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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 분쟁의 변화와 평화구축

2024-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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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이후 무력 분쟁의 변화

무력 분쟁(armed conflict)은 적대적인 당사자들 간 무력 충돌이 존재하는 상황을 말한다. 무력 분쟁의 주체는 국가, 비국가 세력, 지역 무장세력, 세계 무장세력 등 다양하다. 왈렌스틴(Wallensteen)과 악셀(Axell)은 무력 분쟁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첫 번째는 심각하지 않은 무력 분쟁(minor armed conflict)으로 일 년에 25명보다 적은 사망자를 낸 경우다. 두 번째는 중간 정도 무력 분쟁(intermediate armed conflict)으로 무력 분쟁 기간 내내 최소한 약 1천 명의 사망자를 낸 경우다. 세 번째는 전쟁(war)으로 일 년에 최소한 1천 명의 사망자가 생긴 경우다. 무력 분쟁은 이 세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 언어다.

2024년 11월 1일 현재 전 세계에서 110개 이상의 무력 분쟁이 진행 중이다. 가장 많은 곳은 중동과 북아프리카로 45개의 무력 분쟁이 진행 중이다. 대부분은 비국가 세력이 개입된 국내 분쟁이지만 이웃 국가, 서방 국가, 러시아 등이 개입된 무력 분쟁도 있다. 북아프리카 이외의 아프리카에서는 35개의 무력 분쟁이 진행 중이고 모두 국내 분쟁이다. 무장세력과 정부 간, 또는 무장세력 간 무력 분쟁이 대부분이지만 소말리아, 나이지리아, 모잠비크, 부르키나파소, 말리 등의 무력 분쟁에는 이웃 국가와 서방 국가들이 개입되어 있다. 아시아에서는 21개의 무력 분쟁이 국내 분쟁과 국가 간 분쟁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7개,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6개의 무력 분쟁이 진행 중이다 (Geneva Academy https://geneva-academy.ch/galleries/today-s-armed-conflicts 참고). 무력 분쟁 중에는 비교적 최근 몇 년 사이에 시작된 것도 있지만 수십 년 이상 진행 중인 것들도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무력 분쟁은 몇 번의 큰 변화를 겪었다. 첫 번째 변화는 냉전(Cold War) 종식 이후에 있었다. 냉전 시대 무력 분쟁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강대국의 영향 하에 있는 국가들이 대리전을 치르는 형태였고 표면적일지라도 주요 원인은 이데올로기였다. 냉전 종식 이후의 무력 분쟁은 이전과는 달랐다. 이데올로기는 사라졌고 주요 원인은 자치권 획득, 영토 재확정, 정부 통치권 장악 등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런 요구는 민족 및 종교 배경이 다른 정체성 집단 간 대립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무력 분쟁은 정체성 분쟁(identity conflict)으로 불렸다. 이 시대에는 또한 많은 곳에서 정치적 권력과 사회적 영향력 장악을 목표로 하는 비국가 세력(nonstate actors)이 무력 분쟁의 당사자로 등장했다. 이 시대의 무력 분쟁은 국내적, 국지적 형태였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충격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냉전 이후의 무력 분쟁은 2000년대에 들어서 두 번째 변화를 맞았다. 시작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 탈레반 정권 축출, 아프가니스탄 재건, 여성 권리를 포함한 인권 향상 등의 명분을 내세우며 2001년 10월 아프간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탈레반을 제거하는 데 실패했고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수함으로써 20년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을 탈환하고 재집권에 성공했다. 미국은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정치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2조 3,000억 달러(한화 약 2,990조원)가 넘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일방적이고 문화적, 사회적으로 적절하지 않은 무책임한 접근으로 새로운 아프가니스탄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미국은 오만함에서 비롯된 국가 재건의 실패, 탈레반 재집권, 억압 및 폭력 정부의 귀환, 사회의 후퇴 등에 대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아프간전쟁과 함께 미국은 2003년 3월에는 이라크를 침공해 이라크전쟁을 시작했다.

9.11 테러 이후의 무력 분쟁은 이전과는 몇 가지 점에서 달랐는데 가장 큰 차이는 미국이라는 당시로선 거의 유일한 세계 최대 강대국이 선제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또한 그해 12월 유엔 안보리가 아프가니스탄을 위한 국제안보지원군(ISAF) 수립을 승인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켜 아프간전쟁이 다수의 국가가 참여하는 국제전이 되었다는 점이다. 2001년부터 2014년까지 42개 국가가 ISAF에 파병을 했고 탈레반과의 전투에 참여했다. 세계는 크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또는 기독교 세계와 그에 저항하는 이슬람 세계로 나뉘었고 이런 단절과 대립은 곧 전 세계를 위협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세계’에 저항하는 이슬람 무장세력이 세계 곳곳에서 새롭게 등장했는데 그중 하나가 알카에다에서 분리돼 2004년 시작된 이슬람국가(Islamic State)였다. IS는 2014년에는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동부를 장악하고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쳤다. 전 세계 무장세력이 IS와 관계를 맺었고 IS의 영향을 받은 테러가 세계 곳곳에서 발생했다. 미국이 주도하고 다국적군이 개입한 아프간전쟁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세계 다른 곳에서는 이슬람 무장세력이 강화됐고 무력 분쟁이 확산됐다. 9.11 테러 이후 무력 분쟁의 가장 큰 특징은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주도하고 미국을 지지하는 세계 주요 국가들이 동참한 무력 분쟁이 장기간 지속됐고 그 영향으로 곳곳에서 새로운 무력 분쟁이 생겼다는 점이다. 세계 곳곳에서 국내 무력 분쟁이 여전히 계속됐지만 전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미국의 아프간전쟁과 이라크전쟁이었다.

 

새로운 무력 분쟁의 시대

2021년 미국의 아프간전쟁 종식은 장기간의 국제전이 종식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그러나 전쟁의 종식과 동시에 이뤄진 탈레반 억압 정권의 귀환은 세계사적 오점 중 하나로 기록됐다. 아프간전쟁 종식 후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또 다른 국제전이 발생했다. 우크라이나전쟁은 아프간전쟁처럼 전통적 강대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점이 컸다. 미국을 포함한 나토 회원국들은 러시아와 나토 회원국들 간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양의 무기를 공급했다. 미국과 나토를 지지하는 국가들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동참했다. 우크라이나는 자국 방어 전쟁과 동시에 미국 및 나토의 대리전을 시작했고 세계는 미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분열됐다. 전쟁은 전 세계 안보를 위협했고 전쟁으로 인한 식량과 에너지 가격 상승은 세계 경제를 압박하고 많은 세계인의 생활을 위협했다.

2023년 10월에는 또 다른 국제전이 시작됐다.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막대한 양의 무기를 공급했고 가자지구 전쟁은 국제전이 됐다. 세계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무차별 공격에 반대하는 국가들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국가들로 나뉘었다. 2024년 9월에는 가자지구 전쟁 이후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무력 충돌을 이어가던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전면 공격하면서 새로운 레바논전쟁이 시작됐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과 레바논 공격을 관통한 건 ‘테러 프레임’이었다. 미국을 포함한 다수의 서방 국가들은 국제사회가 가자지구의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점을 들어 이스라엘의 공격을 정당화했다. 월등하게 강한 무력을 이용한 이스라엘의 민간인 무차별 학살, 병원과 주택과 학교 등의 민간 시설 파괴, 구호품 차단, 식량 무기화 등의 전쟁범죄는 묵인했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유엔, 국제사법재판소, 국제형사재판소 등 국제기구들의 전쟁범죄 중단 요구와 경고를 묵살하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우크라이나전쟁과 함께 다시 시작되고 가자지구전쟁과 레바논전쟁까지 계속되는 국제전으로 인한 무력 분쟁은 9.11 테러 이후의 무력 분쟁과 유사한 점도, 그렇지 않은 점도 있다. 유사한 점은 우크라이나전쟁의 경우 미국의 아프간전쟁처럼 러시아라는 강대국의 침공으로 일어난 전쟁이라는 점이다. 또한 우크라이나전쟁과 가자지구전쟁 모두에 사실상 미국의 이익과 의지가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점이다. 다수의 국가, 특히 서방 국가들이 개입된 국제전이라는 점도 유사하다. 유사하지 않은 점은 우크라이나전쟁을 통해 미국과 러시아라는 두 개의 강대국이 노골적으로 대립하고 우크라이나가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는 점이다. 대리전이라는 점에서 냉전시대의 무력 분쟁과 유사한 점이 있지만 무력 분쟁의 당사자 중 하나가 러시아라는 점에서는 유사하지 않다. 또 다른 점은 러시아와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전쟁범죄가 국제사회의 분열로 인해, 그리고 서방 국가들의 이중잣대로 인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있었던 무력 분쟁에서도 사례가 드문 국가에 의한 심각한 전쟁범죄지만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에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모든 규범, 원칙, 법을 무시하고도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며 전쟁범죄를 계속 저지르고 있다. 이는 정부와 무장세력 간, 또는 무장세력 간의 무력 분쟁에서 유사한 전쟁범죄가 발생했을 때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하고 제재까지 가하던 것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국가가 저지르는 전쟁범죄는 더 엄격하게 제재되어야 함에도 국제 규범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 지지’라는 기본 입장에 따라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집단 학살과 식량 무기화 등 중대한 전쟁범죄를 묵인 내지 승인하고 있다. 서방이 주도하는 국제사회가 하마스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가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심각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을 국제사회가 묵인하고 그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이뤄지지 않는 점이 세 번째 변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평화구축(peacebuilding)의 확산과 변화

평화구축은 단어 그대로 평화를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구체적으로 폭력으로 인해 일상의 평화가 무너진 사회, 지역, 공동체 등에서 평화를 다시 건설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평화구축은 무력 분쟁과 관련해서만이 아니라 일상의 평화와 사회 변화에 관련해서도 적용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그럼에도 평화구축은 무력 분쟁 후 사회(post-conflict society)의 재건과 관련해 자주 언급된다. 이는 평화구축이 냉전이 종식된 뒤인 1990년대에 내전이 증가하면서 체계적으로 실행되기 시작한 것, 그리고 유엔 사무총장이 1992년 유엔 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인 ‘평화 의제(An Agenda for Peace)’에서 무력 분쟁 후 평화구축(post-conflict peacebuilding)을 언급한 것과 관련이 있다. 유엔은 평화구축을 무력 충돌 또는 전쟁을 겪은 사회에서 평화를 강화하는 구조를 모색하고 지원하기 위한 활동으로 정의했다. 이런 이유로 평화구축은 국가와 사회의 재건과 관련해 이해 및 실행되었고 이와 관련해 가장 중요하고 불가피하게 현장성이 강조되었다. 현장성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는데 하나는 현장에 적용 가능한 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현장을 고려해 계획되고 현장에서 실행되는 사업과 활동의 방식이다. 평화구축의 현장성은 평화구축이 적용되는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강조하는 상향식(bottom-up) 접근과 참여로 요약되기도 한다. 이는 평화구축이 무력 분쟁에 취약한 사회의 즉각적, 장기적 필요에 답하고 변화를 만들어 평화로운 일상의 복원에 기여한다는 궁극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구축이 무력 분쟁과 관련해서만 실행되는 것도, 무력 분쟁 후 사회에만 초점을 맞추거나 그런 사회에만 필요한 것도 아니다. 평화구축은 무력 분쟁의 예방, 무력 분쟁의 종식, 무력 분쟁 후 사회 재건, 평화로운 사회의 복원 등 무력 분쟁의 모든 단계에 적용된다. 동시에 무력 분쟁은 부재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폭력으로 평화의 기반이 약하거나 평화가 부재한 모든 사회에서 필요하고 실행된다.

평화구축이 1990년대에 체계적으로 실행되고 확산하면서 다양한 주체들이 평화구축에 참여하게 됐다. 유엔 기구 같은 정부가 참여하는 국제기구, 서방 국가들의 정부 기관, 국제 구호개발단체, 기업, 재단,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이 평화구축을 지원하거나 직접 사업을 실행했다. 무력 분쟁을 겪었거나 이에 취약한 사회의 정부와 공공기관, 구호개발단체, 그리고 풀뿌리 단체를 포함한 다양한 민간단체가 사업에 협력했다. 특히 무력 분쟁 후 사회에서 평화구축은 국가 및 사회의 재건과 유사한 무력 분쟁의 예방에 맞춰졌다. 이를 위해 사회 구성원의 필요에 답하는 국가 구조와 기관의 재건부터 사회적 화해와 회복, 그리고 공동체 차원에서 대립적인 집단 간 갈등해결과 관계 회복까지 다양한 접근과 활동이 계획되고 실행됐다. 무력 충돌과 분쟁의 확산으로 정치적 불안을 겪는 사회가 많아지면서 평화구축 활동도 확산했다.

평화구축은 무력 분쟁 후 국가 및 사회 재건, 그리고 사회 집단 및 구성원 간의 관계 회복과 공동체 복원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드러내기도 했다. 모든 문제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평화구축이 국제기구, 그리고 선진 서방 국가의 다양한 기관과 단체에 의해 실행되고 의도하든 하지 않든 사업과 인력을 제공하는 쪽과 받는 쪽 사이 힘의 불균형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공급자’인 선진국 기구와 단체는 자신의 진단과 관심에 근거해 사업을 결정하고 ‘수요자’인 무력 분쟁 후 사회는 만족스러운 조건이 아니어도 재원과 인력을 수용하는 일이 생기곤 했다. 일방적인 사업 및 실행 구상은 현장에서 무지, 내지 무모함을 드러내고 지속성 부재로 연결되곤 했다. 때로는 집단 간 새로운 갈등을 야기하고 오히려 사회 구성원 간 관계와 사회의 복원을 방해하기도 했다. 실패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현장의 필요를 강조하고 현지 사회와 주민의 의견과 참여에 초점을 맞춘 상향식 접근이 이론적, 실행적 차원에서의 원칙이자 규범으로 강조됐다. 그러나 이런 원칙과 규범은 여전히 재원과 인력을 제공하는 선진국 기구와 단체의 선택에 달려있었기 때문에 현실 적용에 있어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평화구축 사업을 진행하는 많은 기구와 단체가 여러 면에서 취약한 상태인 무력 분쟁 후 사회의 복구와 변화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지만 또한 많은 기구와 단체가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현지 사회과 주민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해를 끼치기도 했다.

평화구축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과 비판은 평화구축을 통한 liberal peace, 즉 자유주의 평화의 이식이었다. 1990년대에 유엔이 개입해 무력 분쟁 후 사회에서 실행한 모든 평화구축은 민주적 통치와 시장경제 체제를 만드는 데 맞춰졌다. 냉전의 종식으로 미국과 동맹국들의 ‘자유 민주주의’가 승리했고 그러므로 자유시장에 기반한 민주주의 체제가 무력 분쟁을 예방하는 해결책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는 평화구축 사업과 실행은 현장의 필요에 답해야 하고 주민 의견 수렴과 참여에 기반한 것이어야 한다는 평화구축의 이론과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다. 또한 무력 충돌을 야기한 다양한 구조적, 사회적 문제를 사회 구성원들의 눈높이, 그리고 삶의 문제와 결부시켜 바로잡지 않고 새로운 체제의 이식을 통해 봉합하는 시도였다. 이런 자유주의 평화의 이식을 동반한 평화구축은 역효과를 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된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아프가니스탄이었다. 미국은 아프간전쟁의 시작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시작했다. 사실상 국가가 주도하는 자유주의 평화를 이식하는 평화구축 사업이었고 실패로 끝났다. 미국은 자국의 기준에 부합하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 체제를 구축하려 했지만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도 일방적이고, 무책임하고, 때로는 무모한 실행으로 거의 성과를 보지 못했다. 결국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의 재집권 후 억압적이고, 인권 유린이 성행하고, 무력 분쟁에 취약한 과거로 복귀했다. 물론 많은 평화구축 사업이 자유주의 평화와는 관계없이 지역, 또는 공동체 차원에서 주민의 역량을 향상하고, 변화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럼에도 평화구축은 주로 외부 개입 또는 지원에 의존하는 특징, 현장과의 협력관계 형성의 어려움으로 인한 일방적 실행, 나아가 대규모 사업의 경우 자유주의 평화의 이식 같은 민감한 문제로 끊임없이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됐다.

 

새로운 평화구축 접근의 필요

9.11 테러 이후, 그리고 아프간전쟁 이후 평화구축과 관련해 제기된 질문 중 하나는 평화구축의 재원과 인력을 제공하는 사회의 변화 없이 무력 분쟁에 취약한 사회에서의 평화구축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전히 평화구축이 자주 서구 사회가 원하는 자유주의 평화 이식의 도구가 되고 그것은 결국 서구 사회의 대중적 지지에 기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은 미국이라는 국가가 주도한 아프가니스탄 재건에 맞춘 평화구축의 실패는 많은 점을 시사했다. 또 다른 이유는 9.11 테러 이후 세계 무력 분쟁의 변화였다. 아프간전쟁, 이라크전쟁, IS와의 전쟁, 시리아전쟁, 여러 내전 등 세계 곳곳에서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과 관련한 무력 분쟁이, 또는 테러와의 전쟁 프레임이 씌워진 무력 분쟁이 발생했다. 기존의 평화구축은 무력 분쟁을 겪었거나 무력 분쟁에 취약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고 평화구축을 지원 및 실행하는 기구 및 단체는 해당 무력 분쟁에 직접적으로 원인을 제공하지도 책임을 져야 할 의무도 없는 경우였다. 완전히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해당 사회의 평화와 나아가 세계 평화의 구축이라는 의도와 목적하에 평화구축 사업이 이뤄졌다. 그러나 그런 조금은 순수한 의도는 사라졌고 다양한 형태로 서구 국가의 지원을 받는 평화구축 사업들은 특정 국가를 무력 분쟁에 빠뜨린 후 재건이나 평화구축을 지원하는 일이 됐다. 민간 기구와 단체의 평화구축도 국가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평화구축이 무력 분쟁의 예방과 종식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자 실행 접근인 점을 고려한다면 무력 분쟁의 발생과 악화에 기여한 국가와 사회가 무력 분쟁 후 평화구축에도 개입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2022년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전쟁과 2023년 10월 시작된 가자지구전쟁은 평화구축에 또 다른 무거운 질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평화구축은 무력 분쟁의 예방, 종식, 그리고 무력 분쟁 후 사회 변화 및 재건을 모두 포함하는 실행 접근인데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우크라이나전쟁과 가자지구전쟁은 이 모든 단계의 평화구축이 실패했거나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평화구축의 핵심 중 하나는 과정에서의 폭력의 감소와 중단인데 그런 점에서 두 개의 전쟁과 관련한 평화구축은 제대로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 평화구축의 궁극적 목표인 평화로운 사회와 일상의 복원을 위한 전제는 무력 분쟁의 종식인데 이를 위한 노력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력 분쟁과 그로 인한 폭력의 감소 및 중단, 그리고 무력 분쟁 종식을 위한 노력은 왜 부재 내지 부족한가. 이것이 새로운 무력 분쟁의 시대에 새로운 평화구축 접근의 필요성을 말해준다. 우크라이나전쟁과 가자지구전쟁의 종식, 그리고 동시에 인명피해, 사회 파괴, 굶주림과 질병 같은 폭력의 감소 및 종식 노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당사국인 우크라이나, 러시아, 이스라엘이 전쟁의 종식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더 중요하게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이들 국가에 무기를 지원하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이 전쟁 종식을 원치 않았거나 종식을 위해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침략을 받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부지역을 상실했고 군사적으로 러시아에 열세였지만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전쟁 종식을 위한 노력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미국, 그리고 다른 서방 국가들의 막대한 무기 지원과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다. 두 국가는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무기 지원과 지지가 없었다면 사실상 전쟁을 계속할 수 없었다. 그리고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무기 지원과 지지는 자국 내 다수 국민의 지지에 기반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전쟁으로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고 곡물과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빈곤국에 굶주림이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무기 지원과 전쟁 지지는 멈추지 않았고 종식을 위한 평화회담도 열리지 않았다. 가자지구전쟁의 경우 집단 학살, 대규모의 민간 시설 파괴, 식량의 무기화 등 이스라엘의 심각한 전쟁범죄가 계속됐음에도 무기 지원과 지지가 중단되지 않았다는 건 많은 점을 시사한다. 오히려 미국과 다수의 서방 국가들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 직원이 연루됐었다는 이스라엘의 주장만 듣고 지원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런 점이 과거와 달리 평화구축이 무력 분쟁이 진행 중이거나 무력 분쟁에 취약한 국가에서뿐만 아니라 미국과 다른 서방 국가 내에서 실행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그러지 않고서는 진행 중인 무력 분쟁의 종식도, 무력 분쟁 후 평화로운 국가 및 사회 재건도, 무력 분쟁 재발 방지를 위한 평화구축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무력 분쟁에 개입하고 적극적인 지지와 무기 공급으로 무력 분쟁을 지속시키는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무력 분쟁은 계속되고 비슷한 무력 분쟁이 반복될 것이다. 또한 무력 분쟁 후 사회에서는 재원과 인력을 제공하는 국가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왜곡된 평화구축이 실행될 것이다.

새로운 무력 분쟁의 시대에 평화구축은 그러므로 그동안 평화구축 사업에 재원과 인력을 제공했으나 변화의 대상으로는 언급되지 않았던 사회를 평화구축 사업의 현장으로 삼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국제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직접적, 간접적으로 무력 분쟁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와 그 사회 구성원들의 변화 없이는 세계 곳곳에서 무력 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다시 세우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제 평화구축은 크게 두 가지 접근으로 요악될 수 있다. 하나는 무력 분쟁에 취약한 사회, 그리고 무력 분쟁 후 사회에서의 평화구축이고, 다른 하나는 무력 분쟁을 지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평화구축 사업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사회에서의 평화구축이다. 무력 분쟁에 취약한 사회와 무력 분쟁 후 사회에서의 평화구축은 1990년대 이후 축적된 방식을 따르고 모범 사례를 참고하면서 현장의 필요와 참여를 보장하는 평화구축의 원칙을 적용하면 된다. 그러나 그동안 평화구축 사업을 지원해온, 그리고 동시에 무력 분쟁에 영향을 끼쳐온 사회에서의 평화구축은 의도적인 노력을 통해 집중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특히 무력 분쟁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줄이고 긍정적 영향을 늘이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또한 이런 변화는 전통적으로 평화구축 사업의 이른바 ‘수요자’인 무력 분쟁에 노출된 사회도 아니고, 이른바 ‘공급자’인 서방 선진국도 아니지만 지역과 세계의 무력 분쟁과 관련해 서방 국가들을 지지하고 무기 지원까지 해온 국가에서도 필요하다. 한국과 같은 국가가 여기에 해당한다.

세계의 무력 분쟁에 개입하고 영향을 미치는 사회에서의 평화구축은 사회의 변화와 사회 구성원의 역량 형성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사회 변화를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경제가 발전된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다양한 정치 경제 폭력, 특히 약자를 억압하고 그들의 일상에 고통을 주는 구조적 폭력을 규명하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동시에 그런 구조적 폭력을 이해하고 줄이는데 필요한 사회 구성원의 역량 형성과 향상을 위한 접근과 사업이 실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지원과 자문이라는, 그리고 때로는 평화구축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국가에 구조적 폭력의 문제를 확산시키고 왜곡된 평화를 수출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특히 무력 분쟁과 관련해서는 외교적 해결이 아닌 무력을 통한 해결과 ‘무력을 통한 평화’라는 왜곡된 주장을 정당화하는 전쟁 담론, 무력 분쟁과 무기 산업의 이익을 보장하는 무기 공급과의 관계, 무력 분쟁에 동반되는 인도주의 재난과 윤리적 문제 등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이해와 비판 능력을 키우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국내적으로, 국제적으로 구조적 폭력과 무력 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평화로운 사회 및 세계, 그리고 평화적 공존의 절대적 필요를 포기하지 않는 사회적, 개인적 역량을 기르는 것이 되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평화구축은 무력 분쟁 사회, 또는 무력 분쟁에 취약한 사회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갈수록 무력 분쟁이 늘어나고, 특히 강대국과 서방 국가들이 개입하고 영향을 미치는 무력 분쟁이 갈수록 세계인의 안정과 공존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평화구축은 그런 국가와 사회 구성원의 변화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생겼다. 동시에 강대국과 서방 국가들의 전쟁 담론과 주장을 지지하고 그에 협력하는 국가들과 사회 구성원의 변화도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평화구축은 평화를 위협하고 파괴하는 폭력의 모든 단계, 그리고 모든 사회에 적용되는 포괄적 이론과 접근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목표의 설정은 본래의 이론과 실행 개념에 충실한 것이다. 사회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세계의 변화 또한 광범위한 노력과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참고 자료

 정주진. 『평화학』. 철수와영희, 2022년. 

John Paul Lederach (1997) Building Peace: Sustainable Reconciliation in Divided Societies. United States Institute of Peace Press. 

Charles Hauss (2019) From Conflict Resolution to Peacebuilding. Rowman & Little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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