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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평화-국가안보에서 인간안보로

6월 11일 오후 2시에 군이 전방 지역에서 운영하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중지했다. 윤석열 정부가 작년 6월 방송을 재개한 후 약 1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군은 고정식 확성기 24개와 이동식 확성기 16개 등 총 40개의 확성기를 전방 지역에서 운용해 왔다. 방송 중지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대통령실은 “남북관계 신뢰 회복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정부의 의지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일상 회복이었다. 효과는 몇 시간 만에 나타났다. 북한은 저녁 시간부터 40여 곳에서 큰소리로 내보내던 대남 방송을 잔잔한 노래로 바꿨고 12일 0시를 시작으로 방송을 모두 중지했다. 주민들은 한목소리로 거의 1년 만에 처음으로 편안히 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로써 거의 1년 동안 계속됐던 남북의 확성기 방송 ‘대결’은 일단 종지부를 찍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6월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에 대응해 6년 6개월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고 이에 맞서 북한도 7월에 대남 확성기 방송을 시작했다.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는 남한 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대응이었다.

 

대북전단 살포는 아직 중단되지 않았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시킨 정부는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강경 대응에 들어갔다. 탈북자, 종교인, 납북자가족 단체 등의 대북전단은 그동안 북한을 자극하고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전단 살포 단체들은 2023년 9월 헌법재판소가 2020년 12월 만들어진 일명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판단한 것을 근거로 정당성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 판단에서 헌재는 ‘대북전단금지법’이 “국민의 생명·신체 안전을 보장하고 남북 간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국가 책무를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서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고 했다. 다만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할 수 있는 과잉처벌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위헌이 아니라는 반대 의견도 있었다. 두 명의 재판관은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이라는 중요한 법익”을 강조하면서 이를 위해 “덜 침해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위헌 결정에 찬성한 재판관들도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보장’이라는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조치를 당부했다. 그런데 단체들은 이런 맥락은 잘라버리고 ‘표현의 자유’만 강조하면서 대북 전단을 살포해 왔다. 지난 정부와 여당, 그리고 보수 정치인들 또한 같은 점을 들어 전단 살포를 정당화했다.

 

지난 정부는 헌재의 판단을 악용해 남북 긴장을 야기하는 대북 전단 살포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런 정부의 태도는 전달 살포에 대한 암묵적 승인 내지 독려로 해석됐다. 정부의 외면과 무대응으로 결국 북한이 오물풍선을 살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북한은 작년 5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32차례 오물풍선을 살포했고 이후에는 중단했다. 오물풍선에 대해 정부는 전후 관계는 따지지 않고 북한을 비난하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 주로 오물풍선 피해를 입는 수도권과 불안에 떠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일상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통일부는 새 정부가 들어선 후인 지난 6월 9일 대북전단 살포가 “한반도 상황에 긴장을 조성하고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며 살포 단체들에게 “중지를 강력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2023년 9월의 헌재 판단 뒤 첫 의견 표명이었다. 그러면서 올해 들어 세 차례 전단을 살포한 납북피해자가족연합회가 통일부의 자제 요청에도 계속 대북 전단을 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 역시 대북 전단이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와는 다르게 경기도는 지난해 10월부터 재난안전법에 근거해 파주, 연천, 김포 3개 시군을 재난안전법상 위험구역으로 지정하고 24시간 순찰을 시작했다. 하지만 전단 살포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이 때문에 전단 살포가 임박할 때마다 접경지역 주민과 살포 단체들 사이 충돌이 반복됐다. 새 정부는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고 관계 기관에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6월 16일 통일부는 행정안전부, 국방부, 그리고 접경지역인 경기도, 인천, 강화군 관계자들까지 참여한 회의에서 전단 살포를 막기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정부는 일단은 헬륨가스 반입에 대한 재난안전법, 대형 풍선에 대한 항공안전법, 고압가스안전관리법 위반 등을 적용하기로 하고 대북전단금지법의 대체 입법도 마련하기로 했다.

 

출처: 통일부 홈페이지 갈무리


정부의 입장은 타인의 삶을 위협하는 ‘표현의 자유’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넓게 보면 정부가 남북관계와 관련해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에 중심을 둔 정책에서 벗어난 인간안보(human security)를 고려한 정책으로의 변화를 예고한 것이다. 국가안보는 말 그대로 국가의 영토 보전, 경제적·정치적 이익 등을 중심에 놓고 국가를 위한 사회와 개인이 ‘희생’을 강요하는 접근과 이념을 말한다. 국가안보는 무력을 중심에 두기 때문에 군사력 강화, 군사적 대응, 군사적 긴장의 전략적 이용 등에 초점을 맞추고 평화적 관계와 평화 형성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반면 인간안보는 개인 및 공동체의 안전과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모두를 위한 안전한 환경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조건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다양한 영역의 다양한 자원을 개발 및 활용하고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의사결정 과정에도 관심을 둔다. 인간안보는 개인과 공동체의 평화로운 일상을 위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다. 국가안보에 초점을 맞춘 접근을 강조하면 인간안보를 달성하기 힘들다. 그러나 인간안보에 초점을 맞춘 접근을 통해서는 개인 및 공동체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국가안보 또한 성취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안보로의 변화를 시사하는 정부 정책은 당연하고 바람직한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정부 대북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의 안전한 일상을 외면한 것이었다. 북한에 대한 공격적 태도와 입장 표명, 군사적 긴장 악화 환경 조성, 강대강 대결의 지속 등은 국민의 안전을 위협했다. 특히 대북전단 살포 묵인 및 방치, 그리고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는 접경지역과 수도권 주민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일이었다. 재개를 결정할 때 주민들이 받을 고통을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피해가 발생하고 주민들의 호소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대북전단을 단속하면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를 중단시킬 수 있고, 대북확성기를 중단하면 대남확성기도 중단시켜 국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말이다. 정부는 오로지 북한과의 힘겨루기에만 집중했다. 이런 태도와 행동은 북한과의 심리전에는 유용할 수 있으나 적대관계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전략적 유용성이 지극히 낮고, 하지만 국민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것임에도 무시했던 것이다. 이런 정부의 무대응은 대북정책의 목표가 무엇인지,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인간안보 접근은 정부에게 선택적이 아닌 당위적인 접근이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의 행복을 증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안보 접근은 정부가 국민에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정부의 대북정책, 북한과의 관계 설정, 군사적 전략 등은 모두 국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그것이 결국 국가의 안전도 담보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아무쪼록 새 정부는 국민을 위한 정책을 통해 인간안보를 담보하고 남북 평화 정착의 길을 모색해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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