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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 평화에 대한 오해

평화의 개념을 설명할 때는 보통 소극적(negative) 평화와 적극적(positive)를 언급한다. 소극적 평화는 물리적 힘을 통해 인간의 신체에 가해지는 직접적 폭력이 부재한 상태/상황을 의미한다. 적극적 평화는 직접적(direct) 폭력은 물론이고 구조를 매개로 가해지는 구조적(structural) 폭력과 철학, 이론, 사상, 종교적 가르침과 기호, 담론 등 문화적 수단을 통해 가해지는 문화적(cultural) 폭력까지 부재한, 다시 말해 모든 폭력이 부재한 상태/상황을 의미한다. 적극적 평화를 구조적 폭력의 부재를 강조하며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건 문화적 폭력의 부재다. 1960년대 말 구조적 폭력의 개념을 고안한 요한 갈퉁은 약 20년 후에 직접적,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하고 합법화하는 문화적 폭력의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예를 들어 문화적 폭력을 통해 국가의 살인은 옳은 일이 되고 개인의 살인은 틀린 일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므로 적극적 평화를 구조적 폭력의 부재 맥락에서만 언급하는 건 구조적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의 개념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 평화를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하곤 한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논할 때도 등장한다. 지난 정부가 남북대화를 재개하고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강조하면서 평화 이론의 이해에도 관심을 쏟은 덕분이다. 평화 개념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정말 높아진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번 정부의 통일부장관이 청문회에서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를 언급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평화 개념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고 그 결과 오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소극적 평화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다. 소극적 평화는 직접적 폭력의 부재를 의미하고 사회 차원에서 그것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전쟁이나 무력 갈등(armed conflict)이다. 1950-60년대에 평화학의 초기 연구자들은 소극적 평화의 연구에 주력했다. 2차 세계대전의 경험으로 인해 국가 사이 전쟁 및 무력 충돌의 예방과 소극적 평화의 성취를 가장 중대한 현안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특히 핵무기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핵전쟁에 대한 위험까지 존재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소극적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나 무력 충돌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전쟁이나 무력 충돌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아야 소극적 평화가 달성될 수 있다. 1950년대 이후 평화연구자들이 소극적 평화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표면적으로 국가 사이 전쟁과 무력 충돌은 없지만 가능성이 상존하는 상황을 가능성까지 제거된 상황으로 바꾸어야 인류가 안전해지고 평화 정착이 가능해지기 때문이었다.

 

남북한 사이 전쟁이나 무력 충돌이 부재한 현재의 상황을 소극적 평화의 상태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줄곧 그랬고, 그리고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남북 대화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사이 전쟁과 무력 충돌의 위험성 및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남북한 사이 무력 과시와 무기 개발 경쟁은 오히려 심화하는 모습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별도의 문제로 쳐도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극적 평화를 성취한 상태가 아니다. 전쟁과 무력 충돌 가능성의 상존으로 소극적 평화도 성취하지 못한 상태고, 무력 대결과 경쟁을 줄이고 마침내 종식하려는 노력의 부재로 소극적 평화 성취의 가능성조차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니 우리가 현재 소극적 평화의 상태에 있고 이제 적극적 평화의 문제를 다루면 된다는 식의 접근은 비논리적이고 평화와 폭력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과제는 남북한 거주자들의 신체의 안전조차 담보하지 못하는 현재 상황, 즉 소극적 평화의 부재를 인식하고 소극적 평화의 성취를 위한 사회적 인식과 체계를 바꾸는 것이다. 동시에 소극적 평화를 넘어 적극적 평화로 가는 방향성을 확실히 설정하고 그와 모순되지 않는 남북한 사이 관계 설정과 진전 과정을 공식화하고 구체적으로 모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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