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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의 시대와 최저임금

201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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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과 쿡방에서 집밥으로

'먹방'의 시대를 지나 '쿡방'의 시대가 왔다. 먹는 방송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꼈던 사람들은 이제 요리 과정을 직접 보여주고 가르쳐주는 방송을 보면서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을 한다. 쿡방은 집에서 할 수 있는 요리를 보여주면서 서툴러도 직접 해 먹어 보라고 끊임없이 시청자의 옆구리를 찌른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집밥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단다. 방송의 영향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서 먹는 밥보다는 집밥이 낫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밥'을 그리워한다. 제법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 '집밥'은 보통 어렸을 때 어머니나 할머니가 해주시던 밥을 말한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집밥을 해 먹이는 처지가 된 사람에게도 집밥은 어린 시절이나 친정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다. 그렇지만 웬만큼 나이가 들고 독립을 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제 밥은 스스로 해먹어야 한다. 집에서 말이다. 그런데 집밥은 만만치 않다. 집밥은 식당밥과는 다르게 소박하면서도 깔끔하고 자꾸 입맛이 땡기는 그런 밥, 국, 찌개, 반찬 등을 갖춰야 한다. 그러니 집밥은 누구나 원하는 밥이지만 쉽게 할 수도 먹을 수도 없는 밥이다. 

 

무엇보다도 집밥이 먹기 힘든 밥이 된 이유는 생활 환경 탓이다. 아무리 요리를 가르쳐주는 방송이 많아도 집밥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집밥을 할 수 있는 기본 생활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집밥을 해먹으려면 부엌과 조리도구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고 시간과 돈도 있어야 한다. 집세가 비싼 대도시에서 제대로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부엌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젊은이들이 많이 사는 고시원이나 원룸 시설은 완전 집밥 거부 환경이다. 게다가 비정규직이나 알바로 일하면서 저임금을 받는 사람들은 장시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밥을 할 시간이 없다. 물가는 또 얼마나 비싼가. 마트에서 채소 몇 개 집으면 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그러니 집밥은 주거 환경, 시간, 돈이 맞아 떨어져야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집밥을 포기하고 산다. 그냥 싸고 손쉽게 한 끼를 떼울 수 있는 음식을 찾아 분식집으로 편의점으로 향한다. 편의점 도시락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그래서 씁쓸한 소식이다.

 

최저임금, 집밥 보장하지 않아

집밥을 원하지만 먹을 수 없는 대다수 사람들이 겪는 문제의 근본원인은 낮은 임금이다. 지난 주 결정된 2016년 최저임금 시급은 6030원이고 그것을 기준으로 한 월급은 126만원이 조금 넘는다. 2015년이 아직 절반 정도나 남았는데 2016년에 대한 희망도 이미 사라져 버렸다. 6030원의 시급은 한국 물가로 치면 아주 적은 돈이다. 1시간 시급으로 대도시에서 제대로 된 밥 한 끼를 사먹을 수 없고 월급으로 혼자서 살기도 힘들다. 그런데 이런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7월 13일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올 3월 기준으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노동자가 232만 6천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12.4% 였다고 한다. 특히 정규직 중에는 1.7%인 반면 비정규직 중에는 25.7%가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다. 25세 미만과 55세 이상 노동자 가운데 28% 이상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다. 어리다고, 그리고 나이가 많다고 임금을 깎았을 것이 뻔하다. 최저임금이나 그 이하를 받고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몸을 쓰는 일을 하고 매일 피곤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설사 시간이 남고 부엌이 있어도 밥 한 끼 해먹겠다고 장보고 밥할 기력이 남아 있을리가 없다. 자식들에게 밥을 해줘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누구나 먹던 '집밥'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치스런 일과 말이 됐다. 단지 게으르거나 솜씨가 없어서가 아니다. 임금이 너무 낮고 그에 따라 생활 수준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몇년 전 어떤 정치인이 제법 낭만적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얘기했지만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저녁 시간의 여유는 고사하고 집밥 한 끼 제대로 해 먹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밖에서 먹는 밥에 지쳐서 집밥을 그리워하는 시대가 됐지만 제대로 집밥을 해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최소한 부엌이 있는 주거시설과 비싼 식재료를 감당할 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몇 년 전 패스트푸드 문제를 다룬 미국 필름을 본 적이 있다. 거기 나오는 노동자 가족은 매일 맥도날드에서 산 햄버거와 콜라로 끼니를 해결했다. 당연히 비만이 생겼고 그냥 봐도 건강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 가족이 패스트푸드로 식사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일을 하느라 밥을 할 시간이 없고 식재료 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건강에 안 좋은 것을 알지만 값싼 기름과 설탕 범벅인 음식을 사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저임금은 밥의 계급화를 만들고 있다. 여전히 유행하는 먹방과 쿡방은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서 식도락의 세계를 보여준다. 또한 그것을 넘어 밥의 차별화를 강조한다. 맛있고 고급스런 음식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에게 이제 밥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취미이자 유흥이 됐고 미술관 투어 같은 문화 생활이 됐다. 이런 가운데 요리를 하는 사람들, 시실은 자기 식당를 운영하면서 요리도 하는 쉐프들이 떴다. 그들의 식당, 요리, 식재료 등이 비싼 돈을 지불하더라도 맛있고 질 높은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쪽에는 그런 방송을 보며 빈부 격차를 실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식도락과 취미 생활은 고사하고 소박한 집밥조차 사치로 여겨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솜씨가 없고 게을러서가 아니라 집밥을 만들 수 있는 주거 환경, 시간, 지갑 형편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5580원, 그리고 내년 6030원의 최저임금 시급은 집밥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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