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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육의 철학과 평화통일교육에의 적용

평화적 공존을 위한 평화교육

우리가 평화, 다시 말해 평화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직접적, 간접적으로 평화의 부재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을 평화의 부재, 또는 폭력의 존재로 인식하고 경험한다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평화를 인식 및 갈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평화에 대한 인식과 갈망에만 머문다면 평화를 성취할 수 없다.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평화는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폭력은 조금씩 줄어든다.


그렇다면 평화로운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평화연구의 초기, 그러니까 1950년대 전후의 시기에 평화를 연구하던 학자들은 평화의 실현을 위해 전쟁의 부재에 초점을 맞췄다. 1, 2차 세계대전으로 인간의 삶과 생활 터전이 송두리째 파괴되는 경험을 했고 그들은 인간사회가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세상은 평화로워질 것으로 생각했다. 1960년대에도 평화를 위한 주요 관심은 여전히 전쟁의 예방, 핵무기 문제, 국제안보 시스템 등에 맞춰졌다. 19세기 초부터 시작된 평화운동 또한 전쟁 반대, 핵무기 반대, 무기 감축 등에 주로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전쟁이 없는 세상이 곧 평화로운 세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이 부재해도 다양한 폭력은 세계, 사회, 집단, 개인으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평화의 부재를 경험하게 한다. 평화연구는 1960년 중반부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전쟁을 포함해 평화의 부재를 야기하는 모든 사회적 문제를 규명하고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구조적 폭력이나 문화적 폭력으로 정의되며 그런 폭력이 인간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집단과 개인은 평화의 부재를 경험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갈망하게 된다.


평화의 부재를 인식하고 갈망하는 사람들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이미 4세기 초 많은 기독교인이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무력 사용을 수용한 것과 로마제국의 억압적 통치에 저항해 수도원으로 향했고, 십자군 전쟁 시기에는 많은 교회와 개인이 평화를 갈망하며 봉건적 정치와 교회 권력을 거부했다. 1233년에는 40만 명이 이탈리아의 베로나에 모여 유혈 내전 종식을 요구하는 집회를 했다. 19세기 초부터 시작된 평화운동은 지금까지 전쟁 예방과 중단에 관심을 쏟고 다양한 대중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세계의 많은 개인, 단체, 집단이 평화의 부재를 규명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남북, 북미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 전쟁 반대 집회가 열리곤 한다. 하지만 평화로운 세상은 더 조직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필요로 한다. 일부 개인이나 집단의 노력, 또는 일시적 집회가 아닌 세계와 사회 구성원 다수가 평화를 갈망하고 행동해야 세계와 사회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교육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노력을 넘어 다수의 동참을 만들어내기 위한 조직적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거기에는 단순히 다수의 동참이 필요하다는 것을 넘어 평화로운 세상이 소수의 힘이나 부과로는 불가능하며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평화교육은 그러므로 특정 개인과 집단의 선택을 사회적 선택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고 합의된 선택을 위한 토대를 만드는 작업이다. 평화교육의 또 다른 의미는 평화의 부재에 대한 인식과 평화에 대한 갈망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전쟁이 임박했을 때 사람들은 전쟁 반대 캠페인에 동참하지만 위기가 지나면 관심은 사라진다. 여전히 국가안보와 애국심을 강조하며 전쟁 준비와 무기 경쟁이 계속되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또한 특정 폭력 사건에 대해 높아진 관심은 사건이 종결되면 사라진다. 비슷한 폭력이 여전히 계속되고 근본원인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음에도 말이다. 평화교육은 평화의 부재와 폭력의 존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행동을 담보하기 위한 조직적인 노력이다. 평화교육은 전략적 접근이기도 하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평화 부재의 상황에 대한 일시적 대응이나 변화가 아닌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대응과 변화가 필요하며 평화교육은 현재의 교육이 점진적, 장기적 변화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구상되고 실행될 수밖에 없다. 변화는 인간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의 변화를 의미하지만 그 변화는 사람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평화교육은 변화를 추동할 사람의 변화를 목표로 하며 그것이 평화교육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의미다.


평화교육이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것은 ‘평화적 공존’이다. 평화적 공존은 평화로운 세상의 모습이고 이는 모두가 행복하고 안전하게, 그리고 억압과 강요가 없이 더불어 사는 모습을 의미한다. 평화로운 공존이 평화로운 세상의 모습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누구도 생존과 삶의 유지를 위해 자신의 원래 모습을 포기하거나 힘에 굴복해 원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두의 인간성이 존중되는, 그리고 누구도 타인의 인간성을 파괴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대립과 대결이 생겼을 때 평화적 방식으로 대응 및 해결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상호 역량을 향상하고 완벽한 평화적 공존의 상태로 함께 전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교육은 이런 평화적 공존의 실현을 위해 세계와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과 개인의 역량을 만들고 실행을 독려하며 동시에 연습하는 내용과 과정을 포함한다.


평화교육의 실행 목표는 평화적 공존을 삶의 가치로 삼고 실현을 위해 행동하는 세계와 사회의 구성원을 기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평화교육은 평화의 가치와 평화에 대한 지식을 나누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공동의 비전을 만드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평화적, 폭력적 세상의 모습과 가해와 피해의 이해, 증오와 혐오의 거부와 타인에 대한 이해 향상, 편견과 선입견의 극복, 공동의 문제 대응 및 해결 방법 습득, 평화적 공존의 실현을 위한 변화의 모색과 실행 등을 의미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복잡하고 다양한 집단과 개인의 이익과 삶의 욕구가 충돌하는 세상에서 폭력적 대응과 대립이 아닌 평화적 대응과 공존을 통해 각자의 인간성 유지와 상호 존중의 관계와 가치가 지니는 철학적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평화교육이 사회적으로 가지는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평화문화의 형성, 확대, 정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라는 것이다. 평화문화는 평화에 대한 갈망과 평화로운 세상의 실현을 위한 노력이 ‘특이한’ 소수의 생각과 주장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타당성과 일상성을 가지고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문화’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적 공존의 실현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평화문화를 만들고 유지하는 사회적 역량이 필요하고 그 역량은 평화교육을 통해 조달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와 도전에도 불구하고 평화문화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평화교육은 필요하다.


평화교육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가치와 철학은 교육의 방식이다. 평화교육은 평화적 방식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교육자와 피교육자 사이 힘의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고,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닌 상호 배움이 일어나며, 공동의 토론과 경험을 통해 피교육자들이 평화의 가치와 평화로운 세상을 선택할 수 있게 독려하는 방식을 말한다. 교육과정 안에는 어떤 억압과 강요, 다시 말해 어떤 종류의 폭력도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교육과정 자체가 교육자와 피교육자가 함께 평화적 관계와 공존을 경험하는 장이 되어야 하고 그런 경험 자체가 교육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평화교육의 필요

우리 사회의 평화 수준은 높지 않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사회 곳곳에서 확대되고 있는 개인 및 집단 사이 대립과 공격,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제, 개인 및 집단의 이익과 욕망 실현을 위한 약자 권리의 침해와 그로 인한 피해 등은 우리가 평화 부재의 삶을 살고 있으며 일상이 폭력사회 안에서 유지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적 공존이나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은 편이다. 일상의 폭력을 줄이고 평화적 삶의 필요를 논의할 체계적 평화교육도 많지 않다. 극히 일부의 사회 구성원들을 위한 일회성 평화교육은 존재하지만 특정 개인과 집단을 위한 지속적인 평화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평화 또는 평화적 공존의 실현은 여전히 극소수의 담론 내지 선언에 머물러 있고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절실하게 필요한 가치나 철학으로 논의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평화 부재에 기여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여전히 요원해 보이는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한반도 평화의 부재다. 남북의 정치적, 군사적 대립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또한 개인적, 사회적 삶을 불안하게 만들고 전쟁의 위험에 처하지 않고 살 권리인 평화적 생존권을 지속적으로 침해한다. 부정적 영향과 평화적 생존권의 침해는 특별히 약자에게는 심각한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한국전쟁 이후 70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남북의 대립과 그로 인한 평화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체계적, 분석적 해석조차 부족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남북의 대립에서 비롯된 평화의 부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진원지의 문제는 한국전쟁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한국전쟁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은 남북 대결의 합리화, 남북 군비 경쟁의 정당화, 국가안보 담론의 유지를 위해 여전히 한국전쟁이 강조되고 있다. 한국전쟁에 대한 담론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변한 것이 거의 없다. 한국전쟁은 대한민국을 지킨 ‘애국 전쟁’이었고, 군인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하며, 다시는 북한이 침공하지 못하도록 군사력을 유지하고 경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편으로는 다시는 한반도에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다짐도 있지만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고 남북관계가 원만한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강조될 뿐이다. 정치적, 사회적 감시 속에서 한국전쟁에서의 정치와 군의 역할, 한국전쟁 자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나 평가는 시민과 공유되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여전히 ‘전쟁 담론’과 ‘애국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북한에 대한 증오와 불가피한 전쟁의 수용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남북 대립에서 비롯돼 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념 대결은 평화의 부재를 지속시키는 또 다른 진원지의 문제다. 남북의 이념 대결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우리 사회의 이념 대결이다. 이념 대결은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건강한 토론과 비판을 방해한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막고 반복적으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야기한다. 가장 심각한 방해는 남북 대화와 관계 개선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대화와 관계 개선은 점진적이고 지난한 과정을 필요로 하지만 이념 대결로 인해 사회적 합의는 어렵고 정부가 대화 지속을 위한 정책과 태도를 유지하려 해도 사회적 합의의 부족으로 쉽지가 않다.


지속적인 무장 강화는 평화의 부재에 기여하는 또 다른 문제다. 우리의 무장 강화는 북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시시때때로 남북관계의 긴장을 야기하고 경제적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무장 강화는 필연적으로 우리 사회를 열심히 전쟁을 준비하는 사회로 만들고 그에 따라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막대하다. 그 비용 중 보통 간과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 정서와 사회문화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다. 전쟁을 준비하는 사회문화는 전쟁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불가피한 전쟁’ 담론을 통해 전쟁을 정당화하는 국민 정서 형성과 유지에 기여한다. 징집제 유지로 인해 사회 전역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군사문화는 가부장문화와 함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억압과 강요를 합리화, 정당화, 희화화하는 사회문화를 지속시킨다.


평화교육은 평화적 공존을 실현하기 위해 인적 자원을 만들고 사회적으로 확대하는 교육이다. 보편적 평화에 기초해 평화적 공존의 실현을 위한 지식과 방식을 교육하는 평화교육은 사회와 구성원이 당면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내용으로 구성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평화교육도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 간과할 수 없는 내용이 바로 남북관계 및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것이다. 두 문제는 우리 사회 평화의 부재를 야기하는 근본원인 중 하나이자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평화 없는 삶의 지속에 가장 중요하게 기여한다. 평화교육은 불가피하게 이 문제들을 다루는 교육을 만들고 확대해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평화교육은 어떻게 구상될 수 있을 것인가? 앞에서 언급한 평화교육이 가지는 몇 가지 철학적 접근을 어떻게 한반도 평화를 위한 평화교육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 정리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먼저 평화교육은 평화적 공존의 세계와 사회의 실현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평화교육은 평화적 공존을 사회적으로 합의된 선택으로 바꾸기 위한 토대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 이런 접근은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접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결에서 대화로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바꾸고 한반도 평화를 남북 대화 및 교류의 목표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선택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적 공존, 그리고 남북 대결과 군사적 대응의 필요가 대립적 선택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 선택은 불충분하고 균형 잡히지 않은 정보, 이념 대결의 영향을 받은 인식, 일시적 상황 변화의 영향 등에 노출된 채 이뤄진다.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접근과 토론, 객관적이고 투명한 정보의 공유가 부족하다. 평화교육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이런 도전을 극복하고 포괄적이고 다양한 정보와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인식을 통해 스스로 선택하고 변화된 선택을 하는 성찰과 훈련의 장을 제공할 수 있다.


평화의 부재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평화에 대한 갈망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것 또한 평화교육의 기본적인 철학적 접근이다. 이런 접근 또한 남북관계 및 한반도 평화에 적용될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70년 동안 우리 사회는 평화롭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상존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보편적 평화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우리는 군사적 충돌의 부재를 평화 상태로 여기며 살아왔다. 전쟁과 분단, 남북 대립과 군사 대결을 경험했음에도 평화에 대한 성찰, 20세기 말에야 시작된 평화운동과 평화교육, 그리고 평화문화에 대한 여전한 인식의 부족, 학제로서 평화학의 부재 등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평화에 둔감했고 현재까지도 그런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남북 대결과 증오의 상존, 정치적 군사적 대결의 지속, 그리고 무력 충돌 가능성의 상존과 전쟁 준비 구조 및 문화에 대한 비판적, 분석적 성찰을 제공하는 것이 평화교육이 할 일이다. 그를 통해 평화교육은 평화에 대한 갈망을 시시때때로 확인하고 상황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속성을 만들어야 한다.


평화교육은 평화적 공존을 향한 점진적, 장기적 변화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구상되고 실행되는 전략적 교육으로 변화를 추동할 사람의 변화에 가장 주목한다. 특별히 억압과 강요의 폭력에 더는 굴복하지 않고 소수 권력자를 감시하고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수 사회 구성원의 변화에 주목한다. 사회 구성원의 변화에 대한 평화교육의 관심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변화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관계 담론은 정부와 소수의 정치인과 시민운동가들에 의해 주도돼왔고 현재 상황 또한 다르지 않다.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은 담론에서 배제되고 의사결정 체제에 초대받지 못한 채 대부분 관찰자 내지 방관자 역할에 머물러 있다. 남북관계 변화와 한반도 평화의 성취 여부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개인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문제임에도 말이다. 다른 한편 대다수 사회 구성원은 정보와 지식, 그리고 역량의 부족으로 스스로 방관자 역할을 택하기도 한다. 어떤 한반도에서 살기를 원하는지는 모든 사회 구성원의 선택이 되어야 하고, 그것을 토대로 남북관계의 변화 여부와 한반도 평화의 추구 여부가 결정돼야 하지만 그런 결정에 영향을 미칠 사람의 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평화교육은 사회 구성원들의 변화에 주목하는 교육을 구상하고 제공할 수 있다.


평화교육의 실행 목표는 평화적 공존을 삶의 가치로 삼고 실현을 위해 행동하는 세계와 사회 구성원을 기르는 것이다. 이 점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특별히 중요하다. 남북문제가 동북아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한반도의 핵무기가 세계 문제가 된 상황에서 우리 사회 구성원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민이자 세계 평화를 위한 세계시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평화교육은 보편적 평화에 대한 이해와 평화적 공존의 세상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공동 성찰하는 장을 제공해야 한다. 이런 접근은 정치적, 군사적 상황 변화에 좌우되지 않고 남북의 궁극적인 평화적 공존과 한반도 평화의 목표를 세계 평화에의 기여와 연결시켜 성찰하고 행동하는 시민 역량을 기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이 지났고, 판문점선언 후 2년이 지났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최근에는 2018년 전으로 후퇴하고 있는 모습이다. 2018년 정부는 국민들에게 연속적으로 대규모 남북 이벤트를 제공했고 국민들은 그것을 통해 변화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하지만 정부는 더는 이벤트를 제공할 형편이 아니고, 국민들의 관심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다. 남북관계 또한 이전으로 후퇴하고 있다. 북미회담은 과거의 이벤트로만 기억되고 있고 가까운 미래에 회담 재개 전망은 거의 없다. 부정적 상황과 전망이 온통 우리 사회, 우리의 삶,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할 일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2018년 이전으로 후퇴한다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덜 후퇴하고 그전보다는 관계가 덜 파괴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것은 얼마나 많은 사회 구성원이 직면한 문제를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성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분석과 성찰의 역량은 평화교육을 통해 개발되고 향상될 수 있다.

 

평화교육의 시각에서 본 평화통일교육의 한계

2018년 통일부는 통일교육원을 통해 그동안 발간됐던 ‘통일교육 지침서’를 ‘평화.통일교육 : 방향과 관점’으로 이름을 바꿔 발간했다. 평화를 추가한 이 지침서는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교육의 방향과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통일은 평화적 통일”이어야 하며 “전쟁의 비극이 다시금 이 땅에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통일을 통해 미래의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와 민족의 공동번영이 실현되기를 희망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통일교육에서 평화.통일교육으로의 변화는 2018년 남북정상회담, 판문점선언, 남북군사합의 등 일련의 변화에 맞춘 것이다. 정부의 정책 변화에 맞춰 교육부도 평화.통일교육의 활성화를 꾀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도교육청은 ‘평화 시대를 여는 통일시민’ 교과서(이하 통일시민 교과서)를 통해 실질적으로 평화.통일교육을 하고 있으며 이 책은 서울, 인천, 강원, 충남 등의 교육청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가 경직되고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도 통일을 넘어 공식적으로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평화통일교육은(이후 편의상 평화.통일교육도 평화통일교육으로 통일해 사용하기로 한다) 지속되어야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한반도에 남북이 존재하는 한 평화는 관계 개선과 유지의 화두이자 선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하고 공교육 영역에서 이뤄지는 평화통일교육은 보편적 평화를 담기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 한계는 남북관계 악화와 개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외면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한계를 가진 평화통일교육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미래세대의 통합적 성찰과 비판적 접근을 제한하고 한반도 상황의 근본적인 변화에 충분히 기여할 수 없다는 우려를 가지고 중요한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가장 큰 한계는 6.25 전쟁, 즉 한국전쟁에 대한 피상적 접근이다. 한국전쟁은 북한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많은 사상자와 이산가족을 만든 아픈 전쟁으로, 그리고 남북 분단을 고착화하고 그후 남북 대결과 갈등을 만든 원인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그것이 거의 전부다. 한국전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남북의 정치적, 군사적 대립의 근본원인임에도 한국전쟁의 시작, 전개, 중단 등 전체 과정과 그 내용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제공되지 않는다. 한국전쟁을 언급하는 이유는 한반도에 다시는 비슷한 전쟁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전쟁의 원인인 ‘북한의 침공’과 그로 인한 남한 사회의 인명 피해만 언급해 전쟁 자체에 대한 성찰을 제한한다. 이런 접근은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북한에 대한 비난과 증오만 만들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미래의 한반도 평화를 위해 처참했던 한국전쟁을 설명하지만 한반도 사람들에게 광범위한 폭력을 야기한 전쟁 자체에 대한 성찰을 독려하기보다 대한민국을 위한 애국전쟁으로 묘사하는 모순을 드러내기도 한다. 경기도교육청의 고등학생용 통일시민 교과서는 24쪽에서 참전했다 전사한 당시 15세였던 학도병이 어머니에게 쓴 편지의 일부분을 소개하고 있다.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이라며 어머니와 형제들을 못 볼 생각을 하니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고 쓴 내용이다. 그 밑에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고통받아야 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위 편지글에 대한 답장을 써보자”는 다소 낭만적인 활동이 제시돼 있다. 당사자는 전쟁을 왜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가족에게 돌아갈 수 없는 두려움을 호소했는데 활동에서는 무력으로 ‘평화를 지키기 위한’ 애국심으로 해석해 그것을 주입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15세면 소년병인데 그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없이 ‘조국을 위한 희생’으로 미화해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화통일교육은 한국전쟁을 북한의 침공을 받아 남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전쟁으로만 묘사하고 있다. 중학생용 통일시민 교과서는 당시 사람들이 겪었던 전쟁의 경험을 단편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북쪽에 살았던 사람들이 겪었던 인명 피해와 사회적 파괴는 제대로 언급하지 않는 이런 접근은 한국전쟁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만들 수 있고, 무엇보다 한국전쟁을 절대 거부해야 하는 ‘전쟁’이 아닌 북한에 의해 남한이 피해를 입은 폭력적 사건으로만 기억하게 만들 수 있다.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한국전쟁을 기억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 취지를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전쟁을 3년 이상 지속시켜 군인보다 세 배나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생기게 한 정치적, 군사적 결정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평화.통일교육 : 방향과 관점’에서는 “통일은 평화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오늘날 한반도에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등 대결과 긴장의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평화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는 핵과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 온전한 일상이 보장되고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면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남북 간 정치.군사적, 신뢰 구축”의 중요성 등을 언급하고 있다. 동시에 ‘건전한 안보의식 제고’라는 소제목 하에서 “국제 안보환경의 변화, 남북 간 군사적 대치, 북한의 핵문제 등 우리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여러 요소가 존재”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평화통일교육은 “안보의식을 바탕으로 한 안보역량의 강화가 평화통일의 실현을 뒷받침한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국가안보와 안보의식 강화는 기본적으로 국가의 안전을 우선하고 군사력을 기본으로 하는 접근이다. 경기도교육청의 통일시민 교과서에서도 국가안보는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다뤄지고 있다. 인간안보를 같이 소개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가안보를 우선적이고 거부해서는 안 되는 가치로 강조하고 있다.


중학생용 통일시민 교과서는 30쪽에서 ‘나라를 지키는 국가안보’라는 활동 주제 하에 “세계 곳곳에 있는 교포들에게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는 대한민국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지키고 싶은 소중한 조국”이라며 해외 영주권자의 자원 입영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그리고 자원 입대한 해외 영주권자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 밑에는 “내가 위와 같은 (영주권자의)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이유와 함께 써 봅시다”라는 활동을 제시하고 있다. 특정 답을 유도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 고등학생용 통일시민 교과서는 51쪽 이하에서 “평화는 튼튼한 안보가 갖추어질 때 유지될 수 있다”며 “튼튼한 안보가 평화 체제를 이루는 데 기초가 되는 이유”가 언급돼 있다. 여기에서는 조금 다행스럽게 국가안보를 위한 군사적, 비군사적 노력과 다자간 외교 노력 등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국가안보를 최우선 가치와 선택으로 삼고 있고 안보를 평화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안보와 관련해 북한의 핵문제를 언급하고 있지만 우리의 무력 강화 문제는 거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의 핵무기에 대응해 이뤄지는 지속적인 최첨단 무기의 배치와 중무장화, 그에 따른 북한과의 군사적 긴장 등의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일반론으로 국가 사이 군비 경쟁의 문제를 언급하지만 그것을 한반도 평화를 해치는 문제로 삼아 분석하고 토론할 기회는 제공하지 않는다. 이것은 군사력의 강화와 그에 대한 의존을 근간으로 삼는 국가안보를 강조하는 접근의 한계라 할 수 있다. 국가안보에 더해 인간안보를 소개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인간안보를 국가안보와 다른 차원의 개념, 그리고 국가안보의 충족 없이 실현될 수 없는 것으로 다루고 있다. 이것은 결국 사회 구성원의 안전보다 국가의 안전을 우선으로 삼는 접근이다.


평화통일교육에서는 여전히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평화.통일교육 : 방향과 관점’에서는 “통일은 우리 민족이 지향해야 할 미래이다”라며 “통일은 분단의 고통과 폐해를 극복하고 국가와 민족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제”라고 말하고 있다. 통일시민 교과서도 통일을 선택의 여지가 없이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면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것으로 얘기하고 있다. 평화통일교육이지만 결국 통일에 방점이 찍힌 교육이 갖는 특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청소년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성찰과 생각을 억압하고 기성세대의 생각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통일시민 교과서는 통일의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 통일 비용, 분단 비용, 통일 편익 등을 설명하고 있다. 그 비용에는 이산가족의 어려움, 전쟁의 위험, 분단의 불편함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결국 통일의 필요를 설득하기 위한 중요한 논리 중 하나로 통일이 우리의 경제적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통일 편익의 관점에서 북한의 막대한 천연자원을 언급하고 “북한의 경제적 잠재 가치”가 엄청난 수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북한의 경제난으로 인한 식량난과 아동 영양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할 평화 비용을 통일에 대한 투자로 언급하기도 한다. 이런 주장과 설명은 일방적이고 단편적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통일은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는 문제고 북한과 점진적 논의와 협력을 통해 진전이 이뤄져야 한다는 불가피한 접근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이 자주권을 가진 국가임에도 통일이 되면 우리가 북한의 천연자원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고, 통일이 되지 않으면 북한이 자력으로 생존과 경제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이로 인해 오히려 청소년들은 통일이 자신들의 미래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고, 경제적 이익만을 계산해 통일의 여부, 더 근본적으로는 남북관계를 판단할 수 있다.


평화통일교육에서조차 여전히 통일은 민족문제로 여겨지고 민족의 미래를 위해 통일을 강조한다. 이런 민족적 접근은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대한민국 땅에 이미 한민족이 아닌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점에서 특정 사회 구성원을 소외시키는 접근이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 권리를 가지고 있는 그들은 통일 논의에 참여할 권리가 있으며 그들의 의견 또한 통일 과정에서 중요한 의견으로 수렴되어야 함에도 말이다. 다른 하나는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가 국제문제이기도 하다는 주장과 모순된다는 점이다. ‘평화.통일교육 ; 방향과 관점’에서는 한반도 통일이 “민족문제이자 국제문제”임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통일이 국제문제라면 민족문제의 시각을 극복해야 한다. 민족문제로 규정되는 통일은 한반도 안의 일이 될 뿐이다. 그런데 평화적 방식의 통일을 강조할 때 거기엔 이미 비평화적 방식의 통일이 아시아와 세계에 미칠 영향까지 예견돼 있다. 무엇보다 민족적 관점을 강조하는 평화통일교육은 보편적 평화의 시각을 간과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평화교육의 적용

평화교육을 평화통일교육에 적용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보편적 평화의 시각에서 남북관계, 한반도 평화, 그리고 통일을 해석하고 평화적 공존을 위한 성찰과 논의를 어떻게 독려할 것이냐가 될 것이다. 통일시민 교과서는 평화 개념을 소개하고 평화적 공존을 강조하고 있다. ‘평화.통일교육 : 방향과 관점’은 통일과정에서 생길 “사회적 갈등과 문화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 “평화의식”을 키워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평화통일교육은 결국 통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평화는 다소 선언적 의미를 가진 접두사 내지 형용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평화는 통일 방식을 결정짓고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한반도 평화를 장기적 목표로 삼는다면 말이다. 그러므로 평화통일교육에서는 평화의 가치와 철학이 더 강조돼야 하고 통일과 관련된 모든 개념과 사례의 설명에 적극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평화교육은 평화통일교육에 평화를 결합하는 구체적 적용에 성찰과 제안을 제공할 수 있다.


평화통일교육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분단 고착화의 근본 원인인 한국전쟁이다. 한국전쟁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 이념 대결과 단절, 그리고 남북의 정치적, 군사적 대결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석적이고 비판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평화교육의 철학을 적용해 한국전쟁을 다룰 때 가장 먼저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그것이 인간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폭력을 야기하는 ‘전쟁’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은 전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토론의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 또한 3년 이상 전쟁을 지속시킨 정치적, 군사적 결정과 사회 구성원들의 배제에 대해서도 비판적 토론이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전쟁의 피해자들을 구체적으로 찾고 성찰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것은 폭력의 피해를 규명하고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군인들의 희생은 기억하고 추모하지만 더 많은 피해를 입은 민간인들은 기억하지도 추모하지도 않는 것에 대한 성찰과 토론도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하게는 한국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 분단의 고착화와 이념 대결의 원인이 된 한국전쟁을 평화를 위해 기억하기 위해서 다양한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을 지킨 애국전쟁이 아니라 보편적 평화의 시각에서 정치적, 군사적 결정에 의해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피해를 입은 하나의 ‘전쟁’으로 이해하고 기억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반도에 살았던 모든 사람의 피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북한의 침공을 받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입은 피해에 초점을 맞추고 북한에 살았던 사람들이 입은 개인적, 사회적 피해는 설명하지 않고 있어서 전쟁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키울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현재의 평화통일교육 내용은 개선되어야 한다.


국가안보의 강조는 평화통일교육이 가지고 있는 가장 심각한 한계이자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안보가 기본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은 군사력 강화를 통한 안보 위협의 관리와 대응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남북의 대결을 심화시킨 것이 바로 남북의 경쟁적인 군사력 강화와 무력 대결이다. 최근 경직된 남북관계도 ‘평화’를 얘기하면서 무력 강화를 포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군사적 대결이 큰 역할을 했다. 보편적 평화와 평화교육의 철학적 토대 위에서 볼 때 국가안보의 중심에 있는 무장 강화와 군사적 대결은 절대적, 또는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다. 무력 대결, 무기 경쟁, 안전의 위협, 상호 비난과 증오의 확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무력 강화와 무기 경쟁은 분석적, 비판적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무력 강화의 정당화가 아니라 현실적 한계와 극복 방안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 통일시민 교과서에서는 군사적 대결과 무기 경쟁의 문제점을 일반적인 이론을 통해 잠깐 설명하고 있지만 한반도의 상황은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이런 접근은 공교육이 가지는 한계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평화가 포함된 통일교육이 되려면 현실적 한계까지도 포함해 토론하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군사력을 안보의 근간으로 강조하는 교육이 아니라 군비 축소와 무기 경쟁에서 탈피해 평화적 공존을 이루는 상상력을 키울 수 있게 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북한의 핵무기에 대응하는 첨단 무기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고, 우리가 북한의 핵무기에 위협을 느끼는 것처럼 북한도 우리의 그런 무력 강화에 위협을 느끼고 있음을 언급해야 한다.


평화통일교육은 개인과 공동체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안전에 초점을 맞춘 인간안보 개념을 소개하고 있지만 인간안보를 국가안보와는 초점이 다른, 그리고 국가안보의 충족 없이 실현될 수 없는 개념으로 왜곡해 소개하고 있다. 인간안보는 국가의 안보보다 사회 구성원의 안전이 우선돼야 하며, 군사적 접근에 의존하는 안보가 아닌 다양한 비군사적 접근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안전이 확보돼야 함을 주장하는 개념이다. 다방면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지금의 세계에서는 더욱 강조되고 있는 보편적 개념이다. 설사 국가안보를 외교적 수단까지 포함하는 접근으로 소개한다 해도 그것은 결국 사회 구성원보다 국가가 우선되는 접근이다. 국가안보는 군사적 긴장의 상황에서 무력에 의존하는 정치적 결정을 정당화하고 그에 따라 사회 구성원의 안전이 침해되는 것을 당연시한다. 군사적 대응을 위한 징집과 개인의 자유 박탈을 정당화한다. 국가안보는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구조적 폭력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사회적 상식과 가치로 강조하고 미화한다는 점에서 문화적 폭력의 성격 또한 가지고 있다. 국가안보의 강조와 인간안보의 왜곡은 특히 무력에 의존하는 국가의 해결책 승인을 강요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개인과 공동체의 안전보다 국가의 안전을 위해 군사력 강화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는 일을 합법화하고 정당화한다. 평화교육의 철학을 적용할 때 인간안보는 국가안보를 대체하고 넘어서는 개념으로 소개돼야 하고, 국가안보는 인간안보를 위해 축소되고 마침내 제거돼야 하는 개념이다. 인간안보가 모두를 위한 안전한 사회로서 국가의 안전까지 포괄하기 때문이다. 국가안보 개념을 강조하면서 남북이 70년 이상 정치적, 군사적 대결과 이념 대결을 벌여왔고 현재도 진행 중임을 고려하면 평화통일교육은 국가안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제공해야 한다. 국가안보 개념을 극복할 현실적 대안을 함께 찾아보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평화통일교육은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그것이 평화통일교육의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평화교육의 철학을 비춰볼 때 그런 접근은 특정 선택과 생각을 강요하고 자유로운 성찰과 사고를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통일을 강조하고 당위적 목표로 제시한다면 피교육자, 그러니까 청소년들은 상대적으로 강한 쪽, 그러니까 정부, 전문가, 교육자의 의견을 수용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을 수 있고 다른 생각을 가지는 것 자체를 스스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길 수 있다. 평화교육의 철학을 반영한 평화교육 방식에서는 이런 접근이 허용될 수 없다. 현실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통일은 미래세대의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평화통일교육은 특정 선택의 강조가 아닌 자유로운 생각을 독려하고 다양한 상상력을 키우도록 돕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그런 방식을 통해 더 나은 교육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통일에 대한 찬성 의견이 압도적이지 않고 반대 의견이 항상 주목할 만큼의 수치를 보인다는 점에서, 또한 남북관계와 군사적 긴장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평화통일교육은 다양한 정보와 생각을 제공하고 그것을 함께 성찰하고 토론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의도적으로 다른 의견을 내도록 독려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토론하도록 장을 열어주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통일의 정당성을 위해 강조하는 비용과 편익의 논리는 남북의 통일과 한반도 평화가 일방적인 아닌 남북 쌍방의 선택이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특히 북한의 자원 이용과 경제적 발전을 강조하는 것은 통일을 통해 우리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취할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평화는 사회적 개념이고 평화적 공존의 성취는 관련된 모든 당사자의 공동 논의와 노력을 통해 이뤄진다. 이런 철학적 토대 위에서 평화교육은 평화의 성취와 평화적 공존의 실현을 위한 대화와 합의, 문제의 평화적 해결, 공동 합의 등을 실천할 구체적 방법을 포함한다. 다행스럽게 통일시민 교과서는 남북 갈등의 해결을 위한 상호 이해와 대화의 접근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는 모순되게 핵심인 통일의 필요성과 관련된 내용에서는 북한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일방적인 이익과 기대와 장밋빛 미래를 언급할 뿐이다. 이것은 경제적으로 우월한 우리의 방식이 옳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고 동시에 소외와 배제를 정당화할 수 있다. 참여와 합의가 핵심인 평화적 방식과 그것을 교육하는 평화교육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접근이다. 평화교육을 적용한다면 북한의 시각에서 북한의 이익과 불이익까지 고려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쌍방의 이익을 모색하는 통일 방식에 대해 토론할 수 있게 독려해야 한다. 그런 방식을 어렵게 하는 국내적, 국외적 상황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평화적 통일과 한반도 평화의 성취가 가능한지 등에 대해서도 토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통일을 민족문제로 보는 시각 또한 보편적 평화의 시각에서 볼 때 전체를 보지 않는 접근이다. 평화의 시각에서 우리는 지리적, 사회적 구분과는 관계없이 모두의 평화에 관심을 두어야 하고 평화교육은 그런 철학적 접근을 나누고 토론하기 위한 교육이다. 한 곳의 평화는 다른 곳의 평화와 연결돼 있으며 세계화가 최고점에 달한 지금의 세상에서는 더욱 이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통일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선택이라면 그것은 두 가지 면에서 모두를 위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는 국적이나 체류 형태에 상관없이 한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의 평화적 삶을 위한 선택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무력 대결, 특별히 북한의 핵무기가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저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화적 공존을 위한 통일과 통일 과정은 민족문제가 아닌 세계적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한국전쟁의 경험을 통해서도 한반도 문제가 세계의 문제임을 경험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외국 병사가 한반도에서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고 그들과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슬픔을 안겼다. 한반도 평화가 근원적으로 한반도 문제로만 해석될 수 없는 이유다. 통일을 민족문제로 한정한다면 한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의 안전과 평화적 삶을 위해서, 나아가 모든 세계시민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도 평화적 공존과 통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하게 된다.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와 우리의 삶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 남북의 대결을 완화하고 관계를 개선하며 평화적 공존을 위해 노력해야 할 세계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간과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평화통일교육이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제한해 결과적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고착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적 공존은 함께 평화를 만들고 정착시키는 과정을 필요로 하며 그 과정에서 편견과 선입견을 없애고 상호 이해와 공감이 축적돼야 한다. 평화교육은 그를 위한 구체적 방법과 노력을 교육 내용에 담고 있다. 그러나 평화를 포함한 현재의 평화통일교육은 여전히 북한에 대한 편견을 내포하고 있고 북한에 대한 정보의 부족으로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고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할 방향과 관점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화적 공존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필수적 동반자인 북한에 대한 정보 제공과 객관적 이해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에게는 다양하고 많은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 북한이 직면한 정치.경제적 도전, 남북관계에서 드러나는 공격적 태도, 북한 사회의 변화 등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청소년들이 접촉하고 스스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야 한다.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은 평화적 공존을 위해 통일을 선택할지, 아니면 현상 유지를 위해 통일을 거부할지, 아니면 평화적 공존의 조건으로 제3의 선택을 할지 고민하기 위해 통일의 상대인 북한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평화통일교육은 그 권리를 충족시키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 위 글은 2020년 7월 27일 남북평화재단이 주관한 <남북 청소년 교류협력을 위한 평화통일교육의 방향과 과제> 학술행사에서 발표한 것으로 무단 복사와 배포를 할 수 없습니다. 인용시 반드시 저자와 행사를 명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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