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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빵, 우크라이나 전쟁의 파장


말 그대로 전 세계가 아우성을 치고 있다.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9일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대재난을 만들고 있다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상황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WFP는 전쟁이 진행 중인 예멘에서 800만 명에 대한 식량 지원량이 50% 줄었고 앞으로 전혀 지원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곡물 가격, 연료비, 선적 비용 등의 상승으로 올해 400만 명 정도에 대한 식량 지원을 중단해야 할 상황이라고도 했다. WFP는 지원 식량의 50%를 우크라이나에서 구매해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밀 공급의 30%를 차지한다. 그런데 전쟁으로 밀 수출이 차질을 빚고 있다. 러시아가 막는 바람에 우크라이나는 밀 수출선을 내보내지 못하고 있고,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로 밀 수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밀을 수입해왔던 국가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에리트리아, 아르메니아, 몽골, 아제르바이잔, 소말리아 등은 90% 이상의 밀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해왔다. 터키, 레바논, 이집트 등도 80% 이상의 밀 수입을 두 국가에 의존해 왔다.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밀 수출 차질은 시장에 곧장 영향을 미쳤다. 2020년 8월 항구 폭발로 곡물 저장고를 잃은 레바논은 한 달 분량의 재고 밖에 없어서 우크라이나 전쟁 후 밀가루값이 1000%까지 올랐다. 밀가루값 급등으로 빵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고 사람들은 빵가게 앞에서 줄을 서고 있다. 이집트는 빵 가격 동결 조치를 취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라크, 수단, 예멘, 시리아, 레바논 등지에선 식품 가격 상승으로 시위가 일어났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상황도 심각하다. 아프리카 국가들 또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대부분의 밀을 수입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오랜 기간 내전이나 무력 충돌 상황에 있고 국제기구 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예멘. 시리아, 남수단, 에티오피아, 아프가니스탄 같은 국가들, 그리고 오랜 코로나19 대응으로 재정 상황이 어려운 빈곤국들이 겪는 어려움은 날로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밀에 의존하지 않는 국가들의 상황이 나은 건 아니다. 전 세계 밀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국제 밀 가격은 20-50% 정도 올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밀을 대체할 방법도 마땅히 없다. 미국과 캐나다의 밀 재고량은 여유가 없고, 아르헨티나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호주의 밀 수출량은 이미 최고 수준이다. 밀 가격은 2018년 이래 최고 수준이고 이제 곧 선진국, 빈곤국 가리지 않고 수입이 적거나 없는 사람들이 빵을 구하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지금은 내년도 식량 확보를 위한 파종 시기다. 그러나 전쟁이 계속되면서 내년도까지 식량난이 이어질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거의 기정사실이 되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 한 가운데서도 농부들이 파종에 나섰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이미 파종 가능한 농지와 일할 사람이 대폭 줄었다. 또 연료가 대부분 전투에 쓰이고 있어서 농부들은 농기계에 사용할 연료를 구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비료 공급도 문제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비료 수출국으로 전 세계 수출량의 15%를 차지한다. 러시아는 비료 생산자들에게 수출을 중단시켰고, 다른 한편 경제 제재로 수출이 어려워지기도 했다. 벨라루스는 콩과 옥수수 농사에 중요한 비료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데 러시아의 동맹인 관계로 역시 수출에 제한을 받고 있다. 때문에 세계 시장의 비료 가격은 40%나 올랐다. 비료값 상승은 빈곤국과 선진국을 가리지 않고 본격적 농사철을 앞둔 전 세계 농민들에게 타격을 주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 세계가 얼마나 촘촘하게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사실은 두 가지를 말해준다. 하나는 어떤 상황에서든 전쟁은 허용되어서도 찬양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TV와 인터넷을 통해 전쟁 상황이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쟁을 ‘참관’하게 된 세상이다. 세계인들은 우크라이나가 잘 싸워서 이기길 응원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과 삶의 터전을 앗아가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참혹한 일이다. 전쟁에서는 모두가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승리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방어를 하고 있다. 그러니 세계가 응원해야 할 건 속도감 있는 휴전 협상과 전쟁 종식이다. 전쟁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크라이나와 미국, 그리고 나토 회원국들 모두 전쟁 예방에 실패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미국과의 밀착된 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러시아와 외교와 협상으로 풀었어야 하는 문제를 전쟁으로 폭발되게 했으니 말이다.

 

다른 하나는 전 세계가 침략국인 러시아를 규탄하면서도 다른 한편 전쟁 종식을 위해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러시아를 비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국제사회가 휴전 협상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감정적인 방식으로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고, 전쟁 반대의 원칙으로 압력을 가하는 동시에 대화를 지원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신속하게 내놓은 경제 제재는 초기엔 러시아에 큰 타격이 됐지만 이제 별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쟁과 관련해서도 러시아군이 생각만큼 전투를 잘하지도 전략적으로 출중하지도 못하지만 화력에 있어서 우크라이나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니 전쟁이 길어지면 우크라이나의 피해만 커질 뿐이다. 우크라이나는 중립국 안을 내놓으면서 사실 러시아는 물론 미국을 포함한 나토 회원국들에게도 거래를 제안하고 있다. 결국 전 세계가 나서야 전쟁이 끝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누가 이기느냐가 아닌 어떻게 되도록 빨리 전쟁을 끝내느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편과 러시아 편으로 세계를 나누는 게 아니라 합의점을 찾고 전쟁을 끝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세계시민으로서,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가져야 하는 시각과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전쟁 때문에 빵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더 늘어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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