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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 평화와 한반도 평화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는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말이 됐다. 그런데 평화의 개념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떤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건 상식이나 자기 이해를 통해 놓치거나 의도치 않게 왜곡할 수 있는 점을 바로잡을 수 있으므로 중요하다. 놓치거나 왜곡할 수 있는 점이 그 개념의 핵심이라면 더욱 그렇다.

 

평화는 ‘평화로운 상태’ 또는 ‘평화롭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과 집단이 공격이나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각자의 인간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며 더불어 사는 것을 말한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리고 인간 집단은 평화롭게 살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다른 말로 누구도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인간성과 정체성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평화롭게 살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평화롭게 살기 위해, 다른 말로 평화를 성취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방식이다. 평화는 평화로운 방식을 통해 성취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위험에 빠뜨려 성취하는 평화는 의미가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타인의 평화롭게 살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이고 평화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더불어 살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평화, 즉 평화롭게 사는 것을 선택해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가치나 사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평화연구에서 말하는 평화는 추상적인 가치, 또는 주관적인 이념이나 사상이 아닌 사회적 개념에 가깝다. 평화를 인류가, 그리고 각 사회가 지향할 목표이자 생활 방식으로 보고 성취를 위한 사회적 조건과 방식을 연구한다. 그렇다고 평화를 강요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모두의 인간성, 안전, 행복을 지키고 삶의 질을 높이는 평화를 부인하는 사람과 집단은 없다. 때로 진정성이 없고 위선일지라도 말이다. 이는 평화의 보편성 때문이고 그런 이유로 평화 성취를 위한 사회적 노력과 국가의 지원은 타당하게 여겨진다. 유엔이 평화문화선언을 통해 개인과 집단 사이 평화적 공존과 평화문화를 위한 정부와 시민사회의 노력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적극적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는 이론적으로 소극적(negative) 평화와 적극적(positive) 평화로 구분된다. 이 개념은 평화학자인 요한 갈퉁이 1960년대 말 처음 제시했고 그후 많은 사람의 연구를 거쳐 다듬어지고 발전했다. 소극적 평화는 인간의 신체에 직접 가해지고 생명의 손실이나 해를 끼치는 물리적 폭력, 다시 말해 직접적 폭력이 사라질 때 성취된다. 사회가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재앙인 전쟁도 그런 폭력에 해당한다. 냉전 시대 많은 연구가 무기 감축, 정치적 안정, 집단 안보, 국가 간 협력 등을 통한 전쟁 억제와 소극적 평화 성취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그런 접근은 전쟁 가능성을 제거하지 못한 채 현 상태(status quo)만 유지한다는 비판을 낳았다.

 

적극적 평화는 구조적 폭력에 초점을 맞춘다. 구조적 폭력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사회 구성원의 자유와 성장, 안전과 행복을 방해하는 사회적 제약과 억압을 의미한다. 이런 폭력은 개인과 집단의 잠재성을 제한하거나 박탈한다. 적극적 평화는 사회 정의 실현과 발전을 통해 구조적 폭력에서 야기된 사회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제거함으로서 성취된다. 간과하지 않아야 할 건 구조적 폭력을 뒷받침하고 정당화하는 문화적 폭력 또한 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사상, 철학, 이론, 담론, 상징 등을 매개로 가해지는 문화적 폭력은 구조적 폭력을 강화 또는 유지하고 그 결과 사회적 불평등과 부정의의 지속에 기여한다.

 

소극적 평화는 그 자체로 부정적인 건 아니다. 전쟁은 막아야 하고 되도록 빨리 종식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이라는 핑계로 소극적 평화만 주장하면 사회 구성원들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적극적 평화로 나아갈 수 없다. 그 결과 불완전한 평화가 지속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전쟁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면 전쟁의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전쟁 가능성과 수용성을 높이는 사회 구조와 문화를 바꿔야 한다. 나아가 그로 인해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 권리를 침해당하는 개인과 집단이 없어야 하고 사회적 불평등과 부정의가 사라져야 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사회적 환경과 조건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극적 평화는 적극적 평화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때 의미가 있다.

 

적극적 평화를 성취하는 게 가능할까? 많은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한다. 평화를 성취한다는 건 최종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 과정에서 어느 지점까지 갔는지는 아주 중요하다. 적극적 평화를 완전하게 성취한 사회는 거의 없지만 거기에 가까운 사회와 거기에서 멀리 떨어진 사회의 환경과 구성원들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사회가 더 나은 사회인지는 분명하다.

 

 한반도는 평화로워질 수 있을까?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의 개념을 적용해보면 한반도는 소극적 평화조차 성취되지 않는 상황이다. 한국전쟁이 공식적으로 종식되지 않았고 전쟁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우리는 평화롭게 살고 있지 않다. 현실적으로 전면전의 가능성이 낮다고 하지만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제로 언제든 무력 충돌이 생길 수 있다. 2018년 9월의 남북군사합의에서 상호 적대행위 중단을 합의했지만 그렇다고 전쟁 가능성이 제거된 건 아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건 전쟁 가능성의 완전한 제거를 통한 소극적 평화의 성취다.

 

문제는 오랫동안 대결해온 남북관계에서 전쟁 가능성이 제거되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상호 불신을 줄이고 신뢰를 높이지 못하면, 그리고 상대를 설득할 가시적인 노력과 결과를 서로에게 보여주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군축은 그런 점에서 중요하다. 남북이 판문점선언에서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서로의 군사적 신뢰가 실질적으로 구축되는 데 따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한 것은 바람직하고 고무적이다. 물론 실천이 따라야 한다.

 

적극적 평화는 어떻게 성취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 사회적 불평등과 부정의를 만드는 구조적 폭력을 제거하고 모두가 사회 발전의 혜택을 누리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적극적 평화에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한반도 평화와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남북의 대립, 무력 대결, 전쟁 가능성을 지속시키는 우리 사회 구조와 문화는 그동안 구성원들의 자유, 성장, 안전, 행복을 방해하고 제한해왔다. 남북관계의 변화 및 악화로 충분히, 그리고 공평하고 공정하게 사회 발전의 혜택을 누릴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군사적 대결에 막대한 자원을 소비하는 상황으로 인해 많은 사회 구성원, 특히 자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만들 기회를 누리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남북 대립을 강화하고 지속시키는 사회 구조가 변해야 하고, 남북 사이 증오와 대결을 심화시키는 폭력적 태도와 담론도 사라져야 한다. 우리의 변화는 결국 북한 사회까지 변화시키고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로 나아가는 길은 결국 적극적 평화로 나아가는 길이 된다.

 

앞에서 소극적 평화는 적극적 평화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소극적 평화를 성취하지 못하면 적극적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할까? 그렇지는 않다. 소극적 평화 성취를 위한 노력은 적극적 평화의 추구와 결합되고 상호작용을 통해 평화를 향한 여정을 견고하게 만든다. 다만 소극적 평화, 다시 말해 전쟁의 부재를 평화의 성취로 생각한다면 적극적 평화는 성취될 수 없다. 나아가 전쟁 가능성을 지속시키는 구조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소극적 평화조차 가능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전쟁 가능성의 제거를 넘어 적극적 평화까지 성취되는 한반도를 상상해야 한다. 소극적 평화의 성취가 아닌 완전히 평화로운 한반도를 목표로 삼아야 한반도가 정말 조금씩 평화로워질 수 있다.

 

* 위 글은 통일부의 <2020 평화>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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