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럽고 절망스러운 날 중 하나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군사독재 이후 45년 만의 비상계엄, 군 헬기의 국회의사당 착륙, 계엄군의 국회 본청 진입과 국회의원 체포 시도 등은 한국 사회에 민주주의 붕괴의 공포를 안겼다. 시민들의 저항과 국회의 신속한 표결로 다행스럽게도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다. 그러나 비상계엄은 선포 자체로 한국 민주주의에 큰 오점을 남겼다.
비상계엄 해제 뒤에도 계속 역사적인 날들이 목격됐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에 대한 정치인들의 지지와 반민주적인 행동,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거부하고 기만하는 극우 집단 및 개인의 극단적인 주장과 폭력 선동 등은 수십 년 동안 쌓아온 민주주의 규범을 무너뜨렸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집단 및 개인은 혐오와 협박의 언어를 내뱉었고 시민과 법원에 대한 물리적 폭력이 발생했다. 윤석열은 파면됐으나 4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상상을 초월한 정치적 사건에서 비롯된 사회갈등은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했고 사회 곳곳에 깊은 생채기를 냈다. 민주주의는 물론 사회의 후퇴가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조기 대선이 실시되고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이전의 대립과 갈등의 수위는 대폭 낮아졌다. 그러나 대선 결과는 정치와 이념을 둘러싼 사회갈등이 전혀 해결되지도 완화되지도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여전히 내란 청산과 민주주의 복구의 방식, 사회 변화의 방식과 내용 등에 대한 이견이 존재하고 합의가 부재함이 드러났다. 이는 조기 대선으로 갈등이 일단락됐으나 갈등후(post-conflict) 단계가 안정적이지 않고 정치적, 사회적 상황 변화에 따라 비슷한 갈등이 재발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조기 대선은 한국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공동의 목표 설정과 이행 방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숙제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사회갈등 재발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립하는 정치적 입장으로 인해 한국 사회가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입장에 따른 단절은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도 존재하고 세계적으로 우파가 세를 키워가고 있는 현재 세계에서는 이례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단절과 그로 인한 사회갈등은 이념갈등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다른 사회의 경우보다 심각하다. 다른 사회의 정치갈등 및 사회갈등 또한 이념과 관련되어 있으나 한국 사회의 이념갈등은 보수 또는 극우 진영의 북한이라는 오랜 적에 대한 증오, 무엇보다 한국전쟁이라는 구체적 사건과 수십 년 동안 지속된 무력 대결의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도가 세다. 이념갈등이 대략 80년의 세월의 지나면서 강화되고 고착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사회의 최선의 선택은 이념갈등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완화하는 것이다. 이념갈등은 세계관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사실상 해결 가능성이 낮다. 그러므로 갈등 당사자 집단과 개인이 서로를 인정하고 폭력적 대결을 선택하지 않는 수준으로 완화하는 것이 최선이다.
민주주의의 복구, 사회갈등의 관리, 이념갈등 완화 등 한국 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는 사회 변화의 맥락에서 통합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먼저 이념갈등 완화를 위해서는 민주주의 규범이 회복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치의 기능 정상화가 필요하다. 이념갈등이 강화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정치권의 이념 악용이다. 정치인들은 지금까지 이념을 지지 확보 도구로 이용했고 그런 이유로 정치권은 이념갈등 완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보수 성향 정치권은 이념갈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했고 진보 성향 정치권은 이념갈등을 방치 내지 관망하면서 선명성을 조장하고 반대 급부를 누렸다. 그러므로 이념과 이념갈등을 이용하지 않는 정치를 위한 정치의 기능 정상화가 필요하다. 민주주의 규범 회복을 위해서는 법치주의를 튼튼히 하는 한편 사법체계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정치 기능의 정상화 또한 필요하다. 민주주의 정치는 상호 인정과 정치 규범의 준수, 상호 견제와 절제, 그리고 도덕성 준수에 기반해야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이념갈등 속에서도 대통령 파면을 법적인 절차에 따라 처리한 건 다행이나 비상계엄 뒤 여당이 대통령의 신속한 사임을 압박하고 실현시켰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도 법원에서는 많은 정치 관련 사건들이 다뤄지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는 물론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말해준다.
민주주의 규범 회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시민 역량의 향상이다. 가장 가치 있고 지켜져야 할 민주주의 규범은 시민의 감시와 비판이 작동하고, 시민의 의견이 적절하고 적극적인 방식을 통해 수렴되고 반영되는 것이다. 비상계엄 뒤 탄핵 과정을 통해 한국 사회가 확인한 건 민주주의가 생각만큼 기반이 튼튼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 시민 역량이 높음을 확인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민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 또한 확인했다. 결국 전체적으로 민주주의 규범을 지키고 정치를 감시하고 민주주의 사회를 무난하게 유지할 만큼의 시민 역량이 부족함이 확인됐다. 그러므로 시민 역량 향상은 한국 사회의 시급한 문제 중 하나다.
사회 변화를 위한 노력으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건 바람직한 미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당연한 것 같지만 최근의 변화는 그것이 사회적 합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또한 사회 구성원 사이에 민주주의의 의미와 작동 방식에 대해 이견이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이제 어떤 민주주의에 기반한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 그런 사회 실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논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논의와 합의 과정은 사회 구성원들이 점진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그에 따라 민주시민의 역량을 키울 수 있게 한다.
앞서 언급한 사회 변화에 필요한 내용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노력을 위해서는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평화학자인 존 폴 레더락(John Paul Ledereach)이 제안한 시간의 틀을 참고할 수 있다. 그는 평화구축(peacebuilding)을 위한 4단계로 구성된 시간 틀(time frame)을 제안했는데 이는 모든 사회의 변화 전략에 적용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첫 번째 단계는 위기 개입 단계로 즉각적인 대응과 행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2-6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두 번째 단계는 준비와 훈련에 맞춰지며 1-2년의 단기적 계획을 말한다. 비슷한 위기에 직면했을 때 이전보다 잘, 그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 세 번째 단계는 사회 변화에 맞춰진 것으로 5-10년의 기간을 필요로 한다. 이는 장기적인 변화 구상이다. 네 번째 단계는 사회가 원하는 바람직한 미래에 맞춰지는데 20년 이상을 내다보는 구상을 말한다 (John Paul Lederach (1997) Building Peace: Sustainable Reconciliation in Divided Societies. United States Institute of Peace Press, p.77.).
첫 번째에서 네 번째까지 이르는 단계는 점차적이 아닌 동시적인 실행을 의미한다. 첫 번째 단계는 두 번째 단계의 구상 안에서 이뤄져야 하고 나아가 세 번째, 네 번째 단계의 맥락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는 첫 번째는 물론이고 두 번째 단계도 세 번째, 네 번째 단계의 목표와 모순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한다. 곧 단기적 대응이라 할지라도 장기적인 사회적 목표를 위해 계획되고 실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지 않으면 단기적 대응은 최악의 경우 오히려 장기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또한 사회 변화와 바람직한 미래는 계속 청사진 또는 선전 문구 속에만 존재하게 된다. 세 번째 단계 또한 네 번째의 ‘원하는 미래’라는 목표와 모순되지 않고 같은 맥락 안에서 구상 및 실행되어야 한다. 사회 변화를 위해 네 개의 단계는 큰 틀 안에서 조율되고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비상계엄 뒤 한국 사회는 다행스럽게 첫 번째 단계의 위기 개입과 즉각적 행동은 무사히 마쳤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첫 번째 단계를 진행하는 동안 두 번째 단계에 대한 사회 차원의 구상을 마련하지 못했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시민 교육과 준비가 이뤄져야 하지만 그런 사회적 준비와 실행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없는 가운데 시간만 보내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 차원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되고 있겠지만 역시 구체적인 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이제 단기적 계획이 필요하다.
세 번째, 네 번째 단계와 관련해서는 매우 유감스럽게도 안갯속이다. 특히 이념갈등에서 비롯된 정치갈등과 사회갈등이 전혀 완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장기적 구상을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과제는 매우 많다. 소득 불평등, 노동, 성평등과 젠더갈등, 이념갈등, 남북관계, 기후위기 등의 문제는 한국 사회가 반드시 다루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하는 현안들이다. 이런 문제들을 다루지 않으면서 사회 변화를 이루는 건 불가능하다. 이를 다룰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먼저 방향성을 설정하고, 다시 말해 네 번째 단계인 ‘원하는 미래’를 합의하고 그에 기초해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내용과 방식, 즉 세 번째 단계를 논의하고 합의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번째 단계에 대한 실행이 신속히 필요하고 세 번째 단계를 채울 내용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고민이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요구할지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고민은 반드시 익숙한 하향식을 줄이고 상향식을 늘리는 방식, 그리고 두 가지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에 맞춰져야 한다.

2024년 12월 3일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럽고 절망스러운 날 중 하나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군사독재 이후 45년 만의 비상계엄, 군 헬기의 국회의사당 착륙, 계엄군의 국회 본청 진입과 국회의원 체포 시도 등은 한국 사회에 민주주의 붕괴의 공포를 안겼다. 시민들의 저항과 국회의 신속한 표결로 다행스럽게도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다. 그러나 비상계엄은 선포 자체로 한국 민주주의에 큰 오점을 남겼다.
비상계엄 해제 뒤에도 계속 역사적인 날들이 목격됐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에 대한 정치인들의 지지와 반민주적인 행동,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거부하고 기만하는 극우 집단 및 개인의 극단적인 주장과 폭력 선동 등은 수십 년 동안 쌓아온 민주주의 규범을 무너뜨렸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집단 및 개인은 혐오와 협박의 언어를 내뱉었고 시민과 법원에 대한 물리적 폭력이 발생했다. 윤석열은 파면됐으나 4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상상을 초월한 정치적 사건에서 비롯된 사회갈등은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했고 사회 곳곳에 깊은 생채기를 냈다. 민주주의는 물론 사회의 후퇴가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조기 대선이 실시되고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이전의 대립과 갈등의 수위는 대폭 낮아졌다. 그러나 대선 결과는 정치와 이념을 둘러싼 사회갈등이 전혀 해결되지도 완화되지도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여전히 내란 청산과 민주주의 복구의 방식, 사회 변화의 방식과 내용 등에 대한 이견이 존재하고 합의가 부재함이 드러났다. 이는 조기 대선으로 갈등이 일단락됐으나 갈등후(post-conflict) 단계가 안정적이지 않고 정치적, 사회적 상황 변화에 따라 비슷한 갈등이 재발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조기 대선은 한국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공동의 목표 설정과 이행 방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숙제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사회갈등 재발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립하는 정치적 입장으로 인해 한국 사회가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입장에 따른 단절은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도 존재하고 세계적으로 우파가 세를 키워가고 있는 현재 세계에서는 이례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단절과 그로 인한 사회갈등은 이념갈등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다른 사회의 경우보다 심각하다. 다른 사회의 정치갈등 및 사회갈등 또한 이념과 관련되어 있으나 한국 사회의 이념갈등은 보수 또는 극우 진영의 북한이라는 오랜 적에 대한 증오, 무엇보다 한국전쟁이라는 구체적 사건과 수십 년 동안 지속된 무력 대결의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도가 세다. 이념갈등이 대략 80년의 세월의 지나면서 강화되고 고착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사회의 최선의 선택은 이념갈등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완화하는 것이다. 이념갈등은 세계관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사실상 해결 가능성이 낮다. 그러므로 갈등 당사자 집단과 개인이 서로를 인정하고 폭력적 대결을 선택하지 않는 수준으로 완화하는 것이 최선이다.
민주주의의 복구, 사회갈등의 관리, 이념갈등 완화 등 한국 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는 사회 변화의 맥락에서 통합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먼저 이념갈등 완화를 위해서는 민주주의 규범이 회복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치의 기능 정상화가 필요하다. 이념갈등이 강화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정치권의 이념 악용이다. 정치인들은 지금까지 이념을 지지 확보 도구로 이용했고 그런 이유로 정치권은 이념갈등 완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보수 성향 정치권은 이념갈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했고 진보 성향 정치권은 이념갈등을 방치 내지 관망하면서 선명성을 조장하고 반대 급부를 누렸다. 그러므로 이념과 이념갈등을 이용하지 않는 정치를 위한 정치의 기능 정상화가 필요하다. 민주주의 규범 회복을 위해서는 법치주의를 튼튼히 하는 한편 사법체계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정치 기능의 정상화 또한 필요하다. 민주주의 정치는 상호 인정과 정치 규범의 준수, 상호 견제와 절제, 그리고 도덕성 준수에 기반해야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이념갈등 속에서도 대통령 파면을 법적인 절차에 따라 처리한 건 다행이나 비상계엄 뒤 여당이 대통령의 신속한 사임을 압박하고 실현시켰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도 법원에서는 많은 정치 관련 사건들이 다뤄지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는 물론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말해준다.
민주주의 규범 회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시민 역량의 향상이다. 가장 가치 있고 지켜져야 할 민주주의 규범은 시민의 감시와 비판이 작동하고, 시민의 의견이 적절하고 적극적인 방식을 통해 수렴되고 반영되는 것이다. 비상계엄 뒤 탄핵 과정을 통해 한국 사회가 확인한 건 민주주의가 생각만큼 기반이 튼튼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 시민 역량이 높음을 확인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민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 또한 확인했다. 결국 전체적으로 민주주의 규범을 지키고 정치를 감시하고 민주주의 사회를 무난하게 유지할 만큼의 시민 역량이 부족함이 확인됐다. 그러므로 시민 역량 향상은 한국 사회의 시급한 문제 중 하나다.
사회 변화를 위한 노력으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건 바람직한 미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당연한 것 같지만 최근의 변화는 그것이 사회적 합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또한 사회 구성원 사이에 민주주의의 의미와 작동 방식에 대해 이견이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이제 어떤 민주주의에 기반한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 그런 사회 실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논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논의와 합의 과정은 사회 구성원들이 점진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그에 따라 민주시민의 역량을 키울 수 있게 한다.
앞서 언급한 사회 변화에 필요한 내용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노력을 위해서는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평화학자인 존 폴 레더락(John Paul Ledereach)이 제안한 시간의 틀을 참고할 수 있다. 그는 평화구축(peacebuilding)을 위한 4단계로 구성된 시간 틀(time frame)을 제안했는데 이는 모든 사회의 변화 전략에 적용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첫 번째 단계는 위기 개입 단계로 즉각적인 대응과 행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2-6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두 번째 단계는 준비와 훈련에 맞춰지며 1-2년의 단기적 계획을 말한다. 비슷한 위기에 직면했을 때 이전보다 잘, 그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 세 번째 단계는 사회 변화에 맞춰진 것으로 5-10년의 기간을 필요로 한다. 이는 장기적인 변화 구상이다. 네 번째 단계는 사회가 원하는 바람직한 미래에 맞춰지는데 20년 이상을 내다보는 구상을 말한다 (John Paul Lederach (1997) Building Peace: Sustainable Reconciliation in Divided Societies. United States Institute of Peace Press, p.77.).
첫 번째에서 네 번째까지 이르는 단계는 점차적이 아닌 동시적인 실행을 의미한다. 첫 번째 단계는 두 번째 단계의 구상 안에서 이뤄져야 하고 나아가 세 번째, 네 번째 단계의 맥락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는 첫 번째는 물론이고 두 번째 단계도 세 번째, 네 번째 단계의 목표와 모순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한다. 곧 단기적 대응이라 할지라도 장기적인 사회적 목표를 위해 계획되고 실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지 않으면 단기적 대응은 최악의 경우 오히려 장기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또한 사회 변화와 바람직한 미래는 계속 청사진 또는 선전 문구 속에만 존재하게 된다. 세 번째 단계 또한 네 번째의 ‘원하는 미래’라는 목표와 모순되지 않고 같은 맥락 안에서 구상 및 실행되어야 한다. 사회 변화를 위해 네 개의 단계는 큰 틀 안에서 조율되고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비상계엄 뒤 한국 사회는 다행스럽게 첫 번째 단계의 위기 개입과 즉각적 행동은 무사히 마쳤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첫 번째 단계를 진행하는 동안 두 번째 단계에 대한 사회 차원의 구상을 마련하지 못했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시민 교육과 준비가 이뤄져야 하지만 그런 사회적 준비와 실행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없는 가운데 시간만 보내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 차원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되고 있겠지만 역시 구체적인 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이제 단기적 계획이 필요하다.
세 번째, 네 번째 단계와 관련해서는 매우 유감스럽게도 안갯속이다. 특히 이념갈등에서 비롯된 정치갈등과 사회갈등이 전혀 완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장기적 구상을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과제는 매우 많다. 소득 불평등, 노동, 성평등과 젠더갈등, 이념갈등, 남북관계, 기후위기 등의 문제는 한국 사회가 반드시 다루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하는 현안들이다. 이런 문제들을 다루지 않으면서 사회 변화를 이루는 건 불가능하다. 이를 다룰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먼저 방향성을 설정하고, 다시 말해 네 번째 단계인 ‘원하는 미래’를 합의하고 그에 기초해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내용과 방식, 즉 세 번째 단계를 논의하고 합의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번째 단계에 대한 실행이 신속히 필요하고 세 번째 단계를 채울 내용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고민이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요구할지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고민은 반드시 익숙한 하향식을 줄이고 상향식을 늘리는 방식, 그리고 두 가지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에 맞춰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