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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고 있는 가자지구 전쟁


가자지구 피란민 (사진 출처: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


가자지구 전쟁 뉴스가 급격히 줄었다. 국내만이 아니다. 세계 최대 보도 채널인 CNN과 BBC는 물론이고 다른 국제 언론사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알자지라(Al Jazeera)만 꾸준하게 매일 가자지구 상황과 사상자 숫자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사실 가자지구 전쟁 뉴스가 줄어든 건 꽤 됐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전쟁에 대한 피로감도 있겠지만 유럽 의회 선거, 이란 대선, 인도 총선, 프랑스 총선, 멕시코 대선, 미국 대선 캠페인, 그리고 최근의 베네수엘라 대선까지 세계 곳곳의 정치 뉴스가 가자지구 전쟁보다 더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7월 말에는 올림픽 경기가 시작됐다. 또한 최근에는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헤즈볼라 사이의 무력 충돌 격화, 그리고 이스라엘의 소행이 확실한 이란의 테헤란에서 있은 하마스 지도자 하니예 암살, 그로 인한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 긴장 고조와 이란의 보복 천명 등이 가자지구 전쟁보다 더 관심을 끌고 있다.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전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일련의 굵직한 국제사회 사건들이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보도와 세계인의 관심에 변화를 가져왔다.

 

전쟁은 항상 국제사회의 큰 관심사다. 세계화가 최고조에 이른 시대에 세계 어느 곳의 전쟁도 전 세계와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자지구 전쟁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세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전쟁이다. 여러 중동 국가들과 무력 분쟁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중동과 세계의 정치에 미칠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이 가자지구에서 짧은 기간에 기록적인 인명 피해와 파괴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집단학살을 포함한 온갖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구호물자를 통제해 가자지구 내 인도주의 재난 상황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의 종전협상은 지지부진하다. 양측 사이 이견이 중요한 이유로 보이지만 사실 그건 모든 종전협상에서 있는 일이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마스 전멸을 주장하는 이스라엘이 종전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런 이스라엘을 미국이 여전히 전폭 지지하면서 무기를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전쟁을 계속하려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가 '보여주기'로 종전협상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스라엘의 하마스 지도자 암살로 적어도 당분간은 종전협상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뉴스에서 가자지구 전쟁 소식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이유는 상황이 나아져서가 아니다. 현재 가자지구의 상황은 최악이다. 각종 통계는 가자지구의 상황이 얼마나 처참한지를 말해준다. 최소 집계된 전쟁 사망자 수는 8월 3일 현재 3만 9550명이다. 그런데 7월 5일 영국의 저명한 의학저널인 란세트(The Lancet)의 웹사이트에 실린 공동 서한에서 영국, 이스라엘, 가자지구, 캐나다의 저명한 연구자들은 가자지구 사망자가 18만 6000명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폭격 등으로 인한 직접적 사망자에 전쟁의 영향으로 인한 간접적 사망자까지 합친 숫자다. 현재 가자지구 행정당국이 발표하는 숫자는 이스라엘의 공격 피해로 인해 확인된 사망자만 집계한 것으로 잔해에 깔려 확인되지 않았거나 부상 뒤의 사망은 포함하지 않고 있다. 이 숫자는 그동안 많은 전문가가 사망자 숫자가 지나치게 적게 집계되고 있다고 지적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 숫자를 적용하면 약 9개월의 전쟁 동안 가자지구 인구 약 237만 명 중 7.9% 정도가 사망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서울시의 약 60% 크기의 땅에서 지금도 매일 수십 명이 폭격으로 죽고 있다. 그들은 장기간의 인도주의 재난으로 기근에 처해 있기도 하다. 아이들은 탈수와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어른들조차 기근 상황에 더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보건 상황도 심각하다. 8월 1일 세계보건기구(WHO)는 가자지구의 하수에서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발견됐다며 백신 공급이 빨리 이뤄지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밝혔다. 가자지구에서는 이미 설사, 호흡기 질환, A형 간염 등이 확산하고 있다. 전쟁으로 오물 처리와 식수 공급이 이뤄지지 않고 영양 부족이 심해 모든 주민이 질병에 취약해진 상황이다.

 

가자지구의 파괴도 심각하다. 8월 2일 유엔은 가자지구 전체 건물의 약 3분의 2가 파괴됐다고 밝혔다. 알자지라의 보도에 의하면 6월 30일 현재 가자지구 주택의 60%, 상업시설의 80%가 파괴됐다.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건 학교로 전체의 88%가 파괴됐다. 생명을 좌우하는 병원의 파괴도 심각해서 35개 병원 중 17개 만이 일부 운영 중이고 앰블런스 130대가 파괴됐다.

 

뉴스가 줄고 있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줄은 건 아니다. 유엔 기관들은 가자지구의 인도주의 재난 상황의 심각성을 계속 강조하면서 휴전을 요구하고 있다. 법적 조치도 취하고 있다. 지난 1월 26일 국제사법재판소(ICJ)는 가자지구 집단학살 방지를 위해 이스라엘에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남아공이 이스라엘을 집단학살 혐의로 제소한 것에 대한 심리로 사실상 집단학살을 인정하고 사안의 긴급성을 감안해 임시조치를 내린 것이었다. 5월 24일에는 집단학살 방지를 위해 가자지구 남부 라파 공격을 즉각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이스라엘은 어떤 명령도 따르지 않았다. 7월 19일에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이 불법이므로 조속히 중단되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는 2022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적법성에 대한 유엔의 자문 요구 결의안에 대해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이 판단에 대해서도 분노하며 국제사법재판소를 무시했다. 5월 20일 국제형사재판소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갈란트 국방장관에 대해 전쟁범죄 혐의 등으로 체포 영장을 청구했다. 하마스 지도자 3명에 대한 체포 영장도 같이 청구했다. 이에 대해서도 이스라엘은 “터무니 없다”며 무시했다. 미국 또한 같은 말로 이를 무시했다. 심지어 미국은 체포 영장이 청구된 네타냐후를 미국 의회에 초청했다. 7월 24일 네타냐후는 미국 의회 연설에서 미국의 강한 지지에 기댄 이스라엘의 승리를 강조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은 커지고 있다. 한 예로 많은 국가가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이 오래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상징적인 사건은 5월 28일 아일랜드, 노르웨이, 스페인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 것이었다. 사실 세계 130개 이상의 국가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만 서방 국가들은 인정을 꺼려왔는데 변화가 생긴 것이다. 또한 많은 국가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규탄하고 외교관계를 끊었다. 또한 많은 세계인이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규탄하고 있다. 이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스라엘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은 제동장치 없는 폭주기관차처럼 내달리고 있다. 심지어 자국 내의 휴전 요구와 비판도 무시하고 있다. 이는 여전히 미국이 이스라엘에 강한 지지를 보내고 무기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자지구 전쟁은 현실이며 재난이다. 매일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이 가해지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구호물자 통제로 인도주의 재난이 극에 달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다. 생존자들은 생사를 운에 맡기며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관심이 줄면 이스라엘의 학살은 강화되고 아직 살아 있는 가자지구 주민들의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세계인이 당장 전쟁을 멈출 수는 없지만 계속 관심을 유지하는 것이 가자지구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남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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