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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평화'여야 한다

최악이다. 그리고 갈수록 태산이다. 남북의 강대강 무력 대결이 계속되고 군사적 긴장이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북한은 작년에 8회의 ICBM을 포함해 70차례 이상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기록적인 무기 실험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높아진 군사적 긴장을 이해하려면 다른 면도 보아야 한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미연합훈련은 이전 정권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으로 강화됐고 북한은 작년 9월부터는 이에 노골적으로 맞대응을 하고 있다. 한미연합훈련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미사일 발사 등을 통해 강경 대응을 했다. 그러면 한국은 다시 한미연합훈련을 강화하고 그러면 북한도 강한 대응을 하는 식으로 강대강 대응이 계속됐다. 그 결과 군사적 긴장이 현재의 위험한 단계까지 도달했다. 이런 상황은 2023년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군사적 긴장 고조의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느냐를 논하는 게 의미가 없어진 상황이다. 이에 더해 미국은 빈번하게 스텔스 전투기, 핵추진 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을 전개하면서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1월 31일에 미국방부 장관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맞서 첨단전투기와 항공모함 전투단 등을 더 많이 한반도에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군사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적대적인 남북의 무력 대결과 그에 따른 군사적 긴장의 형성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계속 높아지고 있는 군사적 긴장이 언제 종식될지, 또는 언제쯤이면 완화 국면으로 접어들지 가늠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계속 강대강으로 치닫는 남북 대결이 결코 우리의 안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의 강경 기조가 계속된다면 올해도 군사적 긴장은 완화되지 않을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보수 결집을 위해 오히려 정부가 군사적 긴장 완화 노력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 정부 부처, 여당 등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북한을 겨냥한 감정 섞인 강경 발언들, 그리고 북한 관련 데이터에 대한 과장 또는 편향된 해석 등이 더욱 이런 우려를 하게 만든다. 남북의 강대강 대결이 계속되면 우발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오고 있다. 우발적 충돌이 오히려 강대강 대결을 중단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강대강 무력 대결이 강화되면서 핵무장론이나 나토식 핵공유 주장이 빈번하게 나오고 있는 것도 무척 우려되는 일이다. 이것은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하자는 것이며 언젠가는 재개될 수밖에 없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도 어렵게 만드는 주장이다. 물론 이 모두가 미국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미국은 이에 반대하고 있고 한미는 상시 수준의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를 해결책으로 합의했지만 말이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핵무기를 들여놓아야 한다는 주장이 이번 정부 들어서 대두되고 있는 건 단지 북한의 도발이 빈번해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현 정부가 출범 이전 대북 강경 기조를 천명했고 출범 직후부터 북한과 대결 국면을 만들면서 강대강 대결 이외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실효성 있는 장기적 구상이나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대화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이나 평화적 공존이 불필요하고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지만 남북의 군사적 대결이 강화되면서 강경 목소리가 나오고 커질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만들어졌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평화’의 의미가 왜곡되고 나아가 퇴색하고 있다는 건 가장 우려되는 일이다. 현 정부는 남북 대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기조로 하는 한반도 평화를 ‘가짜 평화’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힘에 의한 평화가 ‘진짜 평화’라고 역설하고 있다. 이전 정부도 ‘튼튼한 안보’를 기반으로 한 평화를 주장했고 이 또한 무척 유감스런 접근이었다. 그러나 이전 정부는 과정에서 실수와 전략적 실패가 있었지만 적어도 남북의 ‘평화적 공존’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와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현 정부는 힘에 기반한, 다시 말해 힘으로 상대를 눌러 이기는 왜곡된 평화를 주장하는 것 외에 장기적 전략이나 정부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힘에 기댄 평화만 주장하는 건 평화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평화가 실현된 사회의 모습, 그리고 평화를 실현하는 과정과 방식은 보편적이다. 상황의 차별성을 주장하며 무력을 선택하고 상대를 무력으로 제압해 달성하는 평화는 없다. 평화의 실현은 평화적 공존으로 나타나며 그것은 대화와 합의를 통해, 전쟁의 경우에도 평화조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현실 정치에서 전략적으로 군사적 긴장 형성이나 무력 시위를 선택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일시적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군사적 안보를 추구하고 군사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면 당연하게 평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건 허구이자 왜곡이다. 그런 방법에 의해서는 평화적 공존을 성취할 수 없다. 또한 군사력과 안보에 기댄 방식은 자국 국민의 안전 또한 위협하고 삶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직면한 현실은 각각 다를 수 있지만 유엔을 포함한 국제기구들, 그리고 모든 사회가 평화적 방식에 의해 성취된 평화를 보편적으로 추구하고 주장한다.

 

남북의 강대강 대결과 군사적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건 ‘평화’ 밖에 없다. 평화, 다시 말해 일상의 안전과 행복한 삶의 방향을 보장하는 ‘평화’를 위해 안보가 아닌 평화를 얘기하고 평화를 실현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를 얘기하는 건 부질없고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그리고 많은 사회에서 평화가 강조되고 평화 실현을 위한 실질적 노력이 이뤄진 건 전쟁과 무력 충돌이 있을 때였다. 평화가 절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절실하게 평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니 ‘평화’를 얘기하고 무력 대결과 충돌이 아닌 평화적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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