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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와 한국교회의 정의 평화 논의와 실천

201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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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의 정의 평화 논의

2011년 5월, 자메이카의 킹스턴에서 세계 에큐메니칼 평화대회(International Ecumenical Peace Convocation)가 열렸다. 전 세계 교회에서 1천 명 정도가 참석했고 지구촌 곳곳의 평화와 폭력 현안이 논의됐다. 이 대회는 2001-2010년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WCC)가 세계교회와 함께 진행했던 ‘폭력극복 10년 캠페인’을 마감하는 자리였다. 10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진행된 활동을 공유하고, 성과를 축하하며, 여전히 남은 문제들을 같이 고민해보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현상적으로 보자면 캠페인이 벌어진 10년 동안 세상의 폭력은 더 많아지고 뿌리도 깊어졌다. 그러나 한 가지 위안이자 희망이 되는 것은 폭력의 심각성과 평화의 시급함을 인식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증거로 세계 각지에서 온 1천여 명의 참석자들이 같은 언어로 평화의 시급함을 강조하고 폭력 제거의 어려움과 전략에 대해 고민했다는 점이다.

 

WCC가 세계교회들과 함께 지난 10여 년 동안 특별히 ‘평화’를 핵심 주제로 삼아 논의와 실천을 확대해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20세기 말에 등장한 새로운 내전과 대량 학살, 21세기 다시 시작된 국가 사이의 전쟁들, 그리고 비뚤어진 국제 정치, 경제,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 폭력의 고착화와 희생자의 증가가 교회의 양심과 사회적 책임에 비춰볼 때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특별히 폭력 상황들의 상호작용이 활발해져 폭력이 확산되고 그 결과 폭력의 희생자가 갈수록 증가해 폭력의 근본원인을 포괄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불가피함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가 지구 공동체의 구성주체 중 하나로 폭력 및 희생자의 증가를 외면하고, 더 나아가 폭력의 확산과 지속에 기여한 잘못을 회개해야 하는 기독교 윤리적 당위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의 연장선에서 WCC 10차 부산 총회도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라는 주제를 가지고 열렸다.

 

WCC의 평화 논의에 동참하는 세계교회들이 동의하는 평화는 전쟁의 부재와 신체적 해를 넘어서 인간의 존엄, 번영, 행복이 보장되는 평화다. 궁극적으로 지구촌의 다양한 개인과 집단이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그들 모두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평화다. 특별히 WCC는 평화와 함께 정의를 강조하고 있다. ‘폭력극복 10년 캠페인’에서 얻은 성찰을 정리한 <An Ecumenical Call to Just Peace> 문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WCC는 ‘정의가 없는 평화, 평화가 없는 정의’가 아니라 정의와 평화를 함께 이루는 것이 교회의 공식 입장이자 사명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은 “정의와 평화는 서로 입을 맞춘다 (시편 85:10)”라는 성경 구절에 기초하고 있다. 이 문서는 “정의와 평화가 부족할 때, 또는 서로 반대 위치에 있을 때는 우리의 방식을 개혁해야 한다”면서 정의와 평화가 반드시 동시에 추구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WCC의 "An Ecumenical Call to Just Peace" p.2 참조). 정의를 핑계로, 또는 정의에 지나치게 주력한 나머지 평화를 외면하거나, 평화를 핑계로 정의를 왜곡하거나 정의의 성취를 가로막는 일을 교회는 절대 정당화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에 대한 WCC의 접근은 필자가 하고 있는 평화연구의 기본적인 접근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WCC는 정의 평화를 병렬적으로 배치하고 있으며 이것은 강자 또는 기득권 세력에 의해 부당하게 왜곡되거나 부과되는 ‘정의 없는 평화’에 대한 경계를 표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WCC와 세계교회들이 논의하는 정의 평화와 평화연구가 논의하는 평화는 근본적으로 맥을 같이 한다. 이것은 WCC의 평화 논의 및 실천에 신학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평화연구자들 및 현장 실천가들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평화연구는 굳이 정의를 구분지어 강조하지 않고 ‘평화’의 달성에 정의가 동반되는 것을 당위적으로 이해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자의 평화가 배제되고 강자의 평화가 부과되는 상황을 경계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just peace(정의로운 평화)'라는 용어로 정의가 평화의 전제가 돼야 함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평화연구자들이 ’just peace'라는 용어 자체를 잘 쓰지 않는 것은 평화의 궁극적 목표가 평화적 공존이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정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일반적으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는 일어난 일을 규명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을 말한다. 일어난 일의 규명은 누가, 왜, 어떻게 불의한 일을 저질렀으며, 누가, 왜, 어떻게 희생당했는지를 밝히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반드시 희생자의 증언과 해석의 토대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책임을 묻는 것 또한 희생자에 의해 이뤄져야 하며 그들이 만족하는 수준에서 가해자에 대한 판단과 처벌이 결정돼야 한다. 그러나 정의는 아주 자주 희생자가 아니라 정책결정자나 기득권 세력에 의해 논의되고 판단되며, 희생자는 약자라는 이유로 논의와 판단 과정에서 배제되곤 한다. 이런 정의는 절대 평화의 토대가 되지 못한다. 평화는 폭력이 종식된 후 가해자와 희생자를 포함한 모든 사회 구성원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평화는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 구성원 모두가 새로운 관계, 구조, 문화를 만들고 평화를 깨지 않도록 계속 노력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므로 평화는 폭력이 중단된 상태는 물론 평화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 모두를 포함한다. 여기에서 정의는 폭력의 중단 및 평화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된다. 정의는 희생자가 동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 달성돼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평화는 일회적 사건이 되고, 평화의 지속성은 보장되지 않으며, 희생자는 계속 새로운 폭력에 노출되게 된다. 결국 폭력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성취하는데 있어 정의와 평화는 함께 논의되고 달성돼야 하며 이것은 평화에 대한 이상적인 담론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접근이다.

 

WCC와 세계교회들의 정의 평화 논의는 실천 영역에 있어서 특별히 공동체, 지구, 시장, 민족/국가의 네 개 영역을 제시하고 있다. 공동체 안의 폭력과 평화 현안은 가정, 교회, 학교, 마을, 직장 등 비교적 규모가 작은 공동체 내의 폭행, 차별, 억압, 착취, 불평등한 구조, 전쟁 및 소형무기에 의한 희생 등을 포함한다. 지구에 대한 폭력과 평화 현안은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와 식량난, 기후난민, 부국의 온실가스 배출과 빈국의 피해, 기후정의 등을 포함한다. 시장 안의 폭력과 평화 현안은 빈곤과 실업, 빈부 격차, 불공정한 경제 구조, 부당한 부의 축적과 생계의 위협, 부국의 착취와 빈국의 희생 등을 말하며, 민족/국가 사이 폭력과 평화 현안은 증오와 차별, 외국인 혐오, 힘에 의한 외교, 무기 경쟁, 전쟁 등을 포함한다.

 

공동체, 지구, 시장, 민족 및 국가 영역은 전 세계 폭력 및 평화 현안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각각의 영역은 다른 영역들과 상호 연결돼 있다. 이것은 폭력의 복잡성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평화의 확장 가능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다시 말해 한 가지 폭력이 다른 영역의 근본원인들과 연결돼 있어 해결하기가 복잡하지만 한 가지 폭력을 해결해 평화가 달성되면 그 영향이 자연스럽게 다른 영역으로 확장됨을 의미한다.

 

WCC와 세계교회들의 정의 평화 논의와 실천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폭력과 평화에 대한 상향식(bottom-up) 접근이다. 이것은 소수의 전문가나 집단이 폭력 또는 평화 상태를 진단하고, 현안을 확인하며, 해결책을 제시하는 하향식(top-down) 접근과는 상반되는 방식이다. 상향식 접근에서 폭력과 평화의 현안 및 필요성은 당사자들의 삶의 이야기와 고백을 통해 확인된다. 폭력의 극복과 평화의 성취 과정 및 방법 또한 당사자들에 의해 제안 및 합의되고 실천된다. 이런 접근은 교회의 역할이 논의를 주도하고 해결책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을 독려하고, 실질적으로 지원하며, 그들에게 논의와 실천의 장을 제공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정의 평화 논의와 실천

한국교회는 (특별히 에큐메니칼 운동 영역을 말함)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왜곡되고 상처 많은 한반도 역사와 함께 해온 연유로 한국교회는 특별히 정의에 민감하고 정의의 달성에 집중해 왔다. 한국교회가 정의에서 평화로 한 걸음 나아가고 남북문제와 관련된 평화가 아닌 인류 보편적 평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한국교회에서는 여전히 정의가 강조되고 논의와 실천의 중심에 서 있으며 평화는 논의와 실천에서 정의와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WCC와 세계교회들의 정의 평화 논의 및 실천과 상당히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CC와 세계교회의 영향으로 평화가 교회가 다뤄야 할 주요 주제로 조금씩 언급되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정의 평화 논의 및 실천은 WCC로 대변되는 세계교회의 접근과 비교할 때 극복돼야 할 여러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먼저 세계교회에서는 정의와 평화가 동시에 논의되고 있지만 한국교회에서는 정의가 핵심을 차지하고 있고 평화는 조건적으로 언급되거나 소비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평화 없는 정의’가 여전히 논의와 실천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고 평화는 담론을 넓힐 필요가 있을 때 조건적으로 추가되거나 평화의 개념적 접근 없이 추상적 또는 개인적 이해에 따라 오용되곤 한다. 이것은 지금의 한국교회가 폭력과 평화 현안과 관련해 서 있는 자연스런 자리기도 하다. 다만 정의 평화 논의 및 실천에 있어서 한국교회가 세계교회들과 발을 맞춰야 한다면, 그리고 발을 맞추기 원한다면 이 점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한국교회가 극복해야 할 또 다른 과제는 민족적 현안에 집중하고 지구적 현안을 외면하는 태도다. 세계교회는 공동체, 시장, 지구, 민족/국가 사이라는 네 개 영역을 통해 포괄적으로 폭력과 평화 현안에 접근하고 있다. 각 영역은 풀뿌리 차원부터 지역사회와 국제사회까지, 그리고 개인으로부터 집단과 국가까지 모든 차원을 포함하며 교회에게 폭력과 평화 문제를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상호작용까지 고려해 대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논의는 한편으로 남북관계와 평화통일, 한국사회의 불의와 불공정에 집중돼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거시적 차원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시급한 한반도와 한국사회 현안을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민족적 현안과 동시에 지구적 현안들도 교회의 논의와 실천 영역에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포괄적이고 확장된 접근은 결과적으로 한반도 및 한국사회 현안에 대한 새로운 분석과 대응도 가능하게 할 것이다.

 

한국사회 및 지구 차원의 폭력 및 평화 현안 논의와 실천에 있어 한국교회가 당면한 또 다른 과제는 타협적 접근의 극복이다. 이것은 곧 원칙적 접근의 강조를 의미한다. 타협적 접근은 일반 대중 및 교인들과 눈높이를 맞춤으로서 논의와 실천에 역동성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에 피상적, 선별적으로 접근하게 돼 장기적인 건전성과 지속성은 담보하지 못한다. 공동체의 폭력 및 평화 현안에 있어서 교단 및 교회 내의 구조적 문제, 지구 현안에 있어 한국 정부와 국민의 지구온난화 및 기후변화에의 기여, 기후정의의 외면 등이 원칙적 접근을 강조할 때 언급돼야 할 문제들이다. 시장과 관련해서는 부의 축적과 빈곤과의 상관관계, 한국사회의 대량 소비와 빈국의 착취, 기독교인의 탐욕과 윤리적 경제생활 등이 언급돼야 하고, 민족/국가 사이 문제에 있어서는 전쟁, 무기, 군축, 그리고 군사주의에 대한 교회의 입장이 언급돼야 한다. 이런 문제들은 모두 교회 내의 심도 있는 논의와 합의를 필요로 한다. 때문에 교회가 원칙적 접근을 취하더라도 다양한 집단의 기독교인 및 일반 대중을 설득하고 참여시키기 위해 다시 타협적 접근의 수준과 방식을 합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폭력의 근본원인이 되는 문제들에 대한 원칙적 접근을 외면하고 대중과 교인들의 눈높이만 고려해 타협적 접근을 취한다면 결국 폭력의 종식과 평화의 성취는 어려워진다.

 

한국교회는 정의 평화 논의와 실천에 있어 여러 가지 한계와 과제를 안고 있지만 그것들을 논의할 자리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새로운 지도력의 부재, 목회자 및 신학자 위주의 에큐메니칼 운동, 평신도 참여 공간의 부족, 토론과 합의 문화의 부재, 평화성의 부족 등이 논의를 방해하는 대표적인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들은 정의 평화 논의 및 실천의 토대가 되는 포용적이고 창의적인 환경 조성을 방해하고 한계 극복을 위한 새로운 시도, 담론의 형성, 심도 있는 토론을 힘들게 한다.

 

새로운 지도력은 90도의 수직적 형태가 아닌 수평적 형태의 조직문화를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결정권 행사로 대변되는 힘의 소수 집중이 아니라 다수 공유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큰 그림을 봤을 때 아직도 90도 수직적 형태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목회자 및 신학자 위주의 에큐메니칼 운동과 평신도 참여 공간의 부족은 상호 연관된 문제다. 에큐메니칼 운동 및 교단 활동은 다수의 평신도 참여가 배제된 채 여전히 목회자 및 신학자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때문에 에큐메니칼 운동 및 교단 활동은 다수의 평신도와 폭 넓게 공유되지 않으며 평신도 담론과 신학의 부재로 이어진다. 결국 평신도 참여의 부족은 제도적 교회 및 기독교 신앙의 질적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토론과 합의 문화의 부재는 현안의 선정과 논의 절차 모두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아직도 전쟁, 비폭력, 핵무기, 무기 생산 및 거래, 무기 경쟁, 군축, 인간 안보, 교회와 군대의 관계 설정, 인도적 개입 등 기본적 평화 현안에 대한 토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정의만 강조되거나, 평화가 동반되지 않는 정의가 강조되는 이유 또한 다양한 집단과 개인을 포함하는 열린 토론과 합의 문화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평화성의 부족은 평화적 시각에서 봤을 때 앞서 언급한 모든 문제들의 근본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성은 평화의 핵심 요소인 관계성, 공동체성, 지속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평화의 관계성은 모든 개인, 집단, 사회, 국가 사이에 힘이 아니라 수평적이고 상호 의존과 배려의 관계가 형성돼 있는 것을 말한다. 이런 관계에서는 누구도 힘을 이용한 폭력에 희생되지 않는다. 평화의 공동체성은 평화의 관계성이라는 토대 위에 형성되는 것으로 독립적인 주체들이 힘의 압력을 받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평화의 지속성은 일회성의 왜곡된 평화가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통해 안정되고 평화적 문제해결이 정착된 지속적인 평화 상태를 말한다. 이런 지속성은 평화의 성취를 위해 선택되는 평화적 과정과 방법, 공정하고 공평한 참여, 정의를 담보하는 문제 해결 등을 통해 달성된다 (정주진, 「일상의 폭력과 녹색평화」, 『녹색평화란 무엇인가』(아카넷, 2013), 228-231쪽 참조). 평화성은 앞서 언급한 문제들이 해결될 때 성취될 수 있는 것이며 앞서 언급한 문제들을 다룰 때 반드시 고려돼야 하는 점이기도 하다.

 

한국교회 정의 평화와 평화교육

정의 평화 현안의 논의 및 실천과 관련해 한국교회가 당면한 현안은 첫째로 WCC와 세계교회들이 추구하는 지구적 접근을 수용할 것이냐는 것과, 둘째로 수용을 위해 한국교회 내의 한계와 문제를 먼저 극복할 것이냐는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현안은 WCC 10차 총회까지 유치한 한국교회의 위상, 그리고 한국이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피하기 힘든 현안이다. 이런 변화된 상황에서도 지구적 접근, 다시 말해 지구촌 곳곳의 사람들이 직면한 폭력 문제를 거부한다면 한국교회는 교회로서의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 될 것이고 한국은 이기적인 민족국가로 평가될 것이다. 둘째 현안인 한국교회 내의 한계와 문제의 극복은 작은 목소리와 움직임이지만 이미 한국교회 내에서 나타나고 있는 평화 논의와 담론의 등장을 고려할 때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자 도전이다. 결국 두 가지 현안 모두 이 시대 한국교회가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이 두 가지 현안은 단계적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다뤄질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상호 영향을 끼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지구적 차원의 정의 평화 논의 및 실천은 결국 한국교회 내 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한국교회 내 한계 및 문제 극복 노력은 자연스럽게 지구적 차원의 문제에 눈을 돌리게 할 것이다. 이런 변화는 노력하지 않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평화교육을 통해 구체적, 단계적으로 가능해진다.

 

평화교육은 가치, 태도, 행동의 변화를 목표로 삼는다. 가치의 변화는 폭력의 실행, 승인, 묵인과 힘에 의한 해결의 지지에서 벗어나 상호 존중과 배려, 대화, 협력에 기초한 평화적 공존을 가치로 삼는 것을 말한다. 태도의 변화는 타인에 대한 편견, 차별, 무시, 외면 등에 기초한 폭력적 대응을 존중과 포용에 기초한 평화적 대응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행동의 변화는 평화의 가치와 평화적 대응에 기초한 관계 맺기, 폭력 제거 노력, 평화적 공존 노력 등을 직접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가치, 태도, 행동의 변화는 개인, 사회, 국가, 지구촌 모든 영역의 폭력과 평화 문제에 대한 대응과 실천에 공통으로 적용된다. 평화교육에서는 이 세 가지가 동등하게 강조되며 특별히 행동의 변화가 없다면 평화교육은 완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하게 된다.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평화교육은 특별히 성서의 가르침에 근거해 기독교적 정체성과 윤리관을 세우는데 기여할 수 있다. 동시에 WCC와 세계교회가 강조하는 영역별 폭력 및 평화 현안을 다루고, 정의가 동반된 평화와 평화가 동반된 정의를 강조하는 내용을 포함할 수 있다. 이런 교회 내 평화교육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민족적 차원을 넘어 지구적 차원에서 보편적 폭력과 평화의 문제에 접근하고, 동시에 한반도 및 한국사회의 문제도 정의 평화의 포괄적 접근을 통해 새롭게 진단하고 대응할 수 있게 해준다. 평화교육은 한국교회가 당면한 문제들, 다시 말해 앞서 언급한 새로운 지도력의 부재, 목회자 및 신학자 위주의 에큐메니칼 운동, 평신도 참여 공간의 부족, 토론과 합의 문화의 부재, 평화성의 부족 등 정의 평화 논의 및 실천을 저해하는 문제들을 극복하게 해준다. 평화교육은 더욱 구체적이게는 기독교인들이 평화성에 기초한 언어, 가치, 과정을 공유하게 하고, 정의 평화 논의 및 실천을 위한 평화적 과정을 개발하게 독려하며, 소수의 결정과 다수의 소외를 가져오는 교회 내 비평화적 구조 및 문화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곧 교회 내 평화문화의 확산을 가져오며 한반도와 한국사회, 그리고 궁극적으로 한반도가 속한 지구촌의 정의 평화에도 기여한다.

 

WCC는 <An Ecumenical Call to Just Peace> 문서에서 평화교육을 정의 평화를 향하는 ‘길잡이’ 중 하나로 언급하고 있다. 평화교육은 평화의 비전을 담으며, 여러 전통과 문화가 가치로 삼고 있는 적극적 비폭력(active non-violence)을 변화를 위한 방법으로 독려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평화를 추구하도록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WCC의 "An Ecumenical Call to Just Peace" p.10 참조). 정의 평화 논의 및 실천을 위한 전제로서 평화교육이 불가피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평화는 배우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또한 배우고 분석하지 않으면 평화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 정의가 동반된 평화 성취의 구체적 과정과 전략을 세울 수가 없다. 평화교육은 한국교회가 WCC와 세계교회들의 정의 평화 논의와 실천에 동참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해야 하는 일이다. 정의 평화 논의 및 실천의 첫 걸음은 구체적, 단계적, 포괄적인 평화교육의 시작이다.


* 위의 글은 기독교 잡지인 <기독교사상> 2014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 무단 복사와 배포를 할 수 없으며 인용시 반드시 출처와 저자를 밝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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