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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정상회의 국방비 인상 합의-미국 무기 수출 급증 예상

헤이그에서 열린 나토정상회의는 25일 예상대로, 그리고 계획대로 국방비를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5%로 증액하기로 공식 합의했다. 5% 중 3.5%는 직접 국방비에, 그리고 1.5%는 안보 인프라와 관련된 투자 등에 지출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가 있은 뒤 기자회견에서 “이는 미국의 기념비적인 승리”라며 또한 “유럽과 서구 문화의 큰 승리”라고 강조했다. 이번 나토 정상회담의 핵심 안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국방비 증액이었다. 지난 21일 BBC는 이번 나토 회의는 트럼프 대통령에 맞춘 것이라며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이 트럼프에 승리를 안겨주기 위해 열심히 회의를 준비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의 목표는 이번 회의를 “짧고 달콤하게” 끝내는 것이라고 했다. 국방비 증액 합의로 회의는 계획대로 성공리에 끝났다.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은 이제 유럽 국가들이 자체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이고 여전히 미국의 안보 자산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럽에서 손을 뗄 수도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으름장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합의로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은 만만치 않은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됐다. 나토의 통계 자료에 의하면 대부분의 유럽 회원국들은 2024년 기준으로 GDP 2% 안팎의 국방비를 지출했고 러시아에 인접한 폴란드,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같은 국가들만 3% 이상의 국방비를 지출했다. 국제 정세가 불안하고 그에 따라 경제적 불확실성 또한 큰 상황에서 점진적이지만 현재의 두 배 이상으로 국방비를 올리려면 뼈를 깎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토가 공식적으로 국방비 인상에 합의했으니 회원국 중 하나인 미국의 국방비 또한 GDP 5% 수준으로 인상될까? 그렇지는 않다. 핀란드의 <헬싱키 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미국은 그럴 의무가 없다고 딱 잘라서 답했다. 그는 “유럽은 그래야 하지만 우린(미국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 우린 나토를 오랫동안 지원해왔고...그러니 다른 나토 회원국들은 그래야 된다”고 말했다. 이 보도를 언급한 기사에서 BBC는 “유럽 외교관들이 이를 갈았을 것”이라고 썼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 보고서에 의하면 2024년 기준으로 미국의 국방비는 GDP의 3.4%를 차지했다. 또 다른 SIPRI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미국은 나토 예산의 68.7%, 2024년에는 66%를 감당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그동안 미국이 유럽 안보에 막대한 투자를 했으니 이제 유럽 국가들이 투자를 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미국이 나토 예산의 상당 부분을 감당해온 것은 유럽과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 유지를 통해 자국 이익을 추구하는 정책 때문이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마치 그것이 오로지 유럽 국가들을 위한 것이었던 것처럼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토 유럽 회원국들은 유럽 안보에서 손을 떼겠다고 압박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정면으로 맞설 수도 없는 상황이다.

 

나토 정상회의가 국방비 인상에 합의함으로써 미국은 이제 점진적으로 나토에 지출되는 비용을 낮출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유럽 회원국들의 국방비 인상은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고 얼마나 빨리 목표치에 도달할지는 알 수 없다. 또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당장 미국이 큰 이익을 보게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미국이 당장 실질적으로 큰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게 있다. 바로 무기 수출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증한 유럽 국가들의 미국산 무기 수입이 국방비 인상 결정으로 더 증가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BBC는 25일(현지시간) 스타머 영국 총리가 핵무기까지 장착할 수 있는 새로운 F-35A 전투기 12대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SIPRI가 지난 3월 발표한 세계 무기 거래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2020-2024년 기간 동안 전 세계 무기 수출의 43%를 차지해 세계 1위 자리를 확고히 했다. 이 수치는 2위인 프랑스가 차지한 9.6%에 비하면 4배 이상에 달하는 수치다. 미국의 무기 수출이 증가한 데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이 컸다. 같은 기간 동안 러시아의 무기 수출은 64% 감소해 전 세계 수출의 7.8%만을 차지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20-2024 기간 동안 미국산 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한 건 유럽 국가들이었다. 유럽 국가들의 무기 수입은 2015-2019 기간보다 155%나 증가했는데 특히 미국산 무기 수입이 대폭 늘었다. 2020-2024년에 미국산 무기 수입은 유럽 국가들 전체 수입의 53%를 차지했는데 2015-2019 기간의 41%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수치다. 나토 유럽 회원국들로 좁히면 미국산 무기 수입 수치는 더 높아진다. 이들 국가의 미국산 무기 수입은 2015-2019에는 52%를 차지했는데 2020-2024 기간에는 약 3분의 2인 64%로 증가했다. 미국 쪽에서 보더라도 변화는 두드러졌다. 미국은 20년 만에 처음으로 중동보다 유럽에 더 많은 무기를 수출했다. 미국산 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한 국가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였다. 우크라이나는 2023년과 2024년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무기를 수입한 국가였고 수입한 무기 중 45%가 미국산이었다. 전쟁의 영향으로 러시아에 인접한 국가들의 무기 수입도 급증했다. 2015-2019 기간과 비교해 2020-2024년 기간의 무기 수입을 보면 헝가리 1,454%, 벨기에 1,338%, 폴란드 508%, 덴마크 311%, 루마니아 233% 등의 증가를 보였다.

 

출처: SIPRI 무기거래 데이타베이스 (Arms Trasnfers Database), 2025년 3월


유럽 국가들의 무기 수입 급증으로 가장 많이 이익을 본 건 미국이었다. 미 국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2023년 미국의 무기 수출은 전년도보다 55.9% 증가해 기록을 갱신했다. 2024년 무기 수출 또한 전년도보다 45.7%나 증가했다. 그런데 이 수치는 미국 정부가 직접 관여한 무기 거래만을 나타내는 것이고 미국 무기 회사들이 직접 거래한 수치는 별개다. 미 국무부는 2024년에 미국 회사들의 무기 수출이 전년도에 비해 29%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는 2024년에 주문이 급증한 전투기, 미사일, 장갑차 등의 수출 결과는 2025년에 반영될 것이라면서 전쟁과 불안한 세계 정세로 록히트마틴(Lockheed Martin), 제너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 노스롭 그루만(Northrop Grumman) 등 무기 회사들은 호황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에게 국방비 인상을 요구한 근거는 유럽 안보를 위해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럽 회원국들 또한 안보에 대한 책임을 더 지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국방비의 급격한 인상은 유럽 국가들의 미래에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다. 국방비를 대폭 인상하려면 다른 분야에 대한 재정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스타머 총리가 지난 2월 국방비 인상을 위해 개발 지원을 줄이겠다고 발표한 건 그래서 상징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의 인상 합의를 근거로 청구서를 내밀 듯 이제 아.태 국가들에게도 GDP 5%로의 국방비 인상을 압박할 것이고 이.태 국가들 또한 수치에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국방비를 인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 세계 국가가 군비 경쟁에 뛰어드는 상황이 야기될 수 있다. 이런 변화가 과연 미국을 뺀 국가들에게 이익이 될지는 의문이다. 또한 미국이 당연한 듯 내미는 국방비 인상 청구서가 정당한지도 의문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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