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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종교, 정체성

유럽이 테러 공포에 휩싸였다. 지난 1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에 두 명의 무장 테러범이 침입해 12명을 사살한 이후부터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하루 후 또 다른 테러범이 여성 경관 한 명을 살해했고, 유대인들이 가는 코셔 수퍼마켓에서는 인질 네 명을 살해했다. 경찰은 세 명의 테러범들을 살해했지만 한 명의 여자 테러범은 아직 잡지 못했다. 두 사건의 테러범들은 공모자들이었고 샤를리 에브도와 프랑스 사회에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테러를 저질렀다. 한편, 지난 1월 15일에는 벨기에 경찰이 테러범 색출에 나서 두 명의 테러 용의자를 살해했고 13명을 체포했다. 언론은 유럽 전역에 적어도 20개 정도의 테러 조직이 활동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비슷한 테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유럽을 휩쓸고 있는 테러 공포를 관통하는 큰 주제는 종교, 특히 이슬람이다. 프랑스의 테러범들이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가 이슬람 성자인 무함마드(마호메트)를 조롱한 것 때문에 테러를 저질렀고, 팔레스타인의 무슬림들을 억압하고 있는 이스라엘에 경고를 보내기 위해 유대인들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경찰이 이미 사살했거나 뒤쫓고 있는 잠재적 테러범들 또한 모두 이슬람에서 테러의 정당성을 찾았고, 그들 모두 이슬람 신도인 무슬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슬람이 테러를 정당화하는 종교는 아니다. 다만 테러범들이 자신의 주장과 무력 사용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슬람을 악용하거나, 그것이 진정한 종교적 행위라고 믿고 있는 것뿐이다. 그렇더라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극렬 무장세력들을 빼고도 지구상의 테러범 중 상당수가 무슬림이고 그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지하드(성전)'로 부른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왜 테러범들은 신앙인들이면서 극심한 증오를 키우고 무자비한 살육을 저지르는 것일까? 

 

프랑스의 테러를 두고 가장 먼저 형성된 담론은 테러로부터 언론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나 종교지도자에 대한 지나친 조롱은 타인의 종교를 존중하지 않는 것일뿐 언론의 자유로 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런 가운데 테러 후 발행된 샤를리 에브도는 무함마드가 "나는 샤를리다"라는 팻말을 들고 눈물 흘리는 만평을 실어 자신들의 굴하지 않는 의지를 표명했고 프랑스인들은 줄을 선 잡지 구매로 열렬한 지지를 표했다. 그렇지만 이런 태도는 오히려 많은 이슬람 국가들과 무슬림들을 자극했다. 이것을 종교적 모독으로 봐야 하는지, 언론 자유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상술로 봐야하는지는 개인의 견해에 따라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주류사회 언론의 이런 태도가 세상을 이슬람 대 반이슬람으로 나누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많은 사회에서 소수집단, 또는 약자로 살아가고 있는 많은 무슬림들의 정체성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는 민족과 함께 인간의 정체성 형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정체성에 대한 침해는 갈등을 유발한다. 두 가지가 결합돼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종교 및 민족과 관련된 갈등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갈등은 보통 '끈질긴(protracted) 갈등'으로 불린다. 북아일랜드나 이-팔의 갈등처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잘 해결되지 않는다. 정체성은 인간의 존재를 정의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침해할 수 없고, 침해를 당하는 경우 가장 민감한 반응을 야기한다. 정체성은 안전, 인정 등과 함께 어떤 경우에도 타협될 수 없는 기본적인 인간필요로 인식된다. 서방세계에 사는 많은 무슬림들에게 이슬람은 그런 것이다. 오랜 시간 주류 사회에서 소외되고 미래도 없는 삶을 살면서 그들이 유일하게 의지하고 희망을 찾는 것이 바로 이슬람이다. 그들에게 이슬람은 종교이자 문화이다. 이것은 서방세계 사람들이 기독교를 종교이자 문화로 취급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주류사회에 끼지 못하거나 소외감을 느끼는 무슬림들이 이슬람을 대하는 것과 주류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기독교를 대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무슬림들에게 이슬람은 종교를 넘어 정체성의 근간이자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지켜야 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안식처이기도 하다. 마치 많은 한국인들이 가족이나 부모를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 부모나 가족을 건드리면 자신의 정체성은 물론 존재 자체가 거부된 것으로 생각해 물불 안가리고 대항하는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의 테러범들은 모두 자국민이었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더 분노하고 공포를 느끼고 있다. 한 마디로 한솥밥 먹고 산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느낌일 것이다. 2005년 영국 런던의 도심 테러를 저지른 것도 무슬림이자 모두 영국인이었다. 다른 한편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국가의 많은 무슬림들이 무장세력에 가담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다른 시각에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도대체 이들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서유럽 국가들의 많은 무슬림들은 소외된 계층이다. 이민자나 이주노동자들, 또는 옛 식민지 국가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무늬만 유럽인일뿐 어디에 살든 주류사회에 속하지 못하고 겉돌거나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기독교문화 중심의 주류사회에 진입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일부러 거리를 두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영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무슬림 청년들은 대부분 자연과학을 공부한다. 자연스럽게 기독교문화와 접촉하고 이슬람문화도 비판적으로 다뤄야 하는 인문과학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이 생길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들은 굳이 모스크에 가지 않아도 자신을 무슬림으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이슬람은 종교이기에 앞서 자신의 정체성을 좌우하는 문화적 뿌리이자 안식처가 된다. 때문에 그들은 서방세계의 기독교인들처럼 쿨하게 자신의 종교를 대할 수가 없다. 누군가 이슬람을 건드리면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 방어 기제를 작동시키거나 저항하는 것이다. 사실 샤를리 에브도가 풍자의 수단으로 삼아 조롱한 것은 무함마드 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예수, 교황, 고위공직자 등도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들에게 성역은 없었다. 그렇지만 공평하니 문제없지 않냐는 말은 소외감을 느끼는 무슬림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언론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는 주류사회에 속한 사람들의 사치스런 생각일 뿐이다. 자신들은 그렇게 혹독한 풍자와 조롱을 할 수단이나 영향력을 가지지 못했으니 말이다. 주류사회 기독교인들, 또는 종교적은 아니지만 문화적 기독교인들이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를 생각하는 것과 비주류 인생을 사는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종교인 이슬람을 생각하는 것은 결국 그 토대가 다르다. 그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이 테러로 표현되는 것은 절대 용인할 수 없지만 말이다.

 

유럽이 겪고 있는 테러의 공포는 현실이다. 그리고 그 공포는 부정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미 기독교와 이슬람, 이슬람과 비이슬람, 이슬람과 반이슬람이 대립하는 부정적 파급효과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는 언론자유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세계를 중심으로 한 주류 사회에 대한 비주류 인생들, 특히 오랫동안 소외당하고 외면당한 무슬림들의 방어기제가 작동한 결과다. 자신들의 테러가 언론자유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될 것이란 점을 알았다면 테러범들은 아마 그런 테러를 저지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목적은 언론자유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을 조롱거리로 삼지 말라고 경고하고 무슬림들이 응징할 힘을 가졌음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에게 잘못된 생각을 심어준 것은 왜곡된 이슬람 신앙이다. 그렇지만 테러를 막고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앞으로 유럽사회가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언론자유도 급진 이슬람 신앙도 아니다. 테러범을 만들어내고 그들을 극렬 무장세력에 동조하게 만드는 정치, 사회 문제다. 그럼에도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테러범들은 정말 독실한 무슬림이었을까? 그들에게 종교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이슬람은 증오만 가르쳤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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