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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전쟁 5개월, 세계인의 도덕성을 시험하다

라마단(3월 11일 시작) 이전에 가자지구 전쟁의 휴전은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이집트와 카타르가 중재하고 있는 휴전 협상은 한때 잘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구체적인 내용까지 공개됐다. 라마단 이전에 40일 동안의 휴전을 시작하고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10:1의 비율로 이스라엘 감옥에 있는 팔레스타인 수감자와 하마스가 억류하고 있는 이스라엘 인질을 맞교환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3월 5일 하마스는 휴전이 아니라 완전한 종전과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완전 철수가 이뤄져야 한다는 조건을 표명했다. 그러지 않으면 인질과 죄수의 교환도 휴전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하마스 소탕을 목표로 가자지구에서 군사작전을 계속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다. 게다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가자지구 전쟁의 승리를 자신의 정치 생명이 걸린 일로 생각하고 있다. 이제 휴전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 휴전을 하지 않을 핑계를 찾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전쟁에서나 그렇듯 가자지구 전쟁의 휴전 또한 정치적 힘겨루기가 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 가자지구 사람들은 죽어가고 산 사람은 매일 지옥을 경험하고 있다. 당연히 전쟁이 완전히 종식되어야 하지만 현재 인도주의 재난이 극한에 도달한 상황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멈추고 인도주의 재난 상황을 완화하는 게 필요하다.

 

휴전 협상이 이뤄지는 와중에도 가자지구의 상황은 계속 악화됐다. 식량, 식수, 의약품 등 기본적인 생필품은 아주 오래 전에 동이 났고 평범했던 사람들은 이제 구호품 트럭에서 식량을 약탈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전쟁 시작 이후 구호품 공급이 제한되고 지난 2월 20일부터는 구호품 공급이 중단됐던 가자지구 북부는 말 그대로 생지옥이 됐다. 이제 유엔과 구호단체들은 이스라엘의 폭격과 총격으로 인한 사망에 더해 굶주림으로 인한 대량 인명 손실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군은 구호품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민간인들에게 발포를 해 사상자를 냈다.

 

지난 2월 29일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부에서 구호품을 받으려고 구호품 트럭 주변에 몰려든 주민들을 향해 발포해 최소 115명이 총에 맞거나 피하는 과정에서 압사해 사망했다. 며칠 뒤인 3월 3일에도 가자지구 남부에서 구호품을 받으려는 주민들에게 발포해 최소 9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다쳤다. 이곳은 이스라엘이 안전지대로 선포한 곳이었다. 주민을 향한 비슷한 발포 사건은 다른 곳에서도 있었다. 이제 이스라엘군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가자지구 주민들을 직접 공격 목표로 삼고 있다. 이스라엘은 안전 문제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곤 하지만 설득력 없는 주장이다. 더군다나 가자지구의 기근 상황은 이런저런 이유로 구호품 트럭 진입을 막아온 이스라엘이 만든 것이다. 지난 3일 WFP(세계식량계획)는 사회관계망을 통해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부로 들어가려던 구호품 트럭 14대를 막아서 결국 진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2월 20일 이후 처음으로 주민들에게 물자를 공급하려던 트럭은 3시간을 검문소에서 대기한 후 돌아가야 했다.

 

가자지구 피란민 (사진출처: WFP)


전쟁 이후 가자지구로 진입하는 구호품은 전쟁 이전과 비교해 현저하게 줄었다. 이것이 현재 기근 상황을 만들고 있는 제일 큰 원인이다. 전쟁 전 가자지구에는 매일 600대 정도의 구호품 트럭이 들어갔다. 그러나 전쟁 후에는 진입 차량 수가 급격히 줄었고 최근 늘어났지만 여전히 하루 100대 미만이다. 길게 늘어선 구호품 트럭은 매일 이집트와 가자지구 국경에서 통과 허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대기하고 있다. 때로는 며칠씩 대기하기도 하고 그렇게 대기해도 통과하지 못하기도 한다. 임시로 지어진 이동 창고에는 가자지구로 들어갈 물품이 쌓여 있지만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전기와 의료 제공에 필요한 발전기, 야전 병원 물품, 워터 탱크 등 여러 가지 물품을 ‘이중 사용’의 가능성이 있다며 거부한다. 구호단체 관계자들은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가자지구에서는 생과 사를 오가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동 창고에는 물품이 쌓여 있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매일 마주하고 있다.

 

10월 7일 시작된 가자지구 전쟁은 지난 5개월 동안 시간의 흐름과 함께 계속 최악에서 최악으로 변했다. 매일이 최악인 상황이어서 우린 아직 최악을 보지 못했다. 사망자는 2월 29일을 기준으로 3만 명을, 부상자는 7만 명을 넘었다. 약 1만 명은 폐허에 묻혀 실종된 상태다. 사상자는 매일 추가되고 매일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사망자 중 약 70%는 여성과 어린이다. 21세기의 전쟁 중 가장 단기간에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운이 좋아 부상만 당한 사람들의 생존도 장담할 수 없다. 병원이 거의 파괴되고 약품도 전기도 없어 상처를 제대로 치료할 수 없다. 어린이들은 탈수와 영양실조로 ‘병원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아무리 전쟁이라고 하지만 상상을 뛰어넘는 사상자 발생과 인도주의 재난 상황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전 세계인이 뉴스를 통해 매일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지고 있다.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1,200명 정도를 살해하고 200명 이상의 인질을 데려간 후 시작된 가자지구 전쟁은 5개월 내내 톱뉴스였다. 전쟁을 목도하며 국제사회와 많은 세계인은 전쟁 자체보다 어느 쪽을 지지할 것인지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옹호했고 많은 세계인이 하마스의 잔인한 민간인 살해를 규탄했다. 가자지구가 초토화되고 매일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가운데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많은 세계인이 이스라엘을 지지할 이유, 팔레스타인을 지지할 이유를 주장하며 논쟁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점이 있다. 어떤 전쟁에서든 민간인은 보호받아야 하고, 식량을 무기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건 특별한 도덕적 신념에 따른 주장이 아니다. 국제사회가 공유하는 원칙이고 전쟁을 하는 모든 주체에게 요구되는 의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런 전쟁의 규칙을 모두 어기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지난 1월 26일 사실상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인정하고 집단학살을 방지할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명령한 점은 그동안 이스라엘이 민간인 보호라는 전쟁의 기본 규칙을 지키지 않았음을 확인한 것이었다. 하마스의 공격을 받았다는 점이 이스라엘에게 민간인을 대량 학살할 권리를 허락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자위권과는 무관하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이미 하마스 공격으로 입은 인명 피해보다 수십 배 많은 인명 피해를 가자지구에 입혔다. 그러니 더 이상의 민간인 피해는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또한 굶주리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식량의 무기화는 도덕적으로도 국제사회의 규범으로도 인정되지 않는다.

 

5개월 동안 계속되고 있는 가자지구 전쟁은 세계인의 도덕성을 시험하고 있다. 식량과 생필품을 가자지구와 겨우 1시간여 떨어진 곳에 쌓아놓고도 보내지 못하고 굶주리는 사람들을 지켜보고만 있는 현실, 무엇보다 많은 세계인과 국제사회가 식량을 무기로 또 다른 집단학살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을 방관하거나 지지하는 현실은 세계가 직면한 심각한 도덕성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특히 가자지구의 인도주의 재난이 이스라엘과 네타냐후의 정치, 미국과 바이든의 정치, 유럽 국가들의 정치, 하마스의 정치 등으로 얽혀 있음에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 또한 심각한 도덕성의 문제다. 전쟁으로 얻는 이익은 모두 이들이 가져가고 전쟁의 피해는 가자지구 주민들이 온전히 받고 있는 상황임에도 말이다.

 

전쟁은 지옥이고 가혹하다. 그래서 전쟁에서는 참혹한 일들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그런 생각으로 현재의 가자지구 상황을 외면하는 건 인간의 도덕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전쟁은 지옥이지만 고통에도 단계가 있듯이 지옥에도 수준이 있다. 전쟁 중이어도 최악의 지옥은 피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가자지구의 상황은 전쟁이 만든 최악의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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