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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강 남북관계, 미래를 포기할 것인가

22대 총선이 끝났다. 다른 총선 때와는 다르게 이번 총선에서는 정권 심판론이 강해서였는지 이념 갈등이 거의 없었다. 남북관계나 이념과 관련된 주장을 강조하는 선거 캠페인도 볼 수 없었다. 다행이다. 그런데 선거에서 남북문제가 언급되지 않고 남북관계에 대한 진단이나 개선에 대한 얘기가 전혀 없었다는 건 무척 아쉬운 부분이다. 남북문제는 우리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문제고 우리의 안전, 삶의 질, 미래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재 남북관계가 최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입법기관이자 정부 감시 역할을 하는 국회를 구성하는 선거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선거 후에는 예상을 뛰어넘은 선거 결과로 역시 남북관계는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강대강 대결이 되어버린 남북관계는 변한 게 없고 최악의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3월 22일 제9회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은 “(북한은)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이라 부르며 위협을 서슴지 않고 있다”며 “북한이 이러한 도발과 위협으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완벽한 오산”이라고 말했다. 또한 “북한이 무모한 도발을 감행한다면 반드시 더 큰 대가를 치르도록 만들 것”이라며 “우리 정부와 군은 어떠한 북한의 도발과 위협에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는 지난 2년 동안 굳어진 대북 강경 입장과 정책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한 것이었다. 현 정부는 취임 직후 북한을 ‘적’으로 규정했고 2023년 2월에 발간된 ‘2022 국방백서’에서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다”라며 6년 만에 “북한은 적”이라는 표현을 부활시켰다. 북한도 거듭 남한을 ‘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월 15일 시정연설에서 “북남관계가 더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이며 “전쟁 중에 있는 완전한 두 교전국 관계”임을 강조했다. 4월 10일 군지휘관을 양성하는 김정일군정대학을 현지 지도할 때는 “적이 만약 우리와의 군사적 대결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적들을 우리 수중의 모든 수단을 주저 없이 동원하여 필살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전쟁 준비에 더욱 철저해야 할 때”라며 “단순히 있을 수 있는 전쟁이 아니라 반드시 이겨야먄 하는 전쟁에 보다 확고하게, 완벽하게 준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한과 북한 모두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나아가 싸워서 이길 것이라 다짐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북한이 남한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과장된 표현만은 아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군 통신선을 통한 남북 소통 채널은 끊긴 지 1년이 넘었다. 북한은 작년 4월 6일 마지막 통화 이후 판문점 내 남북연락사무소와 군 통신선 연락에 1년 이상 응답하지 않고 있다. 매일 판문점에 상주하는 연락관이 오전과 오후 하루 두 번 정기적으로 북측과 연락을 시도하고 있지만 북한은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재는 남아 있는 남북 소통 채널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한편 4월 18일 우리 군은 북한이 지난달 말 비무장지대 내 경의선.동해선 육로의 가로등 수십 개를 철거했다고 밝혔다. 경의선 육로는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들이 남북을 왕래할 때 활용한 도로고, 동해선 육로는 금강산 관광과 이산가족 상봉 때 이용했던 도로다. 북한은 지난해 말 이곳에 지뢰를 매설해 사실상 통행이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번 가로등 철거는 그 후속 조치로 보인다. 이렇게 남북 통행을 막아버린 건 북한이 남북관계 단절 선언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더는 나빠질 수 없는 수준까지 악화됐다. 우리가 잊고 있다고 완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상호 말 공격이 줄었다고 나아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노골적 대결을 잠시 중단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무력 충돌이 발생할 수 있고, 작은 불씨가 큰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 9.19 남북군사합의가 사실상 폐기된 현재 상황에서는 우발적 충돌을 막을 수단도 없다.

 

남북이 서로를 향해 ‘적’임을 강조하며 강대강 대결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런 점에서 양측은 상호의존인 관계에 있다. 한쪽의 안전이 다른 쪽의 판단과 행동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각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적대관계를 완화시켜 무력 충돌의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 프레임에 의존하고 ‘힘에 의한 평화’라는 모순적인 주장을 하는 대신 국제관계에서의 원칙이고 지극히 정상적인 ‘적과의 소통과 대화’를 모색해야 한다. 북한은 적일지라도 동시에 대화의 상대인 건 변하지 않는다.

 

남북관계가 강대강 대결의 지속으로 최악의 수준이지만 언제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편하고 남북관계도 영향을 받아 다시 대화의 기회가 생길지 알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고 러시아와 미국이 대화에 나선다면, 또는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의 대북정책이 변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항상 기회가 생길 때에 대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남북관계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나아가 정부가 ‘적’ 프레임과 ‘튼튼한 국방’을 강조하며 강대강 대결을 이어가는 것에 국민으로서 계속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우리는 항상 현재를 넘어서는 미래를 상상하고 준비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 변화라는 장기적 현안을 단기적 시각으로 보지 말고 정권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국민의 관심과 감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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