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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의 바람직한 갈등 대응

201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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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관리의 덫

‘갈등관리(conflict management)’는 한국사회에서 공공기관의 갈등 대응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로 자리 잡았다. 갈등관리는 동시에 공공정책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갈등에 대한 공공기관의 새로운 접근을 의미하는 용어가 됐다. 내용상으로는 공공기관의 일방적 의사결정을 넘어서 시민 의견의 수렴, 시민 참여를 통한 정책의 결정,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시민과의 대화 및 협상 등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절차를 포함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갈등관리 체계 하에서 정책 결정 및 실행 과정을 새롭게 이해하고, 시민들의 의견 개진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노력하며, 시민과의 직접 대화와 협상까지 수용하겠다는 태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 수준에서 공공기관이 갈등관리를 공공갈등을 다루는 접근으로 잘 활용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무리한 시도다. 공공기관이 적극적으로 갈등관리 체계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하기엔 과장된 면이 있고, 그렇다고 효과가 없다고 말하기엔 제대로 활용도 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시기상조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 발제에서는 공공기관의 갈등관리 활용을 평가하기보다는 갈등관리를 잘 활용하기 위한 기본적인 주제들, 즉 공공기관의 공공갈등에 대한 이해, 시민 저항에 대한 대응, 공공기관의 역할, 갈등관리를 통한 새로운 접근 모색 등을 다뤄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주제 하에서 갈등관리를 통한 갈등 대응의 바람직한 방향을 논해보고자 한다.

 

갈등관리에 대한 이해를 논하는 것이 본 발제의 목적은 아니지만 갈등해결 영역과 관련지어 갈등관리를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해서 잠깐 언급하는 것이 발제의 전개를 위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갈등관리는 포괄적인 갈등해결 영역 내에서 언급되는 용어로 말 그대로 ‘갈등을 관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갈등이 확산되거나 폭발되지 않도록 논란의 범위를 좁히고, 갈등 당사자들의 문제 제기와 대립이 주변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갈등을 일정한 영역 내에 가두거나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갈등관리는 그래서 갈등억제(conflict containment)나 갈등타결(conflict settlement)의 맥락에서 이해되곤 한다. 이런 이유로 갈등해결(conflict resolution) 연구 영역에서 갈등관리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 언어 또는 접근으로 취급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갈등해결의 기본원칙 중 하나는 근본원인의 규명인데 갈등관리는 그 작업이 복잡하고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되면 근본원인을 다루지 않는 과감한 선택까지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갈등관리는 갈등해결 영역 내에서 때로는 시도될 수 있는 현실적인 접근으로 이해되는 것도 사실이다. 갈등의 폭력적 폭발을 예방하고 당사자들 사이의 충돌을 막기 위해, 또는 공동체나 사회의 안녕을 위해 갈등 악화를 막는 차원에서 시도될 수 있는 접근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갈등관리는 특별히 공공갈등을 다루는 접근과 체계로 이해되고 있다. 때문에 갈등관리는 갈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공공기관과 그런 공공기관의 시도를 지원하는 전문가 집단 내에서 사용되는 특정 용어가 됐다. 이것은 한국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해석하면 두 가지 사실이 정리될 수 있다. 하나는 한국사회에서 갈등관리가 포괄적인 갈등해결 내의 세부 영역 중 하나로 연구 및 실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한국사회에서 갈등관리의 적용 범위가 공공정책을 둘러싼 갈등에 한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갈등관리가 한국사회에서는 ‘공공갈등해결(public conflict resolution)’ 또는 공공논쟁해결(public dispute resolution)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위에서 언급한 갈등관리가 내포하고 있는 일반적인 접근이나 의미는 한국사회의 ‘갈등관리’에 굳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한국사회의 갈등관리가 전혀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위에서 언급한 갈등억제나 갈등타결 등 갈등에 대한 소극적이고 때로 비원칙적인 접근을 취할 가능성을 아예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비판적 시각에서 보면 ‘관리’라는 말은 그 자체로 힘의 불균형을 내포하고 있다. 즉 관리를 하는 쪽과 관리의 대상의 되는(또는 관리를 당하는) 쪽 사이의 힘의 불균형이다. 당연히 관리를 하는 쪽이 상대적 강자고 관리의 대상이 되는 쪽이 상대적 약자다. 갈등관리라는 용어에서 관리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갈등이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갈등의 존재는 곧 관계된 당사자가 있음을 의미하고 관리는 결국 당사자들의 갈등, 또는 갈등에 처한 당사자들을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공공기관의 입장에서 갈등관리는 곧 공공정책과 관련해 갈등을 만드는 당사자들을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공공기관이 부정적 태도를 가지고 갈등관리를 수용한 것이 아니고 갈등관리가 과거보다 진일보한 공공기관의 공공갈등 접근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공공기관과 대립 관계에 있는 개인 및 집단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갈등관리는 공공기관이 자신을 관리의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좋은 인상을 받기는 힘들 것이다. 좀 더 비판적으로 보면 이것은 공공서비스 제공자이자 시민에게 봉사해야 할 공공기관이 역으로 시민을 관리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시민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당황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점은 갈등관리를 시도하는 공공기관이 자신의 태도와 행동을 성찰할 때 신중하게 고려해봐야 할 대목이다.

 

갈등관리와 관련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공공기관 스스로 ‘갈등관리’의 수용을 새로운 갈등 대응으로 과장함으로써 ‘갈등관리의 덫’에 걸려들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공공기관이 갈등에 잘 대응하고 갈등을 줄여보겠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갈등대응 체계를 만들고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해 갈등관리를 시도했지만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문제해결 체계만 복잡하게 만드는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즉 갈등관리가 별 성과는 없이 보다 긴 정책 구상과 결정의 시간, 보다 복잡한 절차만 요구하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갈등대응 방식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좋은 의도로 시작된 갈등관리가 오히려 공공기관 내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에너지와 시간만 낭비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지만, 한번 결정하고 시작한 이상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결국 명맥 유지에만 힘을 쏟는 갈등관리의 덫에 걸리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공공기관이 갈등관리의 덫에 걸리게 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는 공공기관이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면서도 기존의 시각, 태도, 행동을 바꾸지 않는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갈등을 정책에 대한 장애물로 보는 부정적 시각, 시민의 문제 제기를 공공기관의 결정권에 대한 부정과 저항으로 보는 시각, 제기된 문제를 한정된 영역 안에서 통제하겠다는 생각, 시민의 문제 제기와는 상관없이 본래의 정책 방향과 계획을 관철시키겠다는 생각 등을 유지하는 것이다. 사실 많은 공공기관이 이미 갈등관리 체계를 만들었지만 시민들은 공공기관이 공공갈등에 대해 새로운 이해와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크게 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일부 시민들은 공공기관이 갈등관리라는 새로운 사회 통제 수단을 가지고 시민들의 문제 제기와 저항을 막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이것은 공공기관의 의도를 완전히 빗나간 것이고 아직은 공공기관이 갈등관리라는 새로운 체계에 걸 맞는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공공기관이 획기적인 태도와 행동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과거의 갈등 대응 방식을 되풀이한다면 시민들의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갈등관리에 대한 부정적 이해만 축적될 것이다. 결국 갈등관리는 기능하지 않는 유명무실한 공공기관만의 체계가 될지도 모른다.

 

시민 저항, 공공정책의 장애물?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서도 과거의 태도와 행동에 발목이 잡혀 갈등관리의 덫에 걸려버린다면 공공기관은 새로운 것을 통해 새로운 결과를 내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갈등관리의 덫을 언급하는 이유는 갈등에 대한 공공기관의 새로운 시도를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덫에 걸리지 않을 수 있는 정말 새로운 갈등 대응과 해결 접근을 모색해보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위에서 언급한 과거의 태도와 행동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그중 가장 우선적인 것은 공공갈등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일반적인 갈등대응을 보면 공공기관이 공공갈등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는 이유로는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공공갈등을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 그리고 합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공공기관의 정책 결정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 또는 떼쓰기로 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시민들의 문제 제기 또는 저항을 다수의 이익을 위한 공공정책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보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시각은 공공기관의 갈등대응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런 시각을 가진 공공기관은 시민들의 문제 제기 또는 저항을 불합리하고 부당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공공기관이 반드시 그에 대응하고 시민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공공갈등에 새로운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을 당위성을 가진 것이라기보다 시민들에게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공공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장애물은 되도록 빨리 제거되는 것이 마땅하고, 갈등관리 체계 하에서 접근하더라도 빠른 시간 안에 잡음을 줄이고 확산을 막아 갈등을 중단시키는 것에 초점에 맞추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사실 이것이 대부분의 갈등대응에서 공공기관이 보여주는 태도와 행동이고 갈등관리 체계가 갖춰진 기관에서도 아직까지 큰 차이점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공공갈등에 대한 시민들, 특별히 공공기관과 대립 관계에 있는 개인 및 집단 당사자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저항은 정당하고 합리적인 것이다. 자신과 공동체, 그리고 후손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공공정책 또는 공공사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저항하는 것은 민주사회 시민으로서 당연한 권리기도 하다. 오히려 자신들과 사전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한 공공기관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갈등 당사자인 시민들은 공공갈등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장애물로는 더더욱 보지 않는다. 그들은 공공갈등을 부당한 저항으로, 그리고 당사자인 자신들을 문제적 개인 또는 집단으로 취급하는 공공기관의 입장을 인정하지 않고, 나아가 그런 공공기관은 공공기관으로서의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공공기관과 시민 사이의 인식의 간극이 존재하고 이것 자체가 새로운 갈등 요인이 된다.

 

공공기관이 갈등관리를 통해 공공갈등에 새롭게 대응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먼저 시민들과의 인식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공공기관이 하고 있는 역할과 그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를 냉정하게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에서 공공기관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는 아주 낮은 수준이다. 과거 공공기관이 누렸던 무임승차식 신뢰는 이제 더 이상 없다. 최근 줄을 잇고 있는 공공기관의 비리와 부조리, 방만 경영, 관리 소홀 등은 물론 대형 갈등에 대한 공공기관의 힘에 기댄 대응은 공공기관의 신뢰를 떨어뜨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각각의 공공기관은 자기 기관의 개별적 대응, 또는 사업별 대응만 성찰하겠지만 시민들은 공공기관 전체를, 또는 공공기관의 한 가지 사업을 전체의 운영과 한데 묶어서 판단하곤 한다. 즉 한 기관의 문제가 결국 전체 공공기관을, 하나의 프로젝트가 그 기관 전체를 평가하는데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공공기관은 시민들 사이에서 이렇게 형성되고 축적된 불신이 자기 기관과 특정 정책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연유로 시민들은 공공기관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정책을 신뢰하지 않고, 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강력 저항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공기관이 진정성을 가지고 갈등관리를 통해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도 신뢰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갈등관리가 효율성을 가지고 현장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의 사회적 역할을 시민의 입장에서 평가하고, 시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공공기관의 구조와 태도를 바꾸는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 시민의 문제 제기를 저항으로 판단하기 전에 공공기관의 정체성과 역할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노력이 병행되지 않고는 갈등관리가 효력을 발휘하기 힘들고 오히려 갈등과 관계를 악화시키는데 기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실질적으로 공공기관이 저항하는 시민들과 관련해 극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그들을 문제적 개인 또는 집단으로 취급하는 태도다. 이것은 시민 저항을 정당한 권리 주장이나 문제 제기가 아니라 집단 이기주의, 많은 보상을 위한 떼쓰기, 정책에 대한 부당한 개입 등으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억울한 일이다. 정책에 의해 자신의 삶과 생활환경, 그리고 자손들의 미래가 영향을 받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절대 이기적인 생각이나 떼쓰기가 아니라 당연한 요구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 처한 개인과 집단이라면 누구라도 저항을 하게 되어 있다. 만일 저항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책을 수용해서가 아니라 저항할 수 없는 억압적 환경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공공기관이 해야 할 일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시민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공적 업무에 사적, 감정적 이해를 들이대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을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이 공공기관도 사람들이 움직이는 조직이고, 특별히 공공기관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것은 시민들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임을 생각할 때 타당하지 않다고 볼 수 없다.

 

공공기관이 시민들의 문제 제기를 부당한 저항과 공공정책에 대한 장애물로 본다면, 그리고 시민들을 합당치 않은 것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불법적이고 이기적인 개인 또는 집단으로 본다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과 마주 앉을 명분이 없어진다. 마주 앉는다면 그것은 결국 가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그들의 주장과 요구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지 않는 것은 갈등에 새롭게 대응하기 위해 갈등관리를 수용한 것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갈등관리는 일부 시민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사회 통제를 위한 새로운 방식 정도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공공기관은 갈등관리를 통해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억제냐 해결이냐

갈등관리의 덫에 걸리지 않고 갈등관리를 통해 실질적 성과를 내기 위해 공공기관이 다음으로 극복해야 할 태도와 행동은 공공갈등을 한정된 영역 내에서 통제하고 기존의 구조 안에서 다루려는 접근이다. 이것은 글 서두에서 언급한 갈등억제 및 갈등타결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입장에서는 설사 갈등관리 체계의 효율성을 증명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갈등을 확산시키지 않고 기존의 구조 안에서 해결책을 찾고 실행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갈등을 억제하고(contain) 적당한 선에서 타결한다는(settle) 갈등관리의 본래 의미와는 맞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런 접근으로는 공공기관이 갈등관리를 수용하면서 기대했던 공공정책에 대한 당사자들의 저항 감소와 공공갈등의 효율적 해결이라는 결과를 낼 수는 없다. 공공갈등이 증가하고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시민 저항도 갈수록 강화되는 상황이 바로 공공기관의 그런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공공기관이 갈등관리 체계를 운영하거나 만들고 있지만 공공기관은 여전히 갈등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 두고 확산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싶어한다. 갈등에 대한 선제적 대응과 갈등의 조기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이 바로 그런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공공기관이 갈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책을 구상하고 갈등 당사자가 드러나기 전에 정책의 영향을 받는 개인 및 집단과 소통해야 한다. 사실 이 단계에서는 갈등을 관리하는 것이 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이렇게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보기 힘든 일이다. 갈등의 조기해결 역시 보기 힘들다. 오히려 공공기관은 저항하는 시민들이 저항할 힘을 소진해 제풀에 나가떨어지고, 그 결과 공공기관의 제안을 마지못해 받아들이기를 기다리는 듯한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시민 저항은 쉽게 중단되지 않는다.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갈 수는 있지만 생활과 생존이 걸린 문제라면 쉽게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선제적 대응과 조기해결 노력을 하지 않음으로써 공공기관이 오히려 갈등을 악화시키고 시민 저항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공공기관이 갈등 대응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우는 아이에게 젖 주기’ 또는 ‘보이는 문제만 다루기’ 등 지극히 소극적, 또는 냉소적인 것이다.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는 말처럼 선제적 대응에 관심이 없는 공공기관은 목소리를 높이고 강하게 저항하는 시민들에게만, 그리고 시민들이 강한 어조로 문제라고 지적한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 때문에 시민들은 공공기관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강하게 저항하고 갈등을 확산시킬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갈등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이런 소극적 대응은 자신이 결정한 정책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자신의 결정권을 보호하고 싶은 욕구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공공기관은 백번 양보해서 시민들의 문제 제기나 저항을 인정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결정에 허점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시민들의 문제 제기로 그런 허점이 메워지고 정책이 수정될 수 있다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는다. 또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정책을 수정한다면 정책 결정권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공공기관은 기존의 구조 안에서 갈등을 다루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시민들은 공공기관의 결정과 정책 결정권이 성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아가 공공기관의 결정에 도전하고 보다 나은 정책이 나올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 시민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생활과 생존이 걸린 문제라면 자신들이 더 좋은 구상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공공기관과 시민들의 이런 생각의 차이가 갈등을 악화시키는데 기여한다.

 

이 대목에서 공공갈등해결이라는 영역이 생기게 된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공공갈등해결이 등장한 이유는 새롭게 등장한 사회 문제, 시민의 불만, 정책 참여 욕구를 전통적인 입법, 사법, 행정 절차를 통해서는 다룰 수도 충족시킬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시민들을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하게 하는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게 됐고, 기존의 구조를 뛰어 넘는 이런 새로운 방식 때문에 공공갈등해결이 확산될 수 있었다. 또한 공공기관과 시민 모두에게 만족을 주는 문제해결 방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공공갈등해결의 발생지인 미국은 물론 이를 받아들여 적용한 다른 국가들에서 공공갈등해결은 시민의 필요에 답하지 않는 공공정책과 공공기관이라는 포괄적인 구조의 문제를 시민 참여를 통해 극복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었다. 이것은 공공기관이 갈등에 대응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제를 풀고, 기존의 구조가 가진 경계를 뛰어넘어 전혀 새로운 해결책을 찾는 것이 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결국 갈등은 억제되지 않고 해결돼야 한다. 억제는 문제를 통제하고 가두는 것이지만 해결은 소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숨겨진 문제를 드러내고 그에 대한 토론의 장을 열어 새로운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이것은 문제의 확산을 꺼려하고 자신의 결정을 무한 신뢰하는 공공기관에게는 부담스런 일이겠지만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갈등해결의 원칙과도 통한다. 갈등해결 과정에서 절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원칙은 당사자 참여와 당사자 결정이다. 당사자 참여와 결정은 갈등해결의 모든 과정을 당사자와 합의하고 공동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공공기관이 선택 사항, 논의 주제, 논의 과정을 미리 정해 놓고 당사자들에게 수동적 참여를 요구하는 것은 갈등해결의 기본을 벗어나는 것이다. 편의상 공공기관이 특정 내용을 제안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당사자의 참여에 의해 언제든지 수정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기존의 법적, 구조적 체계 내에서만 해결책을 찾도록 요구하는 것도 기본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사자 참여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공공갈등해결이 실질적 결정 권한을 가진 공공기관 실무자의 참여를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당사자를 참여시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공공기관에게 새로운 선택을 요구하고 때로 자신의 구조적 한계를 뛰어 넘는 결정을 요구한다. 전통적 문제해결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공공갈등해결이 여러 나라에서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여전히 실행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바람직한 갈등 대응과 해결 방향

공공갈등은 공공기관과 시민의 이익이 충돌하면서 발생한다. 공공갈등에 새롭게 대응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공공갈등을 해결한다는 것은 그렇게 반하는 이익을 공동의 이익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공동의 이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바람직한 갈등 대응의 기본이고 이 기본에 충실하면 갈등관리를 통해 특별히 성과를 내지도, 그렇다고 그것을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이름에 발목이 잡히는, 다시 말해 앞에서 얘기한 갈등관리의 덫에 걸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공동의 이익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먼저 시민들의 생각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공공기관은 대체적으로 자신을 시민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라기보다는 공공정책 전반을 통제하는 주체로 여긴다. 때문에 시민을 공공정책의 대상으로 규정하곤 한다. 그러나 시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시민들은 스스로를 공공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결정권을 가진 주체로, 공공기관을 공공정책을 통제하는 주체가 아니라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봉사자로 여긴다. 그러므로 시민들은 공공기관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을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공공기관은 자신이 특정 역할과 권한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때로 많은 시민들의 이익에 반하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곧 공공의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공공기관이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시민들의 이익을 침해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역할과 책임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공기관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는 이처럼 특별하다. 많은 공공갈등의 뿌리에는 공공기관과 시민 사이의 이런 생각의 차이가 자리 잡고 있다.

 

공공기관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를 고려해 갈등에 대응하고 해결을 모색하는 것은 곧 시민의 이익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결국 공공기관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갈등관리가 시민들이 거부하는 공공기관의 태도와 행동을 지원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 몇 가지 기본 방향을 제시해 본다면 아래와 같다.

 

첫째는 갈등관리의 목적이 공공기관의 위기관리 또는 사회 통제를 지원하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공정책은 시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시민의 동의 없이 공공기관의 판단과 결정만으로 실행될 수 있다. 이것은 민주적 절차와는 모순되는 것이지만 비대해진 사회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시민들이 전문 관료 및 실무자에게 결정권을 위임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그런데 시민들이 특정 정책에 대한 위임을 철회하고 직접 참여를 요구하면 그 요구는 존중되고 받아들여져야 한다. 갈등관리는 바로 그런 시민 참여 권리의 보장과 그것을 위한 과정의 효율성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공공기관이 아닌 참여를 요구하는 개인 및 집단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그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이익을 수용하는 과정을 설계해야 한다.

 

둘째는 공공정책이 시민 삶의 파괴가 아닌 삶의 향상에 기여하도록 갈등관리가 지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갈등의 최악의 결과는 개인과 집단의 삶의 파괴다. 이것은 곧 공공정책의 최대 실패를 의미하기도 한다. 공공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장기화될 때 그로 인한 물질적, 신체적, 정신적 피해는 고스란히 공공기관 이외의 당사자들에게 돌아간다. 공공갈등은 갈등에 직면한 개인과 집단 사이의 관계도 파괴해 되돌릴 수 없게 만든다. 그러므로 갈등관리가 제 역할을 하려면 공공정책이 시민 피해를 줄이고 시민 필요에 답하며, 나아가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갈등관리를 통한 갈등 대응은 시민들의 삶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설계되고 진행돼야 한다.

 

셋째는 시민과 공공기관의 새로운 관계 형성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갈등 대응과 해결 과정이 제대로 작동할 때 미치는 가장 긍정적인 영향 중 하나는 관계의 변화다. 과정에 참여하는 개인 및 집단은 관계의 긍정적 변화를 경험하곤 하는데 단기간의 과정보다는 긴 과정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의 관계 변화가 더욱 두드러진다. 공공기관과 시민 당사자들도 과정에 참여하는 동안 관계 변화를 겪고 부분적으로 그런 관계 변화의 영향으로 합의에 이르게 된다. 공공기관과 시민의 관계 변화는 향후 다른 갈등의 예방과 조기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갈등 대응 및 해결 과정은 공공기관과 시민의 관계 변화에 기여할 수 있게 설계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민과 공공기관의 역량 형성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사자 역량 형성은 갈등해결 과정 평가에서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된다. 역량 형성은 당사자들이 향후 다른 갈등에 건설적으로 대응하고 대화로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갈등해결 과정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은 갈등, 입장, 이해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절차를 경험한다. 전문지식을 다루곤 하는 공공갈등해결 과정에서 당사자들은 과학적, 기술적 정보를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또한 포용적이고 참여적인 과정에서 대화와 협상에 기초한 새로운 문제해결 방식을 배우기도 한다. 갈등을 객관적이고 포괄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이런 경험은 당사자들로 하여금 향후 다른 갈등에 과거보다 선제적, 긍정적,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해준다. 당사자들의 경험과 역량 형성은 사회 자원이 되고 새로운 사회 경험의 축적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시민의 이익에 맞게 공공갈등에 대응하고 해결을 모색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공공기관에게도 이익이 된다. 첫째로 공공기관은 이런 과정을 통해 정책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공청회나 주민 설명회 같은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당사자들이 직접 마주 앉아 정책 내용을 분석하고 대안을 논의한 후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을 통해 결정된 정책은 비난을 피할 수 있고 확고한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둘째는 정책 수립과 실행 과정의 답보 상태를 피하고 보다 만족스럽고 질 높은 정책을 결정할 수 있다. 과정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을 통해 공공기관이 단독으로 수집할 수 없는 많은 전문적, 경험적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다양한 문제들을 심층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새로운 네트워크와 협력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도 공공기관에는 과소평가할 수 없는 긍정적 효과다 이런 네트워크와 협력관계의 형성은 공공기관의 업무 역량을 향상시키고 정책 실행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결국 공공기관이 저항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한국사회 전체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또는 비전문가인 시민들과 정책 결정권을 나눌 수 없다는 이유로 갈등 대응 및 해결 과정을 통제할 때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이런 이익을 상상하기 힘들다면 그것은 갈등관리 체계의 운영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갈등해결의 원칙적 목적은 분명하다. 당사자들이 직접 대화와 협상을 통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그리고 관계 개선에 기여하는,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관계 악화에는 기여하지 않는 합의를 이뤄내는 것이다. 공공갈등과 관련해서 이것은 공공기관의 이익과 시민의 이익이 모두 충족되고 그들의 관계가 악화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공공기관의 갈등관리 체계의 운영 목적 또한 분명해진다. 공공기관의 갈등관리를 통한 갈등 대응 및 해결이 이 두 가지 원칙적 목적을 가지고 실행되지 않고 있다면 한국사회 안에서 공공기관이 왜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를 먼저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 위의 글은 2014년 10월 24일 서울행정학회-한국정책포렴 공동 추계학술대회에서 발제한 글입니다. 무단 복사와  배포를 할 수 없으며 인용시 반드시 저자와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각주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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