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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공동체, 리더의 조건

2016-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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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저런 집단과 관계를 맺으며 살고 어떤 집단에 대해서는 특별한 소속감을 느끼기도 한다. 가족, 마을, 회사, 종교공동체, 민간단체, 동호회 등 우리가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은 다양하다. 우리는 그런 집단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며 사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국인의 피에 흐르고 있는 집단주의 문화 성향 때문에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이 더 강조된다. 한국인들은 소속된 집단이 있어야 안정감과 안전함을 느끼고 그 집단과 자신이 운명을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곧 개인의 삶이 항상 집단의 영향에 노출돼 있고 집단에서 생기는 일이 개인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집단과 개인의 삶이 지나치게 밀착돼 있는 상황은 부정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긍정적일 수도 있다. 좋은 집단이 개인의 안녕과 삶의 질 향상에 직접, 그리고 즉각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항상 접촉하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좋은 집단, 좀 더 기능적인 의미로 공동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어떻게 해야 공동체가 우리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만들 수 있을까? 사실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개인의 삶 속에 들어와 있는 공동체의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생활환경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공동체를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작동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연하게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는 골치 아픈 다툼이나 문제가 없는 ‘평화로운’ 공동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야 자신의 삶도 평화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평화로운’ 공동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평화의 눈으로 그 기본 조건을 확인해 보자. 


평화로운 공동체의 첫 번째 조건은 구성원들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다. 이것은 힘이 아니라 상호 존중과 이해에 의존하는 관계를 말한다. 힘에 의존하는 관계는 서로의 다른 점을 자연스런 ‘차이’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모자람’과 ‘약점’, 또는 ‘우월함’과 ‘장점’으로 취급해 만들어진 서열에 기초한다. 우리는 나이와 직급에 따라 이런 위계를 만드는 것을 문화적으로 쉽게 수용한다.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를 위한 질서와 효율이 아니라 서열이 높은, 다시 말해 힘이 많은 사람들의 독점과 통제, 그리고 강요와 억압을 쉽게 하기 위해 그런 서열을 만들고 절대시하는 공동체 내에서는 절대 평화로운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두 번째 조건은 ‘평화로운 구조’다. 즉 공동체 운영의 뼈대인 구조가 평화롭게 작동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결정권한의 공유’를 통해 이뤄지는데 그 실행의 핵심은 구성원들의 ‘참여’다. 수직적 구조를 가진, 그러니까 서열과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공동체는 어떤 일을 결정할 때 구성원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모두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 지도자의 결정에 의존한다. 사실 우리사회 대부분의 공동체가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소수의 결정권한을 절대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그에 대한 문제제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은 다수를 배제시키고 소수의 결정에 다수가 따르도록 강요하면서 소수의 독점과 통제를 강화시키는 구조다. 절대 평화로운 구조가 아니다.

   

세 번째는 평화로운 문제해결 문화다. 이런 문화에서는 당사자들이 공동체, 또는 구성원들의 압력을 받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다루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다. 공동체와 구성원들이 당사자들에게 공동체의 조화와 이익을 위해 문제 제기를 중단하고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하지도 결정권자의 명령에 따르도록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런 문화는 문제가 생겼을 때 당사자들이 서로 대화하고 합의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공동체가 그것을 독려하고 지원할 때 만들어진다. 또한 구성원 각자가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공동체의 지원이 이뤄질 때 확산되고 정착된다. 그러나 이런 공동체는 찾아보기 힘들다.


공동체가 지금까지 얘기한 ‘평화로운’ 공동체의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조건을 갖추지 못한 공동체에서는 구성원들 사이에, 그리고 소수의 결정권자와 다수의 구성원들 사이에 자주 문제가 생긴다. 때로는 그것이 갈등으로 바뀌고 그 결과 공동체가 심각한 도전과 시련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평화로운 공동체의 조건은 건강하고 안전한 공동체의 다른 언어적 표현이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이제는 리더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우리는 흔히 리더가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통솔력을 발휘해 크고 작은 저항을 다 물리치고 구성원들을 이끄는 강한 리더를 선호하곤 한다. 그러나 그런 리더가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 가능성은 높지 않다. 주어진 권한을 가지고 다른 구성원들과 힘의 관계를 만들고 자신, 또는 소수의 결정에 따라 공동체를 운영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공동체 내에서는 끊임없이 불만과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면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좋은 리더는 어떤 사람일까?


먼저 좋은 리더는 평화로운 관계와 구조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리더는 통솔력이나 장악력을 일방적으로 행사하지 않고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공동 작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서열에 초점을 맞추고 힘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존중과 배려에 기초해 구성원들과 관계를 만들 수 있는 능력과 품성이 있어야 한다. 또한 열린 생각과 자세를 가지고 구성원들과 지속적으로 구조의 허점을 탐색하고 변화를 꾀할 수 있어야 한다. 구성원들이 비판적으로 공동체 문화와 구조를 분석할 수 있도록 안전한 공간과 절차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평화로운 관계와 구조를 위한 이런 접근은 권한의 분배에 의해 가능해진다. 어떤 리더는 이것을 자신의 권한을 부정하거나 권한에 정면 도전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것은 책임의 공유와 분배를 위해 공동의 결정과 실행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접근을 위해서는 리더, 또는 소수의 결정에 구성원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동시에 리더, 또는 소수에 의한 일방적 결정은 점차적으로 줄이고 공동 논의와 결정은 늘려가야 한다. 이것이 곧 앞에서 얘기한 구성원들의 참여가 이뤄지는 평화로운 구조고 이런 방식을 통해 서열을 극복한 평화로운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결국 좋은 리더는 자신의 권한을 구성원들과 나눠가질 수 있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공동체 안에 생기는 문제나 갈등이 평화로운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지원하는 사람이 좋은 리더다. 이것은 문제를 조기에 감지하고 문제에 관계된 구성원들이 대화할 수 있는 기회와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면서 문제가 악화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 실천이 필요하다. 첫째는 리더가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 구성원들이 스스로 문제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셋째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는 내.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 이것은 내부 진행자나 외부 갈등해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적절한 절차나 과정이 진행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의 공동체에서 리더의 역할은 중요하다. 수평적 조직이 드문 환경에서 여전히 리더가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곧 리더가 변하면 공동체가 변할 가능성도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더가 자신의 권한을 공동체, 그리고 구성원들을 위해 잘 활용하고 나아가 권한을 분배하는 시도를 한다면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무엇보다 이제는 그런 리더가 현명하고 능력 있는 리더로 환영받는 시대가 됐다. 그런 리더만이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 이 글은 월간지 <새가정> 6월 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무단 인용이나 배포를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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