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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의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강제 해산과 시사점


서울의 이스라엘 규탄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경찰, 곳곳에서 캠퍼스 시위 강제 해산

지난 4월 30일 밤 뉴욕의 컬럼비아대학교에 경찰이 진입했다. 경찰은 사다리차를 이용해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가 점거하고 있던 해밀턴홀 2층에 진입해 시위자들을 강제 해산하고 시위 학생 100여 명을 체포했다. 경찰의 대학 진입은 대학 측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이었다. 앞서 대학 측은 텐트 농성을 하던 학생들에게 오후 2시까지 해산하지 않으면 정학 조치를 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시위 학생들은 해산하지 않았고 대학 측은 정학 조치에 들어갔다. 이에 반발한 시위대가 해밀턴홀을 기습 점거하자 대학이 경찰을 불러 강제 해산한 것이다.

 

5월 2일 새벽 캘리포니아 경찰은 LA캘리포니주아립대학교(UCLA)에 진입헤 시위 학생들을 강제 해산했다. 경찰은 조명탄과 고무탄을 발사하며 시위 학생들이 설치한 바리케이트와 텐트 등을 강제 철거했고 학생 132명을 체포했다. 하루 전인 1일 밤 UCLA에서는 이스라엘 지지자들이 텐트 농성을 하는 팔레스타인 지지 학생들을 공격하는 사건이 있었다. 하얀 마스크를 쓴 이스라엘 지지자들은 몽둥이로 팔레스타인 지지 학생들이 만든 바리케이트를 부수려고 했고 텐트 안으로 폭죽을 집어넣어 터뜨리면서 위협했다. 팔레스타인 지지 학생들이 이를 방어하면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 지지 학생들 여러 명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고 학생 기자들도 폭행을 당했다. 이스라엘 지지 시위자들의 공격은 거의 4시간 동안 계속됐다. 문제는 공격이 있은 지 한 시간쯤 후에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상황을 처음부터 보고 촬영한 한 시민은 CNN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경찰이 11시 15분에 도착해 새벽 2시 30분까지 지켜만 보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경찰이 출동해 텐트 농성을 하던 팔레스타인 지지 학생들을 강제 해산하고 체포한 것이다.

 

4월 24일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대학교에 폭동 진압용 장비로 무장한 경찰과 기마 경찰까지 출동해 학생 시위를 강제 해산했다. 경찰은 수십 명의 학생을 체포했다. 학생들은 경찰이 오기 전까지 평화적 시위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경찰 출동은 강경 보수주의자인 텍사스 주지사의 명령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주지사는 학생 진압이 이뤄진 날 사회관계망을 통해 “대학에서 반유대주의 시위를 하는 학생들은 감옥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일은 미국 대학 곳곳에서 벌어졌다.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대학 측이 질서 유지라는 이유로 경찰을 부르고, 경찰이 학생들을 강제 해산하고 체포한 것이다. 5월 2일 현재 미국 전역의 대학에서 2,100명이 넘는 학생이 체포됐다. 5월 4일 현재 미국 45개 주의 약 140개 대학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규탄하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대학생들의 시위는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인질 억류가 있은 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무차별 공격한 이후부터 시작됐다. 그런데 4월 17일 컬럼비아대학교 학생들이 캠퍼스 내에 텐트를 치고 장기 농성을 시작하면서 주목을 받게 됐다. 이는 수개월이 지나도록 계속되는 팔레스타인 학살과 인도주의 재난, 그리고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이스라엘 지지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은 막대한 인명피해를 낳았고 세계는 이를 팔레스타인에 대한 집단 학살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스라엘의 봉쇄로 인도주의 재난 상황은 최악이 되었고 가자지구는 기근 상태에 빠졌다. 이로 인해 미국 대학 내에서는 팔레스타인 지지 학생들의 시위, 이스라엘 지지 학생들의 반대 시위, 그리고 양측 사이의 충돌이 빈번해졌다.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와 인도주의 재난 외면에도 불구하고 전폭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면서 무기를 지원하는 미국 정부와 의회는 학생 시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의회는 대학 총장들을 청문회에 불러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고 ‘반유대주의’ 타파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을 따져 물으며 압력을 가했다. 수십 개 대학이 반유대주의와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의원들은 팔레스타인 지지 학생들의 시위와 발언을 ‘반유대주의(anti-semitism)’로 낙인찍고 총장들에게 이에 대한 강경 대응을 촉구했다. 청문회에서 모호한 대답을 한 하버드대와 펜실베니아대 총장은 이후 비난에 시달리다 사임했다. 그런데 의회 청문회에 불려간 컬럼비아대 총장은 팔레스타인 지지 학생들과 교수들에 대한 강경 입장을 내보였다. 총장은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의 ‘요르단강부터 지중해까지’라는 슬로건이 “위험하다”고 답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결국 총장은 학생 농성 강제 진압을 위해 경찰을 불렀고 이후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대학의 시위는 4월 17일 컬럼비아대 학생들이 캠퍼스 내에 텐트를 치고 농성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가자지구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새로운 시위 방법을 선택한 것이었다. 컬럼비아대를 시작으로 미국 대학 곳곳에서 텐트 농성이 이어졌다. 일시적 시위가 아니라 텐트를 치고 장기적인 시위를 하자 당황한 대학 측은 학생들에게 중단을 경고했다. 텐트 농성이 시작된 때는 미국 대학들의 졸업 시즌이라 대학 당국은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결국 컬럼비아대가 경찰을 불러 학생들을 강제 해산했고 텐트를 철거했다. 다른 대학들도 잇달아 경찰을 불러 학생들을 해산시켰다. 그러나 시위는 잦아들지 않고 있고 학생들은 다른 시위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텐트 농성은 영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 다른 국가 대학으로도 번졌다.

 

미국 대학과 방산업체의 밀착 관계

학생들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규탄하고 팔레스타인 집단 학살 중단을 외치고 있다. 또한 대학은 물론 미국 정부에 이스라엘과의 관계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요구는 이스라엘 전쟁을 지원하는 방산업체에 대한 대학의 투자 철회다. 미국 대학은 많은 곳에 기금을 투자하고 있는데 학생들은 이스라엘의 전쟁을 지원하는 방산업체에 대한 투자는 물론 그들과의 관계를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쟁 범죄는 물론 가자지구 주민들의 인도주의 재난 상황을 야기하고 외면하는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방산업체 투자하는 건 비윤리적이라는 것이다. 학생들의 주장은 지극히 타당하다. 사실 미국 정부도 인권 문제를 저지르는 국가에 무기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그 원칙을 적용하지 않고 있고, 이런 이유로 국무부 직원들이 사표를 내기도 했다.

 

미국 대학은 두 가지 면에서 방산업체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나는 방산업체에 대한 투자고, 다른 하나는 방산업체에 대한 인력 공급이다. 대학이 어떤 방산업체에 얼마를 투자하고 얼마의 이익을 얻는지 상세한 정보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대학이 방산업체에 많은 투자를 하는 건 사실이다. 지난 4월 17일 예일대학교는 방산업체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이 발표는 학생들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고 학생들뿐만 아니라 많은 교수, 동문, 학부모가 투자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을 해 총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액수의 기금을 가지고 있는 텍사스대의 경우 기금 중 일부는 이스라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에너지, 항공, 방위기술 회사에 대한 투자를 통해 얻어진다. 그중 하나인 엑슨모빌(ExxonMobil)의 경우 이스라엘 전투기에 연료를 제공하고 있다. 대학은 방산업체의 대학 내 채용 활동을 지원하며 인력 공급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도 한다.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 매년 수십 개 대학에서 ‘록히드마틴 데이’ 행사를 열어 다양한 체험 활동을 제공하고 물량 공세를 퍼부으며 학생들을 끌어모은다. 장학금 지급, 인턴십 제공 등 다양한 유인 프로그램을 통해 인력 공급 채널을 유지하고 학교에 건물을 지어 기부하기도 한다. 방산업체를 일반적인 기업의 하나로 생각한다면 이 모든 일은 다른 기업이 하는 일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방산업체가 전쟁 범죄를 저지르는 이스라엘을 지원하며 팔레스타인 집단 학살과 인도주의 재난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대학이 전쟁 범죄와 인권 침해를 저지르는 기업에 투자를 해 이익을 얻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투자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지원을 위한 반유대주의 프레임

미국 대학에 대한 경찰의 진입, 그리고 시위 학생 강제 해산은 여러 가지 점에서 미국 사회에, 그리고 국제사회에 큰 시사점이 되고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 정부와 서방국가들의 지지다.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무차별 공격, 집단 학살, 인도주의 재난을 잘 알고 있고 심지어 겉으로는 이스라엘을 말리면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23일 미국 의회는 우크라이나, 대만에 대한 무기 지원과 함께 이스라엘에 대한 170억 달러(한 23.3조원) 상당의 무기 지원을 승인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미국의 지원 없이는 전쟁을 계속하기 어렵고, 다른 한편 미국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을 지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다수 서방국가들 또한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결국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들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과 팔레스타인 집단 학살에 공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 대학생들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 정부에, 그리고 이스라엘의 전쟁에 기여하는 대학 당국에 문제를 제기하는 건 오히려 자연스럽고 양심적인 행동이다.

 

또 다른 시사점은 학생 시위 강제 해산은 표현의 자유(free speech) 침해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생들의 시위는 자연스럽고 당연한데 미국 정치권과 사회는 그런 학생들의 시위에 ‘반유대주의’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반유대주의’ 프레임을 악용해 팔레스타인 시위를 강경 진압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 곳곳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규탄하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유대인의 권리 주장과 팔레스타인 탄압에 이용되는 ‘시온주의’에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을 포함해 세계 곳곳의 유대인들 또한 이스라엘의 시온주의에 반대하며 팔레스타인 지지와 이스라엘의 학살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 미국 대학의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도 많은 유대계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미국 정부와 대학이 학생들의 시위를 왜곡하며 경찰을 동원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미국 시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다는 점에서 이는 미국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로도 볼 수 있다.


중요한 시사점 중 하나는 미국 의회의 총장 호출 청문회, 대학 내 경찰 진입과 시위 강제 해산 등이 학문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대학에서는 자유롭게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주장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때로는 급진적인 주장까지 공개적으로 표출되고 토론의 대상이 되는 게 대학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캠퍼스 내 시위를 해산하는 데 대해 많은 교수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비난하고 다른 한편으로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팔레스타인 집단 학살, 그리고 이스라엘의 구호물자 통제로 야기된 최악의 인도주의 재난 상황은 전 세계인에게 도전적이고 도덕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미국 대학생들이 이런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고 대학에 이스라엘과의 관계 중단, 투자 철회 등을 요구하는 건 오히려 자연스럽다. 이런 대학생들의 시위에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고 경찰을 동원해 시위를 강제로 해산하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용인되기 힘든 일이다. 이제 미국 대학생들은 졸업식에서 다양한 저항 행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전 세계 대학생들이 시위에 동참하며 이전보다 더 큰 규모의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이제 기성세대가 여기에 어떻게 동참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가자지구 전쟁은 세계인에게 여러 가지 점에서 도전을 던지고 도덕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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