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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갈등과 힘의 불균형

지난 2월 2일 서울시장과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만났다. 이 자리에서 서울시장은 전장연이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통해 대중교통 운행을 멈추는 법을 무시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장연이 굉장한 강자가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전장연 시위로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면서 많은 서울 시민이 불편을 겪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결과를 이유로 전장연이 강자 집단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사실 대다수 국민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전장연이 강자 집단이라면 굳이 그렇게 많은 사람의 항의를 받으면서 힘든 시위를 하지도 않을 것이고,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권리인 이동권 보장을 내걸지도 않았을 것이다. 승하차 시위가 생기게 된 근본적인 원인과 전체 상황을 보지 않고 권리를 주장하는 방식 하나만 따로 떼어서 힘의 관계를 규정하는 건 오류이고 왜곡이다.

 

전장연과 서울시, 그리고 정부 사이의 갈등은 전형적인 공공갈등, 그러니까 공공 정책이나 사업을 둘러싸고 공공기관과 이익 집단, 또는 주민 집단 사이에 생기는 갈등의 하나다. 우리 사회 공공갈등은 집단의 ‘강한 저항’으로 보여지곤 한다. 그렇게 보여지는 이유는 공공갈등이 정부 및 공공기관의 정책이나 사업을 반대하고 나아가 그에 분노하는 이익 집단이나 주민 집단이 해당 정책이나 사업의 수정이나 폐지를 강하게 요구함으로써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나 공공기관은 ‘합법적’이고 ‘원칙적’인 대응을 천명하곤 한다. 한쪽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분노, 항의, 절망을 표하는 데 다른 쪽은 냉정해 보일 정도로 차분하게 ‘법’과 ‘원칙’을 재확인한다. 이점은 공공갈등이 힘의 불균형이 심한 상대적 강자와 상대적 약자 사이에 생기는 갈등임을 말해준다.

 

갈등 당사자 사이 힘의 불균형과 상대적 약자를 규정하는 기준은 ‘의존성’이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편에 크게 의존해야 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상대적으로 적은 힘을 가진 당사자, 때로는 절대적인 약자다. 공공갈등에서 개인이나 집단이 강하게 저항하거나 시위를 하는 이유는 정부나 공공기관의 관심을 얻고 자신의 견해를 전달하고 마주 앉아 대화와 협상을 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정부나 공공기관에 대한 높은 의존성을 나타내고 그런 집단과 정부 및 공공기관 사이에는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여러 형태의 저항과 시위는 정부와 공공기관의 우호적인 결단과 결정을 바라는 상대적 약자 집단의 의사 표현 방식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전문성과 축적된 정보, 법 집행 권한, 인적 물적 자원, 군과 경찰 등의 동원 능력 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강자임을 알 수 있다. 설사 저항하는 집단을 억압하고 힘의 불균형 관계를 재확인하기 위해 그런 정보, 능력, 권한 등을 모두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런 힘의 확보 자체가 강자임을 드러내고 다른 편에게 압력이 된다.

 

우리 사회의 공공갈등은 보통 집단의 ‘강한 저항’으로 묘사되곤 한다. 언론과 여론이 흔히 그렇게 보고, 특히 정부나 공공기관이 그렇게 인식 및 주장하곤 한다. 그렇다면 정부나 공공기관은 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일까? 정권에 상관없이 대다수 공공갈등에 대응하는 정부 및 공공기관의 태도와 행동으로 볼 때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하나는 정부나 공공기관이 집단의 문제 제기와 시위 등을 공공의 이익, 그리고 법과 원칙에 반하는 정당하지 않은 행동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집단의 저항을 흔히 공적 영역의 판단과 결정을 침범하는 이기적이고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인식한다. 이런 인식의 근저에는 정부나 공공기관이 공익과 국민을 위해 어렵지만 올바른 판단을 한다는, 그리고 공익을 위해 일부 소수에게 피해가 가는 불가피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이해가 깔려 있다. 다른 하나는 특정 집단의 무리한 요구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공공기관이 정당하고 정의롭게 기존 결정을 유지했다는 점, 다시 말해 ‘힘을 이용한 특정 집단의 이기적인 요구’에 굴복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한마디로 부당한 힘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일을 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힘의 불균형은 갈등의 전개 방식과 해결 여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힘의 불균형이 유지되고 상대적 강자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갈등은 악화되고 대화의 가능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갈등은 위기 상황에서 힘으로 억제되고 상대적 약자는 저항을 중단한다.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문제 제기의 이유가 타협할 수 없는 이유, 즉 정체성, 절대적인 삶의 필요, 안전 같은 것이라면 힘의 불균형이 심해도 상대적 약자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차후에는 폭력적인 방법에 기댈 수도 있다.

 

힘의 불균형이 심한 관계에서는 갈등이 잘 생기지 않는다. 상대적 약자의 문제 제기는 억압되고 저항은 조기에 진압된다. 그러나 정체성 인정, 생존의 문제, 안전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와 관련된 일이라면 상대적 약자는 모든 것을 감수하고 저항한다. 이렇게 생긴 갈등은 상대적 약자가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보통 위기와 완화를 오가면서 장기화된다. 그러므로 사회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와 공공기관이 집단의 문제 제기를 수렴하고 대화 자리에서 다루는 접근이 필요하다. 사실은 그것이 국민에게 봉사하는 정부와 공공기관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러지 않고 집단의 문제 제기와 저항을 정부와 공공기관의 권한과 결정에 대한 저항으로, 그리고 힘을 악용하는 방식으로 인식하고 해석하면서 힘의 불균형을 간과하면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축적된다. 상대적 약자 집단에 대한 불이익이 공익으로 여겨지고 사회 변화가 없는 가운데 상대적 약자의 삶이 개선되지 않는 현상태(status quo)가 지속된다.

 

공공갈등은 흔히 여론전으로 흐르곤 한다. 공공기관이 ‘강한 저항’을 강조하는 것도, 이익 집단이나 주민 집단이 모든 힘을 동원해 저항하는 것도 여론에 호소하고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서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 구성원이 눈앞의 문제 제기와 저항 방식만 보지 않고 근원적인 힘의 불균형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집단이 강하게 저항하는 건 정부와 공공기관의 관심을 끌고 대화 자리를 만들기 위한 전략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저항을 안으로 수렴하고 대화 자리를 만들어 문제를 다루면 거리에서의 저항은 줄거나 완화된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건 공공갈등에 대응하는 정부와 공공기관의 태도와 행동 변화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만들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문제의 핵심과 저항의 이유, 그리고 근본적인 힘의 불균형 문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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