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해결평화갈등 연구갈등 해결

갈등해결과 평화구축

2023-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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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연구의 갈등해결 연구

갈등은 국가나 집단 사이의 무력 갈등부터 개인 사이의 갈등까지를 일컫는다. 평화연구가 조직적으로 시작된 1950년대에 연구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진 건 무력 갈등(armed conflict), 즉 전쟁이었다. 1,2차 세계대전의 경험으로 인해 연구자들은 국가 사이 무력 충돌을 예방하고 평화적 방식으로 종식할 방안을 탐구하는 것을 평화연구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무력 충돌과 전쟁으로의 진화를 예방하기 위해 사회, 정치, 경제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갈등 형성에 대한 과학적인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전통적인 국제관계와 외교를 벗어나 새로운 접근을 통해 전쟁을 예방하는 방법을 모색할 것을 주장했다(정주진 지음. <평화학>, 2022, p.29).

 

갈등해결 연구는 곧 전쟁 예방과 종식을 위한 연구였다. 1957년에 만들어진 계간 학술지의 이름은 <갈등해결 저널(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이었다. 또한 초기 평화 연구자들이 만든 평화연구기관의 이름은 <갈등해결 연구센터(Center for Research on Conflict Resolution)>이었다. 갈등해결 연구는 실제 사례에도 적용됐다. 대표적인 사례로 1965년과 1966년에 열린 문제해결 워크숍(problem-solving workshop)이 있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사이의 갈등과 그리스계 키프로스 주민과 터키(현재의 튀르키예)계 키프로스 주민 사이 갈등을 다뤘다. 문제해결 워크숍은 국가 사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양국의 사회 지도층 대표와 전문가 패널이 며칠 동안 함께 지내며 갈등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워크숍을 말한다. 이 워크숍은 평화연구에서 갈등해결이 가지는 의미와 평화연구가 이론과 함께 실행에 초점을 맞춘 학문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 중 하나였다.

 

1960년대 후반에 요한 갈퉁(Johan Galtung)에 의해 적극적 평화와 소극적 평화, 그리고 구조적 폭력에 대한 개념이 제안된 이후 평화연구는 국가 사이 무력 갈등을 넘어서 사회의 구조적 폭력,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 갈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의 인종갈등과 시민권 운동, 남아공 인종차별 정책에 대한 전 세계 반대 캠페인, 남아메리카의 사회 갈등 등은 전쟁과 동시에 사회 갈등, 그리고 그의 원인인 구조적 폭력의 규명과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관심도를 높였다. 또한 전쟁 없는 평화를 넘어 구조적 폭력이 제거된 적극적 평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와 관련해 평화연구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전쟁 예방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과 범위를 넓혀 사회 전반의 폭력 문제를 다루고 평화로운 사회 변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면서 연구자들 사이에 대립이 형성됐다. 이런 대립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평화연구는 전쟁과 사회 폭력 및 갈등을 모두 주요 연구 과제로 삼게 되었다.

 

평화학(Peace Studies)은 평화갈등학(Peace and Conflict Studies)로도 불린다. 평화와 갈등이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무력 갈등 중 국가 사이 전쟁은 평화연구의 태동과 학제로서의 평화학 수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회의 평화를 저해하는, 또는 사회를 비평화의 상태로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흔히 집단 사이 대립과 갈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전쟁의 예방 및 종식을 위해, 그리고 평화적 공존이 이뤄지는 사회를 위해 평화연구가 갈등을 다루고 평화 수립에 기여할 갈등 대응과 해결 방식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평화연구가 갈등을 다루는 당위적인 또 다른 이유는 갈등이 폭력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무력 갈등은 물론이고 많은 사회 갈등 또한 구조적 폭력과 관련되고 당사자 개인 및 집단 사이 폭력적 상호 작용을 동반한다.

 

평화연구의 갈등 이해

평화연구는 갈등 발생의 주요 원인을 구조적 문제에서 찾는다. 여기서 구조적 문제란 곧 구조적 폭력을 의미한다. 이는 상대적 강자가 구조를 악용해 사회자원을 독점하고 그로 인해 사회 자원의 분배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억압받고 폭력의 피해를 입는 개인이나 집단이 힘의 불균형 상황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그럼으로써 갈등이 발생한다. 이런 갈등은 사회적 논란과 소란을 만들어 표면적으로는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갈등을 감수하는 문제 제기는 억압을 완화하고 약자를 위한 사회적 변화에 기여할 가능성을 만든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런 이유로 평화연구에서는 갈등 자체가 부정적으로 여겨지진 않는다. 갈등은 오히려 평화사회로의 변화에 기여하는 불가피한 과정으로 이해된다.

 

아담 컬은 ‘갈등의 진행(Progression of Conflict)’을 통해 갈등의 긍정적 역할과 불가피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를 설명하는 그림에서 그는 갈등 진행을 1-4까지의 영역으로 나누고 있다. 영역 1은 힘의 불균형이 심하고 갈등에 대한 인식이 낮은 상황이다. 잠재적 갈등이 존재하지만 당사자들 사이 힘의 불균형과 인식의 부족으로 갈등은 표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상황에서는 ‘교육’이 필요하다. 영역 2는 교육을 통한 역량 형성의 영향으로 ‘대립’이 형성되고 갈등이 표출되는 상황이다. 이때의 갈등 인식은 비교적 높다. 대립이 계속되면 영역 3인 ‘협상’으로 이동할 수 있다. 주장의 표출과 대립의 지속으로 극심한 힘의 불균형이 어느 정도 해소된 상황에서 마주 앉아 협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협상이 잘 이뤄지면 영역 4의 ‘지속가능한 평화’로 이동할 수 있다. 이것은 갈등 인식이 높아지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이 유지되는 상황을 말한다. 이때의 상황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 변화와 문제 해결을 위한 평화적 방식의 갈등 대응과 해결이 정착되고 실행되는 역동적인 상황을 말한다 (정주진 지음. <평화학>, 2022, p.144 참고).

 

갈등을 사회 변화와 평화 형성에 기여하는 과정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갈등의 전개 과정에 수반되곤 하는 폭력의 확산과 폭력적 대응의 문제를 다뤄야 한다. 이에 대한 기본적인 대응은 비폭력적인 방식, 다시 말해 무력이나 물질적 폭력, 그리고 상대에 대한 비난과 조롱 등에 기댄 것이 아닌 갈등의 근본원인을 공동으로 규명하고 대화를 통해 공동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식이다. 이때 강조되는 것이 상호의존성이다. 갈등 당사자들은 대립적이지만 공동으로 갈등에 직면해 있고 상대와의 논의와 합의를 통해 갈등을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호의존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호의존성은 상호 파괴를 야기하는 무력을 포함한 폭력적 방식을 배제한 접근을 취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야 상호 거부와 증오를 야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고 향후 갈등으로 복귀하지 않을 수 있다.

 

평화구축(peacebuilding)을 위한 갈등해결

평화구축은 평화의 부재를 야기한 폭력적 상황을 종식하고 대립과 공격이 만연한 폭력적 관계를 평화적 관계로 바꾸는 모든 노력을 의미한다. 평화구축의 구체적인 노력과 사업은 정부, 기관, 국제시민단체, 풀뿌리단체 등의 공식적이고 조직적인 접근을 통해 이뤄진다. 방식은 하향식(top-down) 접근을 축소하거나 최소한의 범위로 하고 상향식(bottom-up) 접근을 넓히고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이는 사업의 계획부터 현장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고 현장에 필요한 사업을 현장의 개인 및 단체들과 함께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업에 따라 수준이 다를 수 있지만 최대한 상향식 접근을 취하는 것이 평화구축의 기본적인 원칙이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사회 변화와 평화의 성취는 해당 사회 구성원들이 원하는 방식과 형태여야 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 구성원들의 필요에 답하지 못하는 경우 사업이 실패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지속가능한 평화에 기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화구축에서 가장 자주, 그리고 현장에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로 언급되는 것이 갈등해결이다. 갈등 이해, 갈등 분석, 갈등 대응 및 해결, 소통과 대화 등 개인, 집단, 사회의 갈등 대응 및 해결 역량을 키우는 다양한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이 평화구축을 위한 사업으로 실행된다. 민주사회, 젠더, 개발, 인권 등과 관련된 사업에도 갈등해결 교육 및 훈련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평화구축은 결국 갈등해결을 의미하는가? 또는 갈등해결이 평화구축의 핵심인가? 평화구축에 갈등해결이 불가피하게 포함되는 건 맞으나 평화구축이 곧 갈등해결을 의미하는 것도, 갈등해결이 평화구축의 핵심인 것도 아니다. 다만 갈등해결이 자주 언급되고 사업 내용에 포함되는 이유는 평화구축을 위해 집단 사이 갈등(무력 갈등 포함)을 야기한 근본원인의 규명과 갈등 상황으로 복귀하지 않기 위한 개인, 집단, 사회의 갈등 대응과 해결 역량 형성과 향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와 국가의 재건, 그리고 대립에서 공존 관계로의 변화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집단 사이 갈등에 대한 대응, 그리고 불필요한 갈등 발생의 예방을 위한 ‘참여와 합의’ 과정의 설계 및 실행을 위해 사회 구성원들의 갈등 대응 및 해결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장 갈등을 겪었거나 집단 사이 장기적이고 심각한 대립으로 사회적 단절이 존재하는 경우 평화구축의 전 과정이 갈등에 취약할 수 있으므로 갈등해결이 평화구축의 핵심 내용과 사업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기도 하다.

 

평화구축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두 가지는 전략적(strategic) 평화구축과 갈등전환이다. 전략적 평화구축은 평화적 사회로의 변화를 위해 인적 자원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자원과 노력을 결합하고 조율하는 것을 말한다. 평화구축을 위해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목표와 현안을 단기적이고 즉각적으로, 동시에 중.장기적인 안목과 실행 계획을 가지고 다뤄야 한다는 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전략적 평화구축은 갈등해결의 가장 진보한 이론 중 하나인 갈등전환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동시에 갈등전환의 여러 이론과 접근을 공유한다. 갈등전환은 갈등을 야기한 문제의 종식을 넘어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이자 영향을 받는 개인, 관계, 구조, 문화의 측면을 통합적으로 다루고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에 초점을 맞춘다. 여전히 무장 갈등에 취약하고 사회적 단절이 지속되는 사회의 평화구축에서는 집단 사이 반목과 대결의 근본원인 규명과 전환, 그리고 바람직한 미래 관계 형성을 위한 이런 갈등전환이 불가피하다. 근본적인 변화와 그에 근거한 바람직한 미래 관계의 형성을 위해 갈등전환이 특별히 강조하는 접근 중 하나는 사회 영역의 수직적, 수평적 연결이다. 수직적 연결은 결정권한을 가진 상위 지도력에서 풀뿌리 영역의 지도력까지를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수직적 연결이 이뤄져야 상위 지도력은 풀뿌리 영역의 필요를 수렴해 정책을 결정하고, 결정은 다수 사회 구성원의 필요에 응답할 수 있다. 수평적 연결은 사회적 단절을 극복하고 갈등을 완화 및 해결하기 위해 이념적으로 좌. 우, 그리고 중도를 넘나들고 서로 연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수평적 연결은 사회적 단절의 극복, 갈등 해결, 갈등 재발 방지는 물론 평화적 공존의 사회를 위해 불가피하다. 수직적, 수평적 연결이 이뤄질수록 사회의 연결망은 촘촘해지고 그 결과 평화구축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갈등해결과 평화구축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갈등해결이 평화구축의 전부가 아니고, 평화구축이 갈등해결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애초 평화구축의 필요가 무장 갈등을 포함한 사회 갈등, 집단 사이 대결의 고착, 관계 단절과 악화로 인한 폭력적 상황의 지속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갈등해결의 관점에서 사회적 현상과 필요를 분석하고 실질적 변화를 위한 평화구축 실행 계획을 수립하는 건 오히려 자연스럽다. 또한 평화구축을 논할 때, 그리고 실행 계획을 세울 때 갈등해결 이론과 실행 접근이 자주 언급되고 사업에 포함되는 건 갈등해결 없이 평화구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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