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 & 평화 통일평화갈등 연구한반도 평화 & 평화 통일

평화학의 시각으로 본 평화.통일교육

I. 한반도 변화의 이해


 한반도 상황은 지난 1년여 동안 주목할만한 변화를 보였다. 2018년 이전의 한반도와 현재의 한반도는 분명히 다르다. 그러므로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이해를 위해 먼저 2018년의 변화를 언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1년여의 변화는 오랜 세월 유지됐던 상황에 균열을 만들어서 변화 이전과 이후의 상황을 비교 및 분석하고 전체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게 했다.

2018년 한반도에서는 남한과 북한의 만남과 교류라는 역사적 사건이 계속됐다. 그에 따라 2017년 말까지 계속됐던 남북의 대립과 상호 비난이 중단되고 상호 이해와 신뢰가 깊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북미의 대립 또한 완화됐고 표면적으로는 상호 이해와 신뢰의 토대가 마련돼 한반도 상황의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상대에 대한 남북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려는 태도 또한 확산됐다. 그전의 대립과 상호 거부를 고려하면 상상을 뛰어넘는 변화로 볼 수 있다.

2018년에 남북 정부와 대중에게 일어난 변화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2017년에 있었던 북한과 미국 사이의 설전과 대립의 격화, 그리고 남한의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남한과 북한 사이 여전했던 대결 후에 이뤄진 변화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가 전쟁 및 무력 충돌의 상시적 위험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한반도는 상호 공격과 전쟁의 위험이 없는 한 해를 보냈다. 2018년의 변화는 한반도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독려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상적 상황에 균열이 생기고 변화가 나타나자 비로소 대중은 그 이전의 상황을 이해하게 됐다. 대다수는 한반도가 전쟁 없는 평화 상태가 아니라 단지 전쟁을 쉬는 휴전 상태였다는 것을 2018년에야 알았다. 한반도에 종전선언이 필요하며 나아가 평화협정까지 이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결과적으로 2018년의 변화는 대중을 교육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역동적이었던 2018년을 지낸 후 2019년의 한반도는 전진하지 못한 채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것은 사실 정체가 아니라 2018년 이전으로의 복귀가 가능할 수 있는 상황이다. 2018년의 변화는 사실상 전진이 아니라 그 이전까지의 상황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아주 기초적인 준비를 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불확실한 미래보다 익숙한 과거로 돌아갈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정확히 말하면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한반도는 ‘남한’이 ‘북한’이라는 적이자 동족 국가와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군사적으로 대결하고 있는 곳이다. 대립과 대결의 역사는 194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한국전쟁을 통해 폭발했다. 그 이후 남한과 북한의 무기 경쟁과 군사적 대결이 계속되고 간헐적인 무력 충돌이 있었으며 남한과 북한은 여전히 서로를 사실상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2018년에 남북관계에 변화가 있었고 상호 군사적 공격을 멈추기로 했지만 양측은 여전히 상대를 무력 견제하기 위한 군사력 유지와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한반도에 사는 모두는 불안한 평화를 안고 살아왔다. 사실은 비평화의 상황이지만 무력 충돌의 부재를 평화로 왜곡해 이해해왔다. 2018년의 변화 또한 비평화에서 평화로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 일시적으로 무력 충돌의 부재를 실현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이전과의 비교로 인해 중대한 변화, 또는 평화로운 상황으로 인식됐다. 무엇보다 한반도는 무력 대결의 고착화로 인해 비평화를 평화로 바꾸려는 노력보다 무력 대결과 충돌의 부재를 지속시키는 데 관심이 집중돼왔던 곳이다.

2018년에 있었던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과 남북관계, 북미관계의 변화는 세계에 한반도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역할을 했다. 세계에게 한반도는 남한과 북한의 군사적 대결이 계속되고, 미국과 중국이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곳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한국전쟁이 있었던 곳이다. 유엔이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의 개입을 승인했고 그 결과 전 세계 군인들의 무덤이 됐던 곳이다. 한반도는 군인과 민간인의 막대한 희생을 냈던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은 곳이다. 세계는 그 연장선에서 한반도를 남한과 북한의 대립과 무력 충돌의 위험이 상존하는 곳으로 이해하고 있다. 한반도를 평화 상태가 아니고 여전히 유엔군사령부의 평화유지(peacekeeping)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곳으로 이해하고 있다.

세계에게 한반도는 북한이 있는 곳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만류, 설득, 제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핵무기를 개발해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 세계가 한반도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사실상 북한, 정확히는 북한의 핵무기 때문이다. 세계는 남한과 북한의 역사적, 민족적 동질성과 통일 열망을 알고는 있지만 둘을 별개로 이해한다. 세계는 한반도의 통일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것은 남한과 북한이 결정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는 국제사회가 해결해야 할 현안이다.

2018년의 변화는 세계에게 그다지 큰 인상을 주지 못했다. 남북관계의 복원과 신뢰 형성 과정, 그리고 북미대화의 개시가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인 북한의 비핵화가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핵무기가 있는 한반도는 기본적으로 국제사회와 발을 맞춰 대화와 평화의 과정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포함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는 민족의 문제를 넘어 국제사회와의 연대와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II. 평화를 위한 피스빌딩 접근

 

평화학의 시각으로 접근하면 한반도는 낮은 수준의 평화인 소극적(negative) 평화조차 보장되지 않는 곳이다. 소극적 평화 성취의 조건이 되는 직접적(direct) 폭력의 부재를 언급할 때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전쟁의 부재다. 그러나 휴전 상태인 한반도에는 여전히 무력 충돌 가능성과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복원으로 2018년에는 전쟁의 위험이 사라지긴 했지만 그것은 상호 신뢰에 기반한 것일 뿐 이론적으로, 그리고 공식적으로 전쟁의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판문점선언을 통해서도 명확히 알 수 있다. 판문점 선언은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노력과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을 막기 위해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합의를 실행하기 위해 남북군사합의가 이뤄지고 실제 휴전선 일대에서 상호 포문을 닫는 조치 등이 취해졌다. 그렇지만 그것은 남북관계가 정상회담 합의 당시의 수준을 유지할 때 실현 가능한 일시적 조치일뿐 남한이나 북한 어느 쪽도 비무장을 현실화하지도, 공격과 무력 대응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도 않고 있다.

소극적 평화의 부재, 다른 말로 무력 대결과 충돌 가능성의 상존으로 인한 전쟁의 위험성은 남북문제와 관련해 시민에 대한 국가의 구조적 폭력의 존재를 말해준다. 곧 국가가 증오와 대립에 기대 정치적, 군사적 대결 체제를 유지하면서 대중에게 수용과 굴복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국가는 증오와 대결을 합리화하고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국가안보, 군사화, 무기경쟁의 이론과 담론을 만들어 대중에게 강요하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모든 폭력이 제거되는 적극적(positive) 평화의 성취를 막는 조건이 된다. 우리는 비록 소극적 평화조차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전쟁의 부재를 넘어 남북문제와 관련해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자유를 누리고 진전을 이뤄내는 적극적 평화를 추구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냉전시대 일부 평화학 연구자들은 소극적 평화에서 적극적 평화로 평화의 개념과 목표를 확대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것이 오히려 세계가 당면한 군축과 전쟁의 문제를 희석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취할 평화의 목표를 축소해 소극적 평화에 초점을 맞추고 무력 충돌을 잘 관리하고 예방하기 위한 전쟁 위험의 감소, 군축, 우발적 무력 충돌 예방, 핵무기 비확산 등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소극적 평화에만 초점을 맞춘 접근은 결국 소극적 평화조차 성취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두 가지 문제에서 비롯한다. 하나는 전쟁 위험 및 무력 충돌의 예방과 군축 등은 결국 국가의 구조적 문제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소극적 평화에 초점을 맞추면 적극적 평화와 관련된 그런 근본적인 문제는 간과되고 결국엔 소극적 평화조차 달성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전쟁 및 무력 충돌의 예방과 군축을 국가가 선제적, 자발적으로 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냉전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무기경쟁이 계속되고 무기의 확산으로 전 세계 어디도 무기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평화에 대한 성찰, 교육, 담론 등의 이해와 개발을 통한 대중의 압박과 요구가 필요하며, 이것은 적극적 평화와 관련된 문화적 접근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소극적 평화가 아니라 적극적 평화에 초점을 맞추고, 목표를 실현해가는 넓은 스펙트럼 안에서 소극적 평화를 적극적 평화로 가는 과정 중 일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이런 접근에서는 불가피하게 국가를 견제하고 압박을 가할 수 있는 대중 역할의 강화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화 노력에 대중을 참여시키고 나아가 대중이 평화 성취 노력의 중심 역할을 하도록 정치적, 사회적 환경을 변화시켜야 한다. 한반도가 지금까지 국가 주도의 남북관계, 정치 체제, 담론으로 무력 충돌과 전쟁의 위험을 지속적으로 안고 살아온 이유는 이런 근본적 변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화 성취를 위한 포괄적인 접근과 대중을 중심에 둔 담론 및 실행은 흔히 피스빌딩(peacebuilding) 이론과 접근을 통해 설명된다. 피스빌딩은 좁은 해석으로는 무력 충돌이나 전쟁 후 국가 및 사회를 재건하는 과정에서의 평화적 접근을 의미한다. 포괄적인 해석은 무력 충돌과 폭력을 예방, 종식, 해결하는 모든 활동과 대립 및 대결의 모든 단계에서 평화 성취를 위한 사회적 변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학에서는 일반적으로 후자의 포괄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

피스빌딩 접근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평화의 성취를 위해 누구를 중심에 두고 누구의 역량을 향상할 것이냐다. 이 두 가지에 대한 답은 하나다. 그것은 바로 대중이다. 대중을 중심에 두고 대중의 역량을 향상해야 한다. 이것은 평화가 하향식으로 부과될 수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그리고 필수적으로 이뤄지는 접근이다. 하향식으로 부과되는 평화는 국가나 결정권자에 의해 이뤄지는 평화를 말하는데 그런 평화는 최악의 경우 왜곡되거나 최선의 경우라 할지라도 대중 지지의 부족으로 지속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또 다른 이유는 평화는 사회 전체의 포괄적 노력과 합의를 통해 성취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위해서는 대중이 중심 역할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평화는 왜곡되거나 오염될 수 있고, 강자의 비평화가 평화의 이름으로 부과될 수 있다. 결국 왜곡되거나 강제되지 않고 사회 구성원들의 평화적 삶에 부합하는 평화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대중의 역할과 역량이 필요하다.

대중의 역할 및 역량 형성과 함께 중요한 또 다른 것은 다양한 사회 층위들과 영역들 사이의 소통과 상호 이해가 이뤄지고 각각의 노력이 공동의 노력으로 변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를 이끄는 층위에는 먼저 수직적으로 무력 충돌과 대결에서 평화로의 변화를 협상하고 결정하며 중.장기적 평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상층부(top-level)의 지도력이 있다. 다음으로 각 영역에서 사회 변화를 도모하고 상층부에 자문과 비판을 제공하며, 다른 한편으로 풀뿌리층과 소통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중층부(midle-range)의 지도력이 있다. 가장 넓은 층위로 대중의 이익과 필요를 대변하며 대중을 견인하는 풀뿌리층(grassroots) 지도력이 있다. 수평적으로는 서로 대립하는 우측 극단과 좌측 극단에서 중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이 존재한다. 한국사회의 경우 보수, 중도, 진보, 또는 그 사이를 차지하는 다양한 영역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평화는 수직의 층위와 수평의 영역들이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며 합의를 이룰 때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도 역시 대중의 역할과 역량이 필요하다. 상층부와 중층부의 지도력은 이미 각자의 이익과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비교적 충분한 힘을 이미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풀뿌리 지도력조차 일반 대중에 비해 수평적 소통을 할 수 있는 역량과 조건을 갖고 있다. 결국 수직 층위들과 수평 영역들이 평화를 위해 협력하고 소통하고 합의하기 위해서는 그 모두에게 자기 이익을 넘어 사회 전체의 이익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변화를 요구하고 필요할 경우 압력을 가할 수 있는 다수 대중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것은 대중의 적극적 역할 수행과 역량 형성 및 향상을 통해 달성될 수밖에 없다.

이런 피스빌딩 접근은 한반도 평화의 성취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 그동안 한반도 평화 문제는 상층부가 주도하고 중층부가 협력 내지 견제하는 형태로 진행돼왔다. 상층부와 중층부에 있는 전문영역은 한반도 문제를 독점하면서 대중은 물론 풀뿌리층 지도력까지 배제시켜 왔다. 이런 상황은 현재도 유효하다. 그런 환경에서 2018년의 변화는 정체 상태에 도달했고 이제 한반도는, 또는 한국사회는 평화로의 전진과 비평화로의 회귀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것은 평화로의 전진이지만 다양한 이유로 그것을 지지하지 않는 사회 구성원들도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로의 전진을 견인해낼 가장 유효한 자원 중 하나는 바로 대중의 역량 향상과 역할 강화다. 결국 한반도 평화는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선택이 되어야 하고 그래야만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평화로의 진전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III. 평화.통일교육의 필요성

 

1. 한반도 평화를 위한 평화.통일교육

 2018년 정부 주도로 이뤄진 변화가 국내 및 국제 정치의 변화로 인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정체 상태에 빠진 것은 정치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한국사회 대중의 지지와 관심이 저하되고 그로 인해 정부가 한반도 평화 구상을 진전시킬 수 있는 충분한 동력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상황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문제가 그동안 정치적 주제로 소비돼왔고 대중 또한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남북의 공존, 한반도 평화, 통일 등과 관련된 문제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지엽적, 내지는 일시적 주제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반도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이 상시 남북 대립과 한반도 비평화 상태의 지대한 영향을 받는 현실과는 아주 다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대화,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 남북 교류 및 협력의 확대 등은 이런 사회적 상황과 한계를 벗어나야 비로소 제대로 전개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문제를 주관적 시각을 가지고 삶의 필요와 연결지어 해석할 수 있도록 대중의 역량이 향상돼야 가능한 일이다. 또한 대중 스스로 한반도 평화의 필요를 인식하고 표명할 수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대중 역량의 향상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문제를 정치적 이익을 위해 소비하는 정치 사회 상황을 극복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 평화.통일교육은 이런 대중 역량의 향상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평화.통일교육은 기존의 통일교육에 평화교육을 결합시키거나, 또는 평화 이론 및 관련 실행 원칙과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통일교육에서 평화.통일교육으로의 변화가 가지는 핵심은 평화의 결합이 통일의 방식을 결정짓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평화.통일교육은 북한을 흡수하거나 북한의 붕괴를 통한 방식의 통일은 배제하고 반드시 평화적 과정을 통한 통일을 담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평화교육이나 평화이론이 결합되는 교육은 불가피하게 통일의 당위성과 목표로서의 통일을 강조하는 교육이 아니라 통일로 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남북의 대화와 공존을 위한 준비 등의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다. 이런 평화.통일교육에서 간과할 수 없는 한 가지 논의 주제는 평화로운 통일 과정과 평화적 통일이 왜 필요하며 무엇을 기준으로 통일의 필요성을 평가할 것이냐다. 평화.통일교육은 그 기준을 한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의 평화로운 삶에서 찾게 될 것이다.

통일의 필요성과 통일의 방식, 그리고 통일을 통해 성취할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때 기본적이고 중요한 한 가지는 누구를 위한 통일이 되어야 하느냐이다. 이것은 앞에서 얘기한 평화적 통일을 판단할 기준의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 ‘전략적 피스빌딩’ 이론을 참고할 수 있다. 전략적 피스빌딩을 구상할 때의 핵심은 ‘전체 사회(whole society)’의 접근이다. 다시 말해 사회 모든 층위와 영역에 있는 모든 관련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구상을 말한다. 이를 통해 개인, 관계, 문화, 구조 등 모든 면에서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특별히 인간안보(human security)를 성취하는 노력에 초점을 맞춘다. 인간안보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개념으로 개인, 공동체, 그리고 생활환경의 안전과 보호에 초점을 맞춘 접근을 말한다. 이것은 국가의 영토와 정치적, 경제적 이익에 초점을 맞춘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와 비교되는 개념으로 대중 스스로 자신의 취약성과 직면한 위험 상황을 규명하고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평화 노력이 필요한지를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국가안보 개념은 세계로부터 고립돼 자국에만 초점을 맞추는 반면 인간안보 개념은 국가를 넘어 세계와의 상호의존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보편적 평화 개념 및 노력과 통하는 것이다.

인간안보는 평화.통일교육의 기본적인 토대가 되어야 하며 동시에 ‘국가안보’의 독점을 해체하는 개념으로서 평화.통일교육 내용에 포함돼야 한다. 이것은 대중이 소비되거나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 과정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동안 대중은 남북의 분단과 대결로 인해 삶이 영향을 받고 수시로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지만 국가안보의 틀 안에서 목소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개념은 한반도 평화를 민족주의적 틀을 통해 보는 시각을 극복하고 세계평화와 연결해 성찰할 수 있게 한다. 북한이 핵무기 실질 보유국이 된 이후에 한반도 문제는 세계가 당면한 문제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이것을 남북의 무기경쟁으로 보는 경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시각은 한반도 평화를 넘어 세계평화의 관점에서 수정돼야 한다. 무엇보다 이 접근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과 대화,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정치와 경제 현안이 아닌 평화의 문제, 다시 말해 평화로운 삶을 위해 다루고 목표로 삼아야 할 현안으로 이해하도록 독려할 수 있다. 이런 접근은 정치가 아닌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위해 평화적 통일과 통일 과정을 설계하고 진행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2. 미래세대를 위한 평화.통일교육

 평화.통일교육은 특별히 미래세대를 위해 필요한 교육이다. 남북관계와 통일과 관련된 담론은 그동안 한반도에서 한 번도 진정한 평화를 경험해보지도, 그것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보지도 않은 기성세대에 의해 독점돼왔다. 그렇게 만들어진 담론은 한국전쟁의 경험과 그후 남북의 정치적 대립과 군사적 대결로 고착된 상호 불신과 증오, 그리고 체제 및 무기경쟁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이것은 남북의 평화적 공존을 저해하고 통일의 방법과 목표 또한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통일은 강조하지만 평화에는 무관심하고, 통일을 남한의 정치 체제와 경제적 우월성을 이용한 북한 체제의 붕괴 및 흡수 가능성까지 포함하는 정치적 과제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통일’은 한반도 사람들의 평화적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개념이자 정치적 수단이 됐다. 이런 통일 담론과 시각은 미래세대를 위한 통일교육에도 반영돼 통일을 당위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대체적으로 방식에 대한 구체적 고민은 외면하게 만드는 문제점을 가지게 되었다.

평화.통일교육은 미래세대가 통일을 당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분석과 성찰을 통해 토론하고 고민할 수 있게 안내할 수 있다. 특별히 자신의 삶과 미래를 중심에 놓고 여전히 휴전 상태인 한반도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에 원하는 남북관계와 한반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독려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미래세대는 스스로 남북 공존의 필요성 여부를 판단하고 한반도 평화와의 관련 속에서 통일을 고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별히 통일이 남북의 정치적 결합 내지 통합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의 평화롭고 행복한 삶의 성취를 위해서 필요한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성찰과 분석을 통한 남북관계 및 전체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이해와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토론을 담는 평화.통일교육은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미래세대에는 특별히 필요하고 효율적인 교육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남북의 대립과 대결이 아닌 평화적 공존을 고민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남북관계 개선과 대화를 평화적 통일로 가는 준비 과정으로 평가하고 이해하게 독려할 것이다.

미래세대를 위한 평화.통일교육은 또한 세계시민으로서 자신이 사는 한반도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성찰하고 고민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것은 곧 한반도 평화를 세계평화와 관련지어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동시에 보편적 평화의 관점에서 한반도에서의 평화로운 삶을 한반도에 사는 모두가 누려야 할 권리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새로운 시각을 통해 남북의 공존, 평화적 통일, 한반도 평화의 필요성을 더 진지하고 중요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한국사회가 평화적 통일과 한반도 평화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달성돼야 하는 목표가 돼야 함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IV. 평화.통일교육의 방식과 내용

 

평화.통일교육은 평화적 통일을 위한 준비로서 필요한 교육이다. 그러므로 평화.통일교육은 두 가지 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 하나는 평화적 통일을 위해 한반도에서의 남북 대립과 대결의 종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통일이라는 최종 목표를 통한 평화적 공존이 아니라 평화적 통일을 위해 현재의 시점에서 평화적 공존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화.통일교육은 평화적 통일을 위한 과정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평화.통일교육은 방식과 내용에 있어서 차별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먼저 방식과 관련해 평화.통일교육은 자기 주도적 이해, 분석, 개념화를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은 평화교육의 기본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가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 사는 모두의 평화로운 삶과 공존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통일의 방식과 목표 달성이 대중의 선택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고, 그러기 위해 대중 스스로 한반도 상황을 자기 삶과 연결지어 이해하고 분석하고 개념화할 필요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평화.통일교육은 또한 하향식, 주입식 방식이 아닌 참여자가 중심이 되는 방식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확인하고, 제기하고, 분석하고, 대안을 탐구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정부와 정치권,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이 남북문제와 통일 담론을 독점하고 대중은 필요할 경우에만 반복적으로 동원되고 소비되는 방식을 벗어날 수 있게 한다. 또한 대중이 배제되고 소외된 기존의 통일 담론의 형성 방식과 통일교육의 실행을 극복할 수 있게 한다. 참여적 방식은 대중이 스스로 자기가 속한 사회 및 공동체의 상황 및 맥락과 연결지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개인과 사회 차원의 문제와 도전을 재해석하며, 비판적 접근을 통해 관련 정보의 수집과 해석을 진행하며, 최종적으로 선택할 통일의 방식과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게 한다. 참여적 방식은 또한 세미나, 전문가나 작가와의 대화, 워크숍, 토크 콘서트, 타운홀 미팅, 토론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 이런 다양한 형태는 미래세대를 위한 평화.통일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이런 다양한 방식의 평화.통일교육은 기성세대와 미래세대가 생각의 차이를 확인하고 서로의 성찰, 주장, 우려 등에 귀를 기울이는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

내용과 관련해서는 오랫동안 통일교육이 간과했거나 언급하지 않았던 주제들이 포함돼야 한다. 그중 하나는 그동안 당연하고 상식적으로 여겨졌던 민족 통일 담론을 극복하고 민족적, 문화적 배경과 상관없이 한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의 평화에 초점을 맞춘 통일 담론을 만들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 포함돼야 한다. 이런 내용은 한반도에 사는 누구나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다는 보편적 평화의 개념을 통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나아가 통일을 한민족으로서 가져야 할 당위적 이해와 선택이 아니라 각자의 삶과 연결지었을 때 최선의 선택인지 성찰하고 토론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여기에는 물론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또는 조건부로 선택 또는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성찰과 토론 또한 포함돼야 한다. 이런 다양한 이해, 성찰, 토론을 통해 오히려 대중의 관심이 향상될 수 있고 통일 담론은 비로소 대중의 담론이 될 수 있다. 동시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신중하고 진지한 접근이 이뤄질 수 있다.

중요한 또 다른 문제는 남북의 정치적 대립 및 군사적 대결과 관련해 남북의 무기경쟁과 군축의 문제를 성찰하도록 독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통일 담론에서 외면할 수 없는 문제지만 그동안 국가안보를 강조하고 통일의 방식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없는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돼왔던 문제다. 그러나 평화적 통일을 목표로 삼고 평화.통일교육을 한다면 반드시 언급되고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특별히 남북 및 북미 대화가 한반도의 핵무기 문제를 다루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근본원인인 무기경쟁과 군축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타당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사실 남북은 지난해 판문점선언에서 평화체제와 단계적 군축을 언급했다. 평화.통일교육에서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분석하고 토론하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이것은 미래세대를 위해서 특별히 중요하다. 한반도에서 무기경쟁을 멈추고 단계적 군축을 실행해야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가 성취될 수 있고, 무엇보다 미래에는 모두의 생존을 위해 국가안보와 무기가 아닌 인간안보를 보장할 수 있는 부분에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평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 또한 평화.통일교육의 내용에 포함돼야 한다. 세계평화와 연결지을 때 한반도 평화는 당위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평화적 통일 또한 국가와 한민족이 아닌 한반도와 아시아, 그리고 세계에 사는 모든 사람을 위한 가장 바람직하고 타당한 접근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것은 다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이 흔들리지 않고 지속되게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평화.통일교육의 목적은 무엇보다 평화적 공존을 강조하고 성취하는 것이다. 평화적 공존은 통일을 준비하는 태도와 행동을 교육하는 평화.통일교육의 핵심 가치이기도 하다. 또한 평화적 공존은 평화.통일교육의 과정에서 갖춰야 할 태도와 행동의 원칙이기도 하다. 이런 평화적 공존의 내용에는 세 가지가 포함된다.

먼저 첫 번째는 남북의 평화적 공존이다. 이것은 남북이 자신만의 이익이 아니라 서로의 이익과 공동 번영을 위해 협력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할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특별히 한국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경제적 이익의 획득이 평화적 공존을 저해하거나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남북의 하드 파워 및 소프트 파워의 차이를 남한의 이익에 초점을 맞춰서 이해하는 태도를 지양하는 것도 의미한다. 평화.통일교육은 이런 내용을 포함한 남북의 평화적 공존을 성찰하고 토론하는 교육이 돼야 한다.

두 번째는 이념으로 갈라진 한국사회 집단 사이의 평화적 공존이다. 평화.통일교육은 정치적 이념과 성향으로 갈라진 한국사회 집단 사이의 평화적 공존과 단절을 극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다양한 생각과 비판이 공유되고 그것을 통한 상호 이해와 존중의 내용이 평화.통일교육에는 포함돼야 한다. 한국사회 다양한 개인과 집단의 평화적 공존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통일을 위해서는 한국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합의가 우선돼야 하고 평화적 방식을 통한 통일 또한 결국 구성원들의 선택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한반도와 세계와의 평화적 공존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문제는 이미 한반도의 경계를 넘어섰다. 남북 대화, 북미 협상, 그리고 비핵화 등의 문제는 이제 세계평화와 관련된 문제가 됐다. 동시에 세계의 협력과 지지가 있어야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담보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그러므로 한반도 문제를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한반도 평화를 세계평화와 모순되지 않게 이해하고 과정을 만드는 통합적 시각이 필요하다. 세계와 한반도의 공존을 포함한 평화.통일교육은 결국 한반도 평화와 남북의 평화적 공존, 나아가 평화적 통일에도 기여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정주진. 『평화를 보는 눈』. 고양: 개마고원, 2015, pp.108-115.

 

Jeong, Ho-Won. Peace and Conflict Studies: An Introduction. Burlington: Ashgate, 2000, pp.24-29.

 

Lederach, John Paul. Building Peace: Sustainable Reconciliation in Divided Societies. Washington, D.C.: United States Institute of Peace Press, 1997, pp.38-43.

 

Schirch, Lisa. Conflict Assessment & Peacebuilding Planning: Toward a Participatory Approach to Human Security. Boulder: Kumarian Press, 2013, pp.9-11.

 

* 위 글은 2019년 제 7회 통일교육주간의 평화.통일교육 컨퍼런스에서 발제한 것입니다. 무단 인용과 배포를 할 수 없으며 인용시 출처를 명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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