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공갈등해결의 등장
공공갈등(public conflict)은 민주주의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공공갈등은 민주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가 실행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공공갈등이 발생할 이유가 없고 공공갈등이 발생한다는 것은 곧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공갈등은 정책 결정 및 실행과 관련해 발생하고, 공공정책에 대해 시민의 문제 제기 및 저항이 나타나며, 그에 따라 공공기관과 시민은 대립하게 된다. 공공기관이 시민을 고려해 정책을 결정하고 거기에 시민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최소한의 민주적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공공갈등은 발생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공공갈등은 시민이 신변에 위험을 느끼지 않고 정책에 문제 제기 및 저항을 할 수 있을 수준의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정부 및 공공기관이 시민들의 문제 제기 및 저항에 조금이나마 반응하는 환경이 조성돼야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공갈등 발생의 기본적 전제가 된다. 낮은 수준일지라도 시민의 문제 제기 및 저항을 보장하는 민주주의와 완전한 불균형을 벗어나 소극적 수준이나마 상호 견제가 이뤄질 수 있는 정부 및 공공기관과 시민 사이의 힘의 관계가 형성돼 있어야 한다. 갈등은 최소한 한 당사자의 일방적 결정을 제지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의 관계가 당사자들 사이에 형성돼 있어야 발생하고 전개될 수 있는데 공공갈등 또한 그 기본조건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공공갈등이 민주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공공갈등의 바람직한 해결 여부가 민주주의의 질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갈등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역할에서 비롯된다. 갈등은 흔히 부정적인 사건이나 현상으로 인식되지만 평화갈등학(peace and conflict studies)에서 갈등은 직면한 문제를 규명하고 해결하며 당사자들 사이 새로운 관계 형성의 기회를 제공하는 긍정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공공갈등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공공갈등은 근거 없이 발생하지 않는다. 공공갈등이 발생했다는 것은 갈등의 원인이 된 정책에 문제가 있거나, 적어도 정책의 영향을 받는 시민들이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또는 정책의 결정과 실행 과정에 문제가 있거나, 정책을 제안하고 결정하는 공공기관의 태도나 행동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준다. 물론 그것은 시민만 느끼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일방적 문제 인식이 갈등의 발생을 막아주지는 않는다. 공공갈등은 시민과 공공기관 사이에 신뢰가 부족하고 힘의 불균형이 심할 때 발생하고 장기간 지속된다. 특별히 불균형한 힘의 관계에 대한 공공기관의 과도한 의존이 시민의 강한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공공갈등이 공공기관 또는 시민의 과민한 대응이나 해석에서 비롯될 수도 있지만 공공갈등의 존재 자체는 민주주의의 실행 구조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준다. 때문에 공공갈등이 바람직한 방식으로 해결되면 정책 결정 및 실행과 관련된 구조가 공공기관과 시민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시민과 공공기관의 관계 또한 대립과 견제가 아닌 협력과 대화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런 공공갈등의 해결은 민주주의의 질적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물론 민주주의의 질적 향상이 공공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주된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공공갈등의 빈번한 발생과 장기간 지속이 민주주의의 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도 해결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사실이다.
공공갈등의 해결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공공갈등해결(public conflict resolution)은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 시작됐다. 이것은 공공갈등의 증가가 가져온 자연스런 결과였다. 미국사회는 1960년대와 1970년대 공공갈등의 급증을 경험했고 이것은 공공기관의 일방적 정책 결정에 대한 시민들의 문제 제기에서 비롯됐다. 시민들은 공공기관의 관료주의 문화와 결정 권한의 집중, 그로 인한 일방적 정책 결정과 시민의 소외에 불만족을 표출했고 공공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의 참여를 요구했다. 이런 시민들의 요구는 시민의식의 향상과 시민들의 조직화, 그로 인한 시민단체들의 증가가 가져온 결과였다. 그러나 시민들이 문제를 제기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시민들은 공공기관이 시민들을 위해 공공정책을 결정 및 실행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까지 공공기관은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시민의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실제 공공기관의 정책은 합리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았으며 현장에서 시민의 삶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돼 있었다. 이런 시민 배제는 공공기관과 시민 사이의 극심한 힘의 불균형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시민들은 이런 관계에 문제를 제기했고 정책 결정 권한의 분산을 요구했다. 다시 말해 적어도 시민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 결정 과정에는 시민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주장은 시민의 조직화가 이뤄지면서 되돌릴 수 없는 추세가 됐고 시민과 공공기관 사이의 힘의 불균형에 균열을 가져왔다. 공공기관은 이런 시민의 도전에 직면해 새로운 방식의 정책 결정 및 실행을 필요로 했고 그 결과 시도된 것이 공공갈등해결이었다.
1970년대 중반 미국사회에서 공공갈등해결의 시작이 가능했던 것은 이미 다른 분야에서 축적된 갈등해결 경험과 과정을 실행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1930년대부터 실행된 조정(mediation)을 통한 노사갈등의 해결 경험은 제삼자 지원과 진행에 의한 공공갈등해결에 기본적 구상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1960년대에 시작된 인종갈등 대응 경험과 1970년대 성행한 가족, 이웃, 청소년, 상거래 문제 등 다양한 공동체 문제 해결(community dispute resolution) 경험 또한 공공갈등해결의 시작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무엇보다 노사갈등과 공동체 문제 해결을 위한 제삼자 서비스와 사회적 기제의 존재는 공공갈등의 해결을 위한 인적 자원의 확보를 의미했다. 노사갈등과 공동체 문제 해결 분야에서 활동해온 전문가들은 자연스럽게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공공갈등해결의 초기 사례들을 다루게 됐다. 그러나 공공갈등은 노사갈등이나 공동체 문제와는 근본적으로 달랐고 때문에 접근 또한 다를 수밖에 없었다. 노사갈등과 공동체 문제에 대한 대응은 1910년대에 등장하고 1960년대에 운동 차원에서 활성화된 비공식주의(infomalism)와 그에 기반한 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즉 대체적 사법절차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이것은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과 장시간과 고비용을 요구하는, 그러면서도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한 사법적 절차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시민운동 차원의 대응이었다. 노사갈등과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다툼은 대부분 이익의 충돌에서 발생한 것이었기 때문에 ADR 접근을 통해 다룰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공갈등은 달랐다. 공공갈등은 시민들의 정책 결정 과정 참여와 공공기관과의 정책 결정 권한 공유 요구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때문에 ADR 접근으로 다룰 수 있는 갈등이 아니라 새로운 접근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공공갈등해결은 기존에 있던 제삼자 서비스를 활용한 문제 해결 경험과 체계에서 구상을 얻어 출발한 것이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차별화된 접근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공공갈등해결이 등장하게 된 계기는 작동하지 않는 사법, 행정, 입법 절차 때문이었다. 공공갈등해결은 작동하지 않는, 그 결과 시민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전통적 절차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불만을 다룰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으로 여겨졌다. 또한 환경을 해치지 않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공공정책과 시민의 참여에 의한 공공정책 결정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문제 제기와 저항으로 발생한 새로운 형태의 갈등을 다룰 수 있는 새로운 접근으로 이해됐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시민의 조직화가 이뤄지면서 많은 시민단체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반하는 공공정책을 둘러싸고 공공기관과 장기간 대립하거나 소송을 선택하곤 했다. 그러나 사법 절차는 다양한 당사자와 현안이 개입된 공공갈등을 다루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 많은 시민들은 적대적으로 문제를 다루고 승자와 패자로 결론을 내리는 사법 절차 자체에 만족하지 못했다. 이런 배경에서 등장한 공공갈등해결은 기존 사회 구조와 체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새로운 문제 해결 접근으로 이해됐다. 이런 배경에서 시작부터 공공갈등해결은 시민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정책 결정에 참여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시민이 원하는 공공정책을 수립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공공갈등해결은 편의와 효율성을 위해 사법적 절차를 대체하고 시민의 불만을 통제하는 기제로 출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복잡한 과정과 그로 인해 장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시민의 참여를 통해 시민의 필요에 응하는 공공정책을 수립하고, 시민과 공공기관의 협력을 통해 공공정책의 질을 높이며, 장기적으로 시민과 공공기관 사이 힘의 불균형을 극복함으로써 공공정책 결정 과정 개선에 기여한다는 가치에 기반하고 있었다.
2. 한국사회 공공갈등의 특징
공공갈등은 다양한 당사자와 입장, 다양하고 복잡한 현안, 장기간 전개, 공공기관과 시민의 힘겨루기 등 여러 가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공공갈등이 다양한 개인과 집단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정책을 둘러싸고 발생하고, 공공기관과 시민과의 대립을 야기하며, 관료문화와 정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공공갈등은 이런 일반적 특징들에 덧붙여 다른 독특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특징들은 한국의 거의 모든 공공갈등에서 발견되는 부정적인 특징들이고, 공공갈등의 악화와 미해결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국의 공공갈등을 언급할 때 특별히 주목해야 것들이다.
한국사회의 공공갈등은 지나치게 오랜 시간 방치되거나 급속하게 파괴적으로 전개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갈등이 발생해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갈등의 자연스런 전개가 아니라 무관심과 역량 부족에서 비롯된 인재와도 같은 것이다. 갈등이 제대로 다뤄지려면 기본적으로 세 단계에서 갈등에 대응하고 개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첫 단계는 문제가 생기고 그와 관련해 이해 관계자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이때에는 갈등이 잠재적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갈등의 예방을 위한 대응과 개입이 가능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이해 관계자들이 대화를 통해 갈등의 표출을 막고 문제의 공동 해결을 모색할 수 있다. 둘째 단계는 문제를 둘러싸고 이해 관계자들이 자신들의 입장과 이익을 주장하는 시점이다. 이때는 갈등 당사자들 사이에 대립적, 또는 우호적 관계가 형성되면서 상호 탐색이 이뤄지는 시기다. 아직 갈등이 악화되지도 대립이 극으로 치닫지도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갈등의 조기 해결을 위한 대응과 개입이 가능하다. 셋째 단계는 갈등 현안이 고착되고, 갈등 당사자들의 대립이 격화되며, 노골적인 상호 충돌로 위기가 형성되는 시점이다. 이때는 갈등 발생에 기여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함은 물론 당사자들 사이 충돌이 생기고 갈등이 악화되면서 새롭게 발생한 상호 불신과 관계 단절의 문제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기 위한 대응과 개입이 필요하다.
한국사회 공공갈등의 경우에는 언급한 세 단계 중 어느 단계에서도 적절한 대응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개입이 이뤄지지 않는다. 공공갈등의 특징상 공공기관이 가장 주도적으로 문제를 다루고 표출된 갈등에 대응해야 하지만 공공기관은 무관심 또는 방치의 방법을 택하곤 한다. 이것은 갈등의 발생 여부에 상관없이 여전히 공공기관이 갈등을 야기한 공공정책의 실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공기관은 시민 당사자의 저항이나 부정적 여론이 부담스럽지만 결국엔 자신의 의지로 해당 공공정책을 실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때로 공공기관은 공공정책으로 야기되는 개인의 희생을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하고 일반화시킴으로써 공공갈등 대응의 필요를 거부하고 갈등을 방치한다. 그러나 직면한 공공갈등을 일반화시킬 수 없는 시민 당사자는 공공기관의 관심과 응답, 그리고 여론, 언론, 정치권 등의 지원을 받기 위해 저항을 강화시킨다. 자신과 미래 세대의 삶과 생존을 위해 당장의 손실을 감수하고 모든 자원을 투자하며 때로 사회의 공식적, 비공식적 규범을 어기는 위험한 수준까지 저항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결국 갈등은 파괴적으로 전개되고 공공기관의 무대응과 방치가 길어질수록 파괴적 전개도 가속된다.
한국사회 공공갈등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흔히 이익보다 입장에 더 초점이 맞춰진다는 것이다. 갈등에 직면하는 당사자들은 모두 자신의 입장(position)을 가지고 있다. 당사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이익(interest)을 얻기 위해 강한 입장을 표출한다. 이런 이유로 많은 갈등해결 연구자들이 입장을 이익을 얻기 위한 표면적 수단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입장은 단순히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되지도, 또는 이익을 위해 쉽게 포기되지도 않는다. 특별히 체면과 명분이 중요시되는 한국문화에서 입장은 때로 큰 이익 앞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이유이자 존재의 의미가 되곤 한다. 공공갈등의 경우에는 입장이 더 큰 역할을 하고 때로 이익이 곧 입장이 되기도 한다. 제주 해군기지 갈등, 밀양 송전탑 갈등, 용산 화상경마장 갈등 등의 사례를 보면 주민들의 이익은 곧 입장이 됐고 입장은 어떤 물질적 보상을 통해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됐다. 주민들은 공공정책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존재를 위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입장과 이익을 분리할 수도, 입장 포기를 위해 이익을 발굴할 수도 없었다. 입장이 두드러지는 공공갈등일수록 선제적 대응과 조기 해결이 필요하다. 대립이 격화되지 않았을 때 대화를 통해 입장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호 이익에 맞춰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무대응과 방치는 입장의 강화를 만들어내고 결국 입장을 포기할 명분까지 상실하게 만든다. 갈등이 장기화되고 악화될수록 입장은 강화되고 포기하기 힘든 민감한 문제가 되지만 공공기관은 입장의 민감성을 고려하지 않는 사무적 태도로 시민 당사자에 대응하곤 한다.
정치화는 한국사회 공공갈등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다. 정치화는 입장 강화와 입장의 충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특징이기도 하다. 공공갈등이 정치화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공공갈등이 공공정책을 둘러싸고 발생하며 공공정책이 정부의 통치 방향과 정치권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공공갈등이 가지는 보편적 특징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유독 한국사회에서 공공갈등의 정치화가 급진전되고 강화되는 이유는 정부와 공공기관의 관계가 경직돼 있고, 정치권이 공공기관에 미치는 영향이 크며, 그에 맞서 공공기관과 시민 당사자가 공공갈등의 전개 및 해결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념 대립이 심하기 때문이다. 공공정책은 어느 정도 정부의 통치 이념을 반영하게 돼 있지만 한국의 경우 정부의 변화에 따라 공공정책의 기조가 달라지곤 한다. 때문에 공공갈등은 이념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되고 여론의 지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공공갈등이 정부 및 공공기관과 시민 당사자 사이의 이념 대결로 진화되곤 한다. 정치화는 시민단체가 관여되는 경우 더 강화된다. 이것이 공공갈등이 정치화되는 세 번째 이유다. 시민단체의 공공갈등 관여는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공공갈등에 대한 시민단체의 입장 표명은 공공기관에 의해 적절치 않은 ‘개입’으로 해석된다. 공공기관은 시민단체를 당사자의 하나로 보지 않고, 때로는 ‘배후 세력’으로 취급하며, 현지 주민보다 시민단체에 더 큰 관심을 쏟기도 한다. 시민단체의 입장 표명이나 주민들에 대한 지지 또는 지원을 시민단체로서의 사회적 역할이나 책임으로 여기지 않고 정치적 개입으로 해석하는 정부 및 공공기관의 접근 때문에 공공갈등은 정치화된다. 시민단체의 관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공기관의 태도 때문에 갈등의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시민 당사자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거나 소외되는 결과가 생기곤 한다.
한국사회 공공갈등의 또 다른 특징은 짧은 시간에 관계와 소통이 단절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급속도로 대화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해결의 가능성 또한 현저하게 줄어든다. 개인 또는 집단의 갈등에서 당사자들 사이에 관계와 소통이 단절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대립과 상호 비난이 강화되면서 갈등이 위기에 직면할 때는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공갈등에서 공공기관과 시민 당사자 사이에 관계와 소통이 짧은 시간 안에 단절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 아니다. 공공갈등이 사적이 아닌 공적인 문제며, 따라서 공공기관이 정책 구상 단계부터 갈등 민감성을 가지고 시민 당사자에게 필요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또한 갈등 발생 후에도 공적인 책임을 가지고 시민 당사자에게 접근한다면 충분히 극복될 수 있는 문제기 때문이다. 공공갈등에 직면한 시민 당사자가 흔히 공공기관에게 공식적인 대화와 협상을 요구하는 상황을 고려해 봐도 그렇다. 결국 관계와 소통이 단절되는 가장 큰 이유는 공공갈등에 대한 공공기관의 무관심, 무대응, 방치 때문이고, 시민 당사자에 대한 공공기관의 억압적 태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공공기관의 태도와 대응으로 인해 시민 당사자의 입장이 강화되고 결국 공공기관과의 모든 대화 및 접촉을 거부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관계와 소통이 단절되는 또 다른 이유는 관계와 소통의 복원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사회적 체계와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공기관이 갈등을 완화시키거나 해결하기 위해 갈등해결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미 관계와 소통이 단절되고 불신이 쌓인 후에 시민 당사자는 공공기관의 의뢰를 받은 전문가까지 불신하게 된다.
위의 모든 특징들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당사자의 필요(needs)가 외면된다는 것인데 이것은 한국사회 공공갈등의 가장 부정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갈등에서 당사자의 필요는 입장이나 이익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로 이해된다. 이익이 당사자가 갈등을 통해 사실상 얻으려고 하는 것이고 입장이 이익을 얻기 위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주장이라면 필요는 갈등의 전개 또는 해결 여부에 상관없이 삶과 생존을 위해 반드시 충족돼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것은 인간 필요(human needs)로 이해되기도 한다. 인간 필요는 인정, 안전, 자존감 등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땅, 일자리, 수입원 등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수단인 경우도 있다. 이런 필요는 타협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필요는 공공정책의 구상 단계부터 고려돼야 하는 것이지만 흔히 외면되고 공공갈등은 필요의 충족이 외면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데 갈등의 형성 이후에도 필요는 공공기관의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중요성이 폄하된다. 때로는 시민 당사자가 필요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준까지 갈등이 충분히 전개되지 않기도 한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특징들 때문이다. 갈등이 오랜 시간 방치되고 파괴적으로 전개되며, 그에 따라 입장이 강화되고 급속히 정치화되며, 관계와 소통이 단절됨에 따라 상호 비난과 불신만 심화될 뿐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필요를 다룰 계기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격한 대립과 물리적 충돌이 반복되는 갈등의 위기 국면이 오랜 시간 지속되곤 한다. 당사자 필요가 외면되는 상황은 공공기관에게도 부담이 된다. 공공기관의 필요도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의 요구에 답하는 공공정책의 실행과 질 높은 공공재와 공공 서비스 제공을 통해 공공성을 담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존재 이유를 정당화시켜야 하는 공공기관의 필요도 외면된다. 그 결과 공공기관은 시민 당사자 및 많은 사회 구성원들의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한국사회 공공갈등의 특징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갈등의 건설적 전개와 바람직한 해결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공공갈등이 사회 발전과 민주주의 성숙의 계기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부정적 특징들을 만든 근본적인 책임은 공공기관에게 있다. 공공갈등이 공공정책을 둘러싸고 발생하며 공공정책의 구상과 실행의 책임이 공공기관에게 있지만 공공기관이 공공갈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이런 무책임한 태도와 행동은 공공기관과 시민 당사자 사이의 심각한 힘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오히려 그런 힘의 불균형을 통해 공공정책을 실행하고, 공공갈등을 문제적 개인 또는 집단의 이기적 주장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취급하며, 공공기관의 구조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시민 당사자의 입장을 바꿔 공공갈등을 해결하려는 공공기관의 태도와 조직 문화에서 비롯된다. 힘의 불균형 때문에 이런 태도와 조직 문화의 개선은 여전히 쉽지 않다.
3. 공공갈등해결 현황과 한계
공공갈등이 최소한 시민의 문제 제기를 허용하는 민주적 제도나 구조가 갖춰진 사회에서 발생한다는 것은 모든 민주주의 사회가 불가피하게 공공갈등에 직면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한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개인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갈등이 발생하는 것처럼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자연스럽게 공공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공공갈등은 그러므로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모든 민주주의 사회가 매일 직면하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정치 선진국들에 비해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된 공공갈등에 더 자주 직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의 공공갈등이 전체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전 사회 구성원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며, 사회 전체를 거의 마비시키는 경우도 흔하다. 당사자뿐 아니라 전체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하면 한국사회의 공공갈등을 모든 민주주의 사회가 직면하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기는 힘들다. 공공갈등의 발생 자체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부정적 영향의 파급력은 자연스럽지 못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공공갈등을 단지 공공기관과 시민 당사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만 취급할 수도 없다. 하나의 정책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공공갈등의 해결 여부가 당사자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 구성원과 심지어 미래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의 공공갈등은 당사자들 사이에서조차 적극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바람직한 수준에서 해결되지도 않는다. 결국 한국사회에 심각한 공공갈등이 많은 이유는, 또는 사회 구성원들이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축적되기 때문이며 갈등의 장기화 또는 악화로 인해 전체 사회가 받는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사회 공공갈등을 탐구하고 바람직한 대응과 해결을 모색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한국사회에서는 갈등해결(conflict resolution)이 아직 독립적인 연구 및 실천 분야로 자리 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갈등을 다루는 분야는 '갈등관리(conflict management)'라는 명칭을 가지고 연구 및 실행되고 있고 활동이 가장 활발한 갈등해결 분야 중 하나가 됐다. 한국사회에서 일반적 용어인 공공갈등해결 대신 갈등관리가 갈등해결의 원칙에 근거해 공공갈등을 다루는 것을 일컫는 용어가 된 것은 특이한 점이다. 보편적인 갈등해결 원칙에 따라 공공갈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갈등관리는 공공갈등해결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연구 및 실행을 둘러싼 환경을 본다면 갈등관리라 일컬어지는 한국사회의 공공갈등해결은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공공갈등해결의 포괄적인 상위 영역인 갈등해결과 이론적, 실천적 연계가 없이 거의 독립적으로 연구와 실행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연구 및 실행의 많은 부분이 공공기관과의 협력 및 공공기관의 요구에 의해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초기 단계에 있는 한국사회 공공갈등해결이 직면하고 있는 한계의 근본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특징은 공공갈등해결에서 공공기관의 필요와 요구가 일차적으로 고려되고 시민의 필요는 공공기관의 필요와 요구에 응하기 위한 부수적인 것처럼 취급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또한 공공기관과 시민 모두에게 포괄적인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에 대한 비대칭적 서비스 쏠림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공공갈등해결의 방향과 원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공갈등해결 현황 논의에서 중심 현안으로 다뤄질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의 공공갈등해결은 포괄적 상위 영역인 갈등해결의 응용 분야(applied area)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갈등해결 이론 및 실천과의 연계가 부족하다. 이것은 공공갈등해결이 가진 취약점이라 할 수 있다. 갈등해결의 원칙은 당사자에 의한 당사자의 문제 해결이다. 그러므로 갈등해결 과정은 모든 당사자의 참여와 합의에 의해 진행된다. 이것은 당사자들의 논의, 결정, 합의에 의해 과정의 세부 단계가 진행돼야 함을 의미한다. 갈등해결은 또한 갈등의 근본원인을 규명하고 다루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것은 갈등해결 과정에서 갈등 현안뿐만이 아니라 갈등을 야기한 구조와 관계의 문제들까지 다뤄져야 함을 의미하고, 갈등의 해결이 근본문제의 해결을 동반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원칙들은 기본적으로 모든 당사자의 공정하고 균등한 참여와 공동 합의에 의해 지켜지게 된다. 그러나 한국사회 공공갈등해결은 이런 기본적인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대체 개념인 갈등관리가 공공기관에 의해 말 그대로 적절한 수준에서 갈등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이해되거나 적용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공공갈등해결을 일컫는 갈등관리는 공공기관의 필요에 따라 공공기관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다. 갈등관리는 참여정부가 공공갈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모색하고 그 결과 다른 나라에서 실행되고 있는 당사자 참여가 중심이 된 갈등해결 방법을 도입하기로 하면서 고안된 용어다. 때문에 갈등관리는 처음부터 공공기관의 공공갈등 인식과 입장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것은 공공갈등이 대부분 공공기관의 일방적 정책 결정과 시민 당사자와의 합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시민 당사자를 설득하고 저항을 중단시킨 후 어떻게든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는 인식과 입장이었다. 공공갈등의 근본원인인 정부 및 공공기관의 일방적 정책 결정의 문제를 다루고 정책 구상 단계부터 시민 당사자를 참여시키는 구조로의 변화가 아니었다. 갈등해결 접근을 통한 최초의 공공갈등해결 노력인 한탄강댐 갈등 조정에서도 갈등의 근본원인인 정부의 일방적 결정과 주민과의 합의 부재의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고 과정은 댐의 건설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기술적 논의에 집중됐다. 당사자 합의 실패 후에는 정책의 계속적 실행을 위해 갈등해결 과정이 아닌 중재(arbitration) 절차가 진행됐다.
갈등관리는 참여정부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 정부 및 공공기관 주도로 영역이 구축됐고 관련된 인적, 물적 자원이 형성됐다. 때문에 갈등관리는 공공기관의 용어가 됐고 세부 실행 절차 및 내용은 공공기관의 필요를 반영해 채워졌다. 또한 지금까지의 거의 모든 공공갈등해결 사례들은 공공기관의 요청과 지원을 받은 ‘갈등관리 전문가’들이 공공기관과의 협력 하에서 진행한 것들이었다. 때문에 시민들의 요구인 특정 공공정책의 철회 자체는 대부분 논의 현안에서 제외됐으며 공공기관이 필요로 하는 정책의 수정 내지 주민 보상과의 맞교환 논의에 집중됐다. 이렇게 공공기관의 영향력 하에서 구축되고 실행돼온 갈등관리 영역은 태생적으로 시민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거나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는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비판적 논의와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공갈등해결 영역이 근본원인의 규명과 당사자 합의에 의한 해결을 원칙으로 삼는 갈등해결 이론 및 실천과 체계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고, 공공갈등해결을 단지 공공갈등을 종식시키는 사회 기제, 또는 공공기관의 갈등 대응 기제로만 여기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갈등관리로 일컬어지는 공공갈등해결이 공공기관의 요구에 따라 공공기관과의 협력 하에서 실행된다는 점은 특별히 공공갈등의 핵심 당사자인 시민 당사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돼 있음을 의미한다. 가장 심각한 피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공기관의 요구와 필요가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시민의 요구와 필요는 부수적이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가장 핵심적인 공공갈등해결 실행 방식 중 하나는 갈등영향평가(conflict assessment)로 보편적 공공갈등해결 실행에서는 ‘갈등분석’으로 일컬어지는 것이다. 공공기관은 갈등관리 전문가 또는 전문단체에 갈등영향분석을 의뢰해 갈등 상황, 당사자, 입장과 이해관계 등을 파악한 후 갈등의 해결을 위한 과정의 실행 가능성을 타진하게 된다. 그런데 조정 등의 해결 과정이 진행돼도 공공기관이 시민 당사자와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합의에 도달한 후 갈등을 해결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공공기관이 정책의 철회 또는 대폭 수정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시민 당사자와의 대화에 임하지 않고 정책을 유지한다는 기본 입장을 설정해 놓고 보상 또는 낮은 수준의 수정만 논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대형 공공갈등일수록 공공기관의 입장은 단호하다. 때문에 갈등영향평가는 물론 해결 과정까지 공공기관의 ‘노력’을 보여주는 요식행위가 되고 시민 당사자는 그 요식행위를 돕는 역할만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공공갈등해결 실행이 공공기관의 갈등해결 노력을 증명해주는 들러리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공공갈등해결이 실행되고 있지만 그것이 공공기관과 시민 모두에게 동등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공공갈등해결 서비스와 자문이 공공기관에 집중되는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 공공기관은 갈등관리 체계를 갖춰가고 있고 갈등 사례를 다루기 위해 전문가 또는 전문단체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그 결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갈등관리 서비스 분야가 형성되고, 갈등관리 서비스 수요자인 공공기관과 서비스 공급자인 전문가 및 전문단체 사이에 고객-서비스 공급자 관계 또한 형성되고 있다. 문제는 재원이 있는 공공기관으로 그런 서비스가 집중된다는 것이다. 특정 공공갈등을 둘러싸고 공공기관과 대립 관계에 있는 시민 당사자는 그런 서비스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거나 재원의 부족으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것은 상대적 약자인 시민 당사자에게는 또 다른 압력이 된다. 이런 서비스 쏠림 현상은 비판적으로 논의되고 평가돼야 하는 일이다. 공공갈등해결이 공공기관을 위한 배타적 서비스가 되거나 시민을 통제하는 기제로 전락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갈등해결이 시작되고 다양한 인적 자원과 전문단체가 형성돼 비교적 상호 견제와 감시가 잘 이뤄지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공공기관과 전문가의 고객-서비스 공급자 관계는 민감한 문제로 언급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아직 구체화되지도 않고 비판적 연구나 논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공공갈등해결 현황은 ‘시민의 소외’로 정리될 수 있다. 공공갈등해결에서 시민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갈등관리라는 이름으로 공공갈등해결 영역이 형성돼 있지만 시민은 그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문가의 서비스에 독립적으로 접근하기 힘들다. 공공기관이 전문 서비스를 독점하고 있으며 전문가 및 전문단체 또한 공공기관에 대한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현장에서 시민 당사자를 접촉하더라도 그것은 공공기관의 의뢰를 받아 필요한 절차를 진행할 때이다. 때문에 시민 당사자는 공공갈등해결 과정을 공동 구상하고 결정지을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 공공기관의 갈등관리 실행 대상이 된다. 물론 공공기관의 제안과 지원으로 진행되는 과정이 반드시 시민의 소외를 야기한다고 볼 수는 없다. 시민 당사자를 초대해 전문가의 선정부터 필요한 과정의 결정까지 합의를 통해 모든 단계를 진행한다면 시민 당사자는 소외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의 공공갈등해결은 공공기관의 일방적인 결정과 전문가 선정, 정보와 서비스의 독점, 과정의 목적과 방향 결정, 시민 당사자의 대상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런 공공기관 주도의 실행, 서비스의 쏠림 현상, 그리고 시민의 소외는 결국 갈등의 해결조차 힘들게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 공공갈등이 정책을 둘러싸고 공공기관과 시민 당사자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임에도 불구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한쪽이 주도하고 다른 쪽은 수동적 참여만 한다면 과정의 질은 물론 결과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민 당사자는 자신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공기관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시민을 소외시키는 과정을 신뢰할 수도 거기에 적극 참여할 수도 없다.
공공기관이 주도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며 시민이 소외되는 현재의 상황은 공공갈등해결 자체를 왜곡시킬 수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공공갈등해결이 시작된 이유는 시민과의 대화와 합의로 공공정책을 결정하고 그로 인해 시민이 원하는, 적어도 시민의 필요에 반하지 않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공공정책에 대한 시민의 만족도와 신뢰를 높이고 정책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공공갈등해결의 핵심은 공공기관과 시민의 대화와 협력이다. 이것은 공청회나 설명회 같은 요식적인 대화와 협력이 아니라 공공기관과 시민이 공정한 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해 공동의 논의를 거쳐 합의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기관과 시민이 시작부터 끝까지 과정을 공동 운영해야 하고, 공공기관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와 서비스에 시민도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모든 절차가 투명하게 공유돼야 한다. 공공갈등해결 과정은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 있게 계획되고 실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공갈등해결은 갈등해결의 원칙에 입각해 공공갈등을 해결하는 새로운 사회 기제가 아니라 단지 시민을 통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4. 한계 극복을 위한 과제
공공갈등은 한국사회의 안녕을 좌우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지닌 문제다. 무엇보다 그 영향이 부정적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 현안이 되고 있다. 갈등이 비뚤어진 관계, 구조, 문화의 문제를 드러나게 하고 변화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거의 모든 공공갈등이 부정적 영향만 미치는 한국사회의 상황은 비판적 성찰을 필요로 한다. 시민의 저항이 잦아지고 해결되지 않는 공공갈등이 늘어나면서 공공갈등을 둘러싼 공공기관과 시민의 대립을 단순히 불가피한 사회 현상으로 취급하려는 시도는 경계돼야 한다. 공공갈등의 발생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공공기관과 시민의 대립으로, 나아가 대부분 공공기관의 ‘승리’와 시민의 ‘패배’로 일단락되는 상황은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갈등이 갈등 당사자는 물론 전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비판적 성찰이 이뤄져야 한다. 해결되지 않는 공공갈등은 시민 당사자의 개인적, 집단적 삶과 관계를 파괴한다.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의 질을 낮추고 현재 세대는 물론 미래 세대의 삶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사회의 안녕을 해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정책의 질도 낮춘다. 이런 모든 상황 진단과 성찰에 따라 공공갈등을 바람직한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 가능성의 하나로 등장한 것이 공공갈등해결이다. 그러나 공공갈등해결은 아직 유용한 사회 기제로 자리 잡지 못했고 사회의 객관적인 평가도 거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여러 가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공공갈등해결이 갈등의 바람직한 해결에 기여하고 최소한 갈등에 직면한 시민에게 해가 되지 않으려면 비판적 자세로 그런 한계를 성찰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로 적극 수용해야 한다.
공공갈등해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갈등해결의 토대 위에서 체계적인 연구와 실천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개념의 정리가 이뤄져야 한다. 공공갈등의 예방과 해결을 다루는 갈등관리는 보편적 용어인 공공갈등해결을 의미하지만 일각에서는 공공갈등해결을 포함하는 상위 영역인 갈등해결과 혼동돼 사용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갈등관리에서는 갈등해결 이론 및 실천의 토대가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때문에 갈등관리와 갈등해결의 개념이 정리돼야 하며 나아가 갈등해결과의 이론적, 실천적 연결도 바로잡아져야 한다. 다른 한편 갈등관리는 특정 절차의 기술적인 적용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공공기관의 기제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런 접근은 갈등해결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갈등이 인간 사이의 입장, 이해, 필요의 대립에서 발생하고 쉽게 규명되지 않는 많은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갈등해결은 정형화된 절차의 일반적 적용을 경계한다. 또한 갈등관리로 이름 붙여진 공공갈등해결은 공공기관을 위한 기제가 아니라 공공갈등을 해결할 필요가 있는 모든 당사자를 위한 기제다. 이런 혼동과 오해는 갈등해결의 이론 및 실천의 토대 위에서 갈등관리의 이론 및 실천을 정리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갈등관리, 갈등해결, 공공갈등해결의 관계지도(mapping)와 개념 및 실행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갈등관리가 갈등해결을 추구하면서도 실제 공공기관에서는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수단으로 오용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갈등해결의 이론 및 실천의 토대 위에서 갈등관리 영역이 정립되면 갈등관리 체계를 구축하면서도 공공갈등과 시민 저항을 공공정책의 장애물로 취급하고, 공공갈등을 통제하기 위해 갈등관리를 적용하며, 선제적 대응과 조기해결이 아닌 방치와 봉합을 당연시하는 공공기관의 갈등대응 문화에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나아가 갈등관리가 공공기관을 위한 변명이 아니라 나은 공공정책을 만들고 시민이 공공정책의 피해자가 되는 것을 막는데 활용돼야 한다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두 번째 과제는 공공기관의 역량 강화다. 공공기관이 갈등관리 체계를 갖춰가고 있지만 실제 실행 역량은 턱 없이 부족하다. 갈등관리 업무의 기초가 되는 갈등과 갈등해결에 대한 이해도 또한 낮은 수준이다. 때문에 공공기관 실무자들은 갈등관리를 시민과의 합의에 의한 공공정책의 구상과 실행을 지원하는 새로운 접근이 아니라 기술적 절차를 적용해 공공갈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시민의 저항을 통제하는 공공기관의 활용 기제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 결과 갈등관리 체계가 수립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갈등과 시민의 문제 제기에 대한 공공기관의 대응 태도에는 별 변화가 생기지 않고 있다. 갈등관리가 공공갈등의 예방과 해결에 제대로 기여할 수 있으려면 공공기관의 태도와 행동 변화가 우선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의 역량이 강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 공공기관에게 다양한 갈등해결 교육이 제공돼야 하고 교육을 통해 공공기관의 갈등관리가 말처럼 갈등을 관리만 하는 수단이 아님이 확인돼야 한다. 교육에는 갈등해결의 철학, 가치, 원칙에 대한 이해가 포함돼야 한다. 공공갈등해결의 가치와 원칙은 물론 공공갈등해결을 통한 공공기관과 시민의 관계 개선, 역량형성, 공공정책의 질 향상 등 공공갈등해결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도 포함돼야 한다. 시민과의 합의를 통한 공공정책의 결정과 공공갈등의 해결이 공공기관의 원칙과 문화가 될 수 있도록 공공기관 전체 실무자에 대한 갈등과 갈등해결 기초 교육도 제공돼야 한다.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현 갈등관리 실행 절차의 한계도 공공기관과 공유돼야 하며 그것이 공공갈등의 해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비판적 논의도 진행돼야 한다. 시민의 소외를 예방하고 시민의 실질적 참여를 보장할 수 있는 절차의 구상과 실행도 모색돼야 한다. 이 모든 교육, 논의, 실행을 통해 공공기관의 역량이 향상돼야 공공갈등해결이 실제적으로 공공갈등의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
시민의 소외를 중단시키고 시민을 공공갈등해결의 중심 주체로 만드는 일은 한계 극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돼야 한다. 시민이 소외된, 또는 시민의 수동적 참여만 이뤄지는 공공갈등해결은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공공갈등의 해결에 기여하지 못한다. 공공갈등이 발생하는 이유는 시민이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고, 시민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정책의 영향을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공공갈등의 발생 자체는 이미 시민 의식이 공공정책을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이 됐으며 공공기관이 더 이상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할 수 없게 됐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시민을 계속 배제시키고 공공갈등해결 과정에서조차 시민을 소외시킨다면 공공기관과 시민의 대립은 악화되고 공공갈등은 증가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공공정책의 순조로운 실행을 위해서도 시민을 적극적으로 공공정책 결정에 참여시켜야 한다. 공공갈등해결은 조직적인 시민 참여와 공공기관과 시민의 공동 논의와 합의를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시민의 소외를 중단하려면 현재 실행되고 있는 공공갈등해결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규명하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먼저 정부가 고안한 갈등관리가 공공기관 내에서 배타적으로 체계화되고 실행되고 있는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공공갈등해결이 작동하려면 시민도 공공기관과 마찬가지로 교육과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보장돼야 한다.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도 보장돼야 하고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공공기관이 전문가에게 의뢰해 갈등을 분석할 때 시민 당사자도 전문가의 지원을 받아 독립적으로 갈등을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의 태도와 행동이 시민 당사자의 독립적 절차를 지원하고 때로 독려까지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변화돼야 한다. 공공기관이 시민을 대결 상대로 보지 않고 공공갈등의 해결을 위한 파트너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공공기관이 주도적으로 과정을 설계하고 시작하더라도 시민 당사자를 참여시켜 공동으로 전문가 선정과 과정 결정을 진행해야 한다. 공공기관 뿐만이 아니라 전문가 또는 전문단체 또한 적극적으로 시민 당사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공공기관, 시민 당사자, 시민단체, 기업 등이 공동으로 재원을 마련해 과정을 진행하는 방법까지 모색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미국의 공동체 협력과정(community collaboration)이나 정책 대화 등에 대한 공공기관, 대학, 연구기관, 전문단체, 기업 등의 협력과 지원 사례 등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한국사회에서의 적용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공공갈등해결을 이해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사회에서 공공갈등해결은 갈등관리라는 이름으로 연구 및 실천이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갈등해결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이유, 철학, 원칙 등 토대에 대한 이해는 거의 언급되지도 공유되지도 않고 있다. 이런 이해의 부족은 갈등관리를 공공갈등을 해결하는 새로운 사회적 접근이 아니라 갈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새로운 사회 통제 기제로 오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기여한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공공갈등해결 영역이 형성되고, 공공기관에 대한 서비스 쏠림 현상이 생기며, 그로 인해 시민 당사자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는 배제되는 현재의 상황은 그런 이해가 부족한데서 기인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공갈등해결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이유는 또 하나의 사회 통제 기제나 갈등을 쉽게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해서가 아니었다. 시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공공정책을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야 할 필요가 제기됐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시작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시민들의 미래를 시민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이 획기적으로 공공정책 결정 방식을 바꾸는 시도를 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중심에는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시민이 원하는 공공정책을 만든다는 행정 철학이 있었다. 또한 반드시 공공기관과 시민이 공동으로 공정한 과정을 설계하고 그 안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논의하고 합의를 도출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이런 공공갈등해결의 철학과 원칙은 한국사회 공공갈등해결에서도 명료하게 이해되고 언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사회 공공갈등해결이 직면한 한계를 극복할 수 없고 한국사회에 가장 바람직하게 적용될 수 있는 수정 모델이 개발될 수도 없다.
공공정책은 시민 삶의 향상에 기여해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공공정책이 시민 삶을 위협하고 나아가 파괴한다고 여겨질 때 공공갈등이 발생한다. 실제 한국사회의 공공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시민의 굴복을 강요함으로써 개인과 집단 삶의 파괴를 야기하곤 했다. 이것은 공공정책의 최대 실패를 의미한다. 그러나 공공기관은 그에 대한 책임을 외면해 왔다. 공공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장기화되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물질적, 신체적, 정신적 피해는 공공기관이 아닌 시민 당사자들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시민들을 위한 공공정책 수립과 실행 과정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은 모순적 구조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공공갈등해결은 그런 모순적 구조를 바로 잡고 공공정책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최소한 공공갈등으로 인해 시민의 피해가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공공갈등해결은 공공갈등에 가장 바람직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모든 당사자의 합의에 의한 최선의 결과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유용한 사회 기제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공공갈등을 사회 구조의 개선과 발전의 계기로 만드는데 획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공공갈등해결이 현재 직면한 문제들을 성찰하지 않고 개선하지 않는다면 활용이 왜곡되고 그 결과 공공기관의 구조적 문제와 타성의 합리화에 기여하는 반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시민의 필요를 외면하는 공공정책을 정당화하고 그에 따라 시민 당사자의 개인적, 집단적 삶을 파괴하는데 부분적으로 기여하게 될 수도 있다. 한국사회 공공갈등 현황을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변화를 위한 과제를 규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위의 글은 2014년 12월 11일 고려대학교 한국사회연구소 학술 심포지엄 <한국의 공공갈등과 한국인의 갈등의식>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무단 복사와 배포를 할 수 없으며 인용시 반드시 저자와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각주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1. 공공갈등해결의 등장
공공갈등(public conflict)은 민주주의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공공갈등은 민주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가 실행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공공갈등이 발생할 이유가 없고 공공갈등이 발생한다는 것은 곧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공갈등은 정책 결정 및 실행과 관련해 발생하고, 공공정책에 대해 시민의 문제 제기 및 저항이 나타나며, 그에 따라 공공기관과 시민은 대립하게 된다. 공공기관이 시민을 고려해 정책을 결정하고 거기에 시민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최소한의 민주적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공공갈등은 발생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공공갈등은 시민이 신변에 위험을 느끼지 않고 정책에 문제 제기 및 저항을 할 수 있을 수준의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정부 및 공공기관이 시민들의 문제 제기 및 저항에 조금이나마 반응하는 환경이 조성돼야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공갈등 발생의 기본적 전제가 된다. 낮은 수준일지라도 시민의 문제 제기 및 저항을 보장하는 민주주의와 완전한 불균형을 벗어나 소극적 수준이나마 상호 견제가 이뤄질 수 있는 정부 및 공공기관과 시민 사이의 힘의 관계가 형성돼 있어야 한다. 갈등은 최소한 한 당사자의 일방적 결정을 제지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의 관계가 당사자들 사이에 형성돼 있어야 발생하고 전개될 수 있는데 공공갈등 또한 그 기본조건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공공갈등이 민주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공공갈등의 바람직한 해결 여부가 민주주의의 질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갈등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역할에서 비롯된다. 갈등은 흔히 부정적인 사건이나 현상으로 인식되지만 평화갈등학(peace and conflict studies)에서 갈등은 직면한 문제를 규명하고 해결하며 당사자들 사이 새로운 관계 형성의 기회를 제공하는 긍정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공공갈등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공공갈등은 근거 없이 발생하지 않는다. 공공갈등이 발생했다는 것은 갈등의 원인이 된 정책에 문제가 있거나, 적어도 정책의 영향을 받는 시민들이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또는 정책의 결정과 실행 과정에 문제가 있거나, 정책을 제안하고 결정하는 공공기관의 태도나 행동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준다. 물론 그것은 시민만 느끼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일방적 문제 인식이 갈등의 발생을 막아주지는 않는다. 공공갈등은 시민과 공공기관 사이에 신뢰가 부족하고 힘의 불균형이 심할 때 발생하고 장기간 지속된다. 특별히 불균형한 힘의 관계에 대한 공공기관의 과도한 의존이 시민의 강한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공공갈등이 공공기관 또는 시민의 과민한 대응이나 해석에서 비롯될 수도 있지만 공공갈등의 존재 자체는 민주주의의 실행 구조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준다. 때문에 공공갈등이 바람직한 방식으로 해결되면 정책 결정 및 실행과 관련된 구조가 공공기관과 시민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시민과 공공기관의 관계 또한 대립과 견제가 아닌 협력과 대화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런 공공갈등의 해결은 민주주의의 질적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물론 민주주의의 질적 향상이 공공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주된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공공갈등의 빈번한 발생과 장기간 지속이 민주주의의 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도 해결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사실이다.
공공갈등의 해결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공공갈등해결(public conflict resolution)은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 시작됐다. 이것은 공공갈등의 증가가 가져온 자연스런 결과였다. 미국사회는 1960년대와 1970년대 공공갈등의 급증을 경험했고 이것은 공공기관의 일방적 정책 결정에 대한 시민들의 문제 제기에서 비롯됐다. 시민들은 공공기관의 관료주의 문화와 결정 권한의 집중, 그로 인한 일방적 정책 결정과 시민의 소외에 불만족을 표출했고 공공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의 참여를 요구했다. 이런 시민들의 요구는 시민의식의 향상과 시민들의 조직화, 그로 인한 시민단체들의 증가가 가져온 결과였다. 그러나 시민들이 문제를 제기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시민들은 공공기관이 시민들을 위해 공공정책을 결정 및 실행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까지 공공기관은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시민의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실제 공공기관의 정책은 합리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았으며 현장에서 시민의 삶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돼 있었다. 이런 시민 배제는 공공기관과 시민 사이의 극심한 힘의 불균형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시민들은 이런 관계에 문제를 제기했고 정책 결정 권한의 분산을 요구했다. 다시 말해 적어도 시민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 결정 과정에는 시민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주장은 시민의 조직화가 이뤄지면서 되돌릴 수 없는 추세가 됐고 시민과 공공기관 사이의 힘의 불균형에 균열을 가져왔다. 공공기관은 이런 시민의 도전에 직면해 새로운 방식의 정책 결정 및 실행을 필요로 했고 그 결과 시도된 것이 공공갈등해결이었다.
1970년대 중반 미국사회에서 공공갈등해결의 시작이 가능했던 것은 이미 다른 분야에서 축적된 갈등해결 경험과 과정을 실행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1930년대부터 실행된 조정(mediation)을 통한 노사갈등의 해결 경험은 제삼자 지원과 진행에 의한 공공갈등해결에 기본적 구상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1960년대에 시작된 인종갈등 대응 경험과 1970년대 성행한 가족, 이웃, 청소년, 상거래 문제 등 다양한 공동체 문제 해결(community dispute resolution) 경험 또한 공공갈등해결의 시작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무엇보다 노사갈등과 공동체 문제 해결을 위한 제삼자 서비스와 사회적 기제의 존재는 공공갈등의 해결을 위한 인적 자원의 확보를 의미했다. 노사갈등과 공동체 문제 해결 분야에서 활동해온 전문가들은 자연스럽게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공공갈등해결의 초기 사례들을 다루게 됐다. 그러나 공공갈등은 노사갈등이나 공동체 문제와는 근본적으로 달랐고 때문에 접근 또한 다를 수밖에 없었다. 노사갈등과 공동체 문제에 대한 대응은 1910년대에 등장하고 1960년대에 운동 차원에서 활성화된 비공식주의(infomalism)와 그에 기반한 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즉 대체적 사법절차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이것은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과 장시간과 고비용을 요구하는, 그러면서도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한 사법적 절차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시민운동 차원의 대응이었다. 노사갈등과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다툼은 대부분 이익의 충돌에서 발생한 것이었기 때문에 ADR 접근을 통해 다룰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공갈등은 달랐다. 공공갈등은 시민들의 정책 결정 과정 참여와 공공기관과의 정책 결정 권한 공유 요구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때문에 ADR 접근으로 다룰 수 있는 갈등이 아니라 새로운 접근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공공갈등해결은 기존에 있던 제삼자 서비스를 활용한 문제 해결 경험과 체계에서 구상을 얻어 출발한 것이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차별화된 접근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공공갈등해결이 등장하게 된 계기는 작동하지 않는 사법, 행정, 입법 절차 때문이었다. 공공갈등해결은 작동하지 않는, 그 결과 시민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전통적 절차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불만을 다룰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으로 여겨졌다. 또한 환경을 해치지 않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공공정책과 시민의 참여에 의한 공공정책 결정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문제 제기와 저항으로 발생한 새로운 형태의 갈등을 다룰 수 있는 새로운 접근으로 이해됐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시민의 조직화가 이뤄지면서 많은 시민단체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반하는 공공정책을 둘러싸고 공공기관과 장기간 대립하거나 소송을 선택하곤 했다. 그러나 사법 절차는 다양한 당사자와 현안이 개입된 공공갈등을 다루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 많은 시민들은 적대적으로 문제를 다루고 승자와 패자로 결론을 내리는 사법 절차 자체에 만족하지 못했다. 이런 배경에서 등장한 공공갈등해결은 기존 사회 구조와 체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새로운 문제 해결 접근으로 이해됐다. 이런 배경에서 시작부터 공공갈등해결은 시민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정책 결정에 참여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시민이 원하는 공공정책을 수립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공공갈등해결은 편의와 효율성을 위해 사법적 절차를 대체하고 시민의 불만을 통제하는 기제로 출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복잡한 과정과 그로 인해 장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시민의 참여를 통해 시민의 필요에 응하는 공공정책을 수립하고, 시민과 공공기관의 협력을 통해 공공정책의 질을 높이며, 장기적으로 시민과 공공기관 사이 힘의 불균형을 극복함으로써 공공정책 결정 과정 개선에 기여한다는 가치에 기반하고 있었다.
2. 한국사회 공공갈등의 특징
공공갈등은 다양한 당사자와 입장, 다양하고 복잡한 현안, 장기간 전개, 공공기관과 시민의 힘겨루기 등 여러 가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공공갈등이 다양한 개인과 집단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정책을 둘러싸고 발생하고, 공공기관과 시민과의 대립을 야기하며, 관료문화와 정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공공갈등은 이런 일반적 특징들에 덧붙여 다른 독특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특징들은 한국의 거의 모든 공공갈등에서 발견되는 부정적인 특징들이고, 공공갈등의 악화와 미해결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국의 공공갈등을 언급할 때 특별히 주목해야 것들이다.
한국사회의 공공갈등은 지나치게 오랜 시간 방치되거나 급속하게 파괴적으로 전개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갈등이 발생해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갈등의 자연스런 전개가 아니라 무관심과 역량 부족에서 비롯된 인재와도 같은 것이다. 갈등이 제대로 다뤄지려면 기본적으로 세 단계에서 갈등에 대응하고 개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첫 단계는 문제가 생기고 그와 관련해 이해 관계자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이때에는 갈등이 잠재적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갈등의 예방을 위한 대응과 개입이 가능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이해 관계자들이 대화를 통해 갈등의 표출을 막고 문제의 공동 해결을 모색할 수 있다. 둘째 단계는 문제를 둘러싸고 이해 관계자들이 자신들의 입장과 이익을 주장하는 시점이다. 이때는 갈등 당사자들 사이에 대립적, 또는 우호적 관계가 형성되면서 상호 탐색이 이뤄지는 시기다. 아직 갈등이 악화되지도 대립이 극으로 치닫지도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갈등의 조기 해결을 위한 대응과 개입이 가능하다. 셋째 단계는 갈등 현안이 고착되고, 갈등 당사자들의 대립이 격화되며, 노골적인 상호 충돌로 위기가 형성되는 시점이다. 이때는 갈등 발생에 기여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함은 물론 당사자들 사이 충돌이 생기고 갈등이 악화되면서 새롭게 발생한 상호 불신과 관계 단절의 문제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기 위한 대응과 개입이 필요하다.
한국사회 공공갈등의 경우에는 언급한 세 단계 중 어느 단계에서도 적절한 대응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개입이 이뤄지지 않는다. 공공갈등의 특징상 공공기관이 가장 주도적으로 문제를 다루고 표출된 갈등에 대응해야 하지만 공공기관은 무관심 또는 방치의 방법을 택하곤 한다. 이것은 갈등의 발생 여부에 상관없이 여전히 공공기관이 갈등을 야기한 공공정책의 실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공기관은 시민 당사자의 저항이나 부정적 여론이 부담스럽지만 결국엔 자신의 의지로 해당 공공정책을 실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때로 공공기관은 공공정책으로 야기되는 개인의 희생을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하고 일반화시킴으로써 공공갈등 대응의 필요를 거부하고 갈등을 방치한다. 그러나 직면한 공공갈등을 일반화시킬 수 없는 시민 당사자는 공공기관의 관심과 응답, 그리고 여론, 언론, 정치권 등의 지원을 받기 위해 저항을 강화시킨다. 자신과 미래 세대의 삶과 생존을 위해 당장의 손실을 감수하고 모든 자원을 투자하며 때로 사회의 공식적, 비공식적 규범을 어기는 위험한 수준까지 저항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결국 갈등은 파괴적으로 전개되고 공공기관의 무대응과 방치가 길어질수록 파괴적 전개도 가속된다.
한국사회 공공갈등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흔히 이익보다 입장에 더 초점이 맞춰진다는 것이다. 갈등에 직면하는 당사자들은 모두 자신의 입장(position)을 가지고 있다. 당사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이익(interest)을 얻기 위해 강한 입장을 표출한다. 이런 이유로 많은 갈등해결 연구자들이 입장을 이익을 얻기 위한 표면적 수단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입장은 단순히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되지도, 또는 이익을 위해 쉽게 포기되지도 않는다. 특별히 체면과 명분이 중요시되는 한국문화에서 입장은 때로 큰 이익 앞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이유이자 존재의 의미가 되곤 한다. 공공갈등의 경우에는 입장이 더 큰 역할을 하고 때로 이익이 곧 입장이 되기도 한다. 제주 해군기지 갈등, 밀양 송전탑 갈등, 용산 화상경마장 갈등 등의 사례를 보면 주민들의 이익은 곧 입장이 됐고 입장은 어떤 물질적 보상을 통해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됐다. 주민들은 공공정책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존재를 위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입장과 이익을 분리할 수도, 입장 포기를 위해 이익을 발굴할 수도 없었다. 입장이 두드러지는 공공갈등일수록 선제적 대응과 조기 해결이 필요하다. 대립이 격화되지 않았을 때 대화를 통해 입장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호 이익에 맞춰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무대응과 방치는 입장의 강화를 만들어내고 결국 입장을 포기할 명분까지 상실하게 만든다. 갈등이 장기화되고 악화될수록 입장은 강화되고 포기하기 힘든 민감한 문제가 되지만 공공기관은 입장의 민감성을 고려하지 않는 사무적 태도로 시민 당사자에 대응하곤 한다.
정치화는 한국사회 공공갈등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다. 정치화는 입장 강화와 입장의 충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특징이기도 하다. 공공갈등이 정치화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공공갈등이 공공정책을 둘러싸고 발생하며 공공정책이 정부의 통치 방향과 정치권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공공갈등이 가지는 보편적 특징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유독 한국사회에서 공공갈등의 정치화가 급진전되고 강화되는 이유는 정부와 공공기관의 관계가 경직돼 있고, 정치권이 공공기관에 미치는 영향이 크며, 그에 맞서 공공기관과 시민 당사자가 공공갈등의 전개 및 해결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념 대립이 심하기 때문이다. 공공정책은 어느 정도 정부의 통치 이념을 반영하게 돼 있지만 한국의 경우 정부의 변화에 따라 공공정책의 기조가 달라지곤 한다. 때문에 공공갈등은 이념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되고 여론의 지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공공갈등이 정부 및 공공기관과 시민 당사자 사이의 이념 대결로 진화되곤 한다. 정치화는 시민단체가 관여되는 경우 더 강화된다. 이것이 공공갈등이 정치화되는 세 번째 이유다. 시민단체의 공공갈등 관여는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공공갈등에 대한 시민단체의 입장 표명은 공공기관에 의해 적절치 않은 ‘개입’으로 해석된다. 공공기관은 시민단체를 당사자의 하나로 보지 않고, 때로는 ‘배후 세력’으로 취급하며, 현지 주민보다 시민단체에 더 큰 관심을 쏟기도 한다. 시민단체의 입장 표명이나 주민들에 대한 지지 또는 지원을 시민단체로서의 사회적 역할이나 책임으로 여기지 않고 정치적 개입으로 해석하는 정부 및 공공기관의 접근 때문에 공공갈등은 정치화된다. 시민단체의 관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공기관의 태도 때문에 갈등의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시민 당사자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거나 소외되는 결과가 생기곤 한다.
한국사회 공공갈등의 또 다른 특징은 짧은 시간에 관계와 소통이 단절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급속도로 대화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해결의 가능성 또한 현저하게 줄어든다. 개인 또는 집단의 갈등에서 당사자들 사이에 관계와 소통이 단절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대립과 상호 비난이 강화되면서 갈등이 위기에 직면할 때는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공갈등에서 공공기관과 시민 당사자 사이에 관계와 소통이 짧은 시간 안에 단절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 아니다. 공공갈등이 사적이 아닌 공적인 문제며, 따라서 공공기관이 정책 구상 단계부터 갈등 민감성을 가지고 시민 당사자에게 필요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또한 갈등 발생 후에도 공적인 책임을 가지고 시민 당사자에게 접근한다면 충분히 극복될 수 있는 문제기 때문이다. 공공갈등에 직면한 시민 당사자가 흔히 공공기관에게 공식적인 대화와 협상을 요구하는 상황을 고려해 봐도 그렇다. 결국 관계와 소통이 단절되는 가장 큰 이유는 공공갈등에 대한 공공기관의 무관심, 무대응, 방치 때문이고, 시민 당사자에 대한 공공기관의 억압적 태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공공기관의 태도와 대응으로 인해 시민 당사자의 입장이 강화되고 결국 공공기관과의 모든 대화 및 접촉을 거부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관계와 소통이 단절되는 또 다른 이유는 관계와 소통의 복원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사회적 체계와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공기관이 갈등을 완화시키거나 해결하기 위해 갈등해결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미 관계와 소통이 단절되고 불신이 쌓인 후에 시민 당사자는 공공기관의 의뢰를 받은 전문가까지 불신하게 된다.
위의 모든 특징들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당사자의 필요(needs)가 외면된다는 것인데 이것은 한국사회 공공갈등의 가장 부정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갈등에서 당사자의 필요는 입장이나 이익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로 이해된다. 이익이 당사자가 갈등을 통해 사실상 얻으려고 하는 것이고 입장이 이익을 얻기 위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주장이라면 필요는 갈등의 전개 또는 해결 여부에 상관없이 삶과 생존을 위해 반드시 충족돼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것은 인간 필요(human needs)로 이해되기도 한다. 인간 필요는 인정, 안전, 자존감 등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땅, 일자리, 수입원 등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수단인 경우도 있다. 이런 필요는 타협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필요는 공공정책의 구상 단계부터 고려돼야 하는 것이지만 흔히 외면되고 공공갈등은 필요의 충족이 외면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데 갈등의 형성 이후에도 필요는 공공기관의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중요성이 폄하된다. 때로는 시민 당사자가 필요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준까지 갈등이 충분히 전개되지 않기도 한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특징들 때문이다. 갈등이 오랜 시간 방치되고 파괴적으로 전개되며, 그에 따라 입장이 강화되고 급속히 정치화되며, 관계와 소통이 단절됨에 따라 상호 비난과 불신만 심화될 뿐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필요를 다룰 계기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격한 대립과 물리적 충돌이 반복되는 갈등의 위기 국면이 오랜 시간 지속되곤 한다. 당사자 필요가 외면되는 상황은 공공기관에게도 부담이 된다. 공공기관의 필요도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의 요구에 답하는 공공정책의 실행과 질 높은 공공재와 공공 서비스 제공을 통해 공공성을 담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존재 이유를 정당화시켜야 하는 공공기관의 필요도 외면된다. 그 결과 공공기관은 시민 당사자 및 많은 사회 구성원들의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한국사회 공공갈등의 특징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갈등의 건설적 전개와 바람직한 해결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공공갈등이 사회 발전과 민주주의 성숙의 계기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부정적 특징들을 만든 근본적인 책임은 공공기관에게 있다. 공공갈등이 공공정책을 둘러싸고 발생하며 공공정책의 구상과 실행의 책임이 공공기관에게 있지만 공공기관이 공공갈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이런 무책임한 태도와 행동은 공공기관과 시민 당사자 사이의 심각한 힘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오히려 그런 힘의 불균형을 통해 공공정책을 실행하고, 공공갈등을 문제적 개인 또는 집단의 이기적 주장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취급하며, 공공기관의 구조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시민 당사자의 입장을 바꿔 공공갈등을 해결하려는 공공기관의 태도와 조직 문화에서 비롯된다. 힘의 불균형 때문에 이런 태도와 조직 문화의 개선은 여전히 쉽지 않다.
3. 공공갈등해결 현황과 한계
공공갈등이 최소한 시민의 문제 제기를 허용하는 민주적 제도나 구조가 갖춰진 사회에서 발생한다는 것은 모든 민주주의 사회가 불가피하게 공공갈등에 직면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한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개인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갈등이 발생하는 것처럼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자연스럽게 공공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공공갈등은 그러므로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모든 민주주의 사회가 매일 직면하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정치 선진국들에 비해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된 공공갈등에 더 자주 직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의 공공갈등이 전체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전 사회 구성원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며, 사회 전체를 거의 마비시키는 경우도 흔하다. 당사자뿐 아니라 전체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하면 한국사회의 공공갈등을 모든 민주주의 사회가 직면하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기는 힘들다. 공공갈등의 발생 자체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부정적 영향의 파급력은 자연스럽지 못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공공갈등을 단지 공공기관과 시민 당사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만 취급할 수도 없다. 하나의 정책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공공갈등의 해결 여부가 당사자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 구성원과 심지어 미래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의 공공갈등은 당사자들 사이에서조차 적극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바람직한 수준에서 해결되지도 않는다. 결국 한국사회에 심각한 공공갈등이 많은 이유는, 또는 사회 구성원들이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축적되기 때문이며 갈등의 장기화 또는 악화로 인해 전체 사회가 받는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사회 공공갈등을 탐구하고 바람직한 대응과 해결을 모색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한국사회에서는 갈등해결(conflict resolution)이 아직 독립적인 연구 및 실천 분야로 자리 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갈등을 다루는 분야는 '갈등관리(conflict management)'라는 명칭을 가지고 연구 및 실행되고 있고 활동이 가장 활발한 갈등해결 분야 중 하나가 됐다. 한국사회에서 일반적 용어인 공공갈등해결 대신 갈등관리가 갈등해결의 원칙에 근거해 공공갈등을 다루는 것을 일컫는 용어가 된 것은 특이한 점이다. 보편적인 갈등해결 원칙에 따라 공공갈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갈등관리는 공공갈등해결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연구 및 실행을 둘러싼 환경을 본다면 갈등관리라 일컬어지는 한국사회의 공공갈등해결은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공공갈등해결의 포괄적인 상위 영역인 갈등해결과 이론적, 실천적 연계가 없이 거의 독립적으로 연구와 실행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연구 및 실행의 많은 부분이 공공기관과의 협력 및 공공기관의 요구에 의해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초기 단계에 있는 한국사회 공공갈등해결이 직면하고 있는 한계의 근본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특징은 공공갈등해결에서 공공기관의 필요와 요구가 일차적으로 고려되고 시민의 필요는 공공기관의 필요와 요구에 응하기 위한 부수적인 것처럼 취급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또한 공공기관과 시민 모두에게 포괄적인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에 대한 비대칭적 서비스 쏠림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공공갈등해결의 방향과 원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공갈등해결 현황 논의에서 중심 현안으로 다뤄질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의 공공갈등해결은 포괄적 상위 영역인 갈등해결의 응용 분야(applied area)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갈등해결 이론 및 실천과의 연계가 부족하다. 이것은 공공갈등해결이 가진 취약점이라 할 수 있다. 갈등해결의 원칙은 당사자에 의한 당사자의 문제 해결이다. 그러므로 갈등해결 과정은 모든 당사자의 참여와 합의에 의해 진행된다. 이것은 당사자들의 논의, 결정, 합의에 의해 과정의 세부 단계가 진행돼야 함을 의미한다. 갈등해결은 또한 갈등의 근본원인을 규명하고 다루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것은 갈등해결 과정에서 갈등 현안뿐만이 아니라 갈등을 야기한 구조와 관계의 문제들까지 다뤄져야 함을 의미하고, 갈등의 해결이 근본문제의 해결을 동반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원칙들은 기본적으로 모든 당사자의 공정하고 균등한 참여와 공동 합의에 의해 지켜지게 된다. 그러나 한국사회 공공갈등해결은 이런 기본적인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대체 개념인 갈등관리가 공공기관에 의해 말 그대로 적절한 수준에서 갈등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이해되거나 적용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공공갈등해결을 일컫는 갈등관리는 공공기관의 필요에 따라 공공기관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다. 갈등관리는 참여정부가 공공갈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모색하고 그 결과 다른 나라에서 실행되고 있는 당사자 참여가 중심이 된 갈등해결 방법을 도입하기로 하면서 고안된 용어다. 때문에 갈등관리는 처음부터 공공기관의 공공갈등 인식과 입장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것은 공공갈등이 대부분 공공기관의 일방적 정책 결정과 시민 당사자와의 합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시민 당사자를 설득하고 저항을 중단시킨 후 어떻게든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는 인식과 입장이었다. 공공갈등의 근본원인인 정부 및 공공기관의 일방적 정책 결정의 문제를 다루고 정책 구상 단계부터 시민 당사자를 참여시키는 구조로의 변화가 아니었다. 갈등해결 접근을 통한 최초의 공공갈등해결 노력인 한탄강댐 갈등 조정에서도 갈등의 근본원인인 정부의 일방적 결정과 주민과의 합의 부재의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고 과정은 댐의 건설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기술적 논의에 집중됐다. 당사자 합의 실패 후에는 정책의 계속적 실행을 위해 갈등해결 과정이 아닌 중재(arbitration) 절차가 진행됐다.
갈등관리는 참여정부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 정부 및 공공기관 주도로 영역이 구축됐고 관련된 인적, 물적 자원이 형성됐다. 때문에 갈등관리는 공공기관의 용어가 됐고 세부 실행 절차 및 내용은 공공기관의 필요를 반영해 채워졌다. 또한 지금까지의 거의 모든 공공갈등해결 사례들은 공공기관의 요청과 지원을 받은 ‘갈등관리 전문가’들이 공공기관과의 협력 하에서 진행한 것들이었다. 때문에 시민들의 요구인 특정 공공정책의 철회 자체는 대부분 논의 현안에서 제외됐으며 공공기관이 필요로 하는 정책의 수정 내지 주민 보상과의 맞교환 논의에 집중됐다. 이렇게 공공기관의 영향력 하에서 구축되고 실행돼온 갈등관리 영역은 태생적으로 시민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거나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는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비판적 논의와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공갈등해결 영역이 근본원인의 규명과 당사자 합의에 의한 해결을 원칙으로 삼는 갈등해결 이론 및 실천과 체계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고, 공공갈등해결을 단지 공공갈등을 종식시키는 사회 기제, 또는 공공기관의 갈등 대응 기제로만 여기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갈등관리로 일컬어지는 공공갈등해결이 공공기관의 요구에 따라 공공기관과의 협력 하에서 실행된다는 점은 특별히 공공갈등의 핵심 당사자인 시민 당사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돼 있음을 의미한다. 가장 심각한 피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공기관의 요구와 필요가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시민의 요구와 필요는 부수적이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가장 핵심적인 공공갈등해결 실행 방식 중 하나는 갈등영향평가(conflict assessment)로 보편적 공공갈등해결 실행에서는 ‘갈등분석’으로 일컬어지는 것이다. 공공기관은 갈등관리 전문가 또는 전문단체에 갈등영향분석을 의뢰해 갈등 상황, 당사자, 입장과 이해관계 등을 파악한 후 갈등의 해결을 위한 과정의 실행 가능성을 타진하게 된다. 그런데 조정 등의 해결 과정이 진행돼도 공공기관이 시민 당사자와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합의에 도달한 후 갈등을 해결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공공기관이 정책의 철회 또는 대폭 수정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시민 당사자와의 대화에 임하지 않고 정책을 유지한다는 기본 입장을 설정해 놓고 보상 또는 낮은 수준의 수정만 논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대형 공공갈등일수록 공공기관의 입장은 단호하다. 때문에 갈등영향평가는 물론 해결 과정까지 공공기관의 ‘노력’을 보여주는 요식행위가 되고 시민 당사자는 그 요식행위를 돕는 역할만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공공갈등해결 실행이 공공기관의 갈등해결 노력을 증명해주는 들러리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공공갈등해결이 실행되고 있지만 그것이 공공기관과 시민 모두에게 동등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공공갈등해결 서비스와 자문이 공공기관에 집중되는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 공공기관은 갈등관리 체계를 갖춰가고 있고 갈등 사례를 다루기 위해 전문가 또는 전문단체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그 결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갈등관리 서비스 분야가 형성되고, 갈등관리 서비스 수요자인 공공기관과 서비스 공급자인 전문가 및 전문단체 사이에 고객-서비스 공급자 관계 또한 형성되고 있다. 문제는 재원이 있는 공공기관으로 그런 서비스가 집중된다는 것이다. 특정 공공갈등을 둘러싸고 공공기관과 대립 관계에 있는 시민 당사자는 그런 서비스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거나 재원의 부족으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것은 상대적 약자인 시민 당사자에게는 또 다른 압력이 된다. 이런 서비스 쏠림 현상은 비판적으로 논의되고 평가돼야 하는 일이다. 공공갈등해결이 공공기관을 위한 배타적 서비스가 되거나 시민을 통제하는 기제로 전락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갈등해결이 시작되고 다양한 인적 자원과 전문단체가 형성돼 비교적 상호 견제와 감시가 잘 이뤄지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공공기관과 전문가의 고객-서비스 공급자 관계는 민감한 문제로 언급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아직 구체화되지도 않고 비판적 연구나 논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공공갈등해결 현황은 ‘시민의 소외’로 정리될 수 있다. 공공갈등해결에서 시민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갈등관리라는 이름으로 공공갈등해결 영역이 형성돼 있지만 시민은 그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문가의 서비스에 독립적으로 접근하기 힘들다. 공공기관이 전문 서비스를 독점하고 있으며 전문가 및 전문단체 또한 공공기관에 대한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현장에서 시민 당사자를 접촉하더라도 그것은 공공기관의 의뢰를 받아 필요한 절차를 진행할 때이다. 때문에 시민 당사자는 공공갈등해결 과정을 공동 구상하고 결정지을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 공공기관의 갈등관리 실행 대상이 된다. 물론 공공기관의 제안과 지원으로 진행되는 과정이 반드시 시민의 소외를 야기한다고 볼 수는 없다. 시민 당사자를 초대해 전문가의 선정부터 필요한 과정의 결정까지 합의를 통해 모든 단계를 진행한다면 시민 당사자는 소외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의 공공갈등해결은 공공기관의 일방적인 결정과 전문가 선정, 정보와 서비스의 독점, 과정의 목적과 방향 결정, 시민 당사자의 대상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런 공공기관 주도의 실행, 서비스의 쏠림 현상, 그리고 시민의 소외는 결국 갈등의 해결조차 힘들게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 공공갈등이 정책을 둘러싸고 공공기관과 시민 당사자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임에도 불구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한쪽이 주도하고 다른 쪽은 수동적 참여만 한다면 과정의 질은 물론 결과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민 당사자는 자신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공기관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시민을 소외시키는 과정을 신뢰할 수도 거기에 적극 참여할 수도 없다.
공공기관이 주도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며 시민이 소외되는 현재의 상황은 공공갈등해결 자체를 왜곡시킬 수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공공갈등해결이 시작된 이유는 시민과의 대화와 합의로 공공정책을 결정하고 그로 인해 시민이 원하는, 적어도 시민의 필요에 반하지 않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공공정책에 대한 시민의 만족도와 신뢰를 높이고 정책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공공갈등해결의 핵심은 공공기관과 시민의 대화와 협력이다. 이것은 공청회나 설명회 같은 요식적인 대화와 협력이 아니라 공공기관과 시민이 공정한 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해 공동의 논의를 거쳐 합의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기관과 시민이 시작부터 끝까지 과정을 공동 운영해야 하고, 공공기관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와 서비스에 시민도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모든 절차가 투명하게 공유돼야 한다. 공공갈등해결 과정은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 있게 계획되고 실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공갈등해결은 갈등해결의 원칙에 입각해 공공갈등을 해결하는 새로운 사회 기제가 아니라 단지 시민을 통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4. 한계 극복을 위한 과제
공공갈등은 한국사회의 안녕을 좌우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지닌 문제다. 무엇보다 그 영향이 부정적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 현안이 되고 있다. 갈등이 비뚤어진 관계, 구조, 문화의 문제를 드러나게 하고 변화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거의 모든 공공갈등이 부정적 영향만 미치는 한국사회의 상황은 비판적 성찰을 필요로 한다. 시민의 저항이 잦아지고 해결되지 않는 공공갈등이 늘어나면서 공공갈등을 둘러싼 공공기관과 시민의 대립을 단순히 불가피한 사회 현상으로 취급하려는 시도는 경계돼야 한다. 공공갈등의 발생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공공기관과 시민의 대립으로, 나아가 대부분 공공기관의 ‘승리’와 시민의 ‘패배’로 일단락되는 상황은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갈등이 갈등 당사자는 물론 전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비판적 성찰이 이뤄져야 한다. 해결되지 않는 공공갈등은 시민 당사자의 개인적, 집단적 삶과 관계를 파괴한다. 사회 구성원 전체의 삶의 질을 낮추고 현재 세대는 물론 미래 세대의 삶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사회의 안녕을 해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정책의 질도 낮춘다. 이런 모든 상황 진단과 성찰에 따라 공공갈등을 바람직한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 가능성의 하나로 등장한 것이 공공갈등해결이다. 그러나 공공갈등해결은 아직 유용한 사회 기제로 자리 잡지 못했고 사회의 객관적인 평가도 거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여러 가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공공갈등해결이 갈등의 바람직한 해결에 기여하고 최소한 갈등에 직면한 시민에게 해가 되지 않으려면 비판적 자세로 그런 한계를 성찰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로 적극 수용해야 한다.
공공갈등해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갈등해결의 토대 위에서 체계적인 연구와 실천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개념의 정리가 이뤄져야 한다. 공공갈등의 예방과 해결을 다루는 갈등관리는 보편적 용어인 공공갈등해결을 의미하지만 일각에서는 공공갈등해결을 포함하는 상위 영역인 갈등해결과 혼동돼 사용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갈등관리에서는 갈등해결 이론 및 실천의 토대가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때문에 갈등관리와 갈등해결의 개념이 정리돼야 하며 나아가 갈등해결과의 이론적, 실천적 연결도 바로잡아져야 한다. 다른 한편 갈등관리는 특정 절차의 기술적인 적용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공공기관의 기제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런 접근은 갈등해결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갈등이 인간 사이의 입장, 이해, 필요의 대립에서 발생하고 쉽게 규명되지 않는 많은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갈등해결은 정형화된 절차의 일반적 적용을 경계한다. 또한 갈등관리로 이름 붙여진 공공갈등해결은 공공기관을 위한 기제가 아니라 공공갈등을 해결할 필요가 있는 모든 당사자를 위한 기제다. 이런 혼동과 오해는 갈등해결의 이론 및 실천의 토대 위에서 갈등관리의 이론 및 실천을 정리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갈등관리, 갈등해결, 공공갈등해결의 관계지도(mapping)와 개념 및 실행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갈등관리가 갈등해결을 추구하면서도 실제 공공기관에서는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수단으로 오용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갈등해결의 이론 및 실천의 토대 위에서 갈등관리 영역이 정립되면 갈등관리 체계를 구축하면서도 공공갈등과 시민 저항을 공공정책의 장애물로 취급하고, 공공갈등을 통제하기 위해 갈등관리를 적용하며, 선제적 대응과 조기해결이 아닌 방치와 봉합을 당연시하는 공공기관의 갈등대응 문화에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나아가 갈등관리가 공공기관을 위한 변명이 아니라 나은 공공정책을 만들고 시민이 공공정책의 피해자가 되는 것을 막는데 활용돼야 한다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두 번째 과제는 공공기관의 역량 강화다. 공공기관이 갈등관리 체계를 갖춰가고 있지만 실제 실행 역량은 턱 없이 부족하다. 갈등관리 업무의 기초가 되는 갈등과 갈등해결에 대한 이해도 또한 낮은 수준이다. 때문에 공공기관 실무자들은 갈등관리를 시민과의 합의에 의한 공공정책의 구상과 실행을 지원하는 새로운 접근이 아니라 기술적 절차를 적용해 공공갈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시민의 저항을 통제하는 공공기관의 활용 기제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 결과 갈등관리 체계가 수립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갈등과 시민의 문제 제기에 대한 공공기관의 대응 태도에는 별 변화가 생기지 않고 있다. 갈등관리가 공공갈등의 예방과 해결에 제대로 기여할 수 있으려면 공공기관의 태도와 행동 변화가 우선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의 역량이 강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 공공기관에게 다양한 갈등해결 교육이 제공돼야 하고 교육을 통해 공공기관의 갈등관리가 말처럼 갈등을 관리만 하는 수단이 아님이 확인돼야 한다. 교육에는 갈등해결의 철학, 가치, 원칙에 대한 이해가 포함돼야 한다. 공공갈등해결의 가치와 원칙은 물론 공공갈등해결을 통한 공공기관과 시민의 관계 개선, 역량형성, 공공정책의 질 향상 등 공공갈등해결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도 포함돼야 한다. 시민과의 합의를 통한 공공정책의 결정과 공공갈등의 해결이 공공기관의 원칙과 문화가 될 수 있도록 공공기관 전체 실무자에 대한 갈등과 갈등해결 기초 교육도 제공돼야 한다.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현 갈등관리 실행 절차의 한계도 공공기관과 공유돼야 하며 그것이 공공갈등의 해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비판적 논의도 진행돼야 한다. 시민의 소외를 예방하고 시민의 실질적 참여를 보장할 수 있는 절차의 구상과 실행도 모색돼야 한다. 이 모든 교육, 논의, 실행을 통해 공공기관의 역량이 향상돼야 공공갈등해결이 실제적으로 공공갈등의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
시민의 소외를 중단시키고 시민을 공공갈등해결의 중심 주체로 만드는 일은 한계 극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돼야 한다. 시민이 소외된, 또는 시민의 수동적 참여만 이뤄지는 공공갈등해결은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공공갈등의 해결에 기여하지 못한다. 공공갈등이 발생하는 이유는 시민이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고, 시민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정책의 영향을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공공갈등의 발생 자체는 이미 시민 의식이 공공정책을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이 됐으며 공공기관이 더 이상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할 수 없게 됐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시민을 계속 배제시키고 공공갈등해결 과정에서조차 시민을 소외시킨다면 공공기관과 시민의 대립은 악화되고 공공갈등은 증가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공공정책의 순조로운 실행을 위해서도 시민을 적극적으로 공공정책 결정에 참여시켜야 한다. 공공갈등해결은 조직적인 시민 참여와 공공기관과 시민의 공동 논의와 합의를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시민의 소외를 중단하려면 현재 실행되고 있는 공공갈등해결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규명하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먼저 정부가 고안한 갈등관리가 공공기관 내에서 배타적으로 체계화되고 실행되고 있는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공공갈등해결이 작동하려면 시민도 공공기관과 마찬가지로 교육과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보장돼야 한다.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도 보장돼야 하고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공공기관이 전문가에게 의뢰해 갈등을 분석할 때 시민 당사자도 전문가의 지원을 받아 독립적으로 갈등을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의 태도와 행동이 시민 당사자의 독립적 절차를 지원하고 때로 독려까지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변화돼야 한다. 공공기관이 시민을 대결 상대로 보지 않고 공공갈등의 해결을 위한 파트너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공공기관이 주도적으로 과정을 설계하고 시작하더라도 시민 당사자를 참여시켜 공동으로 전문가 선정과 과정 결정을 진행해야 한다. 공공기관 뿐만이 아니라 전문가 또는 전문단체 또한 적극적으로 시민 당사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공공기관, 시민 당사자, 시민단체, 기업 등이 공동으로 재원을 마련해 과정을 진행하는 방법까지 모색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미국의 공동체 협력과정(community collaboration)이나 정책 대화 등에 대한 공공기관, 대학, 연구기관, 전문단체, 기업 등의 협력과 지원 사례 등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한국사회에서의 적용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공공갈등해결을 이해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사회에서 공공갈등해결은 갈등관리라는 이름으로 연구 및 실천이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갈등해결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이유, 철학, 원칙 등 토대에 대한 이해는 거의 언급되지도 공유되지도 않고 있다. 이런 이해의 부족은 갈등관리를 공공갈등을 해결하는 새로운 사회적 접근이 아니라 갈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새로운 사회 통제 기제로 오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기여한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공공갈등해결 영역이 형성되고, 공공기관에 대한 서비스 쏠림 현상이 생기며, 그로 인해 시민 당사자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는 배제되는 현재의 상황은 그런 이해가 부족한데서 기인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공갈등해결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이유는 또 하나의 사회 통제 기제나 갈등을 쉽게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해서가 아니었다. 시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공공정책을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야 할 필요가 제기됐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시작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시민들의 미래를 시민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이 획기적으로 공공정책 결정 방식을 바꾸는 시도를 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중심에는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시민이 원하는 공공정책을 만든다는 행정 철학이 있었다. 또한 반드시 공공기관과 시민이 공동으로 공정한 과정을 설계하고 그 안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논의하고 합의를 도출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이런 공공갈등해결의 철학과 원칙은 한국사회 공공갈등해결에서도 명료하게 이해되고 언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사회 공공갈등해결이 직면한 한계를 극복할 수 없고 한국사회에 가장 바람직하게 적용될 수 있는 수정 모델이 개발될 수도 없다.
공공정책은 시민 삶의 향상에 기여해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공공정책이 시민 삶을 위협하고 나아가 파괴한다고 여겨질 때 공공갈등이 발생한다. 실제 한국사회의 공공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시민의 굴복을 강요함으로써 개인과 집단 삶의 파괴를 야기하곤 했다. 이것은 공공정책의 최대 실패를 의미한다. 그러나 공공기관은 그에 대한 책임을 외면해 왔다. 공공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장기화되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물질적, 신체적, 정신적 피해는 공공기관이 아닌 시민 당사자들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시민들을 위한 공공정책 수립과 실행 과정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은 모순적 구조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공공갈등해결은 그런 모순적 구조를 바로 잡고 공공정책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최소한 공공갈등으로 인해 시민의 피해가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공공갈등해결은 공공갈등에 가장 바람직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모든 당사자의 합의에 의한 최선의 결과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유용한 사회 기제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공공갈등을 사회 구조의 개선과 발전의 계기로 만드는데 획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공공갈등해결이 현재 직면한 문제들을 성찰하지 않고 개선하지 않는다면 활용이 왜곡되고 그 결과 공공기관의 구조적 문제와 타성의 합리화에 기여하는 반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시민의 필요를 외면하는 공공정책을 정당화하고 그에 따라 시민 당사자의 개인적, 집단적 삶을 파괴하는데 부분적으로 기여하게 될 수도 있다. 한국사회 공공갈등 현황을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변화를 위한 과제를 규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위의 글은 2014년 12월 11일 고려대학교 한국사회연구소 학술 심포지엄 <한국의 공공갈등과 한국인의 갈등의식>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무단 복사와 배포를 할 수 없으며 인용시 반드시 저자와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각주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