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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전환의 이해

201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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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등해결 & 갈등전환

갈등과 갈등해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전환(conflict transformation)'이란 용어가 자주 쓰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해결과 구별하기 위해 전환이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접근의 하나로 전환이란 용어를 쓰기도 한다. 평화학이나 사회학이 아니라 행정학과 관련지어 공공갈등을 다루는 사람들 중에도 전환이란 용어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 관심이 이론을 심층적으로 이해한 것에서 출발했는지와는 별개로 말이다. 이 글은 갈등전환 용어의 사용과 관심을 반영해 갈등전환을 좀 더 체계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의도로 쓴 것이다. 


필자는 갈등전환을 전공했고 그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계속 해오고 있지만 갈등해결이란 용어를 주로 쓴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갈등해결이 갈등 연구 전체를 아우르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용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많은 갈등해결 연구자들처럼 필자도 갈등전환을 갈등해결 연구 분야의 이론 중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갈등해결 분야에서는 사실 갈등전환을 가장 진보한 이론 중 하나로 여기고 모든 내용을 수용한다. 다만 각 연구자의 관심사와 실천 분야에 따라 실제로 어디까지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 조금씩 다른 고민이 있을 뿐이다.


갈등전환이 이론으로 제안된 것은 1990년대 초반 존 폴 레더락(John Paul Lederach)에 의해서다. 그렇다고 그가 처음 그 용어를 고안한 것은 아니다. 그의 업적이라면 앞선 연구자들이 단편적으로 제안한 아이디어를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체계를 잡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그는 갈등전환 이론의 선구자이자 최고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대학원 시절 그의 강의를 몇 과목 수강했지만 사실 당시엔 그가 말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들려서 그것이 기존의 이론과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 차이를 정확히 이해한 것은 박사 논문을 쓰면서였다. 어쨌든 그의 꾸준하고 체계적인 연구와 분석 덕분에 갈등전환은 갈등해결 분야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비판적인 접근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또한 무력 갈등(armed conflict)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연구와 현장 접근 때문에 피스빌딩(peacebuilding)과 병행해 이론적 연구와 현장 적용이 이뤄져오고 있다.


존 폴 레더락이 갈등전환을 구체적으로 제안한 것은 1995년 출판된 책 Preparing for Peace: Conflict Transformation Across Cultures 를 통해서였다. 이 책은 갈등을 분석하고 다룰 때, 그리고 갈등해결 교육과 훈련을 할 때 문화적 접근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서두에서 그는 해결 접근의 한계를 설명하면서 갈등의 성격과 역동성을 이해하고 문제의 해결과 함께 관계와 구조의 변화를 위해 전환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2003년에 출판된 소책자 The Little Book of Conflict Transformation 에서는 갈등해결과 갈등전환을 비교하면서 해결 접근과 전환 접근이 완전히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학문적, 실천적 분야로서 갈등해결과 갈등전환이 별개라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갈등해결 분야 안에 해결적 접근을 넘어선 전환적 접근이 있음을 설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가 제시한 해결과 전환의 비교 중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갈등을 보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목표의 차이다. 해결 접근은 갈등을 바람직하지 않은, 다시 말해 비정상적인 것으로 본다. 반면 전환 접근은 갈등을 자연스럽고 변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본다. 이런 시각의 차이 때문에 목표에 있어서도 차이가 생긴다. 해결 접근의 목표는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 또는 문제를 종결시키는 것이고, 전환 접근의 목표는 파괴적인 상황을 끝내고 바람직한 상황, 관계,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평화갈등연구의 1세대 인물 중 하나인 크리스토퍼 미첼(Christopher Mitchell)의 설명에 의해 오히려 더 명확해진다. 그는 2002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갈등전환이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고 오히려 갈등해결이 항상 추구했던 구조와 관계의 변화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환 접근이 다른 것이 있다면 해결 접근은 구조와 관계의 변화를 갈등해결의 궁극적 목표로 설정하지 않지만 전환 접근은 구조와 관계의 변화를 갈등을 다루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조건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갈등전환은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갈등해결 연구의 진행 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갈등해결 분야 안에서 이론적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으며 때로는 근본적 원인과 바람직한 변화를 외면하고 갈등의 종결에만 초점을 맞추는 접근과 차별적으로 이해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는 갈등에 어떻게 대응하고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갈등해결 연구의 이론적, 실천적 주제 및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2. 갈등전환 & 구조적 접근

구조는 갈등해결 연구의 핵심 주제 중 하나다. 갈등해결 연구의 기본 입장은 다는 아니라 할지라도 거의 대부분의 경우 구조의 문제가 갈등을 만드는 근본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초기 갈등해결 연구에서부터 일관되게 이어져온 주장이고 이런 이유로 갈등해결은 구조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구조의 문제는 평화갈등연구가 태동되던 때부터 지적된 것이지만 그것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사람은 1960년대 후반 요한 갈퉁이었다. 그는 태도(A/atttitude), 행동(B/behavior), 모순(C/contradiction)이라는 세 개의 꼭지점을 가진 갈등 삼각형을 제시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갈등은 세 가지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전개되는데 A나 B가 나타나지 않고 C가 존재하면 잠재적 갈등이 되고 세 가지가 모두 나타나면 완전히 드러난 갈등이 된다. 즉 구조의 문제가 있어도 당사자들이 힘이 없어서건 자각이 없어서건 태도와 행동으로 문제를 표현하지 않으면 갈등이 표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별히 C는 갈등을 만든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곧 사회적 구조를 말한다. 갈등 당사자들은 구조를 중심으로 서로 태도와 행동을 주고받으면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한다. C가 모순인 이유는 사회적 가치와 사회적 구조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공유하는 가치와 상반되게, 또는 그것을 지원하지 않는 형태로 구조가 존재하고 작동한다는 얘기다. 당사자들이 구조의 문제점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C가 지속되면 아무리 무감각하고 분석력 없는 사람이라도 문제를 인식하고 절망하게 된다. 마침내 당사자들은 구조의 문제가 극복된 나은 상황을 갈망하고 되고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면서 갈등이 생긴다. 이렇게 C에 기반해 생긴 갈등은 C 자체, 그러니까 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는다. 갈퉁은 후에 이 C를 구조적 폭력으로 설명했다.


1970년대 초 유럽에서 평화갈등연구가 학제로 시작되고, 특별히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 갈등학 학위 프로그램이 생겨나면서 구조의 문제는 더욱 아주 기본적이고 당연한 주제가 됐다. 연구자들은 구조의 문제에서 사회 갈등은 물론 사회 폭력의 문제까지 짚어냈다. 갈등과 구조의 연관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갈등해결 연구 정체성의 일부가 됐다. 그러나 갈등해결 실행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이런 구조적 접근은 연구자들의 비판적 사회 성찰 정도로 취급되는 경향도 생겼다. 갈등해결의 체계화와 확산에 큰 기여를 한 미국에서는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말까지 20여 년 동안 갈등해결이 다양한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기제로 자리 잡고 급속도로 확산됐다. 당연히 갈등 조정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이들은 갈등을 야기한 근본원인보다는 갈등 상황을 종결시키는데 더 관심을 가졌다. 특별히 법률서비스 한계에 대한 대안이자 사법제도 개혁의 일환으로 시작되고 확산된 ADR(alternative to dispute resolution)의 경우엔 구조에 문제를 제기할 이유가 없었다. ADR의 관심은 다툼(conflict가 아닌 dispute)을 낮은 비용으로 빠르게 해결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간의 훈련을 거친 후 조정자가 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들은 직업적으로 갈등 또는 다툼의 종결에만 집중했다. 갈등해결 연구자들 중에는 이런 변화를 비판적으로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상황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직업적 조정자들이 모두 구조적 문제를 도외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별 관심을 쏟지 않거나 갈등해결 연구자들만큼 진지하게 접근하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다.


갈등전환을 구조 이론 또는 구조적 접근의 아류 쯤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갈등전환이 구조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갈등전환은 구조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 구조를 바꿀 단계적이고 포괄적인 전략과 실행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갈등해결 연구가 진전되면서 생긴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구조적 접근은 구조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문제를 지적하는 것에 몰두하다보니 그것을 누가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갈등전환은 구조를 단순히 비판이나 극복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다. 반대로 구조를 당사자들, 즉 구조의 문제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게 변화시켜야 하는 목표로 본다. 구조의 변화 없이는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 결국 당사자들은 계속 피해자로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구조 변화를 위해 갈등전환이 제안하는 가장 기본적인 전략과 방법은 구조를 성찰하고 구조적 문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당사자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 같지만 구조를 견고하게 지어진 중세시대 성처럼 여기고 '절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흔히 관심을 두지 않는 부분이다.


당사자 변화를 위한 기본 방식은 교육과 훈련을 통한 힘 키우기다. 이것은 아담 컬(Adam Curle)이 제안하고 존 폴 레더락이 발전시킨 갈등의 진행(Progression of Conflict) 그림을 통해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그림에 의하면 구조를 통제하거나 운영하는 사람들과 그 구조의 문제 때문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 사이 힘의 불균형이 심한 상황에서는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 다시 말해 앞에서 얘기한 C가 존재하지만 A와 B가 나타나지 않고 갈등이 잠재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피해를 입는 상대적 약자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이뤄지면 힘의 불균형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대립과 갈등을 만들 힘이 생긴다. 그러면 대화와 협상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만들어진다. 상호 합의를 통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적 공존을 논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러니 대립과 갈등이 불가피한 것이다. 갈등전환이 갈등을 부정적인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로 보는 이유다.


갈등전환이 얘기하는 약자의 힘 키우기는 사실 구조의 문제에 관심이 없이 갈등해결에 직업적으로만 접근하는 사람들도 하는 일이다. 그러지 않으면 당사자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갈등전환은 그런 힘 키우기를 통해 갈등을 만든 근본원인을 제거하고 구조까지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지만 갈등을 만든 문제의 종결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어느 정도 키워진 약자의 힘을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만 한정해 적용한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어렵게 키워진 힘의 낭비라고 볼 수도 있다. 또 다른 면에서 약자의 힘 키우기는 사회운동의 방식과 비슷하기도 하다. 그러나 갈등전환의 절차와 목표는 약자의 힘을 통해 구조를 바꾸기 거부하는 힘 있는 당사자를 대화의 자리로 끌어내고 합의를 통해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고 바꾸는 것이라는 점에서 보통 대결적으로 전개되는 사회운동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은 갈등전환은 상대적 약자의 힘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구조 안의 행위자들과 그들의 관계에도 주목한다는 것이다. 갈등 당사자들은 물론 구조를 통제하거나 운영해 자기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도 모두 그런 행위자에 포함된다. 갈등전환의 최종 목표는 그들 사이 관계를 변화시키고 그들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사회 구조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갈등전환은 갈등을 야기하는 구조를 지속시키는 문화, 다시 말해 갈등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구조 내 행위자들의 태도와 방식에도 주목한다. 문화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지속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도 결국 사람에 집중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구조 내의 다양한 행위자들은 가진 힘의 크기가 다르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맺고 있고, 이들 모두의 태도와 행동이 변하지 않으면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구조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3. 갈등전환 & 관계

갈등은 사람들과 그들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필자가 갈등을 한 마디로 설명할 때 하는 말이다. 즉 갈등은 사람들 사이에서, 특별히 관계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긴다는 얘기다. 서로 특별한 관계가 없는 사이에서도, 그리고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집단 사이에서도 갈등이 생기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개인갈등이든 집단갈등이든 관계와 무관하게 생기는 갈등은 없다. 설사 기존의 관계가 없거나 얕더라도 갈등이 생기고 지속되는 이유는 이제 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즉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그로 인해 서로의 이익을 방해할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 것이다. 나아가 앞으로 관계가 계속 이어지고 그것이 향후 서로의 이익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라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관계와 갈등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관계가 없는데, 다른 말로 서로 아무런 관심도 없고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 사람이나 집단과 갈등까지 만들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갈등전환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관계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갈등 당사자들 사이에 만들어진 관계의 형태와 질, 그리고 관계를 좌우하고 유지하는 상호작용 및 소통의 방식이다. 관계가 상호이해와 인정에 기초하고 있는지, 아니면 상호 부정과 배제, 나아가 힘에 의한 통제와 억압에 기초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전자라면 관계의 질이 높고 그 결과 관계가 지속가능해진다. 갈등이 생겨도 그것이 관계의 파괴가 아니라 긍정적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 그렇지만 후자라면 관계의 질이 낮고 무엇보다 상대적 약자의 절망과 갈망에 의해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렇게 생긴 갈등은 파괴적으로 전개돼 관계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갈등전환이 관계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결국 관계가 완전히 파괴되고 공동체나 사회까지 파괴되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갈등해결 접근이나 이론은 관계에 관심이 없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관계는 갈등을 이해하고 해결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그럼에도 관계를 보는 방식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갈등해결 연구자나 직업적 실천가를 막론하고 관계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굳이 별도의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는 관계를 강조하면 오히려 갈등을 야기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관계의 개선이나 변화는 문제가 잘 해결하면 덩달아, 또는 운 좋게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쨌든 관계의 중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꼭 갈등해결의 목표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갈등전환이 관계에 주목하는 이유는 관계가 갈등을 해결하는 중요한 자원이 됨과 동시에 갈등의 근본원인인 구조의 문제를 다루는 기반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관계는 갈등전환의 최종 목표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갈등전환이 갈등의 진원지인 구조의 문제를 성찰하면서도 동시에 관계를 끊임없이 강조하는 이유다.


관계가 자원이 된다는 것은 관계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어떤 갈등이든 결국은 사람들의 관계에 의해 해결의 여부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설사 집단 사이 또는 시민과 공공기관 사이 갈등이라 할지라도 대화와 협상에 나서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고 그들의 판단과 결정이 해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또 다른 이유는 당사자들의 상호작용과 소통 방식이 변하지 않으면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데 그것은 결국 관계가 어떻게 개선되느냐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특별히 고려할 것은 힘이 아니라 상호이해와 존중에 기반한 관계로 개선돼야 그것이 갈등을 해결하는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관계의 변화, 즉 갈등을 만들었던 불안정하고 부당한 관계가 아닌 전혀 새로운 관계의 형성은 평화적 공존을 만드는 토대가 되고, 그렇기 때문에 갈등전환의 최종 목표 중 하나가 된다. 이렇게 변화된 관계는 갈등전환이 목표로 하는 바람직한 상황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관계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구조적 문제를 없애고 새로운 구조를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구조가 관계를 악화시키기도 하지만 변화된 관계는 구조를 변화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다. 물론 당사자들의 관계가 개선돼도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번 자리 잡은 구조는 일정 범위 안에서 독립적으로 작동하고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계가 개선되면 당사자들이 구조의 문제를 공동의 문제로 이해하고 구조를 개선할 공동의 방안을 모색할 가능성이 생긴다. 사실은 이것이 관계를 개선하고 바로잡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갈등전환은 관계가 결국 구조를 개선하는 자원이 된다고 본다.


사람들이 가장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관계 속에서 갈등이 생기는데 갈등에 대응하거나 해결을 모색할 때는 관계에 관심을 쏟지 않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관계는 마치 '비합리적'이고 '사적'이고 '감상적'인 것처럼 취급하고 '논리적' '합리적' '이성적'이어야 하는 해결 과정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갈등전환은 관계가 갈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며 갈등을 해결하는 자원이 되고 나아가 갈등을 만든 상황을 전환시켜 바람직한 공존의 상황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본다.


4. 갈등전환 & 피스빌딩

갈등전환은 피스빌딩(peacebuilding)과 함께 언급되거나 연구되곤 한다. (피스빌딩은 '평화구축'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국내에 아직 충분한 연구와 합의가 부족한 관계로 이 글에서는 그냥 피스빌딩이라고 쓰기로 한다) 이는 갈등전환 이론을 체계화시킨 존 폴 레더락이 피스빌딩 연구에 있어서도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다. 그는 두 분야를 구분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또한 평화갈등연구 영역에서 갈등해결을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피스빌딩을 함께 연구한다. 그것은 필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피스빌딩과 갈등전환을 어떻게 연결시키고 이해해야 하는지 전공자들조차 혼란스러워할 때가 있다.


먼저 피스빌딩의 개념부터 정리해 보자. 피스빌딩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해가 존재한다. 하나는 전통적이고 좁은 이해로 피스빌딩을 무장 갈등을 겪은 사회(post-conflict society)의 재건과 관련된 전략, 정책, 활동 등과 관련해 이해하는 것이다. 유엔이나 국제사회의 피스빌딩 이해는 여기에 가깝다. 이 이해를 따르면 갈등과 피스빌딩을 연결시키기가 쉽다. 조약이나 합의로 갈등 현안을 끝낸 후의 과정, 그렇지만 관계나 구조를 둘러싼 갈등은 남아 있는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보면 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진전된 포괄적 이해로 피스빌딩을 무장 갈등에 대한 대응, 무장 갈등의 해결, 그리고 사회 및 공동체 재건을 넘어 안정적 평화의 성취까지를 포함하는 전략, 정책, 활동 등을 일컫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나아가 최근에는 무장 갈등 사회뿐 아니라 무장 갈등이 없는 민주주의 사회에도 적용되는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무장 갈등은 아니지만 민주주의 사회에도 다양한 폭력과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포괄적 이해에 근거하면 갈등과 피스빌딩을 연결시키는 것이 더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진다.


피스빌딩의 이해에 대해서는 리사 셔크(Lisa Shirch)의 개념 정리를 참고할만 하다. 그녀는 피스빌딩을 폭력의 예방, 갈등의 종결, 예방, 해결, 그리고 평화의 건설을 위한 모든 활동과 노력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해석한다. 그녀는 피스빌딩은 모든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가능하고 구체적으로는 연구와 교육, 조기 경보 및 대응, 인도적 지원, 경제 사회 정치 개발, 사법 제도 정비, 그리고 갈등전환 등을 포함한다고 말한다. 나도 이 개념 정리에 동의하고 갈등해결을(물론 갈등전환이 포함된) 폭력을 없애고 평화를 성취하는 긴 스펙트럼의 중간에 위치하는 핵심 요소로 본다. 물론 갈등해결은 폭력과 평화를 다루는 과정 곳곳에서 생기는 갈등에 바람직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역할도 한다.


존 폭 레더락은 피스빌딩을 전환의 과정이자 방식으로 본다. 그는 갈등 현안, 관계, 구조의 문제를 함께 다루고 동시에 단기적, 장기적 접근을 포함하는 통합적 피스빌딩 모델(Framework for peacebuilding)을 제안하면서 이 모델이 갈등 이해와 대응, 그리고 피스빌딩 활동 개발의 기준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갈등전환과 피스빌딩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 통합적 모델은 결국 갈등전환을 위한 피스빌딩을 제안하고 있는데 갈등 대응의 수준을 설명하는 수직 축과 활동 시간대를 설명하는 수평 축으로 구성돼 있다. 대응 수준에서는 갈등을 만든 문제와 함께 관계, 하부 체계, 그리고 사회의 큰 체계를 같이 다룰 것을 제안한다. 시간대에서는 위기 개입을 위한 단기 접근, 그리고 나은 위기 대응을 위한 교육과 훈련, 사회변화를 위한 구상, 그리고 바람직한 미래를 동시에 염두에 둘 것을 제안한다. 다만 단기 대응은 몇 개월을 기준으로 설계되고 바람직한 미래을 위한 계획은 2-30년을 내다보고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렇게 각 부분을 따로 또 같이 다루고 계획하는 통합적 접근을 통해 전환이 가능해지고 결국 바람직한 미래가 가능해진다는 것이 이 모델의 내용이다.


통합적 모델이 얘기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갈등전환과 피스빌딩 노력은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 사이에는 어떤 모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전환적 시각을 가지고 이뤄지는 피스빌딩이 결국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함과 동시에 평화적 공존을 위한 구조와 관계를 만드는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결국 갈등전환과 피스빌딩이 한 세트처럼 적용됨으로써 갈등에 대한 가장 바람직한 대응과 미래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통합적 모델이 애초 초점을 맞춘 것이 무장 갈등 사회, 또는 무장 갈등에 취약한 사회고 그런 사회에서는 갈등의 전환과 피스빌딩이 결국 함께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굳이 평화를 가치로 삼지 않는 사람들조차 평화를 절실히 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합적 피스빌딩 모델은 무장 갈등과 상관없는 민주주의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경우처럼 당사자들이 갈등을 해결하기 원하지만 그들의 최종 목적이 굳이 평화 성취나 평화적 공존이 아닌 경우가 더 많은 사회에 말이다. 한 가지 전제가 있다면 가능하고, 나아가 유효하다. 그것은 갈등해결을 단순히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불평등한 힘의 관계를 개선하고, 구조를 변화시키며,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켜 다양한 구성원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를 만드는 과정으로 이해한다는 전제다. 물론 이것을 당사자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갈등을 다루고 당사자들의 해결을 돕는 사람들이 이런 방향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통합적 모델은 충분히 고려될 수 있고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이다. 물론 그런 적용이 가져오는 긍정적 결과는 사회 전체가 공유할 수 있다.


5. 갈등전환의 적용, 비현실적인가

사람들은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는 말을 하곤 한다. 정말 현실성이 없는 것에 대한 반응일 수 있지만 때로는 너무 완벽하고 매력적인 이론이나 주장에 어깃장을 놓기 위해 하는 말이기도 하다. 갈등전환 이론은 아마도 그런 말을 들을 법한 이론인 것 같다. 실제 필자는 박사 논문 심사를 받을 때 비슷한 도전적인 질문을 받기도 했다. 물론 시험하기 위한 의도된 질문이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다른 말로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쉽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은 가장 필요한 이론이라는 얘기도 된다. 그러니 너무 겁을 먹거나 어깃장을 놓기 전에 찬찬히 정말 현실성이 없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전환(transformation)'은 사전적으로 '변형'이나 동물의 '탈바꿈', '변태'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긍정적으로 사용되는 이 말은 어떤 것이 고유의 정체성은 유지하면서 나은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갈등전환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은 갈등 당사자들과 그들의 존재 자체다. 변해야 하는 것은 갈등에 직면한 당사자들의 태도, 그들 사이의 관계, 그들을 둘러싼 구조, 그리고 그들의 문제 대응 문화 등이다. 이것은 존 폴 레더락이 전환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언급한 네 가지를 말한다.


네 가지 목표가 달성된 모습은 구체적으로 갈등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기회로 보는 개인, 즉 갈등 당사자들, 힘에 의존하고 상호 부정과 적대감이 지배하는 관계가 아닌 협력과 소통에 기반한 당사자들의 관계, 갈등을 야기하는 폭력적인 구조가 아닌 당사자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는 구조, 대립적이고 파괴적인 대응이 아닌 상호 협력적이고 건설적인 갈등 대응 문화가 만들어진 것을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다. 갈등에 직면하면 개인은 위축되고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는 적대적이 된다. 구조는 언급하는 것조차 쉽지 않고 문화는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이 아니니 얘기하는 것조차 부질없어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인지 갈등해결을 연구하거나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조차 완벽한 이론이지만 현실성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갈등전환에 기초해 갈등을 다룬다면 어쨌든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아야 한다. 솔직히 쉽지 않고 어떤 경우엔 목표 설정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갈등전환은 그냥 이상적인 이론에 불과한 것 아닌가? 여기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두 가지다. 하나는 현실적인 장애나 도전에도 불구하고 갈등전환을 목표로 삼아 갈등을 다룰 때 더 바람직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갈등을 다루는 방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고 그 결과 당장 전환의 목표를 100% 달성할 수 없다고 해도 적어도 그에 대한 단기적 대응 및 장기적 접근의 필요성에 대한 당사자들의 동의는 만들어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목표가 제대로 설정돼야 중간에 엉뚱한 길로 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갈등이 복잡하고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이유로 개인의 역량 형성은 무시하고, 관계는 운 좋으면 개선될 수 있는 문제로 치부하는 접근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비록 당장 구조를 바꿀 수는 없어도 구조의 문제 자체를 얘기할 수는 있고 대응 문화를 바꿔야 할 필요성을 공유할 수 있다. 제대로 된 목표가 설정돼야 절차와 내용이 채워질 수 있는 것이다.


갈등전환을 이상적인 이론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론을 적용할 경우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갈등 현안을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개인, 관계, 구조, 문화의 문제까지 다루면 오히려 절차가 복잡해져서 갈등 현안도 제대로 다룰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 한쪽 당사자가 부담스러워하는 관계나 구조의 문제를 다룰 경우 오히려 대화가 잘 되지 않을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지만 변명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전환 이론이 목표로 제시한 것을 부정적인 것으로 부인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것이 갈등을 완벽하게 해결하고 갈등의 재발을 예방하기 위한 가장 바람직한 접근임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한 마디로 좋은 것은 알겠는데 실행하기 복잡해서 싫다는 얘기 밖에 안 된다.


모든 연구 분야에서 이론은 방향을 안내하고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평화갈등연구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 평화갈등연구에서는 반드시 현실 적용을 염두에 두고 이론이 제시된다. 연구의 가장 큰 목적이 사회 변화에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갈등전환 이론도 그런 목적을 가지고 있고 당연히 현실 적용을 염두에 둔 것이다. 현실의 경험에 기초해 개발된 것이기도 하다. 실제 적용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니 자신의 경험, 지식, 의지, 그리고 현실과 환경에 대한 주관적 판단에만 맞춰본 후 불가능하다거나 현실적이지 않다고 하는 것은 신중치 못한 판단이다.


* 위의 글은 본 홈피의 ‘평화갈등 이야기’에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했던 글을 종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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