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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장 사형 선고, 정의의 실현?

201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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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 강원도 고성 GOP에서 총을 난사해 5명을 숨지게 하고 7명을 다치게 한 임 병장에게 군사법원이 사형을 선고했다. 5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예상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희생자들과 가족들을 생각하면 정의가 실현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왠지 찜찜하다.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임 병장을 단순 가해자로 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임 병장 사건으로 군대 내 '관심병사' 제도의 문제점이 대두됐고 국방부는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공언까지 했다. 이것은 관심병사였던 임 병장이 저지른 일을 다른 사건과 비슷한 잣대를 들이대 처리해선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도 역시 찜찜하다. 임 병장은 관심병사였고, 군에 의해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임 병장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인가? 그의 범행에 대해서는 다른 법의 잣대를 대야하나? 그럼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억울함은 어떻게 풀 수 있나? 그러니 이것 또한 아닌 것 같다.  

 

법적 판단은 보통 정의의 실현으로 여겨진다. 정의는 잘못된 것을 밝히고 책임을 물음으로써 잘못을 바로잡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과 그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밝히는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 다른 말로 가해자와 희생자를 밝혀야 한다는 얘기다. 정의의 실현을 통해 가해자는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고 희생자는 억울함을 풀고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 이런 정의의 절차를 실행하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 법이고 법정이다. 법적 판단에 의하면 임 병장은 가해자고 희생자는 총기 난사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다친 군인들이다. 그렇다면 임 병장에 대한 사형 선고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찜찜한 것일까? 그것은 임 병장이 총기 난사 전까지는 희생자였다는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대로 희생을 당한 병사들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집단 따돌림'의 가해자였을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형을 선고한 군사법원은 최후의 사건만 다루고 근본원인은 다루지 않았다. 임 병장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한 것은 범죄의 근본원인을 외면한 판결이었다. 이것을 임 병장과 그의 가족은 정의의 실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법정에서는 누구나 자신을 변호할 권리를 가진다. 임 병장도 변호인을 통해 그런 권리를 누렸다. 그렇다면 임 병장도 억울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임 병장은 사실 두 개의 열굴을 가지고 법정에 섰다. 하나는 희생자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가해자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희생자의 얼굴은 잘 드러나지 않았고 가해자의 얼굴만 두드러졌다. 다시 말해 희생자의 얼굴은 가해자의 얼굴에 가려져버렸고 법정은 가해자의 얼굴에 초점을 맞췄다. 짐작하건데 희생자의 얼굴은 잠깐 동안 들러리 역할 밖에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임 병장의 가해를 다루는 법정이었기 때문에 범행 이전 그가 희생자였던 상황을 심도 있게 다룰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것이 법의 원칙이자 한계다. 법은 발생한 최종 사건과 그것을 증명하는 증거를 다툴뿐 잘 보이지 않는 밑바닥에 있는 근본원인을 가려내 옳고 그름을 따질 책임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법이 정의를 실현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근본원인을 다루지 않은 법정은 임 병장과 그의 가족이 원하는 정의까지 실현하기엔 턱없이 미흡했다. 

 

임 병장과 그의 가족을 위한 정의의 실현이 미흡했던 또 다른 이유는 군사법원이 가진 한계 때문이다. 그 한계는 군의 비뚤어진 구조, 징집제 등 군과 관련한 고질적인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철저하게 군의 입장과 이익에만 초점을 맞춰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런 한계는 재판부의 설명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재판부는 임 병장이 "안보 공백을 초래"했고 그의 "범행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고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사형선고 이유를 밝혔다. 군사법원은 임 병장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 겪었던 인간적 고통은 전혀 보지 않고 '안보'를 인간적 고통보다 중요한 것으로 이해했다. 물론 임 병장이 군인이었기 때문에 제기할 수 있는 문제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는 직업군인이 아니라 징집된 사병이었다. 그리고 몇 달 후면 다시 민간인으로 돌아갈 사람이었다. '안보'는 한시적인 기간 동안 단순한 명령만 따르는 그가 책임질 것이 아니라 직업군인들이 책임져야 하는 일이고, 정말 안보가 걱정됐다면 군은 임 병장과 같은 관심병사들은 물론 그에게 가해를 가한 것으로 보이는 다른 사병들까지 잘 관리했어야 했다.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것과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는 말도 곰곰 생각해보면 기가 차는 말이다. 총을 난사한 것에 대한 책임은 물론 임 병장이 져야 하지만 그런 일이 발생하게 만든 것에 대한 '엄중한 책임'은 군과 국방부에게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범한 젊은이를 범죄자로 만든 근본원인은 '사회로부터 격리'된 군대라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로부터 격리된 군대라는 현장에서 극복하기 힘든 문제에 직면했고, 결국 범죄를 저지른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려야 하는 이유가 그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해서라니 이건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또한 이미 사회로부터 격리됐었고 지금도 격리돼 있는 사람에게 판결을 내리는 설명으로는 타당성이 없는 얘기다. 범죄의 근본원인이 된 상황과 구조는 무시하고, 모든 책임을 억울함과 분노를 참지 못한 한 사람에게 묻는 군사법원은 임 병장과 그의 가족의 정의까지 실현하기엔 절대적으로 능력 부족인 것이 드러난 셈이다. 

 

재판부는 지난 6개월 동안 임 병장이 단 한 장의 반성문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군과 국방부는 임 병장, 또는 그의 가족에게 한 마디 사과라도 했는지 궁금하다. 짐작컨데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뉴스도 보지 못했다. 관심병사 제도의 문제점은 인정했지만 그로 인해 희생을 당한 사람은 그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가해자로만 취급한 것이다. 이 또한 임병장과 그의 가족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전혀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임 병장을 위한 정의는 어떻게 실현돼야 하는가? 그를 위한 정의까지 실현돼야 하는가? 그를 위한 정의를 실현한다는 것은 그의 죄를 덮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임 병장이, 또는 그의 가족이 원하는 정의가 실현된다고 해도 그가 자행한 범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져야할 책임이다. 다만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려면 임 병장이 가진 희생자의 얼굴까지 직시하고 그것이 그의 범행에 미친 영향까지 객관적으로 평가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임 병장도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처벌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진심이 담긴 반성문은 아마도 그때가 돼야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정의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추구해야 군사법원이 정의를 실현하는 최소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을 보면 군사법원에 그런 기대를 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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