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에 직면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은 상대와 “생각이 너무 다르다”,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갈등의 해결 가능성을 물으면 한 목소리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런 상황을 어떻게 다뤄야 하나?”고 질문한다.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해결의 가능성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에 깔끔하고 확실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본적으로 갈등은 당사자들이 직면한 문제를 다루는 방식, 소통과 대화의 여부, 해결을 위한 실질적 노력의 수준 등에 따라 진행과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답을 한다면 이런 경우 자신에게 ‘반드시 갈등을 해결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해보라는 것이다.
‘갈등을 해결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예’라는 답을 하게 된다면 거기에 맞춰 갈등을 바라보고 상대와 소통하고 대화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예’라는 답을 하게 되는 이유나 상황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가장 흔한 이유나 상황은 갈등이 간헐적이 아니라 일상적, 지속적으로 생활과 일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다. 갈등 상대와 불가피하게 매일 접촉해야 하는 경우도 그렇다. 또는 갈등을 야기한 문제가 회사, 공동체, 대가족 등의 조화와 나아가 존재 이유를 위협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라면 해결 노력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해결 노력을 하는 편이-설사 해결 가능성이 보이지 않더라도-낫다는 결론을 얻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해결 노력을 하는 편이 낫다는 결론에 도달하면 상대와 소통하고 대화를 시도할 방법을 고민하고 상대가 자신의 해결 필요에 수긍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할 수 있다.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갈등을 완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결 필요를 분석할 때 우선적으로 입장과 이익을 따져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사실 현실에서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그것은 바로 갈등 당사자들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가치나 공동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즉 각자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의 가치와 관심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회사의 동료라면 업무의 효율성이나 업무 차질의 최소화가 될 수 있고, 공동체 구성원이라면 공동체의 가치와 존재 이유 등이 될 수 있다. 시민단체나 종교단체라면 도덕성, 정의, 공존의 가치, 종교적 가르침 등이 될 수 있다. 이 점은 누구나 공유하고 동시에 무시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대가족 구성원들이라면 부모님의 안녕, 가족 구성원들 사이 관계의 유지, 가족 틀의 유지 등이 관심사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쉽게 외면할 수 없는 가치이자 때로 존재의 이유가 된다.
입장과 이익에 초점을 맞춰 갈등을 이해하고 해결 방식을 모색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경우라 해도 공동으로 추구하는 가치와 존재의 기반을 지키려는 욕구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소통과 대화의 명분이자 시작, 나아가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공동의 가치를 어떻게 지킬지, 또는 해치지 않을지 얘기하고 적어도 공동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데 합의할 수 있다. 이런 합의의 토대 위에서 대화하면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파괴적인 상호작용, 그리고 상호 공격적인 태도와 행동은 멈출 수 있다. 그러면 갈등을 점진적으로 완화하거나 적어도 악화시키지 않는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다. 그리고 계속 잘 관리하고 대결을 피하면서 지낼 수 있다. 갈등을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갈등의 파괴적 영향은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갈등에 직면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은 상대와 “생각이 너무 다르다”,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갈등의 해결 가능성을 물으면 한 목소리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런 상황을 어떻게 다뤄야 하나?”고 질문한다.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해결의 가능성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에 깔끔하고 확실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본적으로 갈등은 당사자들이 직면한 문제를 다루는 방식, 소통과 대화의 여부, 해결을 위한 실질적 노력의 수준 등에 따라 진행과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답을 한다면 이런 경우 자신에게 ‘반드시 갈등을 해결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해보라는 것이다.
‘갈등을 해결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예’라는 답을 하게 된다면 거기에 맞춰 갈등을 바라보고 상대와 소통하고 대화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예’라는 답을 하게 되는 이유나 상황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가장 흔한 이유나 상황은 갈등이 간헐적이 아니라 일상적, 지속적으로 생활과 일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다. 갈등 상대와 불가피하게 매일 접촉해야 하는 경우도 그렇다. 또는 갈등을 야기한 문제가 회사, 공동체, 대가족 등의 조화와 나아가 존재 이유를 위협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라면 해결 노력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해결 노력을 하는 편이-설사 해결 가능성이 보이지 않더라도-낫다는 결론을 얻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해결 노력을 하는 편이 낫다는 결론에 도달하면 상대와 소통하고 대화를 시도할 방법을 고민하고 상대가 자신의 해결 필요에 수긍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할 수 있다.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갈등을 완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결 필요를 분석할 때 우선적으로 입장과 이익을 따져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사실 현실에서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그것은 바로 갈등 당사자들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가치나 공동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즉 각자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의 가치와 관심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회사의 동료라면 업무의 효율성이나 업무 차질의 최소화가 될 수 있고, 공동체 구성원이라면 공동체의 가치와 존재 이유 등이 될 수 있다. 시민단체나 종교단체라면 도덕성, 정의, 공존의 가치, 종교적 가르침 등이 될 수 있다. 이 점은 누구나 공유하고 동시에 무시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대가족 구성원들이라면 부모님의 안녕, 가족 구성원들 사이 관계의 유지, 가족 틀의 유지 등이 관심사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쉽게 외면할 수 없는 가치이자 때로 존재의 이유가 된다.
입장과 이익에 초점을 맞춰 갈등을 이해하고 해결 방식을 모색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경우라 해도 공동으로 추구하는 가치와 존재의 기반을 지키려는 욕구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소통과 대화의 명분이자 시작, 나아가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공동의 가치를 어떻게 지킬지, 또는 해치지 않을지 얘기하고 적어도 공동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데 합의할 수 있다. 이런 합의의 토대 위에서 대화하면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파괴적인 상호작용, 그리고 상호 공격적인 태도와 행동은 멈출 수 있다. 그러면 갈등을 점진적으로 완화하거나 적어도 악화시키지 않는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다. 그리고 계속 잘 관리하고 대결을 피하면서 지낼 수 있다. 갈등을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갈등의 파괴적 영향은 피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