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퉁(Galtung)은 1969년의 논문에서 평화를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로 구분하고 이런 구분의 근간이 되는 것으로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 개념을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개념들은 평화연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1970년대 초에 시작된 평화학의 학문적 연구에도 지대한 공을 세웠다. 전쟁보다는 사회 문제에 더 초점을 맞춘 구조적 폭력 개념은 전쟁 예방을 강조했던 당시 평화연구의 초점을 흐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평화연구의 영역을 확장하고 평화적 삶을 위한 일상적 평화 실현의 구체화에 기여했다.
갈퉁은 1990년의 논문 “문화적 폭력(Cultural Violence)”에서 구조적 폭력의 개념을 더 상세하게 설명했다. 구조적 폭력은 먼저 ‘생존 필요(survival needs)’의 불충족을 야기하는 ‘착취 A’와, 삶의 질을 의미하는 ‘웰빙 필요(well-being needs)’의 불충족을 야기하는 ‘착취 B’로 구분된다. 이런 착취는 구조 내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에서 강자(topdog)가 약자(underdog)보다 많은 것을 취하기 때문에 생긴다. 폭력의 피해자, 다시 말해 약자는 착취 A로 인해 아사와 병사 등 생명의 손실을 겪고, 착취 B로 인해 영양실조와 질병 등 고통스런 삶의 지속을 경험한다. 착취 A는 저개발국이나 선진국 모두에서 발생한다. 약자는 그 사회에서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나 굶주림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착취 B 또한 저개발국과 선진국 모두에서 나타난다. 실업과 빈곤으로 기본적인 신체적 건강과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약자는 모든 사회에서 발견되고 그들의 삶은 폭력적 구조로 인해 개선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도 착취 A와 B가 심각한 수준으로 존재하며 극단적인 사례만이 뉴스를 통해 알려진다.
갈퉁에 의하면 착취는 네 가지를 통해 나타나고 폭력적 구조 내에서 강화된다. 첫 번째는 침투(penetration)로 강자가 약자 속에 이식되는 것을 말하고, 이것은 약자에게 극히 파편적인 시각만을 허락하는 두 번째인 분절(segmentation)와 결합된다. 세 번째는 주변화(marginalization)로 약자를 외부에 머물게 하는 것이며, 이것은 약자들을 서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분열(fragmentation)과 결합된다. 이 네 가지는 그 자체로 구조적 폭력이며 구조 내에 억압의 형태로 자리를 잡고 있다.
침투와 분절은 사회에서 흔히 발견된다. 예를 들어 정책결정자들과 엘리트 집단, 그리고 경제적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철학, 가치, 신념, 신봉하는 이론과 담론을 자신들이 지배하는 하는 집단, 즉 약자에게 이식하기 위해 다양한 구조적, 문화적 수단을 동원한다. 그들은 약자에게 정치 및 사회 문제에 대한 단편적이고 왜곡된 정보만을 제공하거나 정보 접근을 제한함으로써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얻고 유지한다. 정치 이념, 경제 이론, 복지와 세금 담론, 민영화 논의 등 모든 사회 현안과 일상의 주제가 침투와 분절의 대상이 된다. 주변화와 분열의 사례 또한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사회적 강자인 기득권층은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 특히 약자들을 결정 과정과 체계에서 배제하고 대상화한다. 또한 약자들의 연대와 저항을 저지하고 왜곡하기 위해 그들이 자기 결정이 아닌 ‘외부 개입’에 의해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하나의 구조적 폭력 사례에서는 네 가지 중 적어도 하나는 발견할 수 있다.
갈퉁은 구조적 폭력인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불공평한 거래(unequal exchange)’를 언급한다. 구조적 폭력은 자원의 불균등한 분배를 야기하고 그로 인해 약자의 피해가 발생한다. 즉 강자가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약자의 피해를 인지하거나 예상하면서도 폭력적인 구조를 통해 불공평한 거래를 하고 그 결과 착취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불공평한 거래는 ‘정당한 거래’의 프레임을 통해 포장되고 약자에 대한 착취는 ‘법적으로 하자 없는’ ‘정당한 대가’로 주장된다. 나아가 약자의 피해는 ‘무능’과 ‘적자생존’으로 왜곡돼 설명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불공평한 거래가 일어나는 이유는 강자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구조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을 조성 및 유지하고 때로는 선제적 접근을 통해 자신에게 비우호적인 환경을 우호적인 것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기업과 노동자 사이의 불공평한 거래는 노동자보다 기업에 우호적인 구조적,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 노동자는 끊임없이 고강도 노동과 저임금의 불합리성을 증명해야 하지만 기업은 실적이나 임금 수준에 비해 지나친 이익을 실현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취급돼 정당성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정책결정자의 일방적 결정과 실행은 구조적, 사회적으로 정당화되고 법적으로 보호되므로 잘못된 판단으로 사회의 약자들에게 막대한 피해가 야기되더라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반면 약자들은 법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피해를 증명하고 인정받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재정적, 물리적, 사회적 자원을 동원해야 한다. 주류에 속하는 다수 집단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당연하게 존중받고 권리를 보장받지만 비주류에 속하는 소수 집단은 부당한 처우를 받는 상황과 권리를 인정받아야 하는 합리적 이유를 계속 설명해도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 모든 불공평한 거래는 억압과 강요를 통한 이익 실현을 ‘정당하고 합법적인 거래’로 인정하는 구조와 사회 환경을 통해 지속되고 때로 강화된다.
불공평한 거래의 지속은 곧 착취의 지속을 의미하고, 착취는 약자의 생존을 좌우하고 고통스런 삶을 지속시킨다. 이런 불공평한 거래의 근본적인 원인은 고착된 힘의 관계다. 자연스런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고착된 힘의 관계는 불공평한 거래와 착취를 비합법화하고 약자 보호의 합법화 확대를 통해 극복될 수밖에 없다.
참고 논문: Johan Galtung, ‘Cultural Violence’ Journal of Peace Research, vol. 27, no. 3, 1990, pp.291-305.
갈퉁(Galtung)은 1969년의 논문에서 평화를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로 구분하고 이런 구분의 근간이 되는 것으로 ‘구조적 폭력(structural violence)’ 개념을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개념들은 평화연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1970년대 초에 시작된 평화학의 학문적 연구에도 지대한 공을 세웠다. 전쟁보다는 사회 문제에 더 초점을 맞춘 구조적 폭력 개념은 전쟁 예방을 강조했던 당시 평화연구의 초점을 흐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평화연구의 영역을 확장하고 평화적 삶을 위한 일상적 평화 실현의 구체화에 기여했다.
갈퉁은 1990년의 논문 “문화적 폭력(Cultural Violence)”에서 구조적 폭력의 개념을 더 상세하게 설명했다. 구조적 폭력은 먼저 ‘생존 필요(survival needs)’의 불충족을 야기하는 ‘착취 A’와, 삶의 질을 의미하는 ‘웰빙 필요(well-being needs)’의 불충족을 야기하는 ‘착취 B’로 구분된다. 이런 착취는 구조 내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에서 강자(topdog)가 약자(underdog)보다 많은 것을 취하기 때문에 생긴다. 폭력의 피해자, 다시 말해 약자는 착취 A로 인해 아사와 병사 등 생명의 손실을 겪고, 착취 B로 인해 영양실조와 질병 등 고통스런 삶의 지속을 경험한다. 착취 A는 저개발국이나 선진국 모두에서 발생한다. 약자는 그 사회에서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나 굶주림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착취 B 또한 저개발국과 선진국 모두에서 나타난다. 실업과 빈곤으로 기본적인 신체적 건강과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약자는 모든 사회에서 발견되고 그들의 삶은 폭력적 구조로 인해 개선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도 착취 A와 B가 심각한 수준으로 존재하며 극단적인 사례만이 뉴스를 통해 알려진다.
갈퉁에 의하면 착취는 네 가지를 통해 나타나고 폭력적 구조 내에서 강화된다. 첫 번째는 침투(penetration)로 강자가 약자 속에 이식되는 것을 말하고, 이것은 약자에게 극히 파편적인 시각만을 허락하는 두 번째인 분절(segmentation)와 결합된다. 세 번째는 주변화(marginalization)로 약자를 외부에 머물게 하는 것이며, 이것은 약자들을 서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분열(fragmentation)과 결합된다. 이 네 가지는 그 자체로 구조적 폭력이며 구조 내에 억압의 형태로 자리를 잡고 있다.
침투와 분절은 사회에서 흔히 발견된다. 예를 들어 정책결정자들과 엘리트 집단, 그리고 경제적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철학, 가치, 신념, 신봉하는 이론과 담론을 자신들이 지배하는 하는 집단, 즉 약자에게 이식하기 위해 다양한 구조적, 문화적 수단을 동원한다. 그들은 약자에게 정치 및 사회 문제에 대한 단편적이고 왜곡된 정보만을 제공하거나 정보 접근을 제한함으로써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얻고 유지한다. 정치 이념, 경제 이론, 복지와 세금 담론, 민영화 논의 등 모든 사회 현안과 일상의 주제가 침투와 분절의 대상이 된다. 주변화와 분열의 사례 또한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사회적 강자인 기득권층은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 특히 약자들을 결정 과정과 체계에서 배제하고 대상화한다. 또한 약자들의 연대와 저항을 저지하고 왜곡하기 위해 그들이 자기 결정이 아닌 ‘외부 개입’에 의해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하나의 구조적 폭력 사례에서는 네 가지 중 적어도 하나는 발견할 수 있다.
갈퉁은 구조적 폭력인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불공평한 거래(unequal exchange)’를 언급한다. 구조적 폭력은 자원의 불균등한 분배를 야기하고 그로 인해 약자의 피해가 발생한다. 즉 강자가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약자의 피해를 인지하거나 예상하면서도 폭력적인 구조를 통해 불공평한 거래를 하고 그 결과 착취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불공평한 거래는 ‘정당한 거래’의 프레임을 통해 포장되고 약자에 대한 착취는 ‘법적으로 하자 없는’ ‘정당한 대가’로 주장된다. 나아가 약자의 피해는 ‘무능’과 ‘적자생존’으로 왜곡돼 설명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불공평한 거래가 일어나는 이유는 강자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구조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을 조성 및 유지하고 때로는 선제적 접근을 통해 자신에게 비우호적인 환경을 우호적인 것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기업과 노동자 사이의 불공평한 거래는 노동자보다 기업에 우호적인 구조적,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 노동자는 끊임없이 고강도 노동과 저임금의 불합리성을 증명해야 하지만 기업은 실적이나 임금 수준에 비해 지나친 이익을 실현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취급돼 정당성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정책결정자의 일방적 결정과 실행은 구조적, 사회적으로 정당화되고 법적으로 보호되므로 잘못된 판단으로 사회의 약자들에게 막대한 피해가 야기되더라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반면 약자들은 법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피해를 증명하고 인정받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재정적, 물리적, 사회적 자원을 동원해야 한다. 주류에 속하는 다수 집단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당연하게 존중받고 권리를 보장받지만 비주류에 속하는 소수 집단은 부당한 처우를 받는 상황과 권리를 인정받아야 하는 합리적 이유를 계속 설명해도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 모든 불공평한 거래는 억압과 강요를 통한 이익 실현을 ‘정당하고 합법적인 거래’로 인정하는 구조와 사회 환경을 통해 지속되고 때로 강화된다.
불공평한 거래의 지속은 곧 착취의 지속을 의미하고, 착취는 약자의 생존을 좌우하고 고통스런 삶을 지속시킨다. 이런 불공평한 거래의 근본적인 원인은 고착된 힘의 관계다. 자연스런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고착된 힘의 관계는 불공평한 거래와 착취를 비합법화하고 약자 보호의 합법화 확대를 통해 극복될 수밖에 없다.
참고 논문: Johan Galtung, ‘Cultural Violence’ Journal of Peace Research, vol. 27, no. 3, 1990, pp.291-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