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는 남북한 사이의 평화로 규정된다. 평화는 존재의 독립성이 아닌 관계의 상호성을 통해 규정되므로 한반도 평화는 남북한 사이의 관계와 상호작용이 평화적일 때 가능하다. 이런 전제에 기반하면 한반도는 평화롭지 않다. 한국전쟁이 정전협정으로 일단락된 후 70년 이상 전쟁이 부재한 상황이지만 평화롭지는 않다. 전쟁의 부재 여부를 통해 평화를 규정하는 경우 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완전한 수준의 평화에 미치지는 못해도 전쟁의 부재를 통해 성취되는 소극적 평화는 성취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소극적 평화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소극적 평화는 신체에 가해지는 물리적 폭력이 부재한 상태를 의미한다. 국가 또는 집단 사이 관계에서는 물리적 충돌, 무력을 동원한 충돌이 부재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 이유로 흔히 전쟁 없는 평화를 소극적 평화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필요한 건 전쟁의 부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다. 전쟁의 부재가 무력 충돌의 부재로만 설명된다면 전쟁의 가능성을 내포한 무력 경쟁과 대결, 군사적 긴장, 적대관계의 존재 및 지속에 대한 설명은 공백으로 남는다. 이런 상태를 소극적 평화로 규정한다면 평화 상태지만 항상 전쟁을 준비하고 우려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나아가 전쟁의 위험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소극적 평화는 전쟁의 부재로만 규정될 수 없으며 전쟁 가능성의 부재까지 포함해 규정되어야 한다.
전쟁 가능성의 부재까지 포함하면 한반도는 소극적 평화가 성취되지 않은 상태다. 한반도에는 전쟁 가능성이 상존하며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한국전쟁이 종전이 아닌 정전으로 중단됐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남북한 사이 무력 대결과 적대관계가 지속되고 그에 따라 무력 경쟁과 전쟁 준비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정전협정으로 중단됐더라도 남북한이 노력했다면 소극적 평화는 성취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무력 대결과 적대관계를 완화함으로써 전쟁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평화적 공존 상태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없었고 결국 한반도는 한국전쟁 이후 70년 이상 소극적 평화조차 성취하지 못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7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전쟁 가능성을 제거하기보다 전쟁 가능성을 안고 사는 선택을 했다는 건 매우 엄중하게 성찰해야 할 일이다. 이는 남북한 사이 적대관계의 고착화와 외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반도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가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그에 익숙해진 데서 기인한 면도 있다.
무력 경쟁과 전쟁 준비는 전쟁 가능성의 상존을 야기하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다. 여기에는 경쟁적인 군사 훈련, 무력 시위, 무기 개발 등이 포함되고 이로 인해 언제라도 전쟁이 가능한 상태가 지속된다. 그 결과 전쟁은 부재하나 소극적 평화는 성취되지 않는 상태가 된다. 무력 대결과 적대관계의 지속을 통한 전쟁 가능성의 상존 상태를 만드는 중요한 기반 중의 하나는 국방비다. 국방비는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을 위해 불가피하게 지출되는 비용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으나 한국 사회의 경우 북한과의 무력 대결과 적대관계 유지가 국방비 지출 및 지속적 증가의 주요한 목표 중 하나다. 이는 ‘국방’, ‘억지력 확보’, ‘자주국방’ 등의 긍정적인 언어로 설명된다. 그러나 국방비의 지속적 증가는 군사적 긴장의 고조와 무력 경쟁의 지속을 통해 전쟁 가능성을 높인다.
미국의 민간 군사력 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가 2024년 1월 19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145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5위였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6위를 기록했는데 2024년에 1단계 더 상승했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높은 순위의 군사력을 뒷받침하는 건 국방비다. 2023년 한국의 국방비는 세계 8위로 2021년, 2022년과 동일했다. 이는 국방비가 정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음을 의미한다. 남북한의 군사 대결과 적대관계가 계속되는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긴 하지만 정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국방비 비율은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해왔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 국방비는 정부 예산의 거의 35%를 차지했다. 198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30% 정도로 떨어졌고 1990년이 되어서야 20%대로 떨어졌다. 그리고 1998년에 18.3%로 비로소 10%대에 진입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15% 정도를 유지했고 그후로는 10% 정도가 됐다. 그리고 2019년부터 10% 밑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이런 국방비 비율 축소는 정부 예산 규모가 커짐에 따라 생긴 착시효과일 뿐이다. 예를 들어 2019년 국방비는 전년보다 8.2% 증가해 역대 최고 증가치를 기록했으나 정부 예산의 9.9%를 차지했다. 2020년 국방비 역시 전년보다 7.4% 증가해 높은 증가율을 보였고 처음으로 50조 원을 넘었다. 그러나 정부 예산의 9.8%를 차지했다. 국방비는 2017년 40조 3,347억 원에서 불과 3년 만에 거의 10조가 증가했다. 코로나19 상황인 2021년에도 5.4%, 2022년에는 3.4%로 꾸준히 증가했다. 2024년 국방비는 정부 예산의 9%를 차지하지만 액수로는 59조 4,244억 원으로 60조 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50조 원에서 60조 원을 육박하는 액수로 증가하는 데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2024년 국방비는 전년보다 4.2% 증가했다. 국방비 증가와는 대조적으로 정부 예산은 전년보다 2.8% 증가했고 2023년 경제성장률은 1.4%에 불과했다.
정부는 2024년 국방비를 한국형 3축 체계와 무인기 등 비대칭 위협에 대한 대응 전력 확보를 위한 예산에 집중적으로 배치했다고 밝혔다. 또한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 보강 등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대응능력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2020년 8.5% 증가 이후 1%대 증가율을 보였던 방위력개선비는 2024년에 4.4%로 획기적으로 증가했다. 이런 국방비 증가와 신형 무기 투자 등은 국방, 억지력 확보, 자주국방 등을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두가 실현되는 때까지의 적절한 국방비 수준과 최종 목표의 설정은 남북한의 무력 경쟁과 신형 무기 개발이 지속되는 한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결국 정부 예산 증가율과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국방비 증가율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우려를 낳게 한다.
국방비가 계속 증가하는 이유는 남북한 사이 무력 대결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저변에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사회에 팽배한 군사문화와 전쟁 담론이다. 전쟁을 겪었고 이후 계속 전쟁을 준비해온 한국 사회에 군사문화의 뿌리는 여전히 깊다. 징병제도 또한 군사문화를 강화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징병제로 인해 개인의 안전보다 국가 안보가 우선으로 여겨지고 군사력만이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보장한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어 있다. 군복무는 가장 신성한 국민의 의무로 여겨진다. 다양한 사회 영역의 구조나 문화를 남성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군복무를 마친 남성들이 이식하고 강화하는 군사문화의 영향 또한 지대하다. 군사문화의 유효성과 영향력을 보여주는 가장 민감한 사례 중 하나는 병역 면제 또는 기피에 대한 강한 사회적 비난과 병역 문제를 둘러싼 젠더 갈등의 악화다. 이는 모두 강한 군사력이 국가 및 개인의 존재를 보장하고 한반도 안정의 열쇠가 된다는 개인적, 사회적 신념에 근거하고 있다. 이런 군사문화는 국방비 증가의 불가피성 옹호, 첨단 무기 수입 및 개발 지지, 강한 군사력 선호, 심지어 핵무기 개발 지지로까지 이어진다. 남북관계 및 남북문제와 관련해 통일부나 외교부가 아닌 국방부의 목소리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대응 전략의 핵심이 되곤 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점 또한 군사문화가 팽배한 한국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군사문화와 함께 팽배한 전쟁 담론 또한 국방비 증가를 용이하게 한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는 계속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전쟁은 부재하지만 사회 구성원들은 전쟁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으며 그에 따라 전쟁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승인하는 전쟁 담론을 지지한다. 북한과의 전쟁에 항상 대비해야 하며 전쟁 예방을 위해 억지력을 확보하고 강한 군사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은 최후까지 피해야 하지만 전쟁을 잘 준비하는 것만이 개인과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은 한국 사회의 안전과 유지를 위해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상황으로 여겨진다. 정부 또한 전쟁 담론에 익숙하고 때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전쟁 담론을 이용한다. 이런 전쟁 담론은 전쟁에 익숙한 문화를 유지하고 전쟁 반대 목소리에 대한 외면과 비판으로 나타나곤 한다.
지금까지 소극적 평화가 성취되지 않은 한반도의 상황과 소극적 평화의 성취를 불가능하게 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언급했다. 이런 이론적 접근을 통한 분석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전쟁의 부재를 강조하며 적어도 소극적 평화는 성취됐다고 주장하곤 한다. 남북한 사이 무력 대결과 적대관계의 유지가 최소한의 평화를 해치는 상황을 만들지는 않고 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언급했듯이 전쟁은 부재하지만 전쟁 위험이 상존하는 한반도는 소극적 평화가 성취되지 않은 상태다. 특히 군사문화와 전쟁 담론의 팽배, 그리고 그런 문화적 토대를 통해 정당화되는 국방비의 지속적 증가는 무력 대결을 강화하고 군사적 긴장을 높임으로써 전쟁 위험을 지속시킨다. 표면적으로는 전쟁의 거부와 부재에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군사력 강화를 강조하고 무력 경쟁에 초점을 맞춘 남북관계를 강조한다. 전쟁의 부재를 소극적 평화의 성취로 보는 왜곡된 시각이 존재하는 한 전쟁의 위험은 사라지지 않고 한반도의 소극적 평화는 성취될 수 없다.
한반도 평화는 남북한 사이의 평화로 규정된다. 평화는 존재의 독립성이 아닌 관계의 상호성을 통해 규정되므로 한반도 평화는 남북한 사이의 관계와 상호작용이 평화적일 때 가능하다. 이런 전제에 기반하면 한반도는 평화롭지 않다. 한국전쟁이 정전협정으로 일단락된 후 70년 이상 전쟁이 부재한 상황이지만 평화롭지는 않다. 전쟁의 부재 여부를 통해 평화를 규정하는 경우 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완전한 수준의 평화에 미치지는 못해도 전쟁의 부재를 통해 성취되는 소극적 평화는 성취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소극적 평화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소극적 평화는 신체에 가해지는 물리적 폭력이 부재한 상태를 의미한다. 국가 또는 집단 사이 관계에서는 물리적 충돌, 무력을 동원한 충돌이 부재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 이유로 흔히 전쟁 없는 평화를 소극적 평화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필요한 건 전쟁의 부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다. 전쟁의 부재가 무력 충돌의 부재로만 설명된다면 전쟁의 가능성을 내포한 무력 경쟁과 대결, 군사적 긴장, 적대관계의 존재 및 지속에 대한 설명은 공백으로 남는다. 이런 상태를 소극적 평화로 규정한다면 평화 상태지만 항상 전쟁을 준비하고 우려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나아가 전쟁의 위험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소극적 평화는 전쟁의 부재로만 규정될 수 없으며 전쟁 가능성의 부재까지 포함해 규정되어야 한다.
전쟁 가능성의 부재까지 포함하면 한반도는 소극적 평화가 성취되지 않은 상태다. 한반도에는 전쟁 가능성이 상존하며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한국전쟁이 종전이 아닌 정전으로 중단됐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남북한 사이 무력 대결과 적대관계가 지속되고 그에 따라 무력 경쟁과 전쟁 준비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정전협정으로 중단됐더라도 남북한이 노력했다면 소극적 평화는 성취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무력 대결과 적대관계를 완화함으로써 전쟁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평화적 공존 상태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없었고 결국 한반도는 한국전쟁 이후 70년 이상 소극적 평화조차 성취하지 못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7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전쟁 가능성을 제거하기보다 전쟁 가능성을 안고 사는 선택을 했다는 건 매우 엄중하게 성찰해야 할 일이다. 이는 남북한 사이 적대관계의 고착화와 외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반도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가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그에 익숙해진 데서 기인한 면도 있다.
무력 경쟁과 전쟁 준비는 전쟁 가능성의 상존을 야기하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다. 여기에는 경쟁적인 군사 훈련, 무력 시위, 무기 개발 등이 포함되고 이로 인해 언제라도 전쟁이 가능한 상태가 지속된다. 그 결과 전쟁은 부재하나 소극적 평화는 성취되지 않는 상태가 된다. 무력 대결과 적대관계의 지속을 통한 전쟁 가능성의 상존 상태를 만드는 중요한 기반 중의 하나는 국방비다. 국방비는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을 위해 불가피하게 지출되는 비용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으나 한국 사회의 경우 북한과의 무력 대결과 적대관계 유지가 국방비 지출 및 지속적 증가의 주요한 목표 중 하나다. 이는 ‘국방’, ‘억지력 확보’, ‘자주국방’ 등의 긍정적인 언어로 설명된다. 그러나 국방비의 지속적 증가는 군사적 긴장의 고조와 무력 경쟁의 지속을 통해 전쟁 가능성을 높인다.
미국의 민간 군사력 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가 2024년 1월 19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145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5위였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6위를 기록했는데 2024년에 1단계 더 상승했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높은 순위의 군사력을 뒷받침하는 건 국방비다. 2023년 한국의 국방비는 세계 8위로 2021년, 2022년과 동일했다. 이는 국방비가 정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음을 의미한다. 남북한의 군사 대결과 적대관계가 계속되는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긴 하지만 정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국방비 비율은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해왔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 국방비는 정부 예산의 거의 35%를 차지했다. 198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30% 정도로 떨어졌고 1990년이 되어서야 20%대로 떨어졌다. 그리고 1998년에 18.3%로 비로소 10%대에 진입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15% 정도를 유지했고 그후로는 10% 정도가 됐다. 그리고 2019년부터 10% 밑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이런 국방비 비율 축소는 정부 예산 규모가 커짐에 따라 생긴 착시효과일 뿐이다. 예를 들어 2019년 국방비는 전년보다 8.2% 증가해 역대 최고 증가치를 기록했으나 정부 예산의 9.9%를 차지했다. 2020년 국방비 역시 전년보다 7.4% 증가해 높은 증가율을 보였고 처음으로 50조 원을 넘었다. 그러나 정부 예산의 9.8%를 차지했다. 국방비는 2017년 40조 3,347억 원에서 불과 3년 만에 거의 10조가 증가했다. 코로나19 상황인 2021년에도 5.4%, 2022년에는 3.4%로 꾸준히 증가했다. 2024년 국방비는 정부 예산의 9%를 차지하지만 액수로는 59조 4,244억 원으로 60조 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50조 원에서 60조 원을 육박하는 액수로 증가하는 데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2024년 국방비는 전년보다 4.2% 증가했다. 국방비 증가와는 대조적으로 정부 예산은 전년보다 2.8% 증가했고 2023년 경제성장률은 1.4%에 불과했다.
정부는 2024년 국방비를 한국형 3축 체계와 무인기 등 비대칭 위협에 대한 대응 전력 확보를 위한 예산에 집중적으로 배치했다고 밝혔다. 또한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 보강 등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대응능력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2020년 8.5% 증가 이후 1%대 증가율을 보였던 방위력개선비는 2024년에 4.4%로 획기적으로 증가했다. 이런 국방비 증가와 신형 무기 투자 등은 국방, 억지력 확보, 자주국방 등을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두가 실현되는 때까지의 적절한 국방비 수준과 최종 목표의 설정은 남북한의 무력 경쟁과 신형 무기 개발이 지속되는 한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결국 정부 예산 증가율과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국방비 증가율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우려를 낳게 한다.
국방비가 계속 증가하는 이유는 남북한 사이 무력 대결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저변에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사회에 팽배한 군사문화와 전쟁 담론이다. 전쟁을 겪었고 이후 계속 전쟁을 준비해온 한국 사회에 군사문화의 뿌리는 여전히 깊다. 징병제도 또한 군사문화를 강화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징병제로 인해 개인의 안전보다 국가 안보가 우선으로 여겨지고 군사력만이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보장한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어 있다. 군복무는 가장 신성한 국민의 의무로 여겨진다. 다양한 사회 영역의 구조나 문화를 남성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군복무를 마친 남성들이 이식하고 강화하는 군사문화의 영향 또한 지대하다. 군사문화의 유효성과 영향력을 보여주는 가장 민감한 사례 중 하나는 병역 면제 또는 기피에 대한 강한 사회적 비난과 병역 문제를 둘러싼 젠더 갈등의 악화다. 이는 모두 강한 군사력이 국가 및 개인의 존재를 보장하고 한반도 안정의 열쇠가 된다는 개인적, 사회적 신념에 근거하고 있다. 이런 군사문화는 국방비 증가의 불가피성 옹호, 첨단 무기 수입 및 개발 지지, 강한 군사력 선호, 심지어 핵무기 개발 지지로까지 이어진다. 남북관계 및 남북문제와 관련해 통일부나 외교부가 아닌 국방부의 목소리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대응 전략의 핵심이 되곤 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점 또한 군사문화가 팽배한 한국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군사문화와 함께 팽배한 전쟁 담론 또한 국방비 증가를 용이하게 한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는 계속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전쟁은 부재하지만 사회 구성원들은 전쟁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으며 그에 따라 전쟁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승인하는 전쟁 담론을 지지한다. 북한과의 전쟁에 항상 대비해야 하며 전쟁 예방을 위해 억지력을 확보하고 강한 군사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은 최후까지 피해야 하지만 전쟁을 잘 준비하는 것만이 개인과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은 한국 사회의 안전과 유지를 위해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상황으로 여겨진다. 정부 또한 전쟁 담론에 익숙하고 때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전쟁 담론을 이용한다. 이런 전쟁 담론은 전쟁에 익숙한 문화를 유지하고 전쟁 반대 목소리에 대한 외면과 비판으로 나타나곤 한다.
지금까지 소극적 평화가 성취되지 않은 한반도의 상황과 소극적 평화의 성취를 불가능하게 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언급했다. 이런 이론적 접근을 통한 분석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전쟁의 부재를 강조하며 적어도 소극적 평화는 성취됐다고 주장하곤 한다. 남북한 사이 무력 대결과 적대관계의 유지가 최소한의 평화를 해치는 상황을 만들지는 않고 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언급했듯이 전쟁은 부재하지만 전쟁 위험이 상존하는 한반도는 소극적 평화가 성취되지 않은 상태다. 특히 군사문화와 전쟁 담론의 팽배, 그리고 그런 문화적 토대를 통해 정당화되는 국방비의 지속적 증가는 무력 대결을 강화하고 군사적 긴장을 높임으로써 전쟁 위험을 지속시킨다. 표면적으로는 전쟁의 거부와 부재에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군사력 강화를 강조하고 무력 경쟁에 초점을 맞춘 남북관계를 강조한다. 전쟁의 부재를 소극적 평화의 성취로 보는 왜곡된 시각이 존재하는 한 전쟁의 위험은 사라지지 않고 한반도의 소극적 평화는 성취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