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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정의, 그리고 화해의 관계: 평화학 관점의 접근

2026-07-27
조회수 27

평화와 함께 정의가 언급되는 이유

평화학이 탐구하는 평화는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가장 바람직한 삶과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상태이자 모습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평화의 탐구가 인간이 직면한 위협적이고 도전적인 상황을 대면하고 분석하며 그런 상황의 중단, 나아가 전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평화의 탐구는 추상적이거나 철학적인 언어로 설명될 수 없고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접근과 실행을 통해 논리적 정당성을 획득한다. 즉 평화의 탐구는 모호한 이론적 명제가 아닌 인간이 직면한 구체적인 위협 및 위험의 확인과 분석, 그리고 이를 바꾸기 위한 구체적인 방식의 모색과 적용에 초점이 맞춰진다. 많은 평화학자가 평화학 연구의 실질적인 목표 중 하나로 학문을 통한 사회 변화에의 기여를 언급하는 점이 이런 학문적 접근의 특징을 잘 말해준다.

 

평화학의 연구, 또는 평화 탐구와 관련해 빈번하게 언급되는 논제 중 하나가 평화와 정의와의 관계다. 이와 관련해 정의로운 평화(just peace)가 언급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평화와 정의의 관계를 앞서 언급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평화 탐구와 관련지어 논해보고자 한다.

 

우선 논하고자 하는 건 ‘왜 정의는 평화와 함께 언급되는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의가 없는 평화는 평화의 성취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것은 강자, 지배자, 소수 엘리트, 나아가 가해자를 위한 평화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곧 평화가 약자, 피지배자, 다수의 사회 구성원, 나아가 피해자의 정의를 외면한 채 이뤄졌으며 결과적으로 ‘강자 또는 승자의 평화’ 하에서 이들은 계속 약자와 피해자로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평화는 부족한 평화가 아니라 왜곡된 또는 조작된 평화에 불과하고 그러므로 평화의 개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렇게 정의가 없는 평화가 사실은 평화가 아님을, 그리고 평화가 반드시 정의를 동반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 정의로운 평화가 언급되기도 한다.

 

그런데 평화의 개념 자체는 정의를 포함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평화는 폭력의 부재를 의미하며 평화 실현은 곧 폭력 감소와 마침내 제거를 통해 가능하다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폭력의 중단과 제거는 우선 가해자의 폭력 행위가 사회적, 법적 압력으로 중단될 때 가능하다. 그러나 폭력의 중단이 반드시 평화의 실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평화 실현은 폭력 피해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평화로운 삶이 보장되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폭력의 중단은 다른 말로 불안한 상황의 지속과 폭력의 재발이 우려되는 상황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화 실현을 위해서는 폭력과 관련해 정의가 실현되고 그에 기반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전환되어야 한다. 이는 가해자에 대한 압력에 더해 사회적, 법적 판단과 폭력에 상응하는 처벌이 가해자에게 내려져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관계 전환과 평화 실현을 위한 정의의 모습이고 이런 정의는 폭력의 중단을 넘어 원천적인 제거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평화가 실현될 수 없음을, 즉 평화 실현 자체가 정의를 포함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평화의 왜곡, 정의 없는 평화

평화 개념에 정의가 함의되어 있음에도 평화와 함께 굳이 정의가, 또는 정의로운 평화가 언급되는 이유는 정의가 없는 왜곡된 평화가 목격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왜곡된 평화는 단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평화가 실현되지 않았음에도 평화로운 상태가 됐다고 그릇되게 해석되거나 의도적으로 폭력의 존재 사실이 숨겨지고 평화로운 상태가 주장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일은 개인, 집단, 국가가 관련된 다양한 폭력이 중단 또는 제거된 상황에서도 목격되곤 한다.

 

개인이나 집단은 폭력 중단 뒤에 자동으로 평화가 실현됐다고 주장하곤 한다. 때로는 상대적 강자이자 가해자가 폭력 중단 또는 종식 뒤 일방적으로 평화를 선언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해자 개인이나 집단이 폭력 중단 뒤에도 은밀한 방식으로 특정 절차나 행위 등을 거부하거나 영향력과 권력을 유지하며 피해자 개인이나 집단에게 계속 불이익을 준다면 이는 가해자-피해자 관계의 지속이고 그러므로 평화가 실현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강한 가해자 개인이나 집단은 여전히 자신에게 유리한 이런 상황을 평화로 왜곡하며 폭력 중단 이전에 누렸던 위치와 이익을 계속 누리려 한다. 이는 폭력은 중단됐지만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평화가 실현되지 않은 상태임을 말해준다. 또한 이는 왜곡된 평화 상태에서 은밀한 폭력이 계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은 개인이나 집단이 폭력의 피해자가 아닌 영향력이나 권력을 가진 가해자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가해자 주장을 지지하는 현실에서 자주 나타난다.

 

국가 차원에서 평화 왜곡의 흔한 사례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무력 충돌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국가 간 또는 그에 준하는 집단 간 합의 후에 나타나고, 다른 하나는 국가와 국민, 또는 특정 지역 주민 집단 간 대립이나 갈등 종식 뒤 상황에서 나타난다.

 

먼저 국가 간 또는 그에 준하는 집단 간 평화 합의와 관련해 살펴보자면, 무력 충돌이나 전쟁은 교전 당사자 국가나 집단 간 평화 합의를 통해 종식되는데 이때 합의에는 강자의 요구사항이 더 많이 반영된다. 때문에 승자의 평화는 있으나 패자의 평화는 없다. 그럼에도 승자는 자기 이익 실현과 이미지 홍보를 위해 평화가 이뤄졌다고 주장하며 평화를 왜곡한다. 이렇게 평화가 왜곡된 상황에서 패전 국가나 집단은 큰 피해를 보고 패자 사회 구성원들의 피해는 더 크다. 결정권을 가진 지도층이 사회 구성원들의 일상적 필요는 외면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 고려한 합의를 하기 때문이다.

 

존 폴 레더락(John Paul Lederach)은 그의 글 <정의로운 평화(Just Peace)>에서 이런 문제점을 ‘정의 간격(justice gap)’으로 부른다. 그는 평화 합의로 직접적 폭력은 종식되지만 평화 합의가 무력 충돌이나 전쟁을 야기한 근본적인 문제인 구조적 폭력을 다루지 못하고 그 결과 구성원들이 원하는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 문화적 변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로 인해 평화에 대한 기대와 도출된 평화 사이에 간격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John Paul Lederach (1999) “Just Peace: The Challenge of the 21st Century.” In People Building Peace: 35 Inspiring Stories from People Around the World. State of the World Forum and European Centre for Conflict Prevention(ed.). European Centre for Conflict Prevention).


이를 잘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사례는 2025년 10월 10일 발효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합의, 그리고 2026년 6월 17일 미국과 이란이 서명한 휴전 연장 양해각서다. 이 양해각서는 2026년 7월 7일 미국이 이란 공격을 재개하면서 사실상 무효가 됐으나 그 내용은 이 글의 맥락에서 분석할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이 제안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합의서는 주로 승자인 이스라엘에 유리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나아가 가자지구 미래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게다가 휴전을 포함한 평화안은 가자지구 재건과 공동체 복구가 아니라 사실상 가자지구 식민화에 맞춰졌다. 이런 이유로 가자지구의 누구도 휴전을 평화 실현의 디딤돌로 보지 않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주도하는 가자지구 미래를 평화 실현으로 보지 않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의 집단 학살 등 전쟁 범죄에 대한 단죄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가자지구 인도주의 재난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평화 구상은 왜곡된 평화일 수밖에 없다.

 

미국과 이란이 서명한 양해각서는 선제 공격을 한 미국이 이란에 핵무기 개발 포기를 압박하고 그에 대한 막대한 경제적 보상을 약속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미국이 전쟁 명분으로 언급한 폭력적인 이란 정권의 인권 문제나 민주화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양해각서에는 지난 1월 강경 진압을 통해 수천 명의 시위자를 살해한 정권을 위한 경제적 보상이 담겼으나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많은 이란 국민의 바람은 한 구절도 담기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전쟁 종식 후 이란 국민은 민주주의 후퇴에 더해 전쟁 전보다 심각한 공포 정치에 직면할 가능성에 직면하게 됐다. 이는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 합의가 정의를 배제함으로써 평화를 왜곡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국가와 국민, 또는 주민 집단 간 대립이나 갈등 후 상황에서도 흔히 정의의 부재로 인한 평화의 왜곡이 나타난다. 대립과 갈등의 종식 후 보통 국가는 평화적 상태로의 복귀를 선언하지만 국민이나 주민 집단은 그것을 평화 실현으로 보지 않는다. 특히 절차와 결말이 상대적 약자이자 때로 국가 폭력의 피해자인 국민이나 주민 집단의 입장 및 이익 포기, 나아가 굴복에 맞춰진 경우 문제의 종식은 정의 실현 부재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정의가 부재한 평화는 상대적 약자인 국민과 주민 집단에게 설득력을 잃고 상대적 강자인 국가가 원하는 왜곡된 평화로 남게 된다.

 

평화 실현을 위한 정의 실현

그렇다면 평화의 불가피한 전제가 되는 정의는 ‘어떤 정의이고, 어떻게 이루어지는가?’가 논의의 중요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 사전적으로 정의는 ‘옳고 바른 도리’를 의미한다. 평화 실현과 관련해 정의는 이런 ‘옳고 바른 도리’를 거스르며 저질러진 일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언급된다. 그러므로 정의는 이미 발생한 ‘잘못된 행위’를 어떻게 확인하고 그로 인해 파괴된 관계를 어떻게 회복해 모두를 위한 평화를 실현할지에 맞춰진다.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정의는 사법 정의고 이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에서 최소한의 정의가 된다. 그러나 명백한 가해와 피해, 특히 보편적 기본권을 침해하고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가 있었을 경우 정의는 사법적 의미를 넘어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 이때는 사법 정의를 넘어 인권과 인간성 회복 등 사회가 인정하는 정의 실현이 요구된다. 사회 정의는 사법 정의와 별개로 가해의 인정과 공개적 참회, 피해자에 대한 사과,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사회적 인정, 피해자 삶의 회복 등에 맞춰진다.

 

평화 실현을 위한 정의는 사법 정의, 사회 정의와 별개로 반드시 피해자의 정의를 필요로 한다. 피해자가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정의 실현 과정과 결과가 요구되는 것이다.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피해자에 초점을 맞춘 정의를 위해서는 지난하고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무력을 동원한 국가의 학살이나 진압, 불법 체포와 고문, 공적 기관의 불법 행위로 인한 주민 피해, 집단 간 충돌이나 갈등으로 야기된 부당한 피해,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 등과 관련해서는 사법 정의, 사회 정의, 피해자 정의가 모두 포함된 국가 차원의 절차가 요구되곤 한다.

 

국가 차원의 정의 실현 과정은 몇 가지 목적을 가지고 진행된다. 우선은 폭력 상황 종식 후 사회 재건과 국민 통합이다. 다양한 비판의 존재를 떠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르완다. 칠레, 페루 등 심각한 국가 폭력을 겪은 국가들이 진실과 화해 문제를 다루는 위원회를 통해 정의 실현 과정을 진행한 것이 가장 일반적인 사례다. 정의 실현 과정의 또 다른 목적은 가해와 피해의 확인, 피해자 삶의 복구, 개인 및 집단 간 관계의 복구 등이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 정의의 실현이다. 때문에 반드시 가해의 확인과 가해자 처벌, 그리고 피해의 확인 및 인정과 피해자 배상이 포함된다. 사법 및 사회 정의는 물론 피해자 정의를 함께 실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실행되는 것이다.

 

이런 정의 실현 과정은 진실 규명과 정의 실현을 위한 독립적 기관의 수립, 가해자 확인, 피해자 배상, 가해자 처벌, 가해자의 사과, 그리고 피해자의 용서 등으로 구성된다 (Daniel Philpott (2015) Just and Unjust Peace: An Ethic of Political Reconciliation. Oxford University Press). 각 단계의 실행에는 수년에서 수십 년까지 긴 시간이 걸리고 최소한의 목표인 가해자 처벌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또한 독립적 기관이 결국 정부의 압력을 받아 진행한 절차와 최종 보고서가 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남아공의 ‘진실과화해위원회’조차 후에 가해자를 쉽게 용서하고 피해자의 정의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가 차원의 정의 실현 과정이 반드시 평화 실현에 기여하는 건 아니다. 국가가 수립한 기관은 독립성을 인정받았다 해도 결국 정부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고 피해자의 정의보다 국민 통합과 사회 재건을 위한 절차적 정당성 확보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 성향에 따라 선별적인 접근을 취하고 그 결과 피해자 개인이나 집단의 정의 실현 요구를 외면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여러 한계가 있을 수 있음에도 국가 차원의 정의 실현은 사회적 정당성과 수용성을 확보할 경우 평화 실현을 위한 최소한의 정의 실현 과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개인과 집단 차원에서의 정의 실현 과정도 크게 보면 앞서 언급한 절차와 다르지 않다. 이때 초점은 결국 가해와 피해의 확인, 가해의 인정과 사과, 피해자 정의의 실현 등이다. 그러지 않고 피해자와 가해자 간 힘의 관계를 반영한 과정과 결과, 피해자 필요의 외면, 가해의 외면과 사과의 부재 등이 드러난다면 당연히 정의의 실현으로 볼 수 없다. 집단의 경우에도 집단의 안위, 평화를 가장한 집단의 이익, 결정권을 가진 소수 집단의 결정 등이 영향력을 미친다면 이 또한 정의 실현으로 볼 수 없다. 이런 미진한 또는 왜곡된 정의 실현 절차는 전혀 평화 실현에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대립과 충돌의 재발을 야기할 수 있다.

 

정의 실현 후의 화해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정의가 실현되어야 하지만 정의가 실현됐다고 자동으로 평화가 실현되는 건 아니다. 정의 실현이 평화 실현을 위한 전제조건인 건 사실이지만 정의 실현이 평화 실현의 절대조건인 개인적, 집단적, 사회적 관계의 회복과 새로운 관계 형성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관계의 회복은 가해와 피해의 관계가 상호 존중과 의존의 관계로 바뀌어 다시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해지는 것을 말한다. 새로운 관계는 힘의 관계에 기반해 가해와 피해를 야기한 폭력적인 관계가 아닌 어떤 경우에도 상호 폭력을 가하지 않는 평화로운 관계를 말한다.

 

이런 이유로 정의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것이 화해다. 화해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변화와 폭력적 관계로의 회귀 가능성이 사라졌음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화해는 단순히 피해자와 가해자 간 관계 변화뿐만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개인과 집단의 관계와 환경의 변화도 보여준다. 무엇보다 화해는 평화의 정착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지표가 된다. 국가 차원에서 정의 실현을 위해 수립된 위원회에 보통 ‘진실과 화해’가 포함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실’은 정의 실현에, ‘화해’는 평화 실현을 넘어 안정된 사회를 위한 평화 정착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국가 차원의 정의 실현이 반드시 화해로까지 이어진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화해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감정을 풀고 관계를 회복해 서로를 인정하며 평화로운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로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이유로 화해는 정의 실현의 궁극적 목표로 언급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화해가 없이 평화를 실현하는 건 불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이에 대한 답은 ‘그럴 수도, 아닐 수도’다. 이유는 가해자의 가해 인정과 이에 대한 처벌을 통해 정의가 실현되고 피해자가 이런 정의 실현을 수용하면 잘못된 과거의 청산, 폭력적 관계의 종결, 평화적 관계로의 변화가 이뤄진다. 이는 곧 더는 폭력이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고 나아가 최소한의 평화가 실현됐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화해가 없으면 관계의 완전한 회복과 새로운 관계의 형성은 불가능하고, 그에 따라 평화 또한 정착되지 못하고 불안한 상태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가해와 피해의 강도가 심했거나 특정 집단에 대한 학살이 있었던 경우라면 화해의 부재 속에 이런 불안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때문에 최소한의 평화가 지속되고 나아가 후퇴의 가능성이 부재한 완전한 정착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화해가 필요하다.

 

화해는 정의 실현과는 별개의 문제다. 정의 실현 과정은 가해의 인정과 그에 대한 처벌, 피해의 인정과 배상 등에 초점이 맞춰지고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화해할 의무를 부과하지는 않는다. 화해의 여부는 전적으로 피해를 입은 개인이나 집단, 그리고 가해를 한 개인이나 집단의 선택에 달려 있다. 가해자의 참회와 피해자의 용서라는 화해의 전제조건은 누구도 강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화해는 사법 정의와 사회 정의를 위한 강제성이 적용되는 정의 실현과는 별개의 과정이고 평화 유지 및 정착을 위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자발적 참여, 그리고 개인, 집단, 사회의 노력에 의존한다.

 

화해가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피해자의 결심이 필요하다. 사법 정의와 사회 정의는 물론 피해자 정의까지 실현된 뒤에도 피해자는 화해를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평화의 거부나 가해자와의 평화적 관계 거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평화를 깨고 폭력적 방식으로 직접 가해자를 단죄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화해는 사건의 확인과 진실과는 별개로 피해자의 심리적, 정신적 상태까지 포함하는 민감하고 복집한 문제라는 점이 핵심이다. 정의 실현 후에도 피해자에게는 폭력을 당했던 자신을 위로 및 치유하고 화해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동시에 화해를 위해서는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참회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해자의 인식과 태도의 변화가 있어야 하고 그래야 피해자의 참회 수용과 화해 결심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화해를 위해 긴 시간과 동시에 개인, 집단, 사회의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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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더락은 화해는 “사회적 공간”을 의미한다며 이곳이 바로 “사람들과 행위들이 화해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이 화해의 공간은 첫째로 고통스러운 과거와 장기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미래의 조우를 촉진하고, 둘째로 과거에 일어난 일의 규명과 새로운 관계 수립을 위해 진실과 자비가 만날 수 있게 한다. 셋째로 화해의 공간은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음과 공동의 연결된 미래에 대한 상상의 결합이 가능하도록 정의와 평화에 시간과 공간을 줄 필요를 인정한다 (John Paul Lederach (1997) Building Peace: Sustainable Reconciliation in Divided Societies. United States Institute of Peace Press). 이는 화해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 일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들을 둘러싼 집단과 사회의 진지하고 꾸준한 지원과 노력이 필요한 긴 과정이 될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런 화해의 공간을 위해서는 사법 정의나 사회 정의를 넘어 가해자의 참회와 피해자의 용서, 그들을 둘러싼 집단과 사회의 참여가 필요함을 말해준다.

 

화해는 폭력의 중단과 정의의 실현 뒤 최소한의 평화가 실현된 상태에서 평화의 지속 가능성과 정착을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자 공간이다. 그리고 이 평화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평화만이 아니라 그들과 연결된 사람들과 그들이 속한 집단과 사회의 평화기도 하다. 화해는 반드시 사법 정의와 사회 정의를 넘어 피해자 정의의 실현을 전제로 하고 피해자는 용서와 화해의 배타적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이 배타적 결정권이 부인되면 화해는 가능하지 않고 동시에 피해자에 대한 폭력이 재발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정의 실현 뒤 화해 노력은 정의 실현의 유효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동시에 평화의 정착 가능성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화해는 가해와 피해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고 평화를 위해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과정이며 이런 점에서 평화와 정의 논의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주제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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