 들어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전문가를 넘어 갈등해결 영역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고 결과적으로 해결과정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또 다른 가장 큰 문제이자 한계는 갈등해결 실행에서 시민 당사자가 소외되고 배제돼 있다는 것이다. 교육이나 서비스를 받을 기회가 없는 시민은 갈등해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그 결과 여전히 갈등이 생기고 해결이 필요할 때만 존재가 인정되는 대상으로 존재한다. 이런 현실 또한 갈등의 예방과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간혹 공공기관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더라도 시민 당사자는 여전히 저항하는 방식에 의존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다. 때로는 대화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한 채 힘을 키우고 보여주는 것에만 몰두하기도 한다. 시민들은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개인적, 사회적 경험과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갈등해결에 대한 이해나 정보도 없다. 공공기관은 지속적인 교육과 ‘갈등관리’ 하에서 적어도 갈등에 새롭게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고 그런 용어조차 생소한 시민들은 갈등에 새롭게 대응할 이유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지속적인 교육과 갈등관리에 대한 노출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의 대화와 합의 의지 또한 높지 않은 것이 유감이긴 하지만 소외되고 배제돼 있는 시민의 상황이 공공갈등의 예방과 해결을 어렵게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큰 그림이다.
그렇다면 갈등해결, 또는 갈등관리라는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공공기관이 제대로 대화와 합의로 갈등에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들을 교육시키고 대화와 합의의 갈등해결을 이해하고 실제 실행해 보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갈등해결이 좋은 것이라는 주장만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는 없다. 주장 안에 갈등해결의 가치를 포함시켜 공유하고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싸움보다 대화가 낫고,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더 좋은 내용의 합의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특별히 공공갈등에서는 상대적으로 강자인 공공기관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때 기술적 접근을 넘어 갈등해결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효율성만 따져 새롭지만 힘든 일을 시도할 사람은 드물고 시도 또한 한정적이 될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은 미국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굳이 갈등해결 과정을 실행할 압력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예전보다 자주 도전을 받지만 여전히 어떤 시민도 거부할 수 없는 결정권한을 가지고 있고 인적 물적 자원, 전문지식, 정보 등 모든 면에서 월등히 우월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사례처럼 소송이 많아서 ADR과 같은 돌파구를 찾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지금까지 갈등해결의 적용을 주저하고 있는, 또는 한정적으로 적용하면서 별 의미를 두지 않는 공공기관을 설득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갈등해결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공유하고 이해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갈등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거나 갈등에 대한 새로운 대응을 고민하고 있는 공공기관 실무자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사실 실무자들의 입장에서는 가치 있는 일이 아니라면 굳이 불확실하고 자신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일을 할 이유가 없다. 시민을 설득하기 위해서도 가치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에게는 먼저 정보의 공유와 교육이 이뤄져야 하겠지만 동시에 대화와 합의에 의한 해결이 결국 갈등을 야기한 근본원인을 다루는 길이고, 힘의 불균형을 극복하는 길이며, 나아가 새로운 관계와 공존을 위한 길이라는 정보를 시민들과 공유해야 한다. 동시에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유지하고 나아가 발전시키는 가치 있는 일임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전문가는 어떤 철학을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사실 갈등해결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는 제삼자 역할을 하는 전문가다. 그들이 어떤 철학과 원칙을 가지고 그것을 자신의 일에 적용하느냐에 따라 갈등해결의 실행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아무 철학이 없이 그냥 ‘소처럼’ 일만 한다면 그 또한 실행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본 발제의 목적은 갈등해결 또는 갈등관리의 가치와 철학을 고민해보는 것이다. 여기서 철학은 결국 갈등해결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전문가 집단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갈등해결 영역에서 일을 하려 한다면, 또는 이미 일을 하고 있다면 앞에서 언급한 갈등해결의 가치를 얼마나 이해하고 자신의 철학으로 수용하고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그것들을 갈등해결의 보편적인 가치로 받아들일 것이냐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반드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몇 가지로 정리할 수는 없고 다른 것들이 더 추가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을 부인하는 갈등해결 연구자나 전문가는 거의 없다고 감히 장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갈등해결 연구와 실행이 왜 등장했고 어떤 환경에서 확산됐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언급한 가치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 것이고 왜 그것이 갈등해결을 실행하는 사람의 철학이 되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갈등해결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을 자신의 철학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일정한 틀 안에서 과정을 진행하는 ‘기술자’로 전락할 수 있다. 나아가 현재 우리의 상황에서는 공공기관의 필요에 답하는 단순한 ‘서비스 제공자’가 될 수 있고 공공기관의 ‘관리’ 체계에 귀속될 수도 있다. 가치를 철학으로 수용하느냐의 여부는 전문가로서 중립성을 지킬 것인지 독립성을 지킬 것인지를 선택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갈등해결의 가치에 근거한다면 전문가는 민감한 상황에서 무책임한 중립성에 기대지 않고 과감하게 책임지는 독립성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철학은 갈등을 사람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공공갈등의 경우엔 주로 조직과 집단이 관여되지만 그 상황에서도 역시 갈등의 전개와 해결을 좌우하는 것은 사람이다. 또한 갈등이 심각한 대결과 위기로 치닫고 장기간 지속됨으로서 피해를 입는 것도 사람이다. 가장 큰 문제는 갈등이 해결되지 않거나 힘에 의해 일단락될 경우 사람들의 관계와 공동체가 깨져버린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미치는 이 모든 것에 대한 이해가 없고 사람을 위해 일한다는 원칙과 철학이 없다면 갈등해결의 의미는 사라지고 언제 사라질지 모를 단순한 사회기제로 전락할 것이다. 전문가 또한 그 기제를 작동시키기 위해 필요한 도구로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2017년 4월 28일 갈등학회 집담회 발제 글입니다. 무단 복사나 배포를 할 수 없으며 인용 시 반드시 출처를 명기해야 합니다.
출처: https://peaceconflict.or.kr/234?category=636784 [평화갈등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