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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과 '테러' 프레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하마스가 통치하고 있는 가자지구에 이스라엘의 대규모 지상군 투입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24시간 안에 남쪽으로 피신할 것을 경고했다. 이미 봉쇄 강화로 전기와 물 공급 등을 끊고, 광범위한 보복 공격으로 가자지구를 폐허로 만들었으며, 수백 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살해한 이스라엘은 하마스 소탕을 위한 대대적 군사작전을 천명하고 있다. 유엔은 24시간 내 피란은 불가능하고 가자지구 내에서는 사실상 피신할 곳도 없다면서 이스라엘에 지상군 투입 계획 철회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들이 이스라엘의 ‘테러’ 대응과 ‘테러리스트’ 소탕에 반대하지 않을 것을, 아니 오히려 지지할 것을 알고 있다. ‘테러’ 프레임을 통해 막대한 민간인 피해를 야기할 군사작전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공격을 테러로 규정했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들, 그리고 세계 주류 언론까지 모두 하마스의 공격을 ‘테러’로, 그리고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로 부르고 있다. ‘테러’는 자신의 개인적,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살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테러는 알 카에다나 IS, 또는 그런 집단을 추종하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 것들이다. 그렇다면 하마스는 그런 집단과 같은가. 그렇지는 않다. 하마스는 알 카에다나 IS처럼 세계 곳곳에서 테러를 저지르는 집단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정치세력이다. 우리 언론에서는 때로 하마스를 ‘무장 정파’라 부르기도 한다. 무장한 정치세력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 또한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굳이 ‘무장’을 붙인 것이 그렇다. 팔레스타인은 아직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했지만 193개 유엔 회원국 중 138개 국가가 사실상의 국가로 인정하고 있고 다른 국가들처럼 당연히 무장할 이유와 권리가 있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일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으니 맘에 들든 들지 않든 하마스의 무장이나 무력 사용이 이상한 건 아니다. 다른 국가의 정치집단들과 비교해도 그렇다.

 

하마스는 2차 인티파다 후인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했고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파타당과 연합정부를 구성했다. 그런데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 투쟁 입장을 고수하고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하마스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하마스에 무장 투쟁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하마스는 거부했다. 그러자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고 경제 제재를 가했다. 하마스와 파타당 사이에는 갈등이 생겼고 결국 무력 충돌로 번졌다. 그 결과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파타당은 서안지구(웨스트뱅크)를 통치하게 됐다. 이로써 팔레스타인은 지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거의 단절됐다. 국제사회는 지금까지도 하마스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하마스 통치 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봉쇄해 ‘지붕 없는 감옥’, 그리고 거의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었다. 서안지구 또한 이스라엘의 억압과 탄압으로 감옥 같은 곳인데 가자지구는 서안지구보다 더 혹독한 상황을 겪어왔다. 이런 이유로 팔레스타인 억압과 가자지구 봉쇄에 저항하는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의 무력 충돌은 계속되고 있다. 파타당은 정치적인 이유로,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생존을 위해 이스라엘에 협력하며 목소리를 낮추고 있다. 파타당과 하마스 모두 팔레스타인의 생존과 독립국가 수립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억압,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강대국들의 이스라엘 지지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하마스와 파타당 모두 선택권이 제한되어 있다. 둘 모두 이스라엘에 적대적이지만 저항하는 방식과 입장이 다르다.

 

1946년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 영토 손실 (출처는 JAI의 Life Under Occupation) 


‘테러’는 오랫동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저항의 정당성을 부인하기 위해 사용해온 프레임이다. 이스라엘은 무력을 사용하는 팔레스타인 개인과 정치집단의 모든 저항을 테러로 불러왔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가혹하고 잔혹한 억압, 불법 정착촌 확장, 정착촌 주민들의 팔레스타인 주민 공격과 살해, 분리장벽 설치와 팔레스타인 주민 감시, 팔레스타인 주택 파괴와 주민 강제 이주, 팔레스타인 시위 무력 진압과 살해 등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정도인 온갖 인권 침해와 만행을 이스라엘의 안전과 방어권을 위한 ‘합법적’인 행위로 포장했다. 무력으로 팔레스타인을 통치하고 무자비한 탄압을 계속하면서도 팔레스타인의 저항이 이스라엘의 안전을 중대하게 위협하는 것처럼 과장했다. 억압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저항권이 있고 사실상 국가인 팔레스타인의 통치 세력은 당연히 무장할 권리가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장 통치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탄압이라는 점을 부인하고 있다.

 

따지자면 하마스의 민간인 공격과 납치는 테러 행위가 아니라 전쟁범죄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은 국가 사이 전쟁이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폭격은 이웃 국가의 공격에 대한 응징이자 보복이다. 문제는 그로 인해 이미 대규모 민간인 살상이 발생했고 많은 주택, 병원, 학교 등 민간시설이 파괴됐다는 것이다. 이건 명백하게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다.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는 하마스와 무력 충돌이 있을 때마다 반복됐다. 무력이 월등하고 공격을 받으면 몇 배, 몇십 배로 되돌려주는 이스라엘은 오히려 하마스보다 더한 전쟁범죄를 저질러왔다. 그러나 하마스를 테러집단으로 보는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는 정당한 방어권으로, 하마스의 전쟁범죄는 무자비한 테러로 규정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둘 다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지만 판단이 다른 것이다. 세계 주류 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 하마스의 선제공격이 있었다는 이유로 이번 전쟁에 대해서는 더욱 노골적으로 ‘테러’ 프레임을 작동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피해에 대한 보도에 집중하고 팔레스타인 피해는 적극적으로 보도하지 않으면서 언론의 양심이자 원칙인 기계적 중립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 가장 최악은 이런 무력 충돌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 즉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어온 고통에 대한 보도는 거의 하지 않고 무력 충돌의 현상만 보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테러’ 프레임을 통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조차 ‘테러집단’ 소탕과 이스라엘의 정당한 권리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번 전쟁은 명백하게 이스라엘과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하마스 사이의 전쟁이고, 이스라엘은 절대 민간인 피해를 야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쟁의 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간인을 공격하고 생명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하마스와 이스라엘 모두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는 소극적으로 비난하고, 하마스의 전쟁범죄는 단순한 개인적, 정치적 욕망을 위한 ‘테러’ 행위로 보고 있다. 시오니스트들의 로비를 받아 일방적으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세우는 것을 지지한 1917년 밸푸어 선언 이후 계속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고통, 이스라엘 국가 수립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후 계속된 팔레스타인 억압과 팔레스타인의 고통,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복적 면죄부 등의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극우파이자 부패 정치 속에서 장기 집권한 네타냐후 총리의 복귀 이후 팔레스타인에 대한 탄압과 살해가 지난해부터 최악의 수준이 됐고 그 결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저항과 이스라엘군과의 충돌이 심해졌다는 점도 외면하고 있다. 2005년 이후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주민 살해는 작년에 최고치에 달했는데 올해는 작년 수준을 뛰어넘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미국은 물론 서방국가들은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방관하고 이스라엘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상황만 가지고 이스라엘의 방언권을 ‘적극 지지’한다는 무책임하고 비인도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


하마스에 대한 ‘테러’ 프레임은 바뀌어야 한다. 미국 언론은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로 표기했다가 수백만 명에 달하는 독자들의 항의를 받고 다소 완화된 표현인 ‘무장세력’으로 바꿔 표기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오랜 억압을 무시한 표현에 독자들이 항의하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상황을 익히 알고 있는 언론이 소극적으로나마 독자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정치세력이고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 무력 충돌은 사실상 국가 사이 전쟁이다.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가 아니라고 해서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억압에 저항할 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무력 사용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자가 아니라면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 전쟁 또한 국가 사이 발생할 수 있는 무력 충돌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른 국가 사이 전쟁에 대한 대응처럼 하마스와 이스라엘 모두에게, 그리고 국제사회에게 전쟁의 종식과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는 전쟁범죄의 중단을 요구해야 한다. 하마스 소탕이 아니라 전쟁 종식과 인질 석방 협상을 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제사회에 이스라엘 편들기를 그만두고 당장 무력 사용 중단과 민간인 피해 중단을 촉구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하마스의 공격을 ‘테러’로, 하마스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해 가자지구 무차별 공격과 지상군 투입을 테러에 대한 ‘정의로운 무력 사용’으로, 그리고 정당한 방어권으로 주장하는 이스라엘의 주장에 동조하는 건 반인륜적이고 반인도주의적이다. 수많은 무고한 생명의 죽음을 외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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