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2일 오후 2시 민방위 훈련으로 통제된 세종대로. 사진출처: 국방부
지난 8월 22일 민방위 훈련이 있었다. 오후 2시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렸고 바깥 활동을 하던 사람들은 공무원들의 안내에 따라 대피를 했다. 여러 보도에 따르면 훈련 상황을 알지 못하고 당황한 사람들도, 안내에 따라 열심히 훈련에 참여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어리둥절한 외국인들도 얼결에 훈련에 참여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이런 훈련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비록 20분이지만 모든 차와 사람의 이동을 정지시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훈련을 통해 정부가 전쟁 공포와 안보 정국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습 대비 민방위 훈련은 작년에 부활했다. 2017년 8월 23일 이후 6년 만이었다. 2017년 이후 민방위 훈련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내용이 달랐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0월 30일 마지막으로 실시된 민방위 훈련은 ‘재난 대비’ 훈련이었다. 그러니 공습 대비 민방위 훈련은 작년에 6년 만에 부활한 것이었다. 이번에도 같은 내용의 훈련이었다. 공습 주체로 가정된 건 당연히 북한이었다.
이번 민방위 훈련은 8월 19일-22일까지 진행된 을지연습과 연계돼 이뤄졌다. 을지연습의 내용을 보면 민방위 훈련의 목적을 알 수 있다. 을지연습 기간인 8월 20일에 국가 중요시설 합동 대테러 훈련이 실시됐는데 테러 공격을 당한 시민들을 군인들과 소방관들이 구하는 내용이었다. 테러를 당한 시민 역할을 한 사람들은 목에 ‘공산당 OUT’이라는 커다란 빨간색 팻말을 걸고 있었고 ‘단결 투쟁’이라고 쓴 머리끈을 매고 있었다. 소방관들이 구조한 인질들도 ‘자유 민주주의 수호’와 ‘한반도 평화’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었다. 역시 북한의 테러를 가정해 이뤄진 것이었다.
민방위 훈련이든 을지연습이든 필요하면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적과 배경이 매우 당황스럽고 다른 한편으로 유감스럽다. 이번 훈련의 목적은 명확하게 북한의 공격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전에서는 공습경보를 듣고 대피하는 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미사일과 드론 등을 통해 기습적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이뤄지는 공격은 대피 훈련을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아파트, 빌라, 오피스텔 등 밀집 주거 형태가 많은 우리 상황에서는 빠른 시간 내의 대피도, 대피 장소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또 북한의 공격으로 서울까지 위험해졌다면 그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전면전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공습경보와 대피로 목숨을 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사망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민방위 훈련을 하고 그것을 통해 전쟁 시 시민의 안전을 담보하겠다는 발상은 무척 당황스럽다. 순진한 발상이기도 하다.
유감스러운 점은 민방위 훈련이 노골적으로 북한의 공격과 테러를 가정했다는 점이고, 훈련의 내용이 더는 심해질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현재의 남북관계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겉으로 보면 예기치 못한 공습 상황에 대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북한에 대한 의심과 공포, 그리고 적대감을 강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그런 태도와 감정을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많은 국민이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불편한 감정, 나아가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노골적으로 그런 인식과 감정을 건드리고 나아가 독려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의 의무와 역할은 전쟁과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해 적대적인 상대와도 대화를 하고 관계를 개선해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척 유감스럽다.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와 관계 개선을 포기하고 북한의 공격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그것 또한 무척 유감이다. 그건 국민에게는 현재의 상황이 안전하지 않고 전쟁이 날 수도 있으니 대비하라는 최후통첩이나 마찬가지지 때문이다. 만일 전쟁이 날 가능성은 없지만 항상 북한을 경계하고 그러기 위해 북한에 대한 경계심, 공포심, 적대감을 가져야 한다고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면 그것도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사실 대테러 훈련에 참여한 사람들이 목에 걸었던 팻말을 보면 충분히 이런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훈련의 초점이 국민의 안전이 아니라 북한과의 적대관계 강화에 맞춰졌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이것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공습 대비에 초점을 맞춘 민방위 훈련이 말해주는 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남북관계가 무력 충돌, 나아가 전면전을 걱정할 정도로 최악의 상태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가 남북관계가 최악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국민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건 정부가 스스로 남북관계를 잘 관리하지 못했고 국민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지경으로 만들었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러니 정부 입장에서는 좋은 전략이 아니다. 심지어 외국인 방문자들에게까지 대한민국이 위험하다고 광고한 꼴이니 대외적으로도 마이너스 전략이다.
민방위 훈련이 말해주는 가장 중요한 점은 남북관계가 어떤 이유로 이렇게 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런 상황을 타개할 것인지 정부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에 대한 문제의식과 분석이 없다는 것이다. 민방위 훈련을 통해 정부 스스로 악화된 남북관계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라는 걸 시인하면서도 말이다. 정말 남북 사이의 적대감과 군사적 긴장이 높아져 전쟁까지 우려할 정도라면 민방위 훈련 같은 실효성 없고 보여주기식의 대응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남북관계를 만드는 게 정부가 할 일인데 말이다.
8월 22일 오후 2시 민방위 훈련으로 통제된 세종대로. 사진출처: 국방부
지난 8월 22일 민방위 훈련이 있었다. 오후 2시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렸고 바깥 활동을 하던 사람들은 공무원들의 안내에 따라 대피를 했다. 여러 보도에 따르면 훈련 상황을 알지 못하고 당황한 사람들도, 안내에 따라 열심히 훈련에 참여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어리둥절한 외국인들도 얼결에 훈련에 참여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이런 훈련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비록 20분이지만 모든 차와 사람의 이동을 정지시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훈련을 통해 정부가 전쟁 공포와 안보 정국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습 대비 민방위 훈련은 작년에 부활했다. 2017년 8월 23일 이후 6년 만이었다. 2017년 이후 민방위 훈련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내용이 달랐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0월 30일 마지막으로 실시된 민방위 훈련은 ‘재난 대비’ 훈련이었다. 그러니 공습 대비 민방위 훈련은 작년에 6년 만에 부활한 것이었다. 이번에도 같은 내용의 훈련이었다. 공습 주체로 가정된 건 당연히 북한이었다.
이번 민방위 훈련은 8월 19일-22일까지 진행된 을지연습과 연계돼 이뤄졌다. 을지연습의 내용을 보면 민방위 훈련의 목적을 알 수 있다. 을지연습 기간인 8월 20일에 국가 중요시설 합동 대테러 훈련이 실시됐는데 테러 공격을 당한 시민들을 군인들과 소방관들이 구하는 내용이었다. 테러를 당한 시민 역할을 한 사람들은 목에 ‘공산당 OUT’이라는 커다란 빨간색 팻말을 걸고 있었고 ‘단결 투쟁’이라고 쓴 머리끈을 매고 있었다. 소방관들이 구조한 인질들도 ‘자유 민주주의 수호’와 ‘한반도 평화’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었다. 역시 북한의 테러를 가정해 이뤄진 것이었다.
민방위 훈련이든 을지연습이든 필요하면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적과 배경이 매우 당황스럽고 다른 한편으로 유감스럽다. 이번 훈련의 목적은 명확하게 북한의 공격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전에서는 공습경보를 듣고 대피하는 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미사일과 드론 등을 통해 기습적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이뤄지는 공격은 대피 훈련을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아파트, 빌라, 오피스텔 등 밀집 주거 형태가 많은 우리 상황에서는 빠른 시간 내의 대피도, 대피 장소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또 북한의 공격으로 서울까지 위험해졌다면 그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전면전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공습경보와 대피로 목숨을 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사망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민방위 훈련을 하고 그것을 통해 전쟁 시 시민의 안전을 담보하겠다는 발상은 무척 당황스럽다. 순진한 발상이기도 하다.
유감스러운 점은 민방위 훈련이 노골적으로 북한의 공격과 테러를 가정했다는 점이고, 훈련의 내용이 더는 심해질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현재의 남북관계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겉으로 보면 예기치 못한 공습 상황에 대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북한에 대한 의심과 공포, 그리고 적대감을 강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그런 태도와 감정을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많은 국민이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불편한 감정, 나아가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노골적으로 그런 인식과 감정을 건드리고 나아가 독려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의 의무와 역할은 전쟁과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해 적대적인 상대와도 대화를 하고 관계를 개선해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척 유감스럽다.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와 관계 개선을 포기하고 북한의 공격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그것 또한 무척 유감이다. 그건 국민에게는 현재의 상황이 안전하지 않고 전쟁이 날 수도 있으니 대비하라는 최후통첩이나 마찬가지지 때문이다. 만일 전쟁이 날 가능성은 없지만 항상 북한을 경계하고 그러기 위해 북한에 대한 경계심, 공포심, 적대감을 가져야 한다고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면 그것도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사실 대테러 훈련에 참여한 사람들이 목에 걸었던 팻말을 보면 충분히 이런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훈련의 초점이 국민의 안전이 아니라 북한과의 적대관계 강화에 맞춰졌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이것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공습 대비에 초점을 맞춘 민방위 훈련이 말해주는 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남북관계가 무력 충돌, 나아가 전면전을 걱정할 정도로 최악의 상태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가 남북관계가 최악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국민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건 정부가 스스로 남북관계를 잘 관리하지 못했고 국민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지경으로 만들었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러니 정부 입장에서는 좋은 전략이 아니다. 심지어 외국인 방문자들에게까지 대한민국이 위험하다고 광고한 꼴이니 대외적으로도 마이너스 전략이다.
민방위 훈련이 말해주는 가장 중요한 점은 남북관계가 어떤 이유로 이렇게 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런 상황을 타개할 것인지 정부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에 대한 문제의식과 분석이 없다는 것이다. 민방위 훈련을 통해 정부 스스로 악화된 남북관계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라는 걸 시인하면서도 말이다. 정말 남북 사이의 적대감과 군사적 긴장이 높아져 전쟁까지 우려할 정도라면 민방위 훈련 같은 실효성 없고 보여주기식의 대응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남북관계를 만드는 게 정부가 할 일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